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미술론

동경미술학교 유학시절인 1927년부터 월북 이후 1961년까지 여러 신문·잡지·학술지 등에 실렸던 근원의 미술론과 미술평론, 산문 등 모두 41편을 한데 모아 엮었다. 빈약한 우리 근대미술사에 풍성한 목록을 제공해 주는 사료적 가치를 지닐 뿐 아니라, 혼란스러웠던 근대기에 민족문화 건설이라는 도정(道程) 속에서 김용준이 전개한 미술론의 궤적을 한눈에 살필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은, 동경미술학교 유학시절인 1927년부터 월북 이후 1961년까지 여러 신문·잡지·학술지 등에 실렸던 김용준의 미술론과 미술평론, 그 밖의 산문 등 모두 마흔한 편을 한데 모아 『민족미술론』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펴낸 것이다. 이 책은 각 글의 성격과 내용에 따라 여섯 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 ‘우리 미술계의 개조를 주창함’에는 마르크스 주의의 수용과 그 극복을 통해 화단의 각성을 촉구한 김용준의 프로 미술론을, 그리고 2장 ‘아름다움을 찾아서’에는 미술의 개념·창작법·감상법 등을 일반인에게 소개하는 글들을 실었다. ‘향토색과 민족적 특성을 우리 미술에 어떻게 구현해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글들은 월북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각각 3장 ‘민족문화론’과 4장 ‘전통미의 재조명’이란 제목 아래 묶었다. 5장 ‘화단시평’에는 「동미전(東美展)을 개최하면서」(1930)부터 월북 이후의 「리석호 개인전을 보다」(1957)에 이르기까지 근원의 눈에 비친 당시 화단 풍경을, 6장 ‘그 밖의 산문’에는 뒤늦게 발굴된 근원의 단문들을 각각 나누어 실었다. 더불어 책 말미에 ‘부(附)’로서 ‘근원의 회화작품과 도서장정’을 실음으로써 이론가·비평가로서뿐 아니라 화가·장정가로서 근원의 면모도 살필 수 있도록 했고, 김용준 관련 사진을 연보와 함께 편집하여 단편적이나마 근원의 삶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남과 북, 그리고 수많은 지면에 산재(散在)해 있던 이 글들을 한데 묶어 보여주는 이 책 『민족미술론』은, 그 자체로 빈약한 우리 근대미술사에 풍성한 목록을 제공해 주는 사료적 가치를 지닐 뿐 아니라, 혼란스러웠던 근대기에 민족문화 건설이라는 도정(道程) 속에서 김용준이 전개한 미술론의 궤적을 한눈에 살필 수 있게 해준다.

