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전집 이후의 근원

‘근원 김용준 전집’ 보유판(補遺版)은 2002년 ‘근원 김용준 전집’(전5권) 발간 이후 새로 발굴된 근원의 수필 9편, 산문 4편, 동양화 작품 1점, 도서장정 15점, 삽화 10점, 사진 10점, 그리고 근원 김용준의 서울대 동양화과 교수 시절의 제자 서세옥 화백의 회고와 수정 증보한 연보, 저작목록 등을 한데 묶어 펴낸 것이다.

근원전집 ‘보유편(補遺篇)’ 발간의 의미

출판의 본령은 저술행위를 올바르게 정리·기록(편집)하여 널리 보급하는 데 있다. 그런데 이 저술행위나 편집행위는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출간 이후에도 거듭해서 수정 보완해야 하며, 그래서 책 머리에 끼워넣는 ‘정오표(正誤表)’나 이후 ‘정정판(訂正版)’ ‘증보판(增補版)’ ‘증정판(增訂版)’ ‘개정판(改訂版)’ 등의 출간이 뒤따름으로써 좀더 완결성을 갖출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책 한 권을 출판하는 데 대해 책임을 다하는 것은 물론, 독자들과 계속적으로 소통해 나가는 소중한 방편이 된다.

‘근원 김용준 전집’ 보유판(補遺版)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선보이는, 요즘에는 보기 드물게 시도되는 출판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5년 전인 2002년 근원전집(전5권) 발간 이후 근원의 글과 작품, 사진 등이 새로 발굴되어 기존의 전집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펴내는 것으로, 이로써 좀더 완전한 전집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게 되었고, 이 보유판은 계속해서 새로 발굴되는 글과 작품, 기타 자료들로 수정 보완될 것이다.

근원 김용준의 보석과도 같은 수필과 산문 11편

우리 수필문학의 정수(精髓)로 손꼽히는 『근원수필(近園隨筆)』(1948)의 저자 근원 김용준. 새로 발굴된 그의 글 13편 중 수필은 모두 9편이다. 『근원수필』 출간 당시의 문단에서는 “시는 정지용, 소설은 이태준, 수필은 김용준”이라는 말이 돌 정도로 근원의 수필은 명문으로 손꼽혔으며, 「두꺼비 연적을 산 이야기」를 비롯한 일련의 그의 수필이 현행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거나 필독 문헌으로 읽히고 있다. 2001년 근원전집의 첫번째 권으로 『새 근원수필』을 선보일 때 『근원수필』에 수록되지 못한 근원의 수필 23편을 새로 발굴하여 선보임으로써 큰 호응을 얻은 바 있었는데, 이번에 새로 발굴한 수필 9편 역시 ‘수필’이란 어떤 글인지를 보여주는, 담박하고 감칠맛나는 보석과도 같은 명문들이다.
『근원수필』에 실려 있는 「육장후기」, 이번에 발굴 소개하는 「소루유아정」과 「반야초당 스케치」, 그리고 근원의 제자였던 서세옥 화백의 회고를 통해, 1944년부터 해방 이후까지 근원이 기거하던 곳들을 어렴풋하게나마 순서대로 추정할 수 있게 되었다. 즉, 근원은 1944년경 성북동의 노시산방을 수화 김환기에게 넘겨주었고(「육장후기」), 이후 양주 고든골로 이사해 살았으며(「소루유아정」), 해방 이후 1946년 서울대 미술학부 동양화과 초대교수로 부임하면서 경운동 한옥집에 세들어 살았고(서세옥 화백의 증언), 서울대를 사직한 이후(1948년경) 다시 의정부로 이사해 ‘반야초당’이라 이름짓고 살게 된 것으로(「반야초당 스케치」) 추정된다.
「아름다운 도적」은 이번에 새로 선보이는 글 중 가장 흥미로운 내용의 수필로, 근원이 수화 김환기와 골동취미를 함께하던 때의 일화가 재미있게 소개되고 있으며, 당시 근원이 친하게 지냈던 후배들인 화가 우원(友園) 최재덕(崔載德)과 시인 백우당(白牛堂) 오장환(吳章煥) 두 사람 사이에 항아리 하나를 두고 벌어졌던 해프닝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한편, 「서글픈 취미」를 통해 근원이 유화에서 동양화로 전향하게 된 것이 그의 나이 서른여섯 되던 1939년이었음이 확인되었다. 동양화로 길을 바꾸어 “앞으로 십 년, 넉넉 잡아 오십까지면 설마 화호불성(畵虎不成)에 괭이 새끼라도 되리라… 만일 오십에도 괭이는 말고 쥐새끼도 못 되는 날엔 사내답게 붓을 꺾어 버린다”는 결심을 했던 근원은, 독학으로 동양화를 공부하여 이후 서울대 동양화과 초대교수를 지낼 정도로 이론과 실기에 능통했고, 월북 이후 〈춤〉(1957) 등 일련의 뛰어난 작품을 선보였다.
1946년 8월 20일 『동아일보』에 발표했던 「정계에 보내는 나의 건의」는 해방 직후 좌우 양익의 지도자들이 어느 한쪽에 치우침 없이 겸허하고 자성하는 자세로 시대를 이끌어 나갈 것을 당부하는 글로, 근원의 정치적 입장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서울대 미술학부 교수 시절 근원의 제자 서세옥 화백의 회고

