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차이

장차이(張才, 1916-1994)는 제2차 세계대전 전후에 타이완과 상하이를 오가며 정치적 객관성을 유지한 채 시대의 눈이 된 사진가로, 불모지나 다름없던 타이완 사진계에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길을 연 인물 중 하나다. 그는 역사적 현장의 중심에서 생과 사가 교묘히 뒤섞인 현실을 밀도있게 담아냈으며, 민족적 정서가 묻어나는 인류학적 시선으로 한층 성숙된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1940-50년대라는 대격변의 시기에 살롱 사진을 멀리하고 사실주의에 입각해 타이완의 정치적 상황을 냉철하게 직시하면서도 인류학적 시선을 담지하고 있는 그의 사진세계는, 보는 이로 하여금 빛과 그림자의 양면성에 대해 사유하게 한다.

‘열화당 사진문고’ 서른번째 권 출간
2002년 12월 새롭게 선보이기 시작한 ‘열화당 사진문고’가 6년 만에 서른번째 권이 출간 되었다. 그 동안 국내 사진가는 물론, 미국과 유럽의 사진가들을 위시하여 일본, 우크라이나,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제3세계의 뛰어난 사진가들까지 소개함으로써 전 세계 사진예술의 작은 박물관이 되고자 했던 이 시리즈는, 타이완 사진의 일세대와 이세대로 대변되는 장차이(張才, 1916-1994)와 장자오탕(張照堂, 1943- )을 소개함으로써 30권에 이르렀다. 이후 출간을 계획하고 있는 중국, 인도 등의 아시아 사진가편 역시 타이완 사진가편 기획의도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들 나라의 사진가들은 같은 한자문화권 또는 불교문화권에 속해 있어서 유사한 역사적 배경과 감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지금까지 서구 사진가의 시선을 통해 단편적으로 소개된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 자신의 눈으로 이들을 찾아내고 소개해야 할 때이며, 이에 ‘열화당 사진문고’는 그 첫걸음으로 타이완 사진가편 2권을 선보인다.

한국출판의 저자층을 국외로 확장시킨 실험적 출판
타이완 작가편 2권은, 이미 외국에서 출간된 책을 계약하여 번역출판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 시리즈의 성격에 맞추어 작가 섭외부터 계약, 원고청탁, 번역까지 모두를 책임진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쉽게 말해, 타이완 저자의 책을 중국어판 없이 한국어판으로 출간한 것이다. 출간을 위해 편집자가 타이완에 몇 차례 방문하여 작가와 필자를 섭외했고, 여러 달 동안 이메일로 의견교환을 하여 작품이 선정되었으며, 여러 차례의 수정, 보완 과정을 거쳐 원고를 완성시킨 후 번역작업이 진행되었다. 이는 지금까지의 우리 출판 관행으로 비추어 볼 때 매우 드문 일일 뿐 아니라, 일반적인 기획출판의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는 지난한 일이었다. 이 작은 2권의 문고본을 기획에 착수한 지 1년 10개월 만에 출간했다는 점에서도 작업의 어려움을 읽을 수 있다. 이처럼 어려움을 무릅쓰고 실험적으로 진행한 새로운 출판방식을 통해, 서구의 선진 출판국들처럼 우리도 독자적인 기획에 의한 출판의 저자층을 세계로 확장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이 확인되었다. 지금까지 우리 출판은 양적으로만 성장해 왔고 번역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는데, 이번 출판으로 출판방식의 질적인 변화를 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타이완 초기 다큐멘터리 사진의 검객, 장차이(張才)
타이완은 한국과 매우 유사한 근대사를 지니고 있다. 즉 1895년부터 1945년까지 51년간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고, 해방 후 국공내전(國共內戰)에서 패한 국민당 정권이 타이완으로 퇴각하면서 장제스(蔣介石)의 독재정치와 반공사상이 극에 달했다. 이 격변의 역사는 가볍고 작은 휴대용 카메라 라이카 A의 출시(1925), 『라이프』지 창간(1936)과 매그넘 포토스(Magnum Photos) 창립(1947)에 따른 현장 보도사진 열풍 등 세계 사진계의 흐름과 궤를 같이하며,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에도 이같은 새로운 사진기술이 점차 흘러들어 오게 된다. 이때 ‘삼인의 사진 검객(攝影三劍客)’ 장차이(張才), 덩난광(鄧南光), 리밍다오(李鳴雕)로 대표되는 타이완의 일세대 사진가들은 귀중하고 방대한 사진자료를 후세에 남기게 되는데, 비슷한 역사적 굴곡 속에서 그들에 비해 사진의 기록적 가치를 풍부하게 지켜내지 못한 한국 초기사진가들에 대한 아쉬움을 가지게 될 만큼, 이들의 기록은 놀랍고도 소중하다. 이번에 소개하는 장차이(1916-1994)는 전쟁 전후인 1940-50년대 타이완과 상하이를 오가며 정치적 객관성을 유지한 채 시대의 눈이 된 사진가로, 불모지나 다름없던 타이완 사진계에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의 길을 연 인물 중 하나다.

