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미술사 上

  • 총론편 - 우현 고유섭 전집 1
  • 고유섭
  • A5 양장 2007년 11월 20일 440면 35,000원 흑백 87컷 978-89-301-0291-9 978-89-303-0290-2
  • 예술일반, 우현 고유섭 전집
    • 2008년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총론편과 각론편 두 권으로 선보이는 『조선미술사』는, 고유섭 사후에 유저(遺著)로 출간되었던 『조선미술문화사논총』(서울문화사, 1949), 『전별의 병』(통문관, 1958), 『조선미술사급미학논고』(통문관, 1963), 『조선건축미술사초고』(고고미술동인회, 1964), 『조선미술사료』(고고미술동인회, 1966) 등에 나뉘어 실렸던 한국미술사 관련 개별 논문들을 모두 모아, 고유섭 생전의 목표였던 조선미술 통사(通史) 서술의 체제에 맞게 ‘조선미술 총론’을 상권으로, ‘건축미술’ ‘조각미술’ ‘회화미술’ ‘공예미술’을 하권으로 각각 재편성한 것이다. 총론편에는 고유섭이 조선미술 통사 서술을 의도로 집필했으나 완성을 보지 못한 「조선미술약사」를 필두로, 조선미술 전반 또는 특정 시대의 미술에 관해 쓴 총론 형식의 글 열여덟 편이 실려 있다. 그 중 미발표 유고는 「조선미술사 서(序)」 「조선미술약사」 「조선 조형예술의 시원」 등 세 편이며, 나머지는 경성제대 미학연구실 조수 시절에 발표한 「조선 고미술(古美術)에 관하여」(『조선일보』, 1932. 5. 13-15)부터 개성부립박물관장을 역임하던 때에 발표한 「조선 고대미술의 특색과 그 전승 문제」(『춘추(春秋)』, 1941. 7)까지 근 십 년에 걸쳐 씌어진 글들이다

한국미(韓國美)에 숨과 혼을 불어넣은 우현 고유섭

우리 미술사학의 역사는 길지 않다. 물론 일제 치하 이전 즉 근대적 학문체제가 이 땅에 유입되기 전에도 미술평론이라 부를 만한, 일부 서화가들 또는 그림에 관한 문인·학자들의 글이 존재하긴 했지만, 본격적인 학문으로서의 ‘미술사 연구’라고 일컬을 만한 시도는 없었다. 일제기에 들어 비로소 조선미술에 대한 논문으로 국학자 안확(安廓)의 「조선미술」(1915, 『학지광』), 철학자 박종홍(朴鍾鴻)의 「조선미술의 사적 고찰」(1922-1923, 『개벽』)과 같은 글이 발표되긴 했지만, 미술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었던 이들의 글은 한국미술 전체를 아우르지 못했을뿐더러, 후속 연구도 뒤따르지 않았다. 이후 독일인 안드레 에카르트(Andre Eckardt)의 『조선미술사(Geschichte der koreanischen Kunst)』(1929)나 일본인 세키노 다다시(關野貞)의 『조선미술사(朝鮮美術史)』(1932)가 출간되어 최초의 ‘한국미술 통사’라는 문헌적 가치를 부여받기는 했지만, 조선인이 아닌 외국인의 관점으로 서술되었기에 이 또한 우리 미술을 제대로 파악하여 그 요체를 드러내 보여주지 못했다는 게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견해다.

1925년 보성고보를 수석으로 졸업한 우현(又玄) 고유섭(高裕燮, 1905-1944)은 경성제국대학에 들어가 조선인으로서는 최초로 미학·미술사를 전공하게 된다. 동경제국대학에서 미학을 전공한 뒤 베를린 대학에서 미학 및 미술사를 전공하고 온 우에노 나호테루(上野直昭) 교수로부터 ‘미학개론’ ‘서양미술사’ ‘강독연습’ 등의 강의를 들으며 당대 유럽에서 성행하던 미학을 바탕으로 한 예술학의 방법론 배웠고, 중국문학과 동양미술사를 전공하고 인도와 유럽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다나카 도요조(田中豊藏) 교수로부터 ‘『역대명화기(曆代名畵記)』 강독연습’ ‘중국미술사’ ‘일본미술사’ 등의 강의를 들으며 동양미술사를 습득해 나갔으며, 당시 총독부박물관의 주임을 겸하고 있던 후지다(藤田亮策) 교수를 통해 고고학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졸업 후에는 3년간 경성제대 미학연구실 조수 생활을 하며 이 분야 공부를 더욱 연마했으며, 1933년 조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개성부립박물관장으로 부임하여 생을 마감하던 1944년까지 우리 미술사 연구에 매진했다. 이렇듯 고유섭은 근대적 학문체제 속에서 정식으로 미학·미술사를 전공하여 체계적인 방법론에 의해 우리 미술에 대해 조사하고 연구하고 집필활동을 한 우리나라 최초의 미학·미술사학자였다. 생전에는 일문으로 된 『조선의 청자』(1939) 단 한 권밖에 출간하지 못했던 그였지만, 조선미술에 관한 그의 첫 논문인 「금동미륵반가상의 고찰」(1931, 『신흥』 4호)을 시작으로 「불국사의 사리탑」(1943, 『개한』 15)까지 한국미술사 제 분야에 걸쳐 불과 12년 사이에 모두 80여 편의 논문을 써냈으니, 양으로만 따져도 한 해에 6-7편의 글을 발표한 셈이다. 하지만 더욱 그의 존재가 빛나는 것은, 당대 명성이 자자했던 세키노 다다시(關野貞)나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같은 일본인 학자들의 한국미술에 관한 일부 왜곡된 논의나 관점들을 날카롭게 지적했을 뿐 아니라, 어디까지나 조선적 사고와 시각으로, 엄격한 학문적 관점으로 우리의 미술을 조명하고 규명했다는 점이다. 이렇듯 우리 미술사 연구의 문을 비로소 활짝 열어 젖힌 장본인이 바로 우현 고유섭이다.

