전시 | 출판인 한만년과 일조각 2014. 10. 2. – 12. 26.

一業一生, 한만년과 일조각의 육십 년 출판 풍경

열화당책박물관은 출판인 한만년(韓萬年, 1925-2004)의 십 주기, 일조각(一潮閣) 육십 년에 즈음하여, 한만년과 일조각이 한국 출판문화에 남긴 업적을 다시금 조명하고, 이를 거울 삼아 오늘의 한국출판이 나아가야 할 길을 되새겨 보고자 이 전시를 기획했다.
전시는 제1부 ‘육십 년 일조각 출판물로 보는 한국출판의 한 페이지’와 제2부 ‘『한국사신론(韓國史新論)』과 일조각의 문예・학술지 출판, 그리고 자료로 보는 출판인 한만년’으로 나뉜다. 제1부에서는 1953년부터 최근까지 육십 년 동안의 일조각 출판물을 시대별로 보여 줌으로써 한국출판, 특히 일조각이 가장 크게 공헌한 학술출판의 면면을 조명한다. 제2부에서는 특기할 만한 정기간행물인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 『어문연구』 『한국사 시민강좌』를 통해 일조각의 학술지와 문예지 출판 업적을 살펴보고, 가장 대표적인 책인 이기백(李基白)의 『한국사신론』의 다양한 판본을 전시한다. 또한 한만년의 시기별 사진, 그리고 출판 관련 스크랩 및 일조각 책 광고 스크랩 자료 등을 통해 한만년과 당대의 출판 풍경을 보여 준다.
구봉(久峰) 한만년(韓萬年)은 1925년 10월 29일(음력 9월 9일) 서울 종로구 적선동 177번지에서 월봉(月峰) 한기악(韓基岳, 1898-1941)의 삼남일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월봉은 상하이 임시정부 법무위원을 지낸 독립운동가로, 『동아일보』 창간 기자였으며, 『동아일보』 『시대일보』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뛰어난 언론인이었다. 한만년의 형 한만춘(韓萬春, 1921-1984)은 연세대 이공대학장을 지낸 공학자였고, 아우 한만청(韓萬靑, 1934- )은 서울대학병원장을 지낸 의학자이다.
한만년은 중앙중학교, 보성전문학교 경상과, 서울대학교 문리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1948년 내종형 홍석우(洪錫禹)가 경영하는 탐구당(探求堂)에 입사하여 몇 년간 출판 실무를 익힌 뒤,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9월 14일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41번지에 도서출판 일조각(一潮閣)을 설립한다. ‘일조각’이라는 이름은 한만년의 장인인 유진오(兪鎭午)가 장차 출판사를 운영할 생각으로 지어 놓은 것이었다.
이후 2004년 작고하기까지 반세기 동안 한만년은 일조각을 통해 한국학 관계 도서 천오백여 종을 포함하여 역사학, 사회학, 법학, 의학, 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천오백여 종에 이르는 양서를 발행하면서 평생을 출판에 헌신했다. 또한 민족의 독립을 염원하다 해방을 보지 못하고 사십대 초반에 세상을 뜬 선친의 뜻을 기려 1975년 ‘월봉저작상’을 제정, 매년 한국학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저작을 낸 학자에게 시상하고 있다.
출판인으로서 한만년이 이룬 또 다른 성취 중 하나는 우리 출판의 어려운 현실을 구체적으로 개척해 나간 점이다. 그는 ‘출판의 과학화’를 우리 출판의 비전으로 제시하고 육십년대 중반 출판의 자립갱생을 주도해 나갔다. 오늘날 한국이 출판대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토대가 그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을 여섯 차례나 지낸 그는, 한국출판금고를 입안하여 그 설립을 주도했으며, 출판업의 면세 혜택, 저작자에 대한 원고료와 인세 소득세 면제를 관철시켰고, 출판인들의 힘을 결집하여 출판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출판문화회관을 건립하기도 했다. 그 밖에 한국문화예술진흥위원회 위원(1976-1978), 평화통일정책 자문위원(1981), 우당 이회영 선생 기념사업회 회장(1990), 바른시정시민위원회 문화(학술)위원(1996) 등 지식인으로서 다양한 활동을 병행했다.
문교부 표창을 여러 차례 받았으며, 제17회 서울시문화상 출판 부문(1967), 문공부장관상(1968), 제13회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문화 부문(1981), 제7회 인촌상 언론출판 부문(1993), ‘금년을 빛낸 중앙인’상(1993), ‘자랑스런 서울대인’상(1996), 제1회 효령상 문화 부문(1998), 제9회 간행물윤리상 대상(1998) 등을 수상했고, 화관문화훈장(1984)을 수훈했다.
2004년 4월 30일 작고 후 국민훈장 모란장이 추서되었으며, 2014년 십 주기를 맞이하여 유족들의 기부로 성공회대학에 ‘책의 사회사’ ‘책의 문화사’라는 이름으로 한만년을 기리는 강좌가 십 년 예정으로 개설되었다. 묘지는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손곡리에 있다.

