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규, 한국 유리화의 선구자

  • 조후종이 쓴 남편 이남규의 삶
  • 조후종
  • A5 변형 양장 2010년 12월 1일 288면 20,000원 컬러 흑백 53컷 978-89-301-0379-4
  • 예술일반, 미술이론 및 에세이

1974년 우리나라 최초의 성당인 약현성당에 처음으로 유리화를 선보인 이래 약 쉰 곳의 성전에 유리화를 남긴 화가 이남규(李南奎, 1931-1993). 그의 아내 조후종(趙厚鐘, 1935- ) 교수가 솔직하게 써 내려간 이 책에는 이남규의 인간적 면모와 빛나는 예술혼이 오롯이 드러나 있다. 이남규의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오스트리아 슐리어바흐에서의 유학 생활, 신앙을 담아 일구어낸 작품 활동과 그에 얽힌 일화들, 함께 교유했던 동료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선종 이후에 이르기까지, 이남규의 삶과 예술에 관한 아름다운 기록이 담겨 있다.

약현성당에 탄생한 우리나라 최초의 유리화
1974년 12월 25일, 우리나라 최초의 고딕식 성당인 약현성당(藥峴聖堂, 지금의 중림동성당)에 처음으로 유리화(스테인드글라스)가 선보였다. 화가 이남규(李南奎, 1931-1993)의 다섯 달에 걸친 작업 끝에 완성된 세 폭의 유리화에 대해, 한 언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전했다.

“25일 첫 새벽 성탄 ‘자시미사’에 참례한 일천여 신도들은 제대 앞에 새로 마련된 세 폭의 유리화에서 또 한 번의 감동을 받았다. 길이 오 미터, 폭 일 미터 이십 센티미터의 유리화는 이남규(43)가 오 개월간의 각고 끝에 완성한 작품으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제작된 것이다. 설계에 의해 두께 삼 센티미터의 색유리를 구워내고 그 안쪽을 보석 세공하듯 커팅해서 빛의 난반사를 활용한 이 세 폭의 유리그림은, 어두운 곳에서 더욱 광채를 내는 것이 특징이다. 중앙의 그림은 천주의 고난과 승리를 상징하는 십자가와 종려나무 가지 등이 모자이크되어 있다.”-『한국일보』. 1974. 12. 26.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유리화가 한낱 장식으로만 여겨져 예술로 취급받지 못하던 때에, 예술로서의 유리화를 국내에 처음으로 선보인 이남규. 그는 오스트리아 슐리어바흐 수도원의 유리화 공방에서 유리화 기법을 익히고 돌아와 유럽의 정통 유리화를 우리나라에 소개한, 한국 유리화의 선구자이다. 유리화가 우리나라 교회뿐 아니라 미술계에서도 꾸준히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그의 도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남규가 세상을 떠난 지 십칠 년 만에 그의 삶을 온전히 기록한 『이남규, 한국 유리화의 선구자』가 그의 아내 조후종 교수에 의해 씌어졌다. 이 책은 예술가가 직접 쓴 자서전도, 전문적인 미술평론가가 쓴 평전도 아니다. 조후종이 남편 이남규와 함께했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쓴 회상록으로, 가장 가까이서 예술가를 관찰한 아내의 솔직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또 그가 왕성히 활동하던 때에 함께 교유하며 예술과 종교를 논하던 인물들의 모습이 상세히 드러난 미시사적(微視史的) 기록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남규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가장 기초적인 일차자료가 된다. 이남규 연구자, 유리화를 공부하는 사람, 또 교회미술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유리화처럼 빛나는 이남규의 예술혼
이 책에는 이남규의 삶이 오롯이 드러나 있다. 이야기는 조후종이 이남규를 만나 결혼하게 된 때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거슬러 올라가 이남규의 어린 시절, 미술대학 시절, 슐리어바흐에서의 유학시절, 그리고 그가 작가로서 활동하다가 유명을 달리한 일, 또 그가 죽은 뒤의 일까지 서술하고 있다.
문학에 심취했던 그는 대전사범학교에서 이동훈 선생을 만나 미술에 눈을 뜨면서 ‘그림의 씨앗’을 가슴속에 품게 된다. 결국 안정된 중등학교 교사의 길을 버리고 미술로 들어선 이남규는, 서울대 회화과에서 장발, 장욱진 선생에게 사사하면서 종교예술과 한국적인 단순 간결한 화법에 깊이 매료된다. 그리고 하인두, 이민희, 최종태, 조영동, 이지휘, 이종수 등과 함께 예술적 공감대를 형성했다. 치열하게 실존에 대해 고민하는 그의 내면은 대학 시절 친구 이민희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에 잘 드러나 있다.

“예술을 위한 예술은 이미 낡은 표어라 생각한다. 그림을 그린다는 목표가 자기의 본연의 모습을 찾는 참인간의 수도라 본다. 절간의 묵묵한 수도사와 같이 언제나 그림은 그 여정이며, 목적은 마치 그림이 말하고 있듯이 달관한 작가의 수련에 있다고 생각한다.”-1995. 2. 18.

이남규의 예술은 그의 신앙과 맞닿아 있다. 1974년 중림동성당에 이어 서울 혜화동성당, 이스라엘 나사렛 성모영보성당, 서울 정동제일교회, 서울 시흥동성당, 서울 역촌동성당, 여주성당, 서울 잠두봉 순교성지, 서울 응암동성당 등 전국에 걸쳐 약 쉰 곳의 성전에 유리화를 제작했고, 서울 명동대성당의 유리화를 오 년에 걸쳐 복원했다. 자신의 건강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작업에 몰두하는 그의 모습은 비장하기까지 하다. 명동성당 작업 당시 그는 신부전증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다. 더구나 강의하는 며칠을 제외하고 밤낮으로 작업에만 매달려야 했기에 건강은 더 나빠졌다. 그는 마치 자신을 봉헌하듯 헌신적으로 작품을 만들며, 내내 기도로 버티었다고 한다. 이남규가 남긴 한 기도문에는 그의 신실한 신앙과 뜨거운 열정이 담겨 있다.

