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과의 만남

미술 사화집. 릴케의 풍경, 로댕의 샤르트르 대성당, 르 코르뷔지에의 뉴욕 마천루, 윌리엄 모리스의 중세 채식사본 등 예술의 옛 거장들이 남긴 열정적인 글뿐만 아니라, 부르크하르트의 '수태고지', 하마다세이료의 백제관음상, 이브 알랭 부아의 마티스와 피카소, 로터스의 독일 표현주의와 같은 이론가들의 냉철하고 짜임새있는 분석도 만날 수 있다.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미술기행

누구나 아름다움을 느끼지만, 사람마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대상은 천차만별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채롭게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에 감탄하는 이가 있는 반면, 시각을 자극하며 벅찬 감동을 불러오는 미술작품에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한다. 여기 오로지 자신이 발견한 ‘­아름다움’을 찾아 길을 떠난 이가 있다.
이광주(李光周, 1927- )는 유럽 지성사(知性史)를 중심으로 유럽 문화사 전반에 대해 폭넓은 연구를 해 오고 있는 저명한 인문학자로, 그동안 『지식인과 권력』(1992), 『대학사』(1997),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 권』(2001) 등의 저서를 발표하며 독자들과 호흡을 같이해 왔다. 또한 차(茶)를 통해 바라본 동서양의 삶과 문화를 인문학적으로 탐구하거나(『동과 서의 차 이야기』, 2002), 중세 사본(寫本)과 초기 인쇄본의 계보를 좇는(『아름다운 책 이야기』, 2007) 등 문화 전반에 걸쳐 무척이나 넓은 관심의 폭을 지녀 온 그가, 이번에는 ­아름다움의 세계로 우리를 매혹한다.
이 책은 역사학자 이광주가 동서양을 아울러 주로 예술작품의 ‘­아름다움’을 주제로 선별한 글 열세 편을 엮은 일종의 미술 사화집(詞華集, anthology)으로, 전체 내용을 큰 틀에서 언급하며 짚어 나간 엮은이의 「미술산책 노트」를 시작으로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넘나들며 독자들을 사로잡을 만한 글들로 구성되었다.
샤르트르 대성당으로, 오르세 미술관으로, 인사동으로, 예술작품을 찾아 길을 잃어버릴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떠난 여정은, 그에게 매번 다채로운 아름다움을 안겨 주며 낯선 곳으로 이끌었다. 그러면서 그는 ‘무원죄(無原罪)의 잉태’가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의 손에서 〈수태고지〉로 다시 태어나 진실이 되는 그림을 마주하거나, 가장 아름다운 고딕 성당인 샤르트르 대성당 앞에서 경건한 순례자가 된다.
미술사학자가 아닌 엮은이의 눈에 비친 아름다움은, 개인적 취향이나 전문가로서의 식견에 앞서 오랜 시간 숙성된 인문학자의 안목을 온전히 드러낸다. 릴케, 로댕, 윌리엄 모리스와 같은 예술가나 강우방, 하마다세이료, 부르크하르트와 같은 미술사학자, 그리고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까지, 이들이 펼치는 아름다움에 관한 생각의 편편들이 엄격한 탐미주의자인 엮은이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이 책의 공동저자이기도 한 이들의 면모에서 알 수 있듯이, 시인, 조각가, 건축가, 미술사학자들이 논하는 대상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들의 글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엮은이에 의해 이 책에 실린 열세 편의 글은 그동안 단행본으로는 선보이지 않은 것이고, 번역 글 또한 엮은이의 우리말 초역(初譯)으로, 해당 연구자들에게 신선한 자료가 될 것이다.

열세 가지 ‘아름다움’

“포도 덩굴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힘차게 뻗어 나갔으며, 한없이 뻗어 나가려는 것처럼 보이는 여린 작은 덩굴들도 바람에 나부끼듯 율동감이 약여(躍如)했다.” – 강우방

