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억

안서(岸曙) 김억(金億)은 1896년 평북 정주 출생으로, 오산학교(五山學校)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게이오의숙(慶應義塾) 영문과에서 수학했다. 오산학교와 숭덕학교(崇德學校) 교사, 『동아일보』와 『매일신보』 기자, 경성 중앙방송국 차장 등을 역임했다. 1912년부터 창작시를 발표했고, 우리나라 최초의 번역시집 『오뇌(懊惱)의 무도(舞蹈)』(1921)를 시작으로 『잃어진 진주』 『기탄자리』 『신월(新月)』 『원정(園丁)』 등의 번역시집을 펴냈으며, 이후 번역 대상을 중국 한시, 한국 한시, 일본 단가(短歌)로 넓혀, 『망우초(忘憂草)』 『동심초(同心草)』 『애국백인일수』 『꽃다발』 등을 선보였다. 1923년 근대문학사 최초의 개인 창작시집 『해파리의 노래』를 펴내기도 했다. 『창조』와 『폐허』의 동인으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