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두아르 마네

마네(1832-1883)는 분명 그 시대에 있어 가장 큰 말썽을 일으킨 화가였다. 처음으로 살롱에 작품을 출품한 해인 1859년에 이미 낙선을 경험했고, 1863년 나폴레옹 3세의 승인을 받아 열린 「낙선자 전시회」에서 영웅이 되기도 했던 그는, 살롱에서 ‘현대’ 예술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받아들여질 때까지 꾸준히 도전했다. 대체로 대중과 비평가들의 조소와 몰이해에 파묻혀 있던 그는 그 시대의 가장 위대한 지성의 소유자인 보들레르, 졸라, 말라르메 같은 옹호자들의 비호를 받았다. 왜냐하면 19세기 중반에 있어 마네는 야외에서 반사광을 표현하는 새로운 회화를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후에 마티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빛의 반사를 따라 그림을 그린 최초의 인물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화가의 작업을 쉽게 만든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가 살롱에서 낙선을 경험한 1859년으로부터 사십 년 후, 그리고 그가 사망한 지 칠 년 후에 모네는 <올랭피아>가 미국으로 가는 것을 막고 또 그것을 프랑스 정부에 기증하기 위해 기부금을 내야만 했다.

마네(1832-1883)는 분명 그 시대에 있어 가장 큰 말썽을 일으킨 화가였다. 처음으로 살롱에 작품을 출품한 해인 1859년에 이미 낙선을 경험했고, 1863년 나폴레옹 3세의 승인을 받아 열린 「낙선자 전시회」에서 영웅이 되기도 했던 그는, 살롱에서 ‘현대’ 예술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받아들여질 때까지 꾸준히 도전했다. 대체로 대중과 비평가들의 조소와 몰이해에 파묻혀 있던 그는 그 시대의 가장 위대한 지성의 소유자인 보들레르, 졸라, 말라르메 같은 옹호자들의 비호를 받았다. 왜냐하면 19세기 중반에 있어 마네는 야외에서 반사광을 표현하는 새로운 회화를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후에 마티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빛의 반사를 따라 그림을 그린 최초의 인물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화가의 작업을 쉽게 만든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가 살롱에서 낙선을 경험한 1859년으로부터 사십 년 후, 그리고 그가 사망한 지 칠 년 후에 모네는 <올랭피아>가 미국으로 가는 것을 막고 또 그것을 프랑스 정부에 기증하기 위해 기부금을 내야만 했다.

정진국 (역자)

정진국(鄭鎭國)은 서울대학교와 파리 제8대학에서 조형예술을, 파리 제1대학원에서 미학을 공부했다. 저서로 『잃어버린 앨범』 『유럽의 책마을을 가다』 『여행가방 속의 책』 등이 있고, 역서로 보먼트 뉴홀의 『사진의 역사』, 빅토르 타피에의 『바로크와 고전주의』 등이 있다. 『김기찬』의 작가론을 썼다.

오지현 (역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