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근원수필

20세기 수필문학의 진수라 일컬어지는 근원 김용준의 『근원수필』이 『새 근원수필』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기존의 30편의 글에 당시 미수록되었거나 1948년 이후 잡지·신문 등에 발표된 글 23편을 추가하고, 옛 문체나 생경한 어휘에 대해 풀이를 달았으며, 관련 도판을 실어 현대의 독자들에게 친숙하도록 꾸몄다. 쉽게 읽히고 간결하면서도 호방한 근원 고유의 문장들이 돋보이며, 예스럽고 담박한 그의 문체는 글쓰기의 전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일상사를 다룬 가벼운 단문부터 화인전(畵人傳)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의 글 53편을 실었으며, 앞뒤에 각각 해제와 연보를 실어 이해를 도왔다.

김용준(金瑢俊, 1904-1967)은 동양화가이자 미술평론가, 한국미술사학자로, ‘근원(近園)’은 그의 호이다. 그는 또한 수필가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그의 『근원수필(近園隨筆)』(1948)은 20세기 한국 수필문학의 진수로 평가받고 있다.
이 책은 1948년 초판본에 실린 서른 편을 고스란히 살리고, 거기 실리지 못하고 흩어져 있던 글 스물세 편을 더해 모두 쉰세 편을 엮은, 김용준 수필의 완결판이다. 초판본의 형식대로 1부는 짧고 가벼운 글, 2부는 화인전(畵人傳)을 비롯한 미술관련 글로 구분하여 구성했다. 1부의 글들에서 그는 자신과 이웃들의 이야기를 통해 근대 한국인의 풍속과 취미를 참으로 재미나게 풀어내고 있으며, 화가와 미술평론가로서의 자질을 드러낸 2부의 글들에서는 예술과 고전의 향기를 짙게 풍기고 있다.
1936년부터 1950년 사이에 발표된 이 글들에는, 지금을 사는 한국인에게도 어렵고 낯선 말이 있기 때문에, 편집자 주(註)를 달아 쉽게 풀이했다. 또한 근원이 남긴 그림과 삽화, 참고 사진과 작품을 적절히 배치해 시각적인 이해를 도왔다.

근원을 담은 그릇 - 해제로 읽는 『새 근원수필』/ 미술평론가 최열

나를 쏙 빼닮은 글이 있다. 그런 글을 썼을 때 얼마나 기쁜지. 되풀이해 읽어도 막힘없어 시원하고, 거짓없어 맑은 기운 한줄기 가슴을 뚫어 주곤 한다. 문득 누군가의 글을 읽을 때 그런 느낌을 받곤 하거니와 19세기 묵장(墨場)의 영수(領袖) 조희룡(趙熙龍)의 글이 그렇다. 아! 빈 마음의 덧없음을 숨쉴 틈조차 없이 마구 뿌려대니 그 흔쾌함이란 달리 말할 길이 없을 지경이다.

나는 수필이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쓴이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글. 읽다 보면 글쓴이를 내 안에 머물게 하고 있음을 어느샌가 깨우친다. 그런 글이 있다. 『근원수필』이다.

글은 무릇 사상을 담는 그릇이다. 개중 수필은 생각의 조각들을 새기는 그릇이니 어여쁘기 그지 없다.

빗대자면 수필이란 도자기 가운데 접시나 종지 따위와도 같다. 그러하니 지성의 향기가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다. 이슬처럼 맺혀 있기 마련이요, 삶의 지혜 또한 얼핏 스며 있어 아름답되, 그렇다고 장대한 규모를 자랑하거나 완벽한 형상을 뽐내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시를 읊조리듯, 때론 날카로운 비평의 칼날에 마주치듯, 때론 잘 짜인 단편소설에 빠져들듯, 수필이란 너무 많은 얼굴을 하고 다니는 것이다. 서정과 서사를 넘나드는 탓일 게다.

근원 선생이 말씀하길 수필다운 수필이란 ‘다방면의 책을 읽고 인생으로서 쓴맛 단맛을 다 맛본 뒤에 저도 모르게 우러나오는 글’이라 했으니, 다름 아닌 선생의 말씀 그대로 ‘완성된 인격의 반영’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건 이상의 경지일 터, 선생은 덧붙여 ‘마음속에 부글부글 괴고만 있는 울분을 어디 호소할 길이 없어 가다오다 등잔 밑에서, 혹은 친구들과 떠들고 이야기하던 끝에 공연히 붓대에 맡겨 한두 장씩 끄적거리다 보니’ 그게 그만 수필이었다고 했다.