인문출판의 전범(典範)이 될 ‘우현 고유섭 전집’의 완정본(完整本)

그간 우현의 저술로서 간행된 책은 『조선의 청자』(東京, 寶雲舍, 1939; 진홍섭 역, 『고려청자』, 을유문화사, 1954), 『송도고적』(박문출판사, 1946), 『조선탑파의 연구』(을유문화사, 1947), 『조선미술문화사논총』(서울문화사, 1949), 『전별의 병』(통문관, 1958), 『조선미술사급미학논고』(통문관, 1963), 『조선건축미술사 초고』(등사본, 고고미술동인회, 1964), 『조선미술사료』(등사본, 고고미술동인회, 1966), 『조선탑파의 양식변천 각론 초고』(등사본, 고고미술동인회, 1967) 등 모두 9종이며, 이 책들이 판본을 바꿔 가며 중복 출판되었다. 이 중 저자가 생전에 출판을 목적으로 집필한 것은, 『고려청자』와 『송도고적』 두 권뿐이며, 나머지는 우현의 문도(門徒)인 황수영(黃壽永, 1918- )·진홍섭(秦弘燮, 1918- )을 중심으로 한 후학들이 1946년부터 1967년까지 20여 년에 걸쳐 차례로 정리 출간한 것들이다. 그리고 1993년 통문관에서 ‘고유섭 전집’(전4권)을 발간했으나, 여기에는 『조선건축미술사 초고』 『조선미술사료』 『조선탑파의 양식변천 각론 초고』 등이 빠져 있어 ‘전집’이라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또한 지금까지의 모든 유저(遺著)들과 마찬가지로, 난해한 문장들을 한글 표기 없이 한자(漢字) 그대로 노출했고, 인용 한문구절도 번역 없이 실었으며, 주석작업도 시도되지 않았기에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연구자들도 읽기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에 주목하여, 열화당에서 새로운 ‘우현 고유섭 전집’의 기획에 착수한 것은 그의 탄생 100주년을 두 해 앞둔 2003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마흔 해라는 짧은 생을 살고 간 우현이 남긴 업적은, 60여 년이 흐른 지금에도 못다 정리될, 못다 해석될 방대하고 심오한 세계였기에, 원고의 수집과 정리, 그리고 분석에 따른 전집의 구성에만도 두 해가 훌쩍 넘어갔다. 그리하여 그의 유저(遺著)들은 물론이고 그 밖의 수많은 미발표(미완성) 유고, 소장하던 미술사 유물·유적 관련 사진도판, 카드 기록, 직접 그린 도면과 소묘, 지도, 자료사진, 일기, 장서목록, 그리고 그에 관한 여러 지인들의 회고까지, 우현 고유섭이라는 한 인간이 남기고 간 모든 업적과 그에 관한 자료들을 전집에 포함시키는 방대한 기획에 이르렀다. 그리고 우리는 크게 두 가지 원칙, 즉 우현의 전작(全作)과 모든 관련자료들을 모아 ‘전집’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구성으로 재편하여 보여준다는 것과, 난해한 글을 일반 독자들도 충분히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에 의해 이 전집을 구체화시켜 나갔다. 그리하여 제1·2권 『조선미술사』 상·하, 제3·4권 『조선탑파의 연구』 상·하, 제5권 『고려청자』, 제6권 『조선건축미술사』, 제7권 『송도의 고적』, 제8권 『우현의 미학과 미술평론』, 제9권 『조선금석학』, 제10권 『전별의 병』 등 전10권의 새로운 전집을 구성했고, 4년이 흐른 오늘 그 중 1차분으로 제1·2권 『조선미술사』 상·하, 제7권 『송도의 고적』 등 세 권을 선보이게 되었다.

