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찬

열화당 사진문고 시리즈의 31번째 권. 김기찬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서울 도심의 ‘골목안 풍경’을 일생 동안 쉼 없이 기록한 사진가다. 김기찬의 골목 이미지는 그의 사진인생 자체이자, 한국의 산업화, 도시구조 변천의 역사이기도 하다. 궁핍했지만 따뜻한 인연들로 가득했던 그 샛길과 모퉁이들은 쉽게 망각될 수 없는 우리의 흔적이며, 사진은 그 기억의 단편들을 그립고도 슬프게 되살려 놓는다.

국내외 뛰어난 사진가들의 엄선된 작품들과 함께 실린 간결한 사진설명, 밀도있는 작가론과 연보가 알차게 담긴 ‘열화당 사진문고’는, 한국사진가 두 명과 중국사진가 두 명을 새로이 선보이며 서른네 권째 시리즈를 이어 간다. 김기찬(金基贊, 1938-2005)과 육명심(陸明心, 1932- )의 사진에는 소멸의 흔적이 있다. 1960년대의 한국은 전쟁의 상흔이 미처 지워지지 못한 가운데 군부에 의해 강압적인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경제적 성장을 향한 목표가 뚜렷한 만큼 부작용도 확연했다. 전통과 함께 인간성이 급속히 파괴되는 과정을, 김기찬과 육명심은 나름의 방식으로 기록했다. 김기찬은 현상에 집중했다. 도시 구석으로 밀려난 서민들의 고단하지만 푸근한 삶을 렌즈에 담았다. 육명심은 본질을 탐구했다. 사라져가는 우리 고유의 모습을 다양한 형상의 얼굴로 포착한 그의 사진은 인간의 본질, 근원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그리운 날의 ‘골목안 풍경’ ― 김기찬

1970년대부터 몰아친 개발의 광풍에 밀려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 터를 잡은 도시의 허름한 변두리는, 그들의 새로운 고향이 되었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 문만 열면 바로 골목으로 통했다. 좁다란 골목길은 단순한 통로가 아닌 공동의 사랑채고, 아이들에게는 공부방이요 놀이터였다. 김기찬은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넉넉하게 살아가는 ‘골목안 풍경’을 사진으로 담았다.
생계수단으로 사진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김기찬은 아마추어 사진가다. 1960년대말, 중고 카메라 한 대를 마련해 출퇴근길에 마주친 행상들을 찍기 시작하여, 서울역 앞 군상들을 따라 그들의 생활터전인 중림동 골목으로 찾아들어 가면서 이 평생의 테마가 탄생하게 된다.
미술평론가 정진국(鄭鎭國)에 따르면, 김기찬은 “위협적으로 렌즈를 겨누거나 몰래 숨어 쭈뼛거리며 촬영하면서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거부감을 주는 사진가가 아니었다. 그는 모델이 된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단칸방의 추석 상에 사진가를 초대한 가족(p.103)과 정성스레 시어머니의 머리를 다듬어 주는 며느리(p.79), 갓 무친 잡채를 남편에게 맛보이는 아내(p.113)의 모습에서,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한 아이들의 환한 표정에서 작가와 모델의 친근한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피사체를 하나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이웃으로 마주한 그는 제 집처럼 동네를 오가며 그곳에 사는 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듯한 따듯한 시선은 거기서 나온다.
그러나 1980년대말부터 진행된 재개발로 인해 골목들은 하나 둘 사라져 갔고, 자연히 그의 작업도 함께 마감될 수밖에 없었다. 김기찬의 골목 이미지는 그의 사진인생 자체이자, 한국 산업화, 도시구조 변천의 역사이기도 하다. 김기찬의 사진에서 공감할 수 있는 것은 많은 이들에게 추억과 상처가 서린 ‘공통의’ 기억이다. 궁핍했지만 따뜻한 인연들로 가득했던 그 샛길과 모퉁이들은 쉽게 망각될 수 없는 우리의 흔적이며, 사진은 그 기억의 단편들을 그립고도 슬프게 되살려 놓는다.

김기찬 (저자)

김기찬(金基贊, 1938-2005)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서울 도심의 ‘골목안 풍경’을 평생의 테마로 삼아, 육십년대 말부터 쉼 없이 기록한 사진가다. 재개발로 인해 이제는 사라져 버린 사진 속 그 옛날 소박한 서울의 모퉁이들은, 우리의 추억과 상처를 동시에 불러낸다. ‘골목안 풍경’ 시리즈, 『잃어버린 풍경』 『김기찬』 등의 작품집이 있다.

정진국 (글쓴이)

정진국(鄭鎭國)은 서울대학교와 파리 제8대학에서 조형예술을, 파리 제1대학원에서 미학을 공부했다. 저서로 『잃어버린 앨범』 『유럽의 책마을을 가다』 『여행가방 속의 책』 등이 있고, 역서로 보먼트 뉴홀의 『사진의 역사』, 빅토르 타피에의 『바로크와 고전주의』 등이 있다. 『김기찬』의 작가론을 썼다.

김기찬 (사진설명)

김기찬(金基贊, 1938-2005)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서울 도심의 ‘골목안 풍경’을 평생의 테마로 삼아, 육십년대 말부터 쉼 없이 기록한 사진가다. 재개발로 인해 이제는 사라져 버린 사진 속 그 옛날 소박한 서울의 모퉁이들은, 우리의 추억과 상처를 동시에 불러낸다. ‘골목안 풍경’ 시리즈, 『잃어버린 풍경』 『김기찬』 등의 작품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