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기사

청기사는 1912년 유럽에서 발간된 예술연감의 제목이자, 바실리 칸딘스키와 프란츠 마르크가 조직한 새로운 예술 그룹 및 그 전시회의 이름이다. 이들은 ‘신비적이고 내면적인 구성’을 통찰하고 표현함으로써 새로운 시대와 세계의 대전환을 이끌어 가고자 했다. 새로운 예술을 향한 열정과 신념으로 가득 찬 이 책은 ‘현대예술의 신약성서’라 불릴 정도로 20세기 예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미학적 강령문으로 알려져 있다.

낭만적이고 전투적인 20세기 예술혁명의 선구자, 청기사
청기사(靑騎士, Der Blaue Reiter)는 20세기 유럽 현대예술의 불규칙하고도 혼란스러운 태동을 포착하고 그 산고를 함께하며 새로운 탄생을 널리 선포했던 선구자들의 이름인 동시에, 그들이 1912년에 발간한 예술연감(藝術年鑑)의 제목이자, 그 연감의 주도적인 편집진이었던 바실리 칸딘스키(W. Kandinsky)와 프란츠 마르크(F. Marc)가 중심이 되어 조직한 전시회의 이름이다. 1911년 12월 칸딘스키와 몇몇 동지들은 뮌헨 신예술가동맹을 탈퇴하고 ‘청기사’ 그룹을 결성한다. 칸딘스키는 예전부터 당시 유럽 도처에서 나타난 예술의 혁명적 변화들을 예감하고 그것들을 연결짓는 연감을 출간할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여기에 화가 마르크가 합류면서 1912년 5월 연감 『청기사(Der Blaue Reiter)』가 탄생한다. 말〔馬〕을 좋아한 마르크, 기사(騎士)라는 문화적 모티프에 심취해 있던 칸딘스키, 두 사람 모두 푸른색을 좋아했는데, 그들이 뒤뜰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즉흥적으로 떠올린 이름이 바로 ‘청기사’였다.
일차대전 발발 직전, 현대예술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려는 독일 뮌헨에서 탄생한 『청기사』는 ‘신동맹’과 함께, 유럽 현대예술의 시작을 열어 주었다. 그 핵심 목표는 19세기의 물질주의가 이제 정점에 달함과 동시에 그 해체가 임박했음을 진단하고, ‘신비적이고 내면적인 구성’을 통찰하고 표현함으로써 새로운 시대와 세계의 대전환을 이끌어 가는 것이었다. 즉, 이들 ‘청기사’ 그룹이 지향한 것은 새로운 사상의 탄생이었다. 이렇게 탄생한 연감 『청기사』는 새로운 예술을 향한 묵시록적인 열정과 신념 그리고 기대감으로 가득 찬, 그야말로 ‘현대예술의 신약성서’라 불릴 정도로 20세기 예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미학적 강령문으로 알려져 있다.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점·선·면』 등 칸딘스키의 역작 두 권을 선보인 바 있는 열화당에서는, 칸딘스키의 편저 『청기사』를 원본 출간 95년 만에 국내 처음으로 번역 소개한다.

유토피아적 미래예술 기획―『청기사』의 목표와 내용

마르크의 세 편의 글이 포문을 장중하게 열어 주면, 동시대의 예술가들이 외치는 새로운 예술에 대한 전망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이러한 글 사이사이에 끼어 있는 수많은, 다양한 문화와 시대의 예술작품들이 마치 밤하늘의 별똥별처럼 일견 무질서하게 쏟아져 내린다. 그 뒤를 이어 칸딘스키의 명징하고 추상적인 언어가 이 모든 현상을 감싸 안아 하나의 예술이론으로 한 단계 이끌어 올린다.
『청기사』는 예술의 다양한 외적 표현수단이나 형식이 아닌, 그 모든 형식을 관통하는 하나의 정신에 주목했다. 이는 칸딘스키가 ‘내적 필연성’이라 이름하는 것으로, 그는 「형식의 문제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정신이라는 청기사의 주된 이념을 이 내적 필연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야기한다. 내적인 필연성, 내적인 울림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칸딘스키의 추상성과 앙리 루소(H. Rousseau)의 사실성은 결국 동등한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
또한 작품에 있어서는, 색채, 색조, 질감 자체에 관심을 두는 종래의 인상주의 그리고 사실주의의 원칙을 뒤엎고 색채와 형태를 과장·강조했는데, 연감 『청기사』가 발간되기 전인 1911년 12월에 열린 제1회 「청기사전」을 관람한 파울 클레(P. Klee)의 전시평은 이러한 청기사의 ‘색깔’을 잘 말해 준다.

