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태 파스텔 그림

최종태 작품전집 두번째 권으로, 삼십 년간 그려 온 파스텔 그림 중에서 정물·풍경·여인상 등 작가 특유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색채감과 고도로 정제된 형태미를 느낄 수 있는 129점의 엄선된 작품을 실었다. 1970년대 중반 우연한 기회에 파스텔 그림을 시작해 1982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파스텔 그림 개인전을 갖기도 한 최종태는, 순수회화에서 잘 다루지 않던 파스텔이라는 재료의 따뜻함과 부드러움, 발색효과 등에 매료되어 파스텔 그림의 예술적 가치를 새롭게 드러내 보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하나의 확고한 회화분야로 자리매김시켰다.

파스텔 그림과의 만남

“내가 파스텔 그림을 그리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얽힌 사정이 있었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그림숙제라는 것이 가끔 있었습니다. 그걸 내가 그려 줄 수는 없는 노릇이고 하여 응원하느라 옆에서 같이 그리게 된 것입니다. 당시 그 재료가 파스텔이었습니다. 1970년대 중반쯤이었을 것입니다. 백묵에 물감을 들였다 할 정도의 아주 시시한 파스텔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횟수를 거듭하다 보니 이제는 내가 파스텔 그림 재미에 빠져들게 된 것입니다.” 최종태, 「예술이 의미를 배제할 때」

파스텔 그림이 본격적인 회화의 한 장르로 등장하게 된 것은 17세기 후반으로 알려져 있으며, 18세기 로코코 시대에 그 화려한 채색효과와 함께 프랑스와 영국에서 특히 초상화가들에 의해 각광을 받았다. 그리고 19세기에 들라크루아, 마네 등을 거쳐 드가와 오딜롱 르동에 이르러서 파스텔은 당당한 ‘회화’의 한 장르로 자리잡게 된다. 파스텔이 다루기 용이하다는 점에서 널리 애용되는 재료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용이하다는 점 때문에 소위 ‘전문적’인 화가들이 멀리하고 경시해 온 것 또한 사실이다. 1970년대 중반 우연한 기회에 파스텔 그림을 시작해 1982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파스텔 그림 개인전을 갖기도 한 최종태는, 이렇듯 순수회화에서는 잘 다루지 않던 파스텔이라는 재료의 따뜻함, 부드러움, 발색효과 등에 매료되어 파스텔 그림의 예술적 가치를 새롭게 드러내 보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하나의 확고한 회화분야로 자리매김시켰다. 1985년 파리에서 열린 ‘FIAC 85’에서 최종태의 파스텔 그림이 선보였는데, 국제적 화상들의 작품 전시장에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참가한 가나화랑이, 역시 유일한 한국작가로서 최종태의 조각과 파스텔 작품을 들고 나간 것이다. 여기서 그의 파스텔 작품이 조각작품 못지않게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이후 최종태는 국내외에서 여러 차례 자신의 파스텔 그림 전시를 가진 바 있다.

따뜻한, 은밀한, 그리고 영원한…

“소녀상이나 풀과 나무나 하늘과 구름이란 것은 모양만 다를 뿐이지 실은 한가지로 통하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명이란 것, 새 생명이란 것 말입니다. 나무는 항상 새 것입니다. 산은 항상 새 것입니다. 하늘과 바다 그것은 나이가 없습니다. 마냥 새 것입니다. 내가 본성적으로 새 것을 그리워하는 무언가가 가슴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신선한 것, 맑은 것, 그런 데로의 어떤 희원이 있는 것이 아닐지 싶습니다.” 최종태, 「예술이 의미를 배제할 때」, p.12.

최종태가 그리는 파스텔 그림의 소재들은, 조각이나 소묘와 마찬가지로 그리 다양하지 않다. 정물, 풍경, 여인상이 전부다. ‘풍경’에서는 최종태 특유의 단순화한 화면 구성 속에 파스텔만이 갖는 따뜻함과 부드러움이 스며 있고, 파스텔 특유의 발색의 선명도와 밀도가 잘 살아 있다. ‘여인상’에서는 이상적인 형태에 대한 작가의 끊임없는 탐구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최종태가 다루는 인물상은 그의 조각이나 다른 그림들에서처럼 동일한 근본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 여인상들이 어떤 특정 인물이 아니라 모두 정형화한 하나의 ‘전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 그것인데, 이에 대해 미술평론가 이일은 “그 전형은 결코 공허한, 생명이 없는 탈과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따뜻한 체온과 은밀한 감정의 파동을 그 속에 지니고 있는 전형이며, 굳이 말하자면 영원한 모습으로서의 여인상이다”라고 말한다.