『民族美術論』 발간에 부쳐 – 편집자의 말

『민족미술론』은, ‘우리 문화예술론의 선구자들’을 기획하면서 그 첫번째 작업으로 선보이는 ‘근원 김용준 전집’의 다섯째권이다.
‘우리 문화예술론의 선구자들’은 우리 문화 예술에 대한 선구적인 안목과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있었던 선학들의 학문적 성과와 그것이 지니고 있는 사료적 가치를 온전히 오늘에 되살리고, 그 속에 깃든, 제대로 사고하고 제대로 글쓸 줄 알았으며 올바르게 학문했던 인문정신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학문적 문화적 사표(師表)로 삼고자 기획되었다.
오늘 우리는 아무런 여과 없이 횡행하는 수많은 매체에 길들여져 난삽한 글쓰기와 글읽기를 하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 문화전통의 실질적 토대가 되는 우리의 언어와 표현 그리고 학문 탐구의 방법은 날로 부박해지고 있다. 이렇듯 우리의 문화전통이 혼란한 때, 뛰어난 선학의 글을 읽고 배우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즐겁고 풍요로운 일일 뿐만 아니라, 간결 담백 호방한 우리 언어의 참맛과 풍부한 교양 그리고 격조 높은 인문정신을 체득하게 해준다.
이와 같이 뛰어난 선학의 글을 통해 우리 문화의 줄기를 올바로 세우고 가벼워지고 쇠퇴해 가는 인문학의 위상을 재정립하여, 우리 본연의 문화전통을 되찾으려는 데 이 총서 발간의 의의가 있다.
시리즈의 첫 인물로 동양화가이자 미술사학자인 근원 김용준을 선정했고, 그의 저서와 논문을 포함한 여러 글들을 모아 ‘근원 김용준 전집’을 다섯 권으로 구성했다. 제1권 『새 근원수필』, 제2권 『조선미술대요』, 제3권 『조선시대 회화와 화가들』, 제4권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5권 『민족미술론』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1927년부터 월북 이후인 1961년까지 여러 신문과 잡지, 학술지 등에 실렸던 근원 선생의 미술론과 미술평론, 그 밖의 산문 등 모두 마흔한 편을 한데 모아 『민족미술론』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펴낸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근원 선생의 당시 미술 문화에 대한 시각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그가 전개한 미술론의 궤적을 한눈에 살필 수 있다.
이 책은 각각의 글의 성격과 내용에 따라 여섯 장으로 구성했다. 1장 ‘우리 미술계의 개조를 주창함’에는 마르크스주의의 수용과 그 극복을 통해 화단의 각성을 촉구한 근원의 프로 미술론들을, 그리고 2장 ‘아름다움을 찾아서’에는 미술의 개념·창작법·감상법 등을 일반인에게 소개하는 글들을 실었다. ‘향토색과 민족적 특성을 미술에 어떻게 구현해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글들은 월북 이전과 월북 이후로 나누어 각각 3장 ‘민족문화론’과 4장 ‘전통미의 재조명’이라는 제목으로 묶었다. 5장 ‘화단시평’에는 개별 작가와 전람회에 관한 평들을, 6장 ‘그 밖의 산문’에는 뒤늦게 발굴된 근원의 단문들을 각각 나누어 실었다. 더불어 책 말미에 ‘부(附)’로서 근원의 회화작품과 도서장정을 실음으로써 이론가·비평가로서뿐 아니라 화가·장정가로서 근원의 면모도 살필 수 있도록 했다.
되도록 발표된 글 모두를 싣는다는 원칙을 따랐으나, 월북 이후 글 중 「사실주의 전통의 비속화를 반대하여」(『문화유산』, 1960년 2호)와 「회화사 부문에서의 방법론상 오류와 사실주의 전통에 대한 왜곡」(『문화유산』, 1960년 3호)은 당시 북한에서의 종파론에 기인한 정치적 대립을 반영하는 요소가 분분하여 싣지 않았다. 한편, 현재 신문자료로 남아 있지만 크게 훼손되어 많은 부분 해독이 힘든 「신사실파의 미」(『서울신문』, 1949. 12. 3·4), 그리고 출처 미상으로 입수하지 못한 「익스프레셔니즘에 대하여」(1927)도 싣지 못했다. 이 외에도 「혼미저조의 「조선미술전람회」를 비판함」(『동광』, 1932. 7), 「민간단체의 확대 강화책-서화가 제씨의 의견」(대담, 『동아일보』, 1935. 1. 1), 「초유의 예술 종합논의-문화인의 진지한 기염」(대담, 『동아일보』, 1940. 1. 4), 「사치와 취미를 말하는 좌담회」(『여성』, 1940. 9) 등은 분량 또는 내용 면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지 않아 싣지 않았다.
