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고갱

19세기의 화가. 1848년 6월 7일 혁명의 열광과 소요로 들끓던 시절 파리에서 공화파 신문’나쇼날’의 주필인 아버지와 생시몽주의 전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쿠테타로 가족과 함께 페루로 망명, 그곳에서 4년을 보내다가 프랑스로 귀국하여 주식중개소에서 일하게 된다. 타고난 격한 정열과 혁명정신의 소유자였던 고갱은 평범한 주식중개인의 삶을 내던지고 화가로의 길을 택한다.

그러나 화가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계속되는 경제적 궁핍으로 그는 결국 아내와 헤어지고, 빈민가 생활로 떨어지고 만다. 고갱은 전원생활을 꿈꾸며 미개인처럼 살기 위해 원시의 섬을 찾아나선다. 우연히 본 타히티 섬 안내기는 이른 그를 자극, 고갱은 무작정 타히티 생활을 결행한다. 그의 나이 41세 때의 일이다.

2년간의 타히티 생활에서 그는 생애의 대작을 남기지만 당시 유럽의 화단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그를 인정해주던 고호와의 짧은 동거도 파탄으로 끝나고, 타히티로 되돌아간 그는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려 하지만 타히티의 아내 테후라도 도망가고, 그는 1903년 5월 마지막 도피처인 도미니크 섬에서 심부름하는 소년이 임종을 지켜보는 가운에 55세의 일기로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

그는 야성적인 색채와 이국적인 표현기법으로 많은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피카소가 입체파로 나아가게 된 것도 고갱의 원시주의에 크게 영향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