<출판인 한만년과 일조각> 전.

한국전쟁 직후에 창립한 신생출판사 일조각의 오십년대는, 고급 학술서적 출판을 모색하면서 한편으로는 다양한 대학교재와 중고등학교 검인정 교과서의 출간을 통해 자립의 기틀을 다진 시기였다.
일조각의 첫 출판물은 한만년의 장인인 유진오의 『헌법해의(憲法解義)』(1953)로, 제헌헌법을 기초한 당사자의 해설서이다. 이 책은 처음 명세당(明世堂)에서 간행되었는데, 한만년이 일했던 탐구당으로 옮겨 간행되었다가 일조각 창업 후 다시 간행된 것이다. 유진오의 법률서는 『헌법의 기초이론』(1953), 『헌정의 이론과 실제』(1954)로 이어졌고, 육십년대에는 정치평론집 『민주정치에의 길』(1963), 수필집 『구름 위의 만상(漫想)』(1966)이 출간되기도 했다.
1954년에는 한만년의 부인 유효숙(兪孝淑)의 번역으로 『별은 창 너머―안네의 일기』가 출간되었는데, 이 책은 ‘안네의 일기’의 한국 초역본으로, 당시 베스트셀러가 되어 일조각이 신생출판사로서 자리를 잡는 데 큰 기여를 했다.
한편, 같은 해에 이병도(李丙燾)의 번역으로 선보인 『하멜 표류기』는 일조각이 처음으로 간행한 역사서로, 이는 향후 일조각이 한국학 관계 서적 출판으로 선회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으며, 1958년 출간한 막스 베버의 고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과 함께 가장 오래도록 사랑을 받은 일조각의 번역서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 시기에 특기할 것은 『이병도 박사 화갑기념논총』(1956)과 『일석 이희승 선생 송수기념논총』(1957)이다. 이 두 책은 우리나라 회갑기념논총의 효시로, 각각 칠백 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으로 당대 권위있는 학자들의 논문을 모은 획기적인 출판이었으며, 수록 논문들은 내용 면에서도 매우 단단하여 그 후 이십여 년간 학계에서 빈번히 인용되곤 했다.
국어학자 일석(一石) 이희승(李熙昇)은 일조각의 중요한 저자 중 한 사람인데, 그는 한만년의 부친인 한기악의 중앙학교 동창이자, 한만년・유효숙 부부의 결혼식 주례를 맡기도 했었다. 한만년은 이러한 인연으로 이희승의 『벙어리 냉가슴』(1956)을 일조각의 첫 수필집으로 출간했다. 또한 같은 해에 선친의 벗이자 동료 언론인이었던 동명(東溟) 김을한(金乙漢)의 수필집 『인생잡기(人生雜記)』를 간행하기도 했다.
일조각은 1959년 김석환(金錫煥)의 『조산학(助産學)』과 대한순환기학회의 『임상심전도학(臨床心電圖學)』을 출간하면서 의학 분야에서도 무게있는 책들을 잇달아 내놓기 시작했다. 1961년에 출간된 백만기(白萬基)의 『이비인후과학(耳鼻咽喉科學)』과 서병설(徐丙卨)의 『임상기생충학(臨床寄生蟲學)』은 일조각의 대표적인 의학서로, 해당 분야의 대가가 집필하여 오랜 기간 권위 있는 교과서로 활용되었다.
일조각의 첫 영문서적은 변영태(卞榮泰)의 Tales From Korea(1960)이다. 저자는 전 국무총리 겸 외무부 장관으로 유명하지만, 한만년의 중앙학교 시절 은사였고, 선친 한기악의 친한 벗인 수주(樹州) 변영로(卞榮魯)의 형이기도 했다. 이 책은 외국에 한국을 소개하는 책자가 부족하던 시절 중요한 역할을 했다.