현 세대의 독서감각에 맞도록, 월북 전에 발표된 글의 한자 노출은 한자 병기로 바꾸었고, 북에서 발표한 글의 한글 전용과 두음법칙이 적용되지 않은 표기는 한자를 병기하고 두음법칙을 적용하여 전체적인 통일성을 갖추었다. 인명과 지명은 현행 외래어 표기법에 맞게 바꾸었으나, 중국의 인명과 지명은 한자음 그대로 표기했다.
월북 이후 글들에서 사회주의를 찬양하는 등의 정치 이념적 내용은 글의 주제와 큰 관련이 없으므로 삭제했고, 인명 뒤의 ‘동지’ ‘동무’ 등의 호칭은 생략했으며, ‘조선 노동당’ ‘호상(互相)’은 각각 ‘우리’ ‘상호’로 바꾸어 표기했다. 월북 이전의 글에서, ‘유(由)하다’ ‘함(陷)하다’ ‘해(解)하다’ 등의 한자 술어는 ‘말미암다’ ‘빠지다’ ‘풀다’ 등의 우리 말로 바꾸었고, ‘차(此)’는 ‘이’, ‘피(彼)’ ‘해(該)’는 ‘그’, ‘기(幾)’는 ‘몇’, ‘급(及)’은 ‘및’ 등으로 바꾸어 표기했다. 집필 당시 작고한 분들의 이름 앞에 표기했던 ‘고(故)’자와 존칭으로 이름 뒤에 사용한 ‘씨(氏)’자는 가독성을 고려하여 모두 생략했다. ‘이조’ ‘이씨조’ ‘이조기’ ‘이조 시기’ 등의 표현은 문맥에 따라 ‘조선조’ ‘조선왕조’ ‘조선조 시기’ ‘조선시대’ 등으로 바꾸어 표기하여 집필 당시 ‘우리나라’를 지칭하던 표현인 ‘조선’과 구별했다. 그리고 본문에 언급된 작품명은 되도록 현재의 명칭으로 바꿨다. 한편, 당시 시대상황으로 검열에 의해 삭제된 부분은 그 글자 수만큼 ‘×’로 표기했고, 원본의 상태가 좋지 않아 해독이 불가능한 부분은 해당 글자 수만큼 ‘○’로 표기했다.
원문에서 인용한 한문 구절과 근원 그림의 화제(畵題)는 새로 번역하여 병기하거나 편자주를 통해 밝혔다. 원문의 미주(尾註)는 모두 각주로 바꾸었고, 앞서 출간된 전집 네 권과 마찬가지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책을 읽는 사전’식의 편자주 사백삼십칠 개를 원주와 구별하여 달았다. 원문에 수록된 도판은 최대한 싣는 것을 원칙으로 했지만, 내용과 부합하지 않는 경우 생략하거나 내용에 부합하는 다른 도판을 새로 실었다.
이 책 『민족미술론』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책 앞 부분에 ‘해제’를 실었으며, 말미에 수록문 출처를 덧붙였다. 또한 전집 4권까지의 기존 연보에 근원이 발표한 글과 그림 관련 사항을 더하여 저자의 삶을 보다 상세히 살필 수 있도록 했다. 한편, 인명, 작품명책제목, 미술 관련 용어 등의 일반적인 ‘찾아보기’뿐만 아니라, 편자주를 단 항목만의 ‘어휘풀이 찾아보기’를 두어 집필 당시의 어휘나 표현들을 한눈에 살필 수 있도록 했다. 일반적인 ‘찾아보기’에서도 편자주가 있는 항목의 페이지는 굵은 활자로 표시하여 풀이를 찾는 데 용이하도록 했다.
편집자로서 행한 이러한 노력들이 행여 저자의 의도나 글의 순수함을 방해하거나 오전(誤傳)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 책을 내기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다섯 권의 전집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시고 ‘연보’를 작성해 주신 미술평론가 최열 선생, ‘해제’를 써 주신 서울대 정형민 교수, 그림의 화제(畵題) 번역과 한자 풀이에 도움을 주신 영남대 안대회 교수, 편자주 작성에 도움을 주신 계명대 이중희 교수, 글·그림·장정 등의 자료를 제공해 주신 서세옥 화백, 유양옥 화백, 주강현 선생, 통문관 이겸로 사장, 낙원표구사 이효우 사장, 일부 회화작품과 도서장정을 촬영해 주신 황헌만 선생, 그리고 ‘근원 김용준 전집’ 다섯 권 완간에 이르기까지 도움을 주신 여러분께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린다.
올해는 근원 김용준 선생이 돌아가신 지 삼십오 년째 되는 해이다. ‘근원 전집’ 3, 4권을 만들면서 만나 뵙게 된, 김용준 선생의 둘째누님인 고(故) 김일호(金日浩) 여사의 셋째아드님 내외분 우기돈(禹基敦)·권정렬(權貞烈) 님은, 월북 전의 근원 선생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소중하게 보관해 오던 사진 넉 장과 그림 두 점을 제공해 주었다. 또한 어렵게 연락이 닿은, 김용준 선생의 형인 고 김용수(金瑢洙) 선생의 장손 김영배(金濚培) 님은 근원 선생의 호적사항을 입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우기돈·권정렬·김영배 님께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린다. 근원 선생께서는 월북 당시 부인 진숙경(秦淑卿) 여사와 함께 석란(夕蘭)이라는 입양딸을 동행했다고 하나 지금은 확인할 길이 없다. 하루빨리 남북관계가 호전되어 선생께서 살다 가신 발자취가 선명하게 드러날 날을 기대할 뿐이다.