새로 선보이는 ‘우현 고유섭 전집’은 본문을 국한문 병기(倂記) 체제로 바꾸었고, 인용 한문 구절의 번역문을 실었으며, 우현이 소장하던 사료적 가치가 높은 미술사 도판을 내용에 맞게 선별하여 편집했다. 그 밖에 각권에 대한 해제 수록, 어려운 한자어나 용어에 대한 어휘풀이 작업, 그리고 수록문 출처, 도판목록, 고유섭 연보, 찾아보기 등을 덧붙였다. 더불어 정갈함과 고풍스러움을 살리면서 한 권 한 권에 무게감을 주는 장정으로 꾸며, 명실공히 ‘우현 고유섭 전집’ 완정본이 되도록 정성을 다했다.

열화당에서 야심차게 기획한 이 전집은 우현 고유섭의 방대한 학문적 성과와 그것이 지니고 있는 사료적 가치는 물론, 그 속에 깃들인 우리 미술문화에 대한 한없는 애정, 이에 대한 학문적 체계 수립의 열정 등을 온전히 보여주는 것으로, 인문출판의 한 전범(典範)이 될 것이며 우리 미술사 연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부디 이 전집이 오늘의 한국미술사 연구의 줄기를 올바로 세워 나가는 밑거름이 되고, 또 이 전집으로 우리의 미술사가 다시금 조명되기를 바란다.

인문학과 인문출판에 모인 아름다운 관심과 후원

이번 전집 1차분 세 권의 출판은 실로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만들어졌다. 우현 선생의 문도이신 미술사학자 황수영·진홍섭 선생, 우현 선생의 따님이신 고병복 여사, 편집에 도움을 주신 허영환·김영애 편집위원, 해제를 써 주시고 편집에 도움을 주신 이기선·최열 편집위원, 인용 한문구절의 번역을 맡아 주신 안대회·김종서 선생, 원고 및 자료 사용에 협조해 준 동국대 도서관 등이 그들이다. 그리고 이들 외에 특별히 언급해야 할 두 분이 있다. 바로 GS칼텍스의 허동수 회장과 인천문화재단의 최원식 대표이사이다. 대중의 기호만을 따르는 상업출판이 판을 치는 현 출판 현실에서, 열화당은 지금까지의 소신을 잃지 않고 큰 용기를 내어 이번 전집 출판의 결단을 내렸으나, 출간 후의 판매는 둘째 문제로 치더라도, 기획·편집·디자인 등 출간작업 자체에 막대한 시간적 물질적 투자가 요구되어 진행 초기부터 큰 난관에 맞닥뜨렸다. 그러던 즈음 우현의 연고지라는 이유로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찾아간 인천문화재단의 최원식 대표이사는 선뜻 전집의 후원을 결정해 주었고, 열화당에서 ‘우현 고유섭 전집’을 진행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GS칼텍스의 허동수 회장은 아무런 조건 없이 출판 후원을 자청해 주었다. 이 모든 것이 우현 고유섭 선생의 명성 때문이겠지만, 이 땅의 인문학과 인문출판을 살리기 위한 아름다운 관심과 배려가 우리의 작업에 큰 힘과 격려가 되었고, 앞으로 남은 전집의 출판에 큰 자신감을 실어 주는 계기가 되었다.

2007년 11월

편집자

고유섭 (저자)

우현(又玄) 고유섭(高裕燮, 1905-1944)은 우리나라 최초로 대학에서 미학·미술사를 전공했으며, 본격적인 연구를 통해 우리 미술사와 미학을 근대적인 방법론으로 학문화한 선구적인 학자였다. 그는 1930년 이후 중요한 고대미술품들을 조사 연구하는 데 힘썼으며, 1933년 개성부립박물관 관장으로 부임해 그후 십 년간 우리 미술사 제분야 연구에 주력했다. 우리 문화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의 준거(準據)를 세우고, 나아가 한국미술에 대한 학문적 궁구(窮究)를 통해 실질적인 한국미술사학 연구의 초석을 마련한 그는, 해방 이후 지금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친, 한국미술의 등불 같은 존재이다. 저서로는 『조선미술사』 『조선탑파의 연구』 『고려청자』 『조선건축미술사』 『송도의 고적』 『전별의 병』 등이 있다.

『朝鮮美術史 總論篇』 발간에 부쳐 -열화당
解題-개방과 자득의 장엄한 미술사학 -최열

조선미술사 서(序)

제I부 조선미술약사
총론
제1편 삼국 이전 시대

제II부 조선미술총론
조선 고미술(古美術)에 관하여
조선 고대미술의 특색과 그 전승문제
조선문화의 창조성
조선 미술문화의 몇낱 성격
우리의 미술과 공예
조선 고대의 미술공예
조선 고적(古蹟)에 빛나는 미술
조선미술과 불교
조선 조형예술의 시원
고대인의 미의식
삼국미술의 특징
고구려의 미술
신라의 미술
약사신앙(藥師信仰)과 신라미술
신라와 고려의 예술문화 비교시론(比較試論)
불교가 고려 예술의욕에 끼친 영향의 한 고찰

주(註)
어휘풀이
수록문 출처
도판 목록
고유섭 연보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