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즘

19세기 귀스타브 쿠르베의 사상에 뿌리를 둔, 유럽과 미국의 리얼리즘 미술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독일의 신즉물주의, 멕시코 벽화운동, 팝 아트와 포토리얼리즘 등에 나타난 객관적 지평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고, 러시아와 독일에서 국가 주도로 진행된 보수적 아카데미 리얼리즘의 위선에 메스를 가하면서도, 양식적 이념적 측면에서 더욱 다양해진 20세기 리얼리즘 작품들 속의 사적 시각에 더욱 주목할 것을 요청한다. 그리고 포스트모던의 시대인 21세기에는 리얼리즘이 젊은 미술가들에게 ‘최상의 선택’으로 각광을 받으리라는 밝은 전망을 내린다.

일반적으로 미술에서의 ‘리얼리즘’은 프랑스 화가 구스타브 쿠르베의 사상에서 비롯해 19세기 중반까지 영국에서도 지지를 얻은 운동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 견해의 등장으로 힘을 얻은 다원주의 덕분에, 리얼리즘은 다양한 태도와 입장을 취하며 20세기 미술 속에 여전히 존속하고 있다. 이 책은 이같이 19세기에 태동해 여러 모습으로 변화한 현대미술에서의 리얼리즘을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다.

저자 제임스 맬패스는, 리얼리즘은 현대세계와 사물 그 자체에 대한 관심이라는 공통점을 지닐 뿐, 뭔가를 위해 의식적으로 참여하고 선언서 등을 통해 헌신할 것을 맹세하지도, 공통된 양식이나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후기인상주의 기법으로 사실적인 주제를 그린 영국 캠던 타운 그룹의 시커트, 길먼, 고어 등의 작업을 리얼리즘의 영역 안에 포함시키고, 칸딘스키, 말레비치와 같은 바우하우스 추상미술가들의 주장, 즉 “기계적으로 생산된, 평면에 근거한 기하적이고 비환영적인 작품들이야말로 현대사회와의 관계로 볼 때 구상적인 미술의 핵심을 여전히 장악하고 있는 아카데믹한 환영주의보다 그 자체로 더욱 사실적인 것”이라고 한 말을 인용해, 심지어 추상미술도 그 본질에서 리얼리즘에 포함된다고 한다. 또한 일차대전에서의 패전이라는 충격 속에 표현주의의 주관적 열정과 감상주의의 붕괴에 반응하면서, ‘일상성’이 재건되어야만 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한 독일 신즉물주의 운동의 그로스, 딕스, 숄츠 등의 작업과, 실상을 똑같이 그리기보다 그들이 바라는 상태로 그려 ‘유토피아적 리얼리즘’을 실천한 디에고 리베라의 작업을 리얼리즘의 영역 안에서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그는 톰 웨셀먼, 앤디 워홀과 같은 미국 팝 아트 미술가들의 작업을 설명하면서, 팝 아트 미술의 ‘리얼리티’는 미국의 확장되는 경제력, 음식과 물질과 오락, 시간과 여가의 풍요를 바탕으로 “예술작품 속에 그려진 물건이 실제 물건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렇듯 맬패스는 20세기의 다양한 리얼리즘을 제시하며, “최상의 상태에서 리얼리즘 미술은 삶의 표면을 찔러 보고 관통해 보면서 다분히 심리적인 특성을 가지며, 이렇게 해서 드러난 각 단면들은 미술가들 자신의 외모만큼이나 다양하다”고 결론을 내린다.

옮긴이의 말

이 책은 19세기 이래 유럽과 미국의 리얼리즘 미술을 영국 미술사가의 시각에서 소개하고 있다. 저자인 제임스 맬패스는 삶에 대한 실증적이고 현실적인 태도, 사물과 환경에 대한 실용적인 시선, 일상성에 대한 주목 등을 리얼리즘의 특성으로 제시한다. 리얼리즘은 그 주제나 기법상 19세기 리얼리즘 태동기의 문제의식을 반드시 공유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리얼리즘이 추구하는 객관성의 본질은 미술가들마다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되고 실천될 수 있기 때문에 리얼리즘 미술을 양식적으로 정의하는 데 어려움이 있음을 토로한다. 그는 제스처가 강한 표현주의 양식의 회화일지라도 객관성에 대한 작가의 해석 태도에 따라 리얼리즘 안에서 논의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한다. 양식적인 접근에서의 이러한 시각은 리얼리즘에 대한 기존 미술사의 시각을 다소 확대시킨 것이다. 이런 확대된 시각 속에서 그는 영국의 라파엘전파를 쿠르베와 나란히 리얼리즘의 뿌리로 소개하고, 영국의 캠던 타운 그룹을 리얼리즘의 영역 안에서 설명한다.

맬패스가 20세기의 리얼리즘 미술을 규정하는 시각 또한 매우 흥미롭다. 그는 아방가르드의 양식적 실천이 연이어 난립했던 20세기에는 오히려 역설적으로 ‘진보적이고 아방가르드적인 경향에 반하는 것으로 자신들을 규정하거나, 혹은 단순하게 그러한 경향을 무시해 버리는 개인들’이 리얼리즘 미술가들이었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독일의 신즉물주의, 멕시코 벽화운동, 팝 아트와 포토리얼리즘 등에 나타난 객관적 지평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고, 러시아와 독일에서 국가 주도로 진행된 보수적 아카데미 리얼리즘의 위선에 메스를 가하면서도, 양식적 이념적 측면에서 더욱 다양해진 20세기 리얼리즘 작품들 속의 사적인 시각에 더욱 주목할 것을 요청하는 것은, 20세기 리얼리즘 미술이 더욱더 개인적인 실천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다원주의에 입각한 포스트모던의 시대인 21세기에는 리얼리즘이 젊은 미술가들 앞에 놓인 가능성들 가운데 ‘최상의 선택’으로 더욱 각광을 받으며 떠오르리라는 밝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러한 저자의 입장은 이 책의 장점이자 리얼리즘 미술에 대한 많은 논쟁거리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저자가 이 책의 첫머리에서 인용했듯이, 리얼리즘은 ‘무엇이나 먹어치우는 괴물’이 될 위기에 처해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리얼리즘 미술은 회의주의와 행동주의가 신중하게 균형이 잘 잡혔을 때, 다른 말로 하면 뭔가에 대해 웃을 수 있으면서 동시에 그것을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 가장 활짝 꽃피었다”는 저자의 지적이 이 시점에서 더욱 깊은 여운을 남긴다.

제임스 맬패스 (저자)

미술사학사이자 평론가로서, 런던의 서더비스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에서 강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Nicolas Moreton: Pregnant Stone>(1997)이 있다.

정헌이 (역자)

이화여대 철학과와 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시립대 대학원에서 미술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한성대 회화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현대미술의 신화>가 있고, 옮긴 책으로 <현대미술 다시 보기>가 있다.

서론

1. 리얼리즘의 시작
2. 영국 리얼리즘 회화 1900~1940
3. 양차대전 사이의 리얼리즘
4. 1945년 이후 유럽과 영국의 리얼리즘
5. 1955년 이후 미국의 팝 아트와 리얼리즘 회화
6. 1980년대 슈퍼리얼리즘, 포토리얼리즘, 리얼리즘
7. 팝 아트 이후 미국과 영국의 리얼리즘

결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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