상하이―장차이의 내적 갈등과 이차대전
장차이는 일본의 식민통치 아래서 타이완 신극운동(新劇運動)의 선구자이자 그의 정신적 스승이었던 형 장웨이셴(張維賢)의 도움으로 1934년 일본 무사시노사진학교(武藏野寫眞學校)에서 수학하면서 사진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귀국 후 사진관을 운영하려는 단순한 목적이었고, 한동안 사진에 대한 관심을 잃기도 했다. 하지만 1939년 처음 방문한 상하이는 이차세계대전의 종주국이었던 일본과 서구 열강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곳으로, 현대사의 질곡이 오롯이 각인된 잔혹한 얼굴 그 자체였다. 그리고 장차이에게 이 도시는, 일본의 이등국민이라는 심리적 압박감과 일본 제국주의에 짓밟힌 중국 전통의 핏줄이 흐르고 있는 땅이라는 모순과 충격을 일깨운 동시에, 사진에 대한 열정을 되살리고 사진가로서의 결정적인 행보를 가능케 했다. 이 내적 모순을 껴안은 장차이는, 서구인의 외부적 시각이 아닌 중화민국인으로서, 그리고 전쟁의 피해자이자 피압제자로서, 역사적 현장의 중심부에서 국가적 민족적 개인적 정체성을 되묻게 하는 그만의 상하이를 보여준다. 즉 이 도시는 온갖 복잡다단한 것들이 공존하고 대비되는 혼돈의 집결지이자, 그의 개인사적 모순이 반영된 지형도였다. 그리하여 개항도시인 상하이에서도 19세기 후반에 영국, 미국, 일본 등 여덟 나라가 중국 침략의 근거지로 삼았던 외국인 거주지인 조계지(租界地)의 다채로운 표정에 주목했다. 생과 사, 어둠과 빛, 혼란과 규율, 폭력과 고요, 번화(繁華)와 영락(零落), 옛것과 새것, 생활과 전쟁이 교묘히 뒤섞여 있는 곳, 이곳을 그는 가장 밀도 있게 사실적으로 카메라에 담아냈다.

타이완 원주민―인류학적 사진 탐사를 통해 넓고 깊어진 시선
1945년 종전으로 귀국한 장차이는 1947년에서 1950년 사이에 제2의 전성기를 맞는다. 그는 타이완대학 인류학자들과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타이완 원주민들에 관한 수천 장의 기록사진을 남기는데, 이는 1950년대 인류학, 민속학 등 제반 분야 연구에 중대한 데이터베이스가 된다. 타이완 주도의 동남쪽으로 상당히 멀리 떨어진 섬인, 다우족(達悟族) 원주민의 유토피아 란위(蘭嶼)가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된 것도 이 탐사와 기록을 통해서였다. 이제껏 카메라를 숨긴 채 늘 지나가는 자의 눈으로 대상의 원경이나 측면, 풍경만을 잡아냈던 것과는 달리, 그는 원주민 사진들에서 인물들의 당당한 정면 포즈와 민족적 정서가 물씬 묻어나는 인류학적 시선을 통해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의 성숙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사진평론가 젠융빈(簡永彬)은 이 사진들을 가리켜 ‘인간의 내면을 더욱 잘 반영하면서도 소박하며, 한층 더 진한 감동을 준다. 이 사진들에는 통제와 개방, 찰나와 과정의 시선이 공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외에도 타이베이에서 열리는 제의나 축제, 연희 등을 촬영해 타이완인으로서의 민족적 정체성에 입각한 전통문화 기록에도 힘썼다.

인간 서정을 담담하게 포착한 장차이의 사실주의
1947년 228사건의 발발과 백색테러, 195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매카시즘의 영향으로, 타이완에는 국민당 정부의 공포정치가 점점 거세지고 민간단체나 조직 결성이 매우 위험해졌다. 그러한 와중에도 장차이는 일본, 뉴욕 등 국제 전시에 참가하면서 더욱 본격적인 사진 활동을 시작한다. 또한 여러 문화예술계 사람들과 교류하기 시작하면서 타이완 사진계의 전통을 만들어 나가고자 모임을 도모하기도 한다. 당시 타이완 사진계는 ‘잉잔(影殿)’이라는 이름으로 뭉쳐 활동을 재개하게 되는데, 1955년 신쑤이잉잔(新穗影殿)을 설립해 대표가 된 장차이는 끊임없이 시대와 함께 호흡하고자 노력했다. 이처럼 1940-50년대라는 대격변의 시기에 살롱사진을 멀리하고 사실주의에 입각해 타이완의 정치적 상황을 냉철하게 직시하면서도 인류학적 시선을 담지하고 있는 그의 사진세계는, 보는 이로 하여금 빛과 그림자의 양면성에 대해 사유하게 한다.

장차이 (저자)

장차이(張才, 1916-1994 )는 초기 타이완 사진계의 ‘삼인의 사진 검객( 攝影三劍客 )’ 중 한 사람으로, 1940-50년대의 상하이, 타이완의 원주민과 민간신앙을 소재로 삶과 죽음, 옛것과 새것, 성함과 쇠함이 교차하는 역사를, 그리고 그 속의 인간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기록했다. 작품집으로 『장차이』(2008) 등이 있다.

젠융빈 (작가론·사진설명)

젠융빈(簡永彬, 1958- )은 타이완의 사진평론가이자 문화기획자로, 1994년부터 샤먼(夏門) 사진아트갤러리를 창립해 타이완 사진사 연구와 관련한 아카이브 구축 및 사진의 제반 분야 연구에 힘쓰고 있다. 『장차이』의 작가론과 사진설명을 썼다.

한정선 (역자)

한정선(韓貞善, 1973- )은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에서 한중번역을 전공하고, 현재 타이완 밍촨대학(銘傳大學) 응용중문과 박사과정에 있다. 『장자오탕』 『장차이』 『사페이』 『좡쉐번』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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