2002년 9월
편집자

김용준 (저자)

김용준(金瑢俊, 1904-1967)은 경북 선산(善山) 출생의 동양화가이자 미술평론가·한국미술사학자·수필가·교육자·장정가로, 호는 근원(近園)·검려(黔驢)·우산(牛山)·노시산방주인(老枾山房主人)·벽루산인(碧樓山人)·반야초당주인(半野草堂主人)·매정(梅丁) 등이다. 경성 중앙고등보통학교와 일본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 졸업 후 중앙고보와 보성고보 미술교사를 거쳐, 서울대학교 미술학부 동양화과 교수를 역임했고, 동국대 사학과에서 미술사를 가르쳤다. 1950년 9월 월북하여 평양미술대학 교수, 조선미술가동맹 조선화분과 위원장, 조선건축가동맹 중앙위원, 과학원 고고학연구소 연구원, 평양미술대학 조선화 강좌장 등으로 활동했다. 저서로 『근원수필』(1948), 『조선미술대요』(1949),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1958) 등이 있으며, 다수의 미술평론 및 미술사 논문을 발표했다.

『民族美術論』 발간에 부쳐 편집자
근원의 미술론과 작품세계-解題 정형민

1. 우리 미술계의 개조를 주창함
화단개조(畵壇改造)
무산계급(無産階級) 회화론
프롤레타리아 미술 비판
과정론자(過程論者)와 이론 확립
속(續) 과정론자와 이론 확립

2. 아름다움을 찾아서
종교와 미술
미술에 나타난 곡선 표징(表徵)
서양화 감상법
매너리즘과 회화

3. 민족문화론
내일의 조선미술
회화로 나타나는 향토색(鄕土色)의 음미
전통의 재음미
민족문화 문제
광채나는 전통

4. 전통미의 재조명
우리 건축의 특색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우리 공예품의 특색을 살리기 위한 몇 가지 의견
〈양직공도(梁職貢圖)〉에 나타난 백제 복식

5. 화단시평(畵壇時評)
「동미전(東美展)」을 개최하면서
제9회 「미전(美展)」과 조선 화단
백만양화회(白蠻洋畵會)를 만들고
「동미전(東美展)」과 「녹향전(綠鄕展)」
제11회 「서화협전(書畵協展)」의 인상
화단 일 년의 회고
화단 일 년의 동정
「이마동(李馬銅) 개인전」을 보고
화집 출판의 효시
제2회 「전국조선학생미술전람회」를 보고
김만형(金晩炯) 군의 예술
심산(心汕)의 산수화
문화 일 년의 회고
제1회 「국전(國展)」의 인상
민족적 색채 태동
담채의 신비성
고미술 계몽의 의의
「리석호 개인전」을 보다

6. 그 밖의 산문
겨울달밤 성북동
고저(庫底)로 갑시다
잊지 못할 그 강과 그 산
내 집의 화분
애류(崖溜) 권덕규(權悳奎) 선생
『정음발달사(正音發達史)』 서(序)

附 근원의 회화작품과 도서장정
회화작품
도서장정
그 밖의 자료

수록문 출처
김용준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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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풀이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