한국의 대표적인 미술사학자 강우방은 ‘백자철화 포도무늬 큰항아리’를 통해 한국미술의 아름다움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하나의 긴 덩굴이 끝날 무렵, 다른 덩굴 하나가 항아리 목 밑에서 시작하여 사선(斜線)으로 평행을 이루며 서로 어울리고 있는 포도 덩굴들은, 농담의 대비가 절묘하기도 하거니와 마치 영원한 생명력의 상징 같은 생동감을 준다. 여기에 화공이 그려낸 여백의 미와 맞물린 포도 그림은 우주의 드넓은 공간으로 확대된다.
일본의 고고학자 하마다세이료(濱田靑陵)는 마치 그림을 그리듯 ‘백제관음상’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글로 옮겨 적는다. 특히 엄지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으로 가볍게 물병의 목을 잡고 있는 백제관음상의 왼손을 보면, 떨어뜨리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우면서도 자칫 요염해 보이기까지 하다. 기원전 470년경으로 추정되는 그리스의 청동상인 델포이의 마부보다 훨씬 섬세한 자태를 지니고 있는 백제관음상을 보고, “매혹적인 손의 움직임은 숨을 죽인 완전한 정적 속에 있고, 모든 중력으로부터 해방된 신체는 마치 타오르는 불꽃이 갑자기 정지된 것과도 같은…”이라고 찬사한 카를 비트(Karl With)의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집은 살기 위한 기계이다”라고 선언한 근대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는 깃털 장식같이 작은 뉴욕의 마천루를 보고 경악한다. 그에게 마천루는 효율적인 내부를 지닌 일종의 도구이다. 밑에서부터 꼭대기까지 정확히 수직으로 시원스럽게 높이 뻗은 마천루는 대담한 강철의 골격을 자랑한다. 하지만 뉴욕의 마천루는 너무 작고, 너무 많을 뿐이다. 그는 자유로운 대지의 넓이와 건물 높이의 함수를 고려한, 유용한 도구로서의 마천루를 강조하는 한편, 뉴욕의 마천루를 통해 현대건축과 더불어 미국문명의 빛과 그림자를 논한다.

이 밖에 「풍경에 관하여」는 시인 릴케의 자연에 관한 예술론으로, 인간에 가려 간과되었던 풍경을 예술로서 주목한 릴케의 관점을 엿볼 수 있다. 강우방의 또 다른 글 「시서화 삼절의 세계, 김홍도의 『단원절세보』는 시서화(詩書畵) 삼절(三絶)을 뛰어나게 갖춘 이로 손꼽은 김홍도(金弘道)의 『단원절세보』를 서정적 색채가 고즈넉하면서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으며, 우리 목가구의 아름다움을 논한 현승은의 「조선의 옛 사방탁자」는 완벽한 균형감각과 비례미에 대한 예찬이다. 포비슴과 큐비즘의 선구자인 마티스와 피카소의 작품 분석을 통해 두 거장의 화풍 구조를 밝힌 이브 알랭 부아(Yve-Alain Bois)의 「마티스와 피카소, 장식적 풍요와 문법 없는 언어」, 다리파(Die Brucke)로 대표되는 독일 표현주의의 팽창기를 살펴본 에버하르트 로터스(Eberhard Roters)의 「독일 표현주의」는 미술사가다운 전문성이 두드러지는 글이다. 엮은이 이광주의 「클림트, 세기말 빈의 미학」은 에로스와 죽음이 교차된 세기말적 정념을 표현한 클림트의 작품을 따라가며 데카당스 현상이 휩쓴 빈의 풍경을 그려낸다. 초현실적 이야기가 청아하게 표현된 부르크하르트의 「프라 안젤리코와 〈수태고지〉」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의 진수를 보여 주기에 충분하다. 「샤르트르 대성당.그날그날에 써 둔 각서」는 조각가 로댕이 고딕성당과 성당을 건립한 프랑스와 중세에 바친 헌사이다. 근대 디자인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월리엄 모리스의 미완성 에세이 「이상적인 책 – 중세의 채식사본(彩飾寫本)」은 기술사회가 제작한 미장본(美裝本)과 엄격히 구별되는 채식사본을 ‘이상적인 책’으로 여기며, 책으로 펼치는 유토피아를 꿈꾼 책의 장인(匠人)을 만나 볼 수 있게 한다. 김지연의 「상하이, 중국 현대미술의 거대한 실험실」은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예술의 산업화와 국제화가 활발한 상하이 현대미술의 과거와 현재를 되돌아보는 한편, 중국 현대미술의 미래를 시사한다.

이광주 (저자)

유럽 지성사를 전공했으며, 현재 인제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 『지식인과 권력』(1992), 『대학사』(1997)가 있으며, 그 밖에 『정념으로서의 역사』(1987),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 권』(2001), 『동과 서의 차 이야기』(2002), 『아름다운 책 이야기』(2007), 『교양의 탄생』(2009) 등이 있다.

미술산책 노트 / 이광주
풍경에 관하여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백자철화 포도무늬 큰항아리 / 강우방
시서화 삼절의 세계, 김홍도의 『단원절세보』 / 강우방
조선의 옛 사방탁자 / 현승은
백제관음상 / 하마다세이료
마티스와 피카소, 장식적 풍요와 문법 없는 언어 / 이브 알랭 부아
독일 표현주의 / 에버하르트 로터스
클림트, 세기말 빈의 미학 / 이광주
프라 안젤리코와 〈수태고지〉 /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샤르트르 대성당 – 그날그날에 써 둔 각서 / 오귀스트 로댕
이상적인 책 – 중세의 채식사본(彩飾寫本) / 윌리엄 모리스
뉴욕의 마천루는 너무나 작다 / 르 코르뷔지에
상하이, 중국 현대미술의 거대한 실험실 / 김지연

책을 갈무리하면서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