“이들은 대개 민족학적 수집품이나 아이들 방에서 찾을 수 있는 것 같은 원시적 미술 단계에 있다. 웃지 마시길, 독자들이여! …아이들 또한 예술적 능력을 갖고 있다. …정신병을 앓고 있는 자들의 작품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독일의 화가 아우구스트 마케(A. Macke)도 「마스크」라는 글에서 형식은 단지 내면의 표현일 뿐이며, 중요한 것은 모든 형식을 아우르는 내면의 힘이라고 말한다. 내적 필연성에 의해 태어난 작품은 어린이의 그림이건 대가의 작품이건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 그렇다고 형식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위대한 정신성 위에 구축된, 내적인 울림에서 비롯된 형식만이 가치를 지닌다는 의미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청기사』가 가장 강렬하게 희구한 것은 여러 예술간의 ‘융합’이었다.
『청기사』의 핵심 내용은, 근대의 물질주의가 이제 정점에 달함과 동시에 그 해체가 임박했음을 진단하고, 앞으로 도래할 새롭고 위대한 정신의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의 소명은 이 새로운 시대와 세계의 ‘신비적이고 내면적인 구성’을 통찰하고 표현함으로써 시대의 대전환을 이끌어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예술에서 다양한 외적 표현수단과 형식이 아니라 그것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정신, 하나의 내용의 등장에 주목했다. 이는 칸딘스키가 ‘내적 필연성’이라 이름하는 것으로, 추상주의와 사실주의, 음악과 미술, 연극과 시, 예술과 종교, 파리와 모스크바, 유럽과 동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예술, 어린이와 아마추어와 민중의 회화를 총망라해 이들을 서로 연결하고, 또한 이들을 넘어서서 관철되는 원리를 의미한다.
연감 『청기사』는 그 편집구성부터 매우 개방적인데, 본문 텍스트 외에 다양한 국적, 다양한 문화, 다양한 시대의 예술작품과 민속예술의 시각자료가 무질서하게 편집되어 있다. 이러한 무질서한 편집과 더불어, 미술사학자인 부세의 글을 제외하고는 이 책에 실린 모든 글이 예술가들이 쓴 것이 큰 특징으로, 이는 물질주의가 팽배한 시대에 세계의 신비적이고 내면적인 구성을 통찰하고 표현함으로써 위대한 정신의 시대를 이끄는 것이 예술가의 소명임을 알리는 것이었다. 예술이념의 체계적인 정리보다는 예술적 유토피아를 꿈꿨던 청기사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 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통합의 미학으로

『청기사』는 원래 정기간행물로 계속해서 발간될 계획이었지만, 일차대전이 발발하고 1916년 마르크가 전사함으로써 단 한 권 발간에 그치고 만다. ‘청기사’라는 이름으로 두 번의 전시회가 개최되었고, 연감도 2호가 계획되었지만 결국 1912년에 1호를 출간한 것이 실제 활동의 전부였음을 감안할 때, 청기사가 거둔 성과와 명성은 그만큼 더 놀랍다.
오래 전에 굳어진 체제와 형식, 사상, 여러 예술장르간의 경계를 무너뜨린 ‘통합적’인 형식을 구상하고 그것을 총체적 예술작품으로 구현한 것은 『청기사』가 동시대인들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미래지향적 상상력의 비전이었으며, 오늘날까지도 그 영향이 남아 예술장르간의 경계를 허물고자 하는 움직임들이 계속해서 시도되고 있다. 새로운 예술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경계의 무너짐’을 꿈꾼 청기사의 이념은, 따라서 여전히 ‘예술혁명’으로 불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바실리 칸딘스키 (편자)

1866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모스크바 대학에서 법학과 국민경제학을 공부했다. 대학교수로 임명받은 후 뮌헨 아츠베의 예술학교와 아카데미의 프란츠 슈투크 문하에서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 추상미술의 선구자로서 ‘팔랑스’, ‘청기사’, ‘푸른 넷’ 등의 그룹을 결성했다. 지은 책으로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점.선.면 – 회화적인 요소의 분석을 위하여, 열화당 미술책방 002>, <회고>, <음향> 등이 있다.

프란츠 마르크 (편자)

1880년 독일 뮌헨에서 태어났다.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으나 화가가 되기 위해 스무 살에 미술학교에 들어갔다. ‘뮌헨 신예술가동맹’의 일원으로 루소와 들로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일차대전에 참전하여 전사했는데, 전장에서 쓴 에세이와 편지는 현대 독일문학의 보고가 되었다.

배정희 (역자)

연세대학교 독문과를 졸업하고, 독일 괴팅겐 대학교에서 현대 독일문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Erfahrung der Moderne und Formen des realistischen Roman을 비롯하여 독일문학과 독일문화에 관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역서로 『청기사』(열화당), 『차마 그 사랑을』(문학동네), 『장소, 공간, 경계』(에코리브르), 『게오르크 짐멜의 문화이론』 을 비롯하여 다수의 청소년문학 번역서가 있다. 2011년 현재 해양대학교에서 유럽문화를 강의하고 있다.

『청기사』 수록문

정신적 자산―프란츠 마르크
독일의 ‘야수파’―프란츠 마르크
두 그림―프란츠 마르크
러시아의 ‘야수파’―다비트 브를류크
마스크―아우구스트 마케
음악과 텍스트의 관계―아널드 쇤베르크
회화에서의 혁신의 표시―로제 알라르
음악에서의 무정부상태에 대하여―토마스 폰 하르트만
로베르 들로네의 콤포지션의 수단―에르빈 폰 부세
오이겐 칼러(추도문)―바실리 칸딘스키
스크랴빈의 「프로메테우스」―레오니드 사바네예프
자유음악―니콜라이 쿨빈
형식의 문제에 관하여―바실리 칸딘스키
무대콤포지션에 관하여―바실리 칸딘스키
노란 소리―칸딘스키의 무대콤포지션
악보―아널드 쇤베르크, 알반 베르크, 안톤 폰 베베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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