나는 그걸 수필의 알맹이라고 믿는다. 『근원수필』을 읽다 보면 정말 그렇다. 풍속이 보이는가 싶으면 무슨 취미도 보이고, 어떤 사람도 보이다가 어느덧 예술가가 나서는가 싶더니 금새 고전의 향기가 코를 찌른다. 어디 그뿐인가. 근원 선생이 지닌 감성의 깊이는 물론 지성의 성찰까지, 아무튼 삶의 내음이 한결같다.

김용준은 1936년 『조광』 신년호에 「서울 사람 시골 사람」이란 글을 발표했는데, 이게 선생의 첫 수필이다. 이때부터 꾸준히 산문을 선보였는데 읽는 이마다 입맛을 다시곤 했다. 신기하게도 뒷맛이 포근하며 몸은 음탕한 도시의 그늘에 있으되 마음은 아득한 산골 숲 사이에 있는 듯 행복해지는 탓이다.

김용준은 민족의식이 짙은 청년으로 자랐다. 1904년에 태어나 삼일운동 바로 뒤인 1921년 서울 중앙고보에 입학했으므로, 그 무렵 한반도를 휩쓸던 새로운 이념의 세례를 받았을 터이다. 이를테면 「노시산방기(老枾山房記)」에 담긴 생활의 순수함이 그렇다. 이어지는 글 「육장후기( 莊後記)」에 선생은 다음처럼 썼다.

“인생이란 세상에 태어날 때 털올 하나 가지고 온 것이 없다.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도 털올 하나 가지고 갈 수는 없다.
물욕(物慾)의 허망함이 이러하다.”

마치 노자(老子)나 장자(莊子)의 마음과 같으니, 「스리꾼의 도덕」이란 글에서 그 도둑 이야기를 풀면서조차 장자의 『남화경(南華經)』으로 화두를 삼아 시작하는 선생의 태도가 그러하다.
자연의 이치와 본성을 따라 삶을 꾸려 나간다는 선생의 마음은 『근원수필』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스스로 화도(畵道)를 걸어가는 것이 가장 행복되다고 여기는 선생의 삶은, 그래 늘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자연의 이치와 본성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이번에 엮은 『새 근원수필』은 1948년 초판을 고스란히 살리고, 거기에 선생의 첫 수필인 「서울 사람 시골 사람」부터 월북 몇 달 전인 1950년 2월에 발표한 「십삼 급(級) 기인(碁人) 산필(散筆)」까지 모두 스물세 편을 더했다.

혹여 뭇사람들이 초판을 엮은 선생의 뜻을 어긴다고 꾸짖을지 모르나, 선생의 보석 같은 글들이 흩어져 있음을 못마땅하게 여겨 오던 터에 마침 열화당 이기웅 사장이 제대로 엮겠다 하니 이처럼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이 세상 떠난 지 서른세 해 만에 이처럼 제모습을 갖춘 수필집을 영전에 올릴 수 있다는 것도 설레이거니와, 수필문학사는 물론 미술정신사를 풍윤케 한다 생각하니 뿌듯하기까지 하다.

선생은 무정부주의에서 신비주의, 상고주의(尙古主義)와 같은 사상편력을 거쳐 민족주의자로 식민지와 분단을 견디며 서울대학교와 동국대학교에서 교육과 사학에 전념했다. 그러던 중 전쟁을 맞아 1950년 9월 월북해 평양미술대학 교수로 취임, 미술교육자, 미술사학자로 활동하면서 북한미술계의 복판에 섰다.

뿐만 아니라 뛰어난 창작 세계를 일구어 〈춤〉과 같은 작품은 조선화(朝鮮畵)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 세월은 선생에게 가장 분주하고 보람찬 나날의 연속이었을지 모르겠다. 남긴 열매들이 그러하거니와 국가미술전람회와 사회주의 국가들의 국제전인 세계청년학생축전에서 수상, 정부로부터 표창 수여, 게다가 중국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말년에는 평양미술대학 부교수 지위를 수여받으며 죽기 전까지 영광을 누렸으니 말이다.

영광을 누렸다면 그대로 좋은 일이라 달리 아쉬울 게 없다. 다만 고려시대의 명가(名家) 이제현(李齊賢)이 ‘한가한 가운데 가벼운 마음으로 닥치는 대로 쓰는 글’ 『역옹패설( 翁稗說)』을 썼듯이, 선생이 그 시절에도 그런 글을 쓸 수 있었는지 나는 그게 무척 궁금하다.