왼쪽부터 차례대로. 유진오 저, 『헌법해의(憲法解義)』(新稿), 1953. 안네 프랑크 저, 유효숙 역, 『별은 창 너머-안네의 일기』, 1954. 김을한 저,『인생잡기(人生雜記)』, 1956. 양주동 저, 『고가연구(古歌硏究)』(증정판), 1965. 김구용 역.

 

육십년대는 삼십대 후반에서 사십대 초반의 젊은 사장 한만년이 이끄는 일조각이 양주동의 『고가연구(古歌硏究)』(1965)나 이기백의 『한국사신론(韓國史新論)』(1967) 등 무게 있는 저작의 간행을 통해 고급 학술서적 출판사로서 입지를 분명히 한 시기였다.
송욱(宋稶)은 1961년 시집 『하여지향(何如之鄕)』을 발행한다. 이후 송욱은 한만년과 두터운 교분을 쌓으면서 『시학평전(詩學評傳)』(1963), 『문학평전(文學評傳)』(1969) 등의 문학 연구서와 『월정가(月精歌)』(1971), 『님의 침묵—전편 해설』(1980) 등의 저서를 이어서 출간했으며, 유고집 『시신(詩神)의 주소(住所)』(1981)도 일조각에서 간행되었다. 특히 『시학평전』은 일조각에서 처음으로 한국출판문화상 저작상을 수상한 책이기도 하다.
이후 김석환의 『부인과학』(1968), 이광린의 『한국개화사연구』(1969), 한동세의 『정신과학』(1969), 한우근의 『한국개항기의 상업연구』(1970) 등이 한국출판문화상 저작상을 수상하게 된다.
양주동의 『고가연구』는 1942년 박문서관(博文書館)에서 처음 간행되었던 것을 일조각에서 증정판(增訂版)으로 다시 낸 것이다. 이 책은 『삼국유사(三國遺事)』와 『균여전(均如傳)』에 실린 향가 스물다섯 수에 대한 주석서로, 양주동 개인뿐 아니라 한국 국문학 전체를 대표하는 역작이다.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은 1963년 제일출판사(第一出版社)에서 『국사신론(國史新論)』으로 처음 출간되었던 것을, 1967년 일조각에서 제목과 내용을 바꾸어 완전히 다른 책으로 간행한 것이다. 제목에서부터 기존의 일본식 자국사(自國史) 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나, 세계사 속의 ‘한국사’를 바라본다는 새로운 입장을 표방했다. 다섯 차례 중간(重刊)되면서, 일본어판(두 종), 영어판, 중국어판, 스페인어판, 말레이어판, 그리고 여섯 권의 점자도서(유네스코 발행)로도 출간되는 등, 일조각의 가장 대표적인 책이면서도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은 책으로 남게 된다.
또한 『형법학(刑法學)』(상・하, 1967)은, 서울대 총장을 지낸 형법학자 유기천(劉基天)의 명저로, 이후 유신정권의 박해로 본의 아닌 망명생활을 해야 했던 시절에도 끊임없이 개정판을 이어 가며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일조각의 대표적인 법률서적이다.
한편, 한국문단을 양분했다는 『창작과 비평』과 『문학과 지성』이 시기는 다르지만 모두 일조각에서 간행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진보와 보수가 본격적으로 분화되기 전이라는 점도 있지만, 한만년의 문화 전반에 대한 폭넓은 지원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창작과 비평』은 1967년 제2권 제4호(겨울호)부터 1969년 제4권 제2호(여름호)까지, 『문학과 지성』은 1970년 창간호부터 1977년 27호까지, 한만년은 제작과 발행을 맡아 자립할 때까지 묵묵히 후원해 주었다.

