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책 속으로 돌아간 존 버거

존 버거와 그의 아내 베벌리 버거. 퀸시, 1996. 장 모르 사진.

우리 시대의 지성 존 버거(John Berger, 1926-2017)가 2017년 1월 2일 아침 아흔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작년 가을, 한 국내 문학지와의 서면 인터뷰를 정중히 거절하며, 요즘 글쓰기보다는 대부분 휴식을 취하고 있고, 기운이 없을 뿐 아프거나 불편한 것은 아니니 걱정 말라는 이야기를 전해 왔습니다. 지금 돌아보니, 그해 11월 구십 세 생일을 맞아 준비된 여러 행사들을 앞두고, 조금씩 안 좋아지기 시작한 건강을 외부에 크게 알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2016년 12월 30일 그의 아들 이브 버거로부터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연락이 왔고, 오늘 새벽 부고 메일을 받았습니다. 가족들은 그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듯합니다.

2016년 9월, 존 버거가 쓴 짧은 글 두 편이 이메일로 도착했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구십 세 생일을 맞아 쓴 글이고, 다른 하나는 러시아의 조각가 에른스트 네이즈베스트니(Ernst Neizvestny, 1925-2016)의 죽음을 맞아 쓴 글입니다. 그리고 그의 표현대로 그 역시 곧 자신의 이름과 책 속으로 돌아갔습니다.

존 버거의 명복을 빌며, 그의 마지막 메시지를 부고와 함께 전합니다.

2016년 1월 3일
열화당

곧 제 생일이 돌아옵니다. 케이크 값보다 양초 값이 더 들 것 같은 생일이!
여기까지 올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행복하고 운이 좋지요.
무엇보다도 저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협력하고, 많은 모험들을 함께 나눌 수 있었던 것이 행복합니다.
생일이란 그런 것을 축하하는 자리겠지요.
하지만 저는, 이 축하가 말이 없는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드러내는 것보다는 은근히 전하는 것. 그런 식으로 우리의 지평은 뒤섞일 것입니다.
감사의 마음과 포옹을 전합니다.

Soon I’ll have a birthday – a birthday for which the candles would cost more than the cake !
I’m happy to have come so far.
Happy and fortunate.
Above all I’m happy to have collaborated and shared so many ventures with so many people I love.
A birthday is an occasion for celebrating this.
I want, however, the celebration to be a silent one. Implicit rather than explicit. Like this all our horizons will intermingle.
I thank you and I embrace you.
John

—–

친애하는 에른스트,
이렇게 당신은 우리를 떠나 당신의 이름 속으로 돌아갔습니다. 네이즈베스트니, 알려지지 않은 사람을 위한 러시아 이름으로요. 방금 제 아이폰에서 위대한 러시아 조각가이자 그래픽 아티스트 한 사람이 그저께 모스크바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당신은 또한 당신의 작품들 속으로 돌아갔습니다. 어찌나 애통한지요. 당신과 당신의 작품을 처음 마주친 건 1969년이었습니다. 거의 오십 년 전이네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잠시 통역관이 없는 순간이 있었지요. 그래서 우리는 종이에 드로잉이나 표를 그려서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바로 오늘, 우리를 통역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 당신은 죽었고 저는 살아 있으니까요. 그러니 다시 그릴 수밖에 없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그림, 오직 우리끼리만 주고받을 수 있는 그림, 이름붙일 수 없는 에너지의 흔적을 기록한 그림. 네이즈베스트니라는 단어 속에 숨어 있는 그림을.

Dearest Ernst,
So you’ve left us and gone back to inside your name – Niezvestny, the Russian name for unknown. I have just read on my I-phone a news bulletin announcing that a great Russian sculptor and graphic artist died in Moscow the day before yesterday. You’ve also gone back to inside your works. How I grieve. I first encountered you and your work in 1969. Nearly fifty years ago. For a moment when we first met there was nobody to interpret for us. So we started an exchange by making drawings and diagrams on a sheet of paper we passed between us. And again, today, there’s nobody to interpret for us, you dead and I alive. So perhaps we have to draw again. Drawings which are invisible and which only we can pass from one to another. Drawings which trace a nameless energy. Drawings which hide in the word Niezvestny.
John

——

친애하는 모든 분께,
존 버거가 어제 아침 안토니에 있는 자택에서 사망했습니다.
지난 두 주 사이에 그의 건강이 악화되었고 그는 평화롭게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눈을 감았습니다, 마치 다시 한 번 적절한 단어를 찾아야 할 것처럼.

Dears

John Berger died yesterday morning in his home in Antony.
His health had deteriorated over the last two weeks and he was ready to leave, peacefully.
He closed his eyes, as if he needed once more to find the right words.

[그의 책 속으로 돌아간 존 버거]에 4개의 댓글

  1. 최제온 님의 말:

    아내의 빈방에서 당신은 말했죠.
    “잠시 걷다가 당신이 말했지.벤치에서 좀 쉬었다 가요” 라고, 이제 아내곁에서 편히 쉬어요.

  2. 우지원 님의 말:

    내가 파리에서 떠나오는 날 당신이 떠났습니다. 편히
    세료.

  3. 김미란 님의 말: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
    당신이 가신 그곳에서 행복하십시요.
    덧없음과 영원의 사이에서 고이 잠드소서.

  4. 최민관 님의 말:

    그의 영면을 접하며 그가 남긴 모든 발자취를 책이라는 매개로 되돌아봅니다. 내겐 영원할 그 이름, 존 버거께 애도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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