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헌

민병헌(閔丙憲, 1955- )은 ‘눈의 직관’을 좇아, 광원이 없는 중간 톤의 밋밋한 빛에 의지하여 사진이 아니고는 결코 표현해낼 수 없는 절대적인 사진적 대상들을 스트레이트 기법으로 찍어 온 사진가이다. 그가 다루는 대상은 땅덩어리, 돌멩이, 내다 버린 화분, 잡초, 안개, 숲, 하늘 등 대체로 쉽게 지나쳐 버리기 마련인 자연의 한 부분이지만, 그의 날카로운 감각에 포착되어 극도로 섬세하게 프린트된 이미지들은 매우 촉각적이어서, 미묘한 톤 하나하나가 살아 숨쉬는 욕망의 풍경으로 다가온다. 자연의 변화에 이끌려, 있는 듯 없는 듯, 보일 듯 말 듯한 희미한 존재로 이들을 붙잡아 둔 그의 사진은 동양의 선가적(禪家的) 존재론을 형상화한다.

“자유롭게 사물을 바라볼 때, 사물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나는 사진을 ‘눈’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민병헌

차이를 감각적으로 읽어내는 눈
민병헌(閔丙憲, 1955- )은 오로지 ‘눈의 직관’을 좇아 사진이 아니고는 결코 표현해낼 수 없는 절대적인 사진적 대상들을 스트레이트 기법으로 찍어 온 사진가이다. 1984년 동아 살롱에서 사진 〈25시〉로 은상을 수상한 후 프로 사진가로 데뷔한 그는, 1987년 「별거 아닌 풍경」이라는 이색적인 제목의 개인전 때부터 줄곧 땅 덩어리나 돌멩이, 풀잎파리, 잡초, 갈대 숲, 마른 덤불, 안개, 하늘 등 보통 사람들이라면 흔히 스쳐 지나쳐 버릴 것들을 카메라에 담아 왔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이러한 소재들이 그의 빠르고 날카로운 직관에 포착되어 나타난 사진들은, 극도의 감각이 파열하는 순간, 섬세한 ‘눈’이 스쳐 지나간 욕망의 풍경이 되어 우리의 눈에 새롭게 다가온다. 그의 사진은 온통 흐릿한 회색 톤으로 절여져 있어서 구분이 안 가고 ‘그게 그거’처럼 보이지만, 그는 구름도 없이 안개가 끼여 있거나 뿌옇고 흐린 하늘에서도 색상과 빛의 섬세한 차이를 발견하고는, 그렇게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을 정확하게 흑백사진으로 구현해낸다. 즉 민병헌 사진의 핵심은 ‘차이를 감각적으로 읽어내는 눈’에 있다.

중간톤의 밋밋한 빛으로 구현된 극도로 섬세한 프린트
민병헌은 그 자신의 말처럼 ‘머리카락이 곤두설 때’ 셔터를 누르고, ‘소름이 끼치도록 마음에 들어야’ 프린트 작업을 끝내는 사진가이다. 그의 사진은 풍경을 소재로 한 스트레이트 은염 사진으로, 아무런 인위적 조작을 가하지 않은 매끈한 프린트 자체이지만, 매우 촉각적이고 극도로 섬세해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미묘한 톤의 변화와 완벽히 통제된 듯한 작은 흔적들에 의해 극도의 긴장감이 형성돼 있음을 알게 된다. 이렇듯 섬세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작업의 모든 과정을, 그는 혼자서 수행한다. 소름이 끼칠 정도의 긴장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와 톤을 얻어내는 그 순간의 환희를 만끽하기 위해서인데, 어쩌면 그는 아주 미묘한 색조의 차이를 얻어내기 위해 스스로 불러낸 고독과 적막을 즐기는지도 모른다.

선가적(禪家的) 존재론의 형상화
인간의 관심 밖에 버려진 풍경들을 담담하게 화면에 담아낸 ‘잡초’ 연작과 그냥 스치고 지나쳐 버릴 주변의 일상을 담은 풍경 연작들, 그리고 성을 구분할 수 없는 인체의 부분 또는 결합을 통해 새로운 몸 이미지를 구성해낸 최근 작업들에 담긴 작가의 시선은, 하나같이 생소한 대상을 감각적으로 승화시킨다. 그리고, 문명의 현상보다는 자연의 변화에 이끌려, 있는 듯 없는 듯, 사라질 듯 말 듯, 보일 듯 말 듯한 희미한 존재로 붙잡아 둔 그의 사진은, 동양의 선가적(禪家的) 존재론을 형상화하고 있다.
‘열화당 사진문고’ 국내작가편 그 여섯번째 권으로 선보이는 이 책 『민병헌』에는 1980년대 초반에 찍은 초기사진부터 최근 작업까지 65컷의 흑백사진으로 민병헌의 작품세계를 압축하여 보여주고 있다. 그의 작품들을 통해 지금껏 흔히 볼 수 있었던 콘트라스트 강한 흑백사진들과는 전혀 다른, 극도로 촉각적이고 섬세한 톤과 질감을 느낄 수 있다.

민병헌 (저자)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82년 집에 암실을 만들어 본격적인 흑백사진 작업을 시작했다. 1984년 2월 ‘동아국제사진살롱’에서 컬러 사진 ’25시’로 은상을 수상하고, 같은 해 7월에 파인힐 화랑에서 첫 개인전 ‘공간’을 열었다. 이후 국내외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1992년에는 사진예술가 제정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사진집으로 <Weed Series>, <Deep Fog Series>, <눈>, <민병헌 – 열화당 사진문고> 등이 있다.

박영택 (글쓴이)

박영택朴榮澤(1963- )은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뒤 뉴욕 퀸스미술관에서 큐레이터 연수를 마쳤고 구 년간 금호미술관 큐레이터로 근무했다. 1999년부터 경기대학교 예술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예술가로 산다는 것』(1999), 『식물성의 사유』(2002), 『애도하는 미술』(2014), 『한국 현대미술의 지형도』(201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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