칠십년대는 해방 이후 학계에 데뷔한 젊은 사학자들의 참신하면서도 무게 있는 저서들을 연달아 간행하여 한국학 관계 서적 출판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굳히는 한편, 의학・인류학・사회학 등 출판의 지평을 계속해서 넓혀 간 시기였다. 일조각은 칠십년대부터 황금기를 누리기 시작한다.
이 시기 일조각의 가장 큰 성과로는 김용섭(金容燮)의 『조선후기농업사연구』 1・2(1970-1971)와 『한국근대농업사연구』(1975), 신용하(愼鏞廈)의 『독립협회연구』(1976)를 들 수 있다. 김용섭의 저서는 일제 관변사학자들이 남긴 정체성론에 맞서 ‘자본주의 맹아론’을 펼친 역작으로, 칠십년대 이후 근현대사 연구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논쟁적인 책이다. 『독립협회연구』는 한국근대사 연구에서 대표작으로 꼽히는 저작으로, 한만년이 제정한 월봉저작상의 제2회 수상작이기도 하다.
이 밖에 최창규의 『근대한국정치사상사연구』(1972), 김재근의 『조선왕조군선연구(朝鮮王朝軍船硏究)』(1977), 천관우의 『근세조선사연구』(1979)가 한국출판문화상 저작상을, 김민수의 『국어문법론』(1972), 이광린의 『개화당연구(開化黨硏究)』(1973), 김옥렬의 『한국과 미일관계론』(1974)이 경향양서출판문화상을, 이성무의 『조선초기양반연구』(1980)가 두계학술상을 각각 수상했으며, 김영모의 『조선지배층연구』(1978)는 한국출판문화상 저작상과 월봉저작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한편, 이광규(李光奎)는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 인류학계에서 『문화인류학개론』(1971)을 출간하여 이 방면에 선구적 역할을 했는데, 이후 그는 해외동포 연구 시리즈로 『재일한국인(在日韓國人)』(1983), 『재미한국인(在美韓國人)』(1989), 『재소한인(在蘇韓人)』(1993), 『재중한인(在中韓人)』(1994) 등을 잇달아 선보였다. 이후 일조각의 문화인류학 관계 책들은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한국문화인류학회 편, 1998), 『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한국문화인류학회 편, 2003) 등으로 이어져 갔다.
이 시기에 특기할 만한 어문학 관계 책으로는, 개화기의 선구자 구당(矩堂) 유길준(兪吉濬)의 저술을 모은 영인본 『유길준전서(兪吉濬全書)』 다섯 권(1971)과, 1972년부터 내기 시작한, 그동안의 국어학계의 성과를 모은 기초자료집 『국어학자료선집』 다섯 권을 들 수 있다.
베스트셀러 소설 한 권 내지 않던 일조각에서 유일하게 낸 소설이 김구용(金丘庸)의 『삼국지(三國志)』(전5권, 1974)이다. 물론 대중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이 책은 한국에서 간행된 어떤 판본보다도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원문과 분위기를 잘 살린 충실한 번역본으로 꼽힌다. 그 밖의 창작물로는 1976년 간행한 피천득(皮千得)의 시문선 『산호(珊瑚)와 진주(眞珠)』가 있다.
이 시기에 한만년은 『어문연구(語文硏究)』(남광우 편집, 1973)를 창간했는데, 이는 깊이 있는 한국학 연구를 위해서는 한자 교육이 필수적이라는 신념으로, 한국어문교육연구회에서 간행하는 한자병행교육을 위한 전문지 발간을 떠맡은 것이었다. 이 잡지는 1990년 제18권 4호(통권 68호)까지 일조각에서 발간하다가 이후 한국어문교육연구회에서 직접 발간하고 있다.