우리 시대 마지막 로맨티스트, 최종태

“나의 생각으로는 그는 근본적으로 로맨티스트이다. 로맨티시즘이 설 땅이 이미 없어진 지 오래인 오늘에 최종태는 그의 ‘순결’을 아직도 아집스럽게 지켜 오고 있는 우리나라의 이 시대의 마지막 로맨티스트일지도 모르며, 이를테면 태고적의 향수를 잃지 않고 있는 로맨티스트이다. 다만 그 정열이 내면으로 침전되면서 또 그의 감성에 여과되면서 보다 알찬 결실을 위해 안으로 영글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실, 그것이 곧 그의 조각, 그의 파스텔화이다.” 이일, 「형태에 대한 고도로 정제된 감각」, p.200.

최종태의 파스텔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가 그의 예술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지향해 온 ‘근원적인 것’ ‘영원한 것’ ‘생명의 형태’ ‘정제된 형태’ 등을 금세 느낄 수 있다. 다시 말해 그의 그림에는 어떤 복잡한 개념이나 상징 등이 들어 있지 않다. 누가 보아도 공감할 수 있는 순수함이 따뜻함과 부드러움 속에 스며들어 있다. 물질주의와 상업주의가 만연해 있는 이 시대에 그에게는 아직도 조각에 대한, 그림에 대한, 예술에 대한 때묻지 않은 열정이 살아 숨쉬고 있다.

최종태 (저자)

최종태(崔鍾泰, 1932- )는 대전 출생으로, 서울대 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공주교육대, 이화여대 교수를 거쳐, 1970년부터 근 삼십 년간 서울대 미대 교수를 역임했다. 조각을 주된 작업으로 해 오는 한편, 소묘, 파스텔 그림, 매직마커 그림, 목판화 등 여러 장르의 작품을 꾸준히 해 왔고, 국내외에서 수십 차례의 전시를 가진 바 있다.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김종영기념사업회 회장, 김종영미술관 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예술가와 역사의식』(1986), 『형태를 찾아서』(1990),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만들고 싶다』(1992), 『나의 미술, 아름다움을 향한 사색』(1998), 『이순의 사색』(2001), 『고향 가는 길』(2001), 『한 예술가의 회상』(2009) 등이 있고, 작품집으로 『최종태』(전2권, 1988), 『최종태』(1992), 『최종태 교회조각』(1998), 『최종태: 소묘―1970년대』(2005), 『최종태: 파스텔 그림』(2006), 『먹빛의 자코메티』(2007), 『최종태: 조각 1991-2007』(2007), 『최종태: 얼굴그림 2009-2010』(2010) 등이 있다.

최종태 (글쓴이)

최종태(崔鍾泰, 1932- )는 대전 출생으로, 서울대 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공주교육대, 이화여대 교수를 거쳐, 1970년부터 근 삼십 년간 서울대 미대 교수를 역임했다. 조각을 주된 작업으로 해 오는 한편, 소묘, 파스텔 그림, 매직마커 그림, 목판화 등 여러 장르의 작품을 꾸준히 해 왔고, 국내외에서 수십 차례의 전시를 가진 바 있다.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김종영기념사업회 회장, 김종영미술관 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예술가와 역사의식』(1986), 『형태를 찾아서』(1990),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만들고 싶다』(1992), 『나의 미술, 아름다움을 향한 사색』(1998), 『이순의 사색』(2001), 『고향 가는 길』(2001), 『한 예술가의 회상』(2009) 등이 있고, 작품집으로 『최종태』(전2권, 1988), 『최종태』(1992), 『최종태 교회조각』(1998), 『최종태: 소묘―1970년대』(2005), 『최종태: 파스텔 그림』(2006), 『먹빛의 자코메티』(2007), 『최종태: 조각 1991-2007』(2007), 『최종태: 얼굴그림 2009-2010』(2010) 등이 있다.

이일 (글쓴이)

예술이 의미를 배제할 때│최종태
HIghly Refined Sense Toward “Destination of Shape” – Lee Yil
作品
형태에 대한 고도로 정제된 감각- 이일
최종태 연보
작품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