“우리는 붓을 높이 쳐들고 한껏 힘을 분출하는 식으로 죽죽 선을 내그어야 한다. 그렇게 자유분방한 그림을 그려야 한다.” 김용준(서세옥 화백의 회고 중에서)
이번 보유판에서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이 바로 김용준의 서울대 미술학부 동양화과 교수 시절 제자였던 서세옥 화백의 증언이다. 편집부에서는 생존 인물 중 근원과 함께 했던 유일한 인물인 서세옥의 회고를 이틀에 걸쳐 인터뷰하고 녹취해 실었다. 이를 통해 서울대 동양화과 교수였던 김용준의 교육관, 그의 풍모와 인격 등은 물론, 국대안 반대 운동 관련 서울대를 사직하게 된 배경 등을 좀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서세옥은 근원의 월북과 관련, 그가 공산주의 운동을 했다거나 가담했다는 말에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 “일제시대 때 일본에게 그렇게 수탈과 박해를 당했는데, 해방이 되니 이번에는 미국 사람들이 와서 군정을 하지 않았습니까. 이 조그만 나라에 일본 사람들이 와 괴롭히면서 우리말도 못 하게 하더니, 이제 미국 사람들이 오니까 별 볼일 없는 놈들이 영어 좀 한다고 실권을 잡고 판을 친 거죠. 그런 상황을 감내하기가 힘드셨을 겁니다.” 또한 당시 미술학부장을 맡았던 장발과의 불화를 근원의 월북 이유로 들기도 했다. 서세옥의 회고는 앞으로의 근원 김용준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새로 발굴한 동양화 1점과 장정 15점,
그리고 사진 10점과 함께 풍성해진 연보

근원은 카톨릭에서 불교로 종교를 바꾼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새로 소개되는 동양화 1점은 그의 나이 서른아홉 되던 1942년, 독립운동가로도 큰 활약을 했던 해인사의 환경(幻鏡) 주지스님을 찾아가 그려 준 뛰어난 작품이다. 한편, 그는 뛰어난 도서장정가로도 알려져 있었는데, 기존의 전집에 실리지 못했던 장정 작품 15점과 삽화 10점이 이 책에 새로 소개되어 있다. 이 중, 이태준의 『달밤』(1934)과 『복덕방』(1947), 홍명희의 『임꺽정』(1948), 김동인의 단편집 『약혼자에게』(1949), 신채호의 『조선상고사』(1948) 등은 너무나도 유명한 책들인데, 책의 성격에 맞게 고졸하고 운치있는 그림과 글씨로 꾸민 표지들을 통해 김용준이 당대의 뛰어난 북디자이너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엮으면서, 근원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모든 책과 문헌자료를 취합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1933년 무렵부터 1938년경까지 보성고보 미술교사로 재직하던 때의 사진 10점을 새로 발굴하여 좀더 풍성해진 연보를 실었다.
이 책은 기존에 출간된 전집 다섯 권과 함께 근원 김용준 연구에 튼실한 기초연구자료로 자리매김할 것이며, 이후 북한에서의 삶의 자취도 투명해져 언젠가 근원의 평전 또는 전기가 출판될 것을 소망해 본다.

2007년 5월
편집자

김용준 (저자)

김용준(金瑢俊, 1904-1967)은 경북 선산(善山) 출생의 동양화가이자 미술평론가·한국미술사학자·수필가·교육자·장정가로, 호는 근원(近園)·검려(黔驢)·우산(牛山)·노시산방주인(老枾山房主人)·벽루산인(碧樓山人)·반야초당주인(半野草堂主人)·매정(梅丁) 등이다. 경성 중앙고등보통학교와 일본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 졸업 후 중앙고보와 보성고보 미술교사를 거쳐, 서울대학교 미술학부 동양화과 교수를 역임했고, 동국대 사학과에서 미술사를 가르쳤다. 1950년 9월 월북하여 평양미술대학 교수, 조선미술가동맹 조선화분과 위원장, 조선건축가동맹 중앙위원, 과학원 고고학연구소 연구원, 평양미술대학 조선화 강좌장 등으로 활동했다. 저서로 『근원수필』(1948), 『조선미술대요』(1949),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1958) 등이 있으며, 다수의 미술평론 및 미술사 논문을 발표했다.

한 인문주의자의 삶, 그 가려진 장막을 걷어내다 / 편집부
나의 스승 근원 김용준을 추억하며 / 서세옥

작은 누각에 고요히 앉아 – 새로 발굴된 근원의 글
소루유아정(小樓惟我靜)
역마차
거지를 보고
반야초당(半野草堂) 스케치
아름다운 도적(盜賊)
정기(正氣)의 수호신 탁영(濯纓) 선생
제 버릇 개 못 준다
서글픈 취미
눈물로 참새를 그린 이징(李澄)
미적 사색의 지표
정계(政界)에 보내는 나의 건의
화가가 본 여인
변 선생

넘실대는 푸른 물결 앞에서 먹 향기를 맡고 – 근원의 회화와 장정 작품
해방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 사진과 함께 보는 근원의 일생

근원 김용준 저작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