팔십년대의 일조각은 1977년 검인정 교과서 파동의 여파로 중고등학교 교과서 출간에서 손을 떼면서 재정적으로 타격을 받았으나, 의연히 학술 출판에 매진, 새로운 세대의 필자들을 발굴하여 보다 심화된 학술 연구서를 출간했던 시기이다. 굵직한 저작들로 많은 출판상을 받기도 했다.
허흥식의 『고려과거제도사연구』(1981)가 두계학술상과 한국출판문화상 저작상을 받은 것을 필두로, 이종욱의 『신라국가형성사연구』(1982), 민두기의 『중국근대개혁운동의 연구』(1985), 강진철의 『한국중세토지소유연구』(1989), 유영익의 『갑오경장연구』(1990)가 한국출판문화상 저작상을, 이수건의 『한국중세사회사연구』(1984), 정두희의 『조선초기정치지배세력연구』(1983), 김리나의 『한국고대불교조각사연구』(1989), 김용덕의 『명치유신의 토지제도개혁』(1989)이 두계학술상을, 이병휴의 『조선전기기호사림파연구』(1984), 이재용의 『조선초기사회구조연구』(1985), 권석봉의 『청말대조선정책사연구』(1986), 민성기의 『조선농업사연구』(1988), 윤병석의 『국외한인사회와 민족운동』(1990)이 월봉저작상을 각각 수상했다.
이 시기에 일조각에서는 1950년대에 간행된 진단학회(震檀學會)의 『한국사』(1-7)를 대체하기 위한 야심찬 기획을 세워, 1981년 이광린(李光麟)의 『한국사강좌(韓國史講座)』(근대편 V)를 선보였으나, 아쉽게도 이 시리즈는 이듬해 출간한 이기백과 이기동(李基東)의 『한국사강좌』(고대편 I) 등 두 권만 간행되고, 나머지 책들은 원고가 완성되지 않아 간행하지 못했다.
1983년에 출간된 정석종(鄭奭鍾)의 『조선후기사회변동연구』는 소설 『장길산(張吉山)』의 원자료가 된 논문들을 모은 것으로 유명한, 조선 후기 민중운동사에 대한 역저이다.
한편, 박영석(朴永錫)은 1980년대에 일조각에서 『한민족독립운동사연구』(1982)와 『일제하독립운동사연구』(1984), 『재만한인독립운동사연구(在滿韓人獨立運動史硏究)』(1988) 등 세 권을 이어서 출간했는데, 이후 박영석의 딸인 박주(朴珠)가 『조선시대의 정표정책(旌表政策)』(1988)을, 그리고 박주의 동생인 박환(朴桓)이 『만주한인민족운동사연구(滿洲韓人民族運動史硏究)』(1991)를 출간하여, 모두 한국사 분야에서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으며, 이로써 ‘일조각의 삼부자녀(三父子女) 저자’라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또한 1984년에는 『중국고대제국성립사연구』라는 책을 발행했는데, 이 책에는 일화가 숨어 있다. 1960년 이홍직(李弘稙)의 수필집 『독사여적(讀史餘滴)』을 간행할 때 당시 경기중학교 학생이었던 까까머리 소년 이성규(李成珪)가 아버지(저자)를 따라 일조각에 온 일이 있다. 그때 한만년은 “이다음에 좋은 책 써서 가져오면 책을 내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훗날 서울대 교수가 된 이성규가 실제로 좋은 원고를 써 와 출판하게 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성규는 이 책으로 한국출판문화상 저작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편 일조각은 1990년 이기백, 와그너, 유영익 등이 영어권 독자들을 대상으로 새롭게 집필한 한국역사 저작물 Korea Old and New: A History를 하버드대학 출판부와 공동으로 간행하여 출판의 국제화를 모색했다.
그동안 일조각의 책은 대학생들에게도 어렵고, 대학원생이나 돼야 읽을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는데, 그만큼 고급한 학술서적을 내 왔고, 이는 전혀 상업적이지도 대중적이지도 못한 책들이었다. 식민사학의 극복을 위해서는 그동안 축적된 연구성과를 대중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에 의기투합한 이기백과 한만년은 1987년 반년간지 『한국사 시민강좌』를 창간하기에 이른다. 이 학술지는 2004년 한만년과 이기백이 작고한 후에도 계속되다가 2012년 50호를 끝으로 종간되었다.