이 보잘것없는 내가 당신을 넘보는 것을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넘보는 일을 조금만 허락하십시오.
더 이상 내가 한눈을 팔지 않도록 하시고,
이 작은 몸짓으로 당신만을 찬미하게 하십시오.
오직 그것만이 나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무한한 당신의 시공에서 지극히 작은 부분의
달콤한 향기를 맛볼 수 있게 하시어
이 오죽잖은 손짓이 당신의 찬미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제가 죽더라도 내치지 마시고 어여삐 보시어
저 맨 아랫자리에서라도 당신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이 책에는 이남규의 화업(畵業)에 얽힌 여러 일화들이 소개되어 있다. 명동성당의 복원작업을 할 때, 이남규는 새로 제작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힘이 드는 작업인데도 역사적 의미를 강조해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여주성당의 유리화를 작업할 때에는 유리를 적게 넣었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고, 역촌동성당의 유리화를 작업할 때는 구조적 문제를 뛰어넘어 더욱 장중한 느낌의 〈십자가의 길〉을 완성했다. 특히 신부전증으로 기진맥진한 가운데도 작업을 이어 가는 그의 열정적인 모습에서 빛나는 예술혼을 엿볼 수 있다. 그는 화업을 “아침에 농부가 밭으로 나가 밭을 일구는 일과 다름이 없다”고 여기며, 육체적으로 가장 고통스러웠던 때에도 즐거이 그림을 계속했다. 아내 조후종은, 쉼 없이 작업하던 이남규가 회갑 기념전을 준비하다가 쓰러져 결국 병석에서 세상을 떠나는 순간을, 생생하게 써 내려가고 있다. 마치 그의 유리화처럼, 이 책은 그의 삶과 예술에 관한 아름다운 기록이다.
이남규와 함께 예술의 길을 걸었던 조각가 최종태는, 이남규의 작품세계를 “한국적이며 동양적인, 문기(文氣) 짙은 따뜻한 추상표현주의”라고 하며, “유려하고 리드미컬하고 생동감 넘치는 독특한 양식을 확고하게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이 책의 표지는 이남규가 좋아했다는 쪽빛으로 꾸며져 있다. 단단히 책을 감싸는 푸른빛 표지 안에 아내가 전하는 진솔한 이야기가 정감있게 그려지고 있다. 엄선된 이남규의 유화·유리화·밑그림 오십삼 점, 그리고 ‘사진과 함께 보는 연보’가 실려 있다.

조후종 (저자)

조후종(趙厚鐘, 1935- )은 전북 김제 출생으로, 명지대학교의 전신인 서울문리사범대학 가정학과를 졸업하고 명지대 이과대학에서 이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명지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를 역임, 사십사 년간 교직생활을 했다. 문교부 제1종 도서 연구원으로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집필했으며, 한국조리과학회, 한국유화학회, 한국식문화학회의 상임이사, ‘한국의 맛 연구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남편 이남규 사후에 그의 유리화 작품을 모아 『이남규 유리화』(1996)를 펴냈으며, 저서로 『식품이 약이 되는 증언들』(1998), 『우리 음식 이야기』(2001), 『대한민국 자녀 요리책』(2002), 『세시풍속과 우리 음식』(2002), 『통과의례와 우리 음식』(2002)이 있고, 공저로 『한국음식대관』(전6권 중 1,3,5권, 1997-2001), 『음식법』(2008) 등이 있다.

저자/역자의 다른 책들

책을 펴내며 5
Preface 11

혼인 19
웃음이 떠나지 않았던 주변 23
그림의 씨앗 26
이동훈 선생 28
문학에서 그림으로 30
서울대 회화과 시절 33
치열한 실존의 추구 38
서정추상으로 51
그래서 나는 지금도 이렇게 기도한다 53
오기선 신부와 대흥동성당 57
나는 그림 그리는 일 말고는 할 일이 없다
슐리어바흐 유리화 공방으로 65
나의 아녜스 69
그리스도의 얼굴 81
당신 나라의 하늘빛을 닮았군요 83
서두른 귀국 87
전주장全州欌과 국악國樂 90
짙은 남빛의 깊은 울림-중림동성당의 최초의 유리화 95
공주사대 미술교육과 교수로 99
유리화 제작의 전성기 104
장중함과 고결함의 형상화-혜화동성당 유리화 106
평화의 모후여 하례하나이다 110
빛이 있으라-시흥동성당 유리화 113
기도와 땀으로 이뤄낸 명동성당 유리화 복원작업 115
달 드 베르 기법 122
십자가의 길-역촌동성당 유리화 126
한국적인 성스러움-여주성당 유리화 129
한복을 입은 성모상 132
누님의 신장을 받아 어쩌겠단 말입니까 157
그리스도의 심장-가좌동성당 유리화 163
손수 만든 전시 도록 166
전시회를 사흘 앞두고 169
별리 176
천상의 빛-응암동성당의 마지막 유리화 179
이남규의 베타니아 예수수도회 181
고향 나들이 197
가톨릭미술가회 199
이사벨 루오 203
슐리어바흐의 아름다운 우정 207
이남규, 한국의 서정추상 212
이남규의 예술세계 215
루가 유리화 공방 221
그가 끝내 그리려고 했던 것 226
‘이남규 기념관’을 꿈꾸며 230

사진과 함께 보는 이남규의 생애 259
참고문헌 282
찾아보기 2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