좡쉐번

  • Zhuang Xueben
  • 좡쉐번 구정 한정선
  • 136×156mm 반양장 2011년 9월 10일 144면 12,000원 사진 63컷 978-89-301-0370-1 978-89-301-0100-4
  • 사진·영상, 열화당 사진문고

좡쉐번(庄學本, 1909-1984)은 1930년대 중국 서부 소수민족을 기록한 사진가로, 모더니즘의 싹이 트던 당시 사진계의 흐름과 정반대의 길을 감으로써 중국 현대사진사에 남을 한 획을 그었다. 그는 사진가이면서 인류학자였으며, 실제로 그의 사진은 중국 민족지 연구에 큰 시각적 자료를 제공했다. 무엇보다 그의 ‘인류학적’ 사진에는 다른 서구 사진가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대상을 향한 공감과 진정성이 담겨 있다. 사진 속에 아름답게 남겨진 사람들의 활력있고 순수한 생활상은, 땅에 대한 경외심과 인간 존재의 근원적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1930-40년대 중국의 두 모습―’열화당 사진문고’ 중국 사진가편

2008년말, 타이완 사진의 일세대와 이세대를 각각 대표하는 장차이(張才)와 장자오탕(張照堂)을 내며 꼭 서른 권을 채웠던 ‘열화당 사진문고’는, 그로부터 3년 후 중국 사진의 일세대에 속하는 사페이(沙飛)와 장쉐번(莊學本)을 선보인다. 이번에 소개하는 사진가는 모두 중국 근대사의 격변기인 1930-40년대에 전성기를 보냈고, 시대의 요구에 온몸을 던져 응답한 이들이다. 중국대륙 안에서 지리적으로는 서로 정반대의 길을 떠났지만, 봉건주의의 병폐와 제국주의 열강에 신음하는 나라를 위해 공헌하려는 목적은 동일했다. 이들 모두 새로운 문물과 사상이 번성하던 상하이라는 근대적 공간에 있었고, 이곳에서 사페이는 중일전쟁의 항일근거지였던 동북지역으로, 좡쉐번은 변방의 소수민족들을 탐구하기 위해 서북지역으로 긴 여정을 떠나게 된다. 이 두 사진가가 남긴 이미지들을 통해 우리는 근대 중국에 사진 매체가 정착, 활용되는 방식을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담고 있는 생생한 역사의 현장을 만나게 된다.
타이완 사진가편과 마찬가지로, 중국 사진가편 또한 이미 외국에서 출간된 책을 계약하여 번역출판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 시리즈의 성격에 맞춰 작가 섭외부터 계약, 원고청탁, 번역까지 모두를 책임 진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출간을 위해 편집자가 자료수집, 현지 관계자 미팅의 과정을 통해 작가와 필자를 섭외했고, 여러 달 동안 이메일로 의견교환을 하여 작품이 선정되었으며, 수차례의 수정, 보완을 거쳐 원고를 완성시킨 후 번역작업이 진행되었다. 이는 국내 저자를 대상으로 한 기획출판보다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는 지난한 일로, 이 작은 두 권의 문고본을 기획에 착수한 지 3년 만에 출간했다는 점에서도 작업의 어려움을 읽을 수 있다. 이같이 실험적으로 진행된 새로운 출판방식을 통해, 서구의 선진국들처럼 우리도 독자적인 기획에 의한 출판의 저자층을 세계로 확장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중국민족학사의 귀중한 유산, 좡쉐번

1930년대의 중국 사진은 랑징산(郞靜山)을 필두로 하는 문인의 취미생활 성격의 회화주의 사진과, 모더니즘을 표방한 사진이 공존했다. 다른 한편에서 사진은 정치세력의 무분별한 보도에 남용되면서 정치선전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와 완전히 다른 길을 떠난 이 무명의 사진가는 이후 십여 년에 걸쳐 거대한 프로젝트를 완성함으로써 중국 사진사에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그가 바로 중국 변경지역 소수민족을 기록한 좡쉐번(1909-1984)이었다.
1909년 상하이에서 태어난 좡쉐번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사진 전문서적을 틈틈히 읽고 근처 사진기기상을 드나들며 처음 사진기술을 익힌다. 1930년대에 들어서 중국사회가 혼란에 빠지자 그는 뜻을 같이하는 젊은이들과 나라에 기여하고자 서북지역 연구라는 목표를 세우게 된다. 일본에게 동북지역을 빼앗긴 상황에서 안보에 중요한 서북지역 개발은 당시 국가는 물론 청년들이 추구하는 실질적인 목표였기 때문이다. 1934년 멍짱위원회(蒙藏委員會) 서북개발협회 서북지역 조사 책임자 명의로 칭하이성(靑海省) 궈뤄(果洛)로 들어간 좡쉐번은 여섯 달 가까이 진행된 답사를 통해 천여 장의 귀중한 사진을 남긴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되자 입대를 시도하기도 하지만 좌절되고, 결국은 이후 십 년이란 세월 동안 칭하이성, 쓰촨성, 간쑤성〔옛 지명은 촨캉(川康)〕 일대에서 티베트족(藏族), 멍구족(蒙古族), 창족(羌族), 투족(土族), 이족(彛族), 나시족(納西族) 모쒀인(摩梭人), 리수족(□□族), 마오족(苗族), 사라족(撒拉族) 등의 생활과 풍속을 기록하는 전문가로 자리를 굳히게 된다.

