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표현주의

1947년부터 1953년까지 전후 뉴욕에서 발생했던 이 미술운동은 이차대전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유럽 전위 작가들이 미국미술에 큰 자극을 심어 준 결과였다. 이러한 서구 현대미술의 복합적이고 다양한 요소들을 모두 받아들인 미국은 독자적인 발전을 이룩했고, 이에 힘입어 뉴욕의 젊은 작가들, 즉 잭슨 폴록과 윌럼 드 쿠닝 등은 캔버스에 미국 현대미술을 부흥시켰다. 이들은 형상적인 것을 거부하고 회화표현의 본질을 인간내면의 정신성에 두었다. 추상표현주의는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과 유럽의 추상회화에서 다소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현대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최초의 진정한 미국 현대미술운동이라 할 수 있다.

추상표현주의는 어느 정도 초현실주의와 유럽 추상회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비평가들은 그것을 최초의 진정한 미국 아방가르드 운동으로 추켜세웠다. 그것은 전후(戰後) 미국을 매료시켰고, 빠르게 전 세계로 전파되면서 뉴욕을 국제 미술계의 중심지로 부각시켰다. 이 예리한 연구에서 큐레이터이자 작가인 데브라 브리커 발켄은 윌럼 드 쿠닝, 리 크래스너, 로버트 머더웰, 바넷 뉴먼, 잭슨 폴록, 그리고 마크 로스코와 같은 추상표현주의와 관련된 주도적 미술가들의 작품을 검토한다. 동시에 발켄은 추상표현주의를 둘러싼 신화, 동기의 변화, 미술사가들이 동일한 항목으로 분류한 미술가들의 그리고 당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운동의 수용에 비평가들이 담당한 역할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일반 독자와 미술사학자 모두에게 유용한 가치를 지니는 발켄의 저서는, 모든 20세기 미술운동 중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운동에 관한 귀중한 문헌 가운데 하나이다.

옮긴이의 말

지금까지 출판된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연구서는 대부분 학술적 성격이 강해 일반 독자들이 접근하기에 부담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학계의 연구성과를 간결하고도 알기 쉽게 압축한 데브라 브리커 발켄의 이 책은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일반 독자들의 접근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이 책에서 발켄은 ‘추상표현주의’라는 용어에 대한 논의로부터 출발한다. 20세기 미술에서 용어에 대한 논의는, 대부분 관련 미술운동에 대한 경멸적 태도를 보여주는 일화적 사건을 가볍게 다루는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발켄은 코츠, 쿠츠, 퍼첼, 주엘, 스위니, 그린버그, 로젠버그 등 여러 비평가나 이론가들의 주장을 차분히 검토하면서 미국 미술가들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 유럽 미술과의 경쟁심리, 당대 미술의 동향과 특성 등 다양한 문제들을 파헤친다.

특히, 미국 미술가들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를 다룬 3장에서는 ‘미술가의 주제’ ‘스튜디오 35에서의 미술가 회의’와 같은 모임에 대한 상세한 분석이 곁들여져 관심을 끈다. 이 책의 특색은 이러한 논의 속에 주도적인 추상표현주의 미술가들의 대표적 작품 및 양식적 분기(행위적 추상과 색면회화)에 대한 설명을 자연스럽게 집어넣었다는 점이다. 4장에서는 동시대에 활동했으면서도 주목받지 못한 여성 미술가와 아프리카계 미국 미술가들에 대한 논의를 다루는 등 최근의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연구동향을 반영하고 있다. 리 크래스너와 노먼 루이스 같은 미술가들의 작품을 배제시키는 담론과 제도에 대한 논의는 그린버그에 의해 주도된 형식주의 비평의 한계를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추상표현주의는 한편으로는 문화제국주의의 양상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모더니즘의 확산으로 평가할 정도로 양면적 모습을 갖고 있다. 영국인의 입장에서 미국미술을 바라보는 발켄의 저서는, 이 양 극단의 어느 지점에 우리의 관점을 위치시켜야 할지 가늠할 척도를 제시한다고 하겠다.

데브라 브리커 발켄 (저자)

2006년 현재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근현대미술에 관한 글쓰기를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The Park Avenue Cubists>, <Philip Guston’s Poem-Pictures> 등이 있다.

정무정 (역자)

홍익대 미술사학과 대학원 및 뉴욕시립대학 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홍익대, 서울대, 숙명여대에서 강의했다. 2006년 현재 덕성여대 미술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박사학위 논문으로 ‘추상표현주의, 앵포르멜, 그리고 한국현대미술 1945-1965′(Abstract Expressionism, Art informel and Modern Korean Art, 1945-1965)를 발표했으며, ’1970년대 후반의 한국 모노크롬 회화’, ‘프랭크 스텔라의 1960년대 작품 연구’, ‘추상표현주의와 정치:수정주의 관점 다시 읽기’, ‘추상표현주의와 한국 앵포르멜’, ‘한국전쟁과 서구 미술’ 등의 연구논문이 있다.

저자/역자의 다른 책들

1. 용어의 기원
2. 우리 미술가들은 진정 하나의 커뮤니티를 이루고 있는가
3. 나는 유럽인들이 왜 혼란스러워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4. 타자의 정치 : 추방자와 이방인들
5. 추상표현주의의 여파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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