위 왼쪽부터 차례대로. 『한국사 시민강좌』 창간호, 1987. Carter J. Eckert, Ki-baik Lee, Young Ick Lew, Michael Robinson, Edward W. Wagner, 정석종 저, 『조선후기사회변동연구』, 1983. 한만년 저, 『일업일생(一業一生)』, 1984. 이기백 편, Korea Old and New: A History, 1990. 아래 왼쪽부터 차례대로. 『삼국지(三國志)』 제1권, 1974. 김용섭 저, 『한국사강좌(韓國史講座)』 V(근대편), 1981,『한국근대농업사연구』 상(증보판), 1988. 피천득 저, 『산호와 진주』, 1976. 이광린 저.


칠팔십년대 일조각의 한국사 관련 출판물 중 특기할 만한 자료집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1973년부터 발간한 역사학회 편 『한국사자료선집』(고대편 I-V)으로, 이 책은 학부와 대학원생들의 강독용 자료로 애용되었다. 이는 역사학회 편 『한국사논문선집』 1-5, 『서양사논문선집』 1-2, 『동양사논문선집』 1-2와 더불어, 도서관 시스템이 극히 부실했던 시절 학문 연구의 첫발을 들여놓은 젊은 역사학도들에게 필독 논문과 원사료(原史料)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해 준 책이었다. 또 하나는 『현대한국역사학논저』(1983)로, 이 자료집은 역사학회의 요청으로 간행된, 학계의 숙원사업이었던 논저목록이다. 당시는 학문 연구의 기초가 되는 서지사항을 파악하는 것만도 쉽지 않아, 이 책이 그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된 것이다.

구십년대는 컴퓨터의 보급과 정보기술의 혁신으로 인해 출판의 양상이 크게 변화했다. 일조각은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면서도 학술출판의 전통은 계속해서 이어 나갔다. 격동의 팔십년대를 보내고 살아남은 사회과학 출판사들이 다양한 학술서적 출판을 시도하면서 일조각이 과거 한국학 분야에서 차지하던 독보적인 위치는 깨졌지만, 일조각은 이 시기에도 여전히 굵직한 저작물들을 선보인다.
한시준(韓詩俊)의 『한국광복군연구』(1993)는 일제 패망의 마지막 순간까지 활동하던 대표적 항일무장세력의 실상을 실증적 자료와 답사를 통해 연구한 저작이며, 이성무(李成茂)의 『조선양반사회연구』(1995)는 조선조 중후기 사림 주도의 사회사, 정치사의 실상을 다각적으로 분석 고찰한 역작이고, 한상권(韓相權)의 『조선후기 사회와 소원제도(訴寃制度)』(1996)는 18세기 후반의 사회상을 구체적 소원실태로써 적극 해명하면서 중세적 민본정치 토대 위에서 근대적 민권의식이 싹트는 역동적 과정을 포착한 독보적인 성과로 평가받았다. 이 세 권 모두 월봉저작상을 수상했다. 한편 고조선에서부터 통일신라, 고려, 조선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 국경의 변천사를 고찰한 방동인(方東仁)의 『한국의 국경획정연구(國境劃定硏究)』(1997)는 치암학술상을 수상했다.
2004년 한만년의 별세 후 일조각은 그의 둘째 자부(子婦)인 김시연(金時姸) 대표가 이끌어 가고 있다. 김시연 대표는 일조각 육십 년의 전통을 지켜 가면서 여전히 역사학・사회학・의학・어문학・법학 등 다양한 학술서를 내고 있으며, 계속되는 출판환경의 변화와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발맞추어 나가고 있다.