『새 근원수필』 발간에 부쳐 – 편집자의 말

『새 근원수필』은 ‘우리 문화예술론의 선구자들’ 시리즈 중, 전5권으로 기획된 ‘근원 김용준 전집’의 첫째권이다. 이 시리즈는 우리 문화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의 준거를 마련했던 선학들의 학문적 성과와 그것이 지니고 있는 사료적 가치를 온전히 오늘에 되살리고, 그 속에 깃들인, 제대로 사고하고 제대로 쓸 줄 알았으며 바르게 학문했던 인문정신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학문적 문화적 사표(師表)로 삼고자 기획되었다.

오늘 우리는 아무런 여과 없이 횡행하는 수많은 매체에 길들여져 난삽한 글쓰기와 글읽기를 하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 문화전통의 실질적 토대가 되는 우리의 언어와 표현 그리고 학문탐구의 방법은 날로 부박해지고 있다. 이렇듯 문화적으로 혼란한 때에 뛰어난 선학의 글을 읽고 배우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즐겁고 풍요로운 일일 뿐 아니라, 간결 담백 호방한 우리 언어의 참맛과 풍부한 교양 그리고 격조 높은 인문정신을 체득하게 한다.

이와 같이 존경스러운 선학의 글을 통해 단절되어 가는 우리 문화의 줄기를 다시 잇고, 가벼워져 가는 인문학의 행태를 각성시켜 우리 본연의 문화전통을 되찾으려는 데에 이 총서 발간의 의의가 있다.

시리즈의 첫 인물로 미술사학자 근원 김용준을 선정했고, 그의 글 대부분을 모아 ‘근원 김용준 전집’을 다섯 권으로 구성했다. 이는 제1권 『새 근원수필』과 제2권 『조선미술대요(朝鮮美術大要)』를 시작으로 하여, 조선회화에 관한 글을 모은 제3권 『조선시대 회화와 화가들』, 1958년 북에서 출간된 것을 새로이 편집·복간한 제4권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 그리고 그 밖의 미술관련 글과 기타 산문을 모은 제5권 『근원의 미술산문』(가제)으로 이루어진다.

『새 근원수필』은 1948년 을유문화사에서 처음 출판된 『근원수필』에 당시 실리지 못했거나 그후 발표된 글 스물세 편을 더해 모두 쉰세 편을 엮은 김용준 수필의 완결판이다. 초판본의 형식대로 1부는 짧고 가벼운 글, 2부는 화인전(畵人傳)을 비롯한 미술관련 글로 구분하여 구성했다. 2부에는 미술사가로서의 관점에서 쓰인 다소 무게있는 글들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근원의 독특한 문체가 곳곳에 살아있기에 1부에 이어 함께 읽어 내려가면 김용준 수필 세계로의 깊숙한 여정의 길을 찾게 되리라 믿는다.

편집에 있어 가능한 원문을 존중함을 원칙으로 했으나, 중국을 제외한 외국인명과 지명은 현행 외래어 표기법에 맞게 바꾸고, ‘이조’ ‘이씨조’ ‘이조시대’는 문맥에 따라‘조선조’ ‘조선시대’ ‘조선왕조’로 고쳐 표기했다. 또 가독성을 고려하여 ‘생(生)했다’는 ‘출생했다’로, ‘인조시인(仁祖時人)’ ‘순조시인(純祖時人)’은 ‘인조 때 사람’ ‘순조 때 사람’으로, ‘제삼자(第三子)’ ‘제이녀(第二女)’는 ‘셋째아들’ ‘둘째딸’로 각각 바꾸었다.

