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페이

사페이(沙飛, 1912-1950)는 신해혁명 후 중국이 전통사회에서 신문명으로 발돋움하던 시기에 태어나, 중국공산당 바루쥔(八路軍)의 사진선전원으로 일하며 중일전쟁의 참혹한 현장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사진가이다. 5.4신문화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좌익문예사회운동에 깊이 심취한 청년 사페이는 사진기를 무기삼아 혁명을 실천하기 위해 전쟁터로 향했다. 그는 여기서 항전의 선전 사진촬영을 지휘했던 지도자로서, 그리고 전장의 사진기자로서 자신만의 시각을 확립했고, 이로써 그의 사진은 역사적 기록과 예술적 가치를 동시에 획득하는 혁명시대 예술의 한 표본으로 평가받고 있다.

1930-40년대 중국의 두 모습―’열화당 사진문고’ 중국 사진가편

2008년말, 타이완 사진의 일세대와 이세대를 각각 대표하는 장차이(張才)와 장자오탕(張照堂)을 내며 꼭 서른 권을 채웠던 ‘열화당 사진문고’는, 그로부터 3년 후 중국 사진의 일세대에 속하는 사페이(沙飛)와 장쉐번(莊學本)을 선보인다. 이번에 소개하는 사진가는 모두 중국 근대사의 격변기인 1930-40년대에 전성기를 보냈고, 시대의 요구에 온몸을 던져 응답한 이들이다. 중국대륙 안에서 지리적으로는 서로 정반대의 길을 떠났지만, 봉건주의의 병폐와 제국주의 열강에 신음하는 나라를 위해 공헌하려는 목적은 동일했다. 이들 모두 새로운 문물과 사상이 번성하던 상하이라는 근대적 공간에 있었고, 이곳에서 사페이는 중일전쟁의 항일근거지였던 동북지역으로, 좡쉐번은 변방의 소수민족들을 탐구하기 위해 서북지역으로 긴 여정을 떠나게 된다. 이 두 사진가가 남긴 이미지들을 통해 우리는 근대 중국에 사진 매체가 정착, 활용되는 방식을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담고 있는 생생한 역사의 현장을 만나게 된다.
타이완 사진가편과 마찬가지로, 중국 사진가편 또한 이미 외국에서 출간된 책을 계약하여 번역출판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 시리즈의 성격에 맞춰 작가 섭외부터 계약, 원고청탁, 번역까지 모두를 책임 진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출간을 위해 편집자가 자료수집, 현지 관계자 미팅의 과정을 통해 작가와 필자를 섭외했고, 여러 달 동안 이메일로 의견교환을 하여 작품이 선정되었으며, 수차례의 수정, 보완을 거쳐 원고를 완성시킨 후 번역작업이 진행되었다. 이는 국내 저자를 대상으로 한 기획출판보다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는 지난한 일로, 이 작은 두 권의 문고본을 기획에 착수한 지 3년 만에 출간했다는 점에서도 작업의 어려움을 읽을 수 있다. 이같이 실험적으로 진행된 새로운 출판방식을 통해, 서구의 선진국들처럼 우리도 독자적인 기획에 의한 출판의 저자층을 세계로 확장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바루쥔(八路軍) 항일전쟁의 기록자―사페이