인류학자이자 저널리스트였던 사진가

그가 남긴 오천여 롤의 필름은 양과 질 모두에서 그 어떤 민족지 사진가와 견주어 손색이 없다. 또한 그는 사진뿐만이 아니라 각 민족의 신체측정, 문물표본 수집, 민간신화 수집 등 민족학자와 인류학자의 작업방식을 따라 방대한 문헌자료도 남겼다. 일반학자들과 같이 학술적인 문제에만 집중하지 않고, 무시되기 쉬웠던 일상생활의 소소한 부분과 개인적인 감정까지도 기록했다. 이러한 그를 서구에서는 아메리카인디언을 연구 기록한 미국의 민속학자 루이스 모건(Lewis H. Morgan)이나 사진가 에드워드 커티스(Edward S. Curtis)와 비교하기도 하는데, 좡쉐번의 사진은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이들과 극명한 차이가 있다. 즉 이미 사라져 가고 있던 인디언들의 생활 모습과 복식을 인위적으로 재현하는 커티스와 달리, 그는 현지 주민들과의 교류를 통해 관계를 형성하고 난 뒤 그들의 생활상을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담아냈다. 여기에는 어떠한 작위적인 요구나 연출도, 대상을 미화하거나 과장하려는 모습도 찾아볼 수 없다. 또한 스트레이트 기법을 따랐고 촬영 각도가 매우 질박하고 정직했다. 민속춤 궈좡(鍋莊)을 추며 술을 마시는 티베트족(p.27), 불 가에 앉은 투족 가족(p.49)을 비롯한 많은 초상사진들에는 이러한 점이 잘 드러나 있다. 공가산(貢□山)을 뒤로 한 공가쓰(貢□寺)(p.99, 101), 차마고도(茶馬古道) 설지(雪地)의 야크와 사람들(pp.102-103, 105), 깎아지른 듯한 협곡의 절벽을 말을 타고 가는 모습(p.123) 등 자연의 웅장한 모습을 담은 사진들은, 칠십여 년전의 것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만큼 선명하다.
또한 그는 자신의 사진과 글을 화보 잡지에 발표함으로써, 당시 막 일어나기 시작한 시각문화 소비의 유통경로를 따라 순조롭게 전파했다. 이렇게 좡쉐번은 다민족 국가인 중국이 처한 위기의 순간에 사진으로써 시의적절한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냈다.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지닌 소수민족들의 생명력 넘치는 모습이 담긴 그의 작업은, 외세의 침략으로 인해 민족 자긍심이 손상된 당시 국민들에게 ‘하나의 중국’이라는 희망의 메시가 되었다.

좡쉐번 (저자)

좡쉐번(莊學本, 1909-1984)은 중국 상하이 푸둥(浦東) 출생으로, 1930년대 중국 서부 소수민족을 기록하여 중국 민족지 연구에 많은 시각적 자료를 제공했다. 사진 속에 아름답게 남겨진 사람들의 활력있고 순수한 생활상은, 땅에 대한 경외심과 인간 존재의 근원적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작품집으로 『좡쉐번』(2011) 등이 있다.

구정 (작가론·사진설명)

구정(顧錚, 1959- )은 상하이 푸단대학교(復旦大學) 신문방송학과 교수 및 동 대학 시각문화연구소 부소장으로 있다. 저서로 『도시표정: 19-20세기의 도시 이미지(城市表情: 19世紀到21世紀的都市攝影)』 『세계사진사(世界撮影史)』 등이 있고, 핑야오(平遙) 국제사진페스티벌, 광주 비엔날레 등에서 사진전을 기획했다. 『좡쉐번』의 작가론과 사진설명을 썼다.

한정선 (역자)

한정선(韓貞善, 1973- )은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에서 한중번역을 전공하고, 현재 타이완 밍촨대학(銘傳大學) 응용중문과 박사과정에 있다. 『장자오탕』 『장차이』 『사페이』 『좡쉐번』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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