1936년부터 1950년 사이에 발표된 이 글들은 비록 ‘수필’이지만 오십 년 후를 사는 지금 세대에게는 낯선 표현이 있음을 고려하여 ‘이 책을 읽는 사전’식의 풀이를 필요한 페이지마다 달았고, 인용된 한문 구절이나 한시는 번역하여 작은 활자로 본문에 병기했다. 또한 근원이 남긴 그림과 삽화, 참고 사진과 작품을 적절히 배치해 시각적인 이해를 도왔으며, 책 끝에는 김용준의 연보와 새로 추가된 글의 출처를 실었다. 인명·작품명·지명·회화용어 등의 일반적인 찾아보기와 별도로 편자주를 단 것 중 어려운 한자어·일본어 등의 항목을 따로 모은 ‘어휘풀이 찾아보기’를 두어, 근원이 살던 시대에 쓰이던 말들을 한눈에 살피도록 했다. 일반 찾아보기에서도 편자주가 있는 항목의 페이지는 굵은 활자로 표시해 풀이를 찾는데 용이하도록 도왔다. 다만 편집자로서 행한 이러한 노력들이 혹여 글의 순수함을 방해하거나 오전(誤傳)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책을 내면서 도움을 주신 분이 많았다. 이 시리즈의 기획과 진행 과정에 깊이 참여하고 근원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담긴 해설을 써 주신 미술평론가 최열 선생님, 회화용어나 도판에 대한 조언을 주신 국립중앙박물관 이원복 미술부장님, 한시 번역을 맡아 주신 안대회 선생님, 도판 협조를 해주신 웅진출판사 윤석금 회장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올해는 근원 김용준 선생이 돌아가신 지 33년, 남과 북이 갈라져 살아온 지 55년째 되는 해이다. 근원 선생은 돌아가셨고 선생의 유가족을 찾을 길이 없으니, ‘전집’ 출간을 눈앞에 두고 안타까운 심정 금할 길 없다. 남북관계가 호전되어 선생이 살아온 발자취가 선명하게 드러날 날을 기대한다.

2000년 10월
편집자

언론매체 기사
KBS 즐거운 책 읽기
PD저널
동아일보 1
동아일보 2
한국일보
국민일보

김용준 (저자)

김용준(金瑢俊, 1904-1967)은 경북 선산(善山) 출생의 동양화가이자 미술평론가·한국미술사학자·수필가·교육자·장정가로, 호는 근원(近園)·검려(黔驢)·우산(牛山)·노시산방주인(老枾山房主人)·벽루산인(碧樓山人)·반야초당주인(半野草堂主人)·매정(梅丁) 등이다. 경성 중앙고등보통학교와 일본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 졸업 후 중앙고보와 보성고보 미술교사를 거쳐, 서울대학교 미술학부 동양화과 교수를 역임했고, 동국대 사학과에서 미술사를 가르쳤다. 1950년 9월 월북하여 평양미술대학 교수, 조선미술가동맹 조선화분과 위원장, 조선건축가동맹 중앙위원, 과학원 고고학연구소 연구원, 평양미술대학 조선화 강좌장 등으로 활동했다. 저서로 『근원수필』(1948), 『조선미술대요』(1949),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1958) 등이 있으며, 다수의 미술평론 및 미술사 논문을 발표했다.

『새 近園隨筆』발간에 부쳐 / 편집자
근원을 담은 그릇-解題 / 최열

1부
매화(梅花)
게〔蟹〕
말과 소
검려지기(黔驢之技)
선부(善夫) 자화상
조어삼매(釣魚三昧)
구와꽃
두꺼비 연적(硯滴)을 산 이야기
『강희자전(康熙字典)』과 감투
털보
신세일가언(新歲一家言)
한운야학(閑雲野鶴)의 연명(淵明)을 본받아
석분음재(惜分陰齋)
고독
머리
표정(表情)과 의상(衣裳)
모델과 여성의 미
답답할손 X선생
팔 년 된 조끼
안경
동해로 가던 날
추사(秋史) 글씨
김 니콜라이
은행이라는 곳
답답한 이야기
스리꾼의 도덕
신형 주택
이동 음식점
서울 사람 시골 사람
노시산방기(老枾山房記)
동일(冬日)에 제(題)하여
육장후기
원수원(袁隨園)과 정판교(鄭板橋)와 빙허(憑虛)와 나와
생각나는 화우(畵友)들
화가와 괴벽(怪癖)
백치사(白痴舍)와 백귀제(白鬼祭)
화가의 눈
기도(碁道) 강의
십삼 급(級) 기인(碁人) 산필(散筆)

2부
시(詩)와 화(畵)
미술
예술에 대한 소감
회화적 고민과 예술적 양심
골동설(骨董說)
거속(去俗)
한묵여담(翰墨餘談)
조선조의 산수화가
조선시대의 인물화
최북(崔北)과 임희지(林熙之)
오원(吾園) 일사
청전(靑田) 이상범(李象範)론
승가사(僧伽寺)의 두 고적(古蹟)
광개토왕 호우(壺우)에 대하여

발(跋)

수록문 출처
김용준 연보
찾아보기
어휘풀이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