중국은 1840년대 사진이 유입된 후 먼저 사진관을 중심으로 민중 속에 정착되었고, 외세의 침입, 신해혁명(1911), 5.4신문화운동(1919)과 더불어 비로소 사회와의 밀접한 연관 속에서 이용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중국 전역에 사진단체들이 결성되고, 사진전 개최, 사진잡지 창간, 사진집 및 사진이론서 발행 등, 관련 활동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났다. 한때 ‘미술사진’ ‘회화주의 사진’을 표방하는 살롱사진들까지 등장했으나, 만주사변(1931), 중일전쟁(1937) 발발로 인해 사진은 보다 시대에 맞는 새로운 역할을 수행해내야만 했다.
봉건사회가 무너지던 중화민국 탄생 원년에 태어나 정치적 격변기에 유년기를 보낸 사페이(1912-1950, 본명 쓰투촨)는 자연히 신사상을 습득한 급진 청년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었고, 시대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예술의 역할을 사진을 통해 실천한다. 1926년 혁명정신에 고무되어 열네 살의 나이에 북벌을 위한 국민혁명군 제1군사무선전신국 전신원이 된 그는, 1932년부터 근무하게 된 산터우(汕頭) 무선전신국에서 아내를 만나게 되고, 신혼여행 길에 카메라 한 대를 마련하면서 운명처럼 사진의 세계로 빠져들어 버린다. 처음에는 일을 마치고 여가시간에 사진을 찍기 시작했지만, 결국 사진을 무기 삼아 혁명의 대열에 참가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가족을 버린 채 상하이로 떠난다. 여기서 그가 존경해 마지않는 위대한 사상가 루쉰(魯迅)을 만나 그가 숨지기 불과 11일 전 마지막 모습을 카메라에 담게 되는데(pp. 17, 19), 이 사진은 후세에게 소중한 역사적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1936년 12월 광저우(廣州)에서 연 첫번째 개인전을 계기로 사페이는 더욱더 좌익문예사상과 혁명정신에 심취하고, 중일전쟁이 발발되자 1937년 12월 중국공산당이 영도하는 바루쥔의 사진 선전원으로 참가하기에 이른다. 그는 이곳 진차지군구〔晋察冀軍區, 중국공산당의 혁명 근거지로, 산시성, 차하얼성(察哈爾省), 허베이성(河北省)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신문사진과를 설립하고 책임을 맡아 1942년 『진차지화바오(晋察冀畵報)』라는 잡지를 창간하게 되는데, 이는 중국 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해방구(解放區) 사진’ 잡지라는 독특한 형식의 탄생이었다.

혁명시대 사진예술의 표본

일차적으로는 중국공산당 바루쥔의 항일 활동을 선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었지만, 사페이의 사진은 일반 선전용 사진과는 분명 구별되는 지점이 있다. 즉 그의 사진에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과장되고 꾸며진 장면이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무엇보다 당시 공산국가들이 대부분 사용했던, 노동자 한 명이 전면에 부각되어 민중을 선동하는 듯한 과장된 구도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대신 항일 활동 근거지에서 생활하는 군과 민의 평범한 군상들이 대부분이다. 전투나 훈련 장면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긴 하지만, 참호에서 신문을 읽는 병사(p.39), 전투 후 낮잠을 자는 병사(p.57), 농구시합 중인 병사들(p.97), 일광욕하는 노먼 베순(Henry Norman Bethune) 의사(p.45) 등의 같은 낭만적인 장면들이나, 신발을 만드는 여공들(p.61), 의학 수업(p.89)이나 무선통신기술 훈련 수업(p.115), 진차지화바오사(晋察冀畵報社) 인쇄 기술자들의 작업 광경(p.103) 등 후방의 다양한 기록들에서는 이같은 그의 스타일이 더욱 잘 드러난다.
물론 사페이 역시 혁명적 성향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고, 이러한 점이 사진에 영향을 주었으나, 초기 작품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기본적으로 루쉰에게서 영향 받은 좌익목판화의 현대적 미감을 지니고 있었다. 후기에 이르러 혁명 이데올로기를 더 강하게 드러내게 되지만, 그는 대부분의 사진에서 혁명성과 예술성을 균형있게 공존시키고 있다. 현실을 기록하되 결코 과장하거나 왜곡하지 않으며, 여기에 세심한 풍경 처리나 화면 구성 등 예술적 완성도까지 갖추려 했던 그의 사진은, ‘혁명시대의 예술표본’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페이 (저자)

사페이(沙飛, 1912-1950)는 중국 광저우(廣州) 출생으로 본명은 쓰투촨(司徒傳)이다. 중국공산당 바루쥔(八路軍)의 사진선전원으로 일하며 중일전쟁의 현장을 기록한 그의 사진은, 혁명시대 예술의 한 표본으로 평가받고 있다. 작품집으로 『사페이』(2011) 등이 있다.

왕뤼 (작가론·사진설명)

왕뤼(王瑞, 1950- )는 사진비평가 겸 사진가로, 지린성(吉林省) 창춘교육대학교(長春敎育學院), 서던일리노이대학교, 로스앤젤레스 하버칼리지에서 미술교육과 사진사를 공부했다. 공저로 『사진예술론(撮影藝術論)』(2009)이 있고, 핑야오(平遙) 국제사진페스티벌에서 여러 사진전을 기획했다. 『사페이』의 작가론과 사진설명을 썼다.

한정선 (역자)

한정선(韓貞善, 1973- )은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에서 한중번역을 전공하고, 현재 타이완 밍촨대학(銘傳大學) 응용중문과 박사과정에 있다. 『장자오탕』 『장차이』 『사페이』 『좡쉐번』 등을 번역했다.

저자/역자의 다른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