한만년은 외곬의 집념으로 한국학 서적을 출판하면서 ‘안 팔리는 책’을 고집하였다. “많이 팔리는 게 곧 그 책의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는 신념으로 가치 있는 책을 위해 일조각의 운명을 걸었던 것이다. 한만년과 함께 일조각 전무로 출판인생 오십 년을 함께한 편집자 최재유(崔在裕, 1935-2013)는 한만년을 “출판을 사업으로 여기지 않고 취미로 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한만년의 출판의식은 상업성을 훌쩍 뛰어넘었다는 뜻이다. “좋은 책을 만들어라. 잘 만든 뒤에는 자존심을 갖고 팔아라. 베스트셀러는 마약과 같은 것이니 추구하지 말라”는 한만년의 말은 그의 출판철학을 대변한다.
일조각 창립 삼십 주년인 1984년에 한만년은 그간 집필한 글들을 모아 출판생활 삼십 년을 담은 자전적 수상록 『일업일생(一業一生)』을 자신의 출판사에서 펴냈는데, 이 책에는 평생 출판 외길을 걸어오며 쌓아 온 출판에 대한 남다른 가치관과 출판계에 대한 여러 문제의식, 출판인으로서의 인생관과 세계관이 잘 담겨 있다. 그는 은퇴하는 날까지 매일 출근하여 교정 보고 원고 쓰며 책 만드는 일을 즐겼다.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좋은 책을 만들려면 편집자의 눈높이가 필자와 같거나 오히려 더 높아야 한다”며 편집자의 중요성을 강조한 그에게 출판은 그야말로 ‘일생의 업’이었다.
출판인 한만년과 그의 일조각이 20세기 후반 한국학계에 미친 영향과 한국출판계에 이바지한 공은 실로 지대하다. 이러한 공로는, 일조각이 한국출판문화상을 열여섯 차례나 수상하여, 이 상을 제정한 후 가장 많이 수상한 출판사가 되었다는 데서도 잘 알 수 있다.
이번 전시는 한국전쟁 직후에서 최근에 이르기까지 우리 출판의 한 페이지를 조명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는 한 시대의 출판 풍경, 게다가 이제는 찾아보기 드문 집념과 철학의 출판인과 출판사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현 출판계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하겠다. 아무쪼록 우리 근현대 출판역사에 우뚝했던 출판인 한만년과 일조각을 통해, 출판이 한 시대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깊이 되새겨 보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이 전시를 위해 일조각 김시연 대표, 한경구・한홍구 교수, 문예출판사 전병석 대표, 이두영 교수, 문학평론가 김병익 선생, 소설가 윤흥길 선생 등 많은 분들의 협조와 조언이 있었음을 밝히면서, 이 자리를 빌려 깊이 감사드린다.

한만년 선생 십 주기 기념전 「출판인 한만년과 일조각—육십 년 일조각 출판물로 조명하는 한국출판의 한 페이지」는 열화당책박물관에서 2014년 10월 2일부터 12월 26일까지 열립니다.

전시 기획 및 진행
열화당책박물관(정현숙 학예연구실장, 정혜경 학예연구원)

전시 후원
대한출판문화협회, 한국출판협동조합, 한국출판문화연구소,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출판문화진흥재단, 출판도시문화재단, 파주출판단지 조합, 파주출판도시 북소리 조직위원회, 파주출판도시 입주기업협의회, 국제문화도시교류협회, 일조각, 열화당, 창비, 문학과지성사

* 일조각 도서목록(1953-2003) -아래 ’2′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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