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장

선교장은 강원도 강릉에 자리잡고 있는 조선시대 고택으로, 이 책은 역사학자 차장섭이 오랜 기간의 자료 조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엮은 한국의 대표적인 양반가 이야기이다.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선교장이 건립될 무렵부터 현재까지의 이 집안의 역사, 전형적인 조선시대 양반 상류주택이면서 특색있는 모습을 갖추고 있는 건축구조,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집안을 이끌었던 사람들의 경영철학과 문화이다.

선교장(船橋莊)은 강원도 강릉에 자리잡고 있는 조선시대 고택(古宅)으로, 이 책은 역사학자 차장섭이 오랜 기간의 자료 조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엮은 한국의 대표적인 양반가(兩班家) 이야기이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선교장이 건립될 무렵부터 현재까지의 이 집안의 역사, 전형적인 조선시대 양반 상류주택이면서 특색있는 모습을 갖추고 있는 건축구조,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집안을 이끌었던 사람들의 경영철학과 문화이다.
선교장의 역사는 전주이씨 효령대군 십세손(十世孫) 이주화(李?華, 1647-1718)에게 시집을 간 안동권씨(安東權氏) 부인이 남편과 사별하고 시가(媤家)인 충주에서 친정인 강릉으로 돌아오면서부터 시작된다. 강인한 여인 안동권씨는 경포대가 있는 강릉의 북촌에 자리잡았는데, 함께 온 아들 이내번(李乃蕃, 1703-1781)은 어머니와 함께 염전(鹽田) 경영을 통해 선교장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했고, 지금의 집터를 잡아 1760년대에 선교장을 건축하기에 이른다.
그의 손자 이후(李?, 1773-1832)는 집안을 만석꾼으로 일구어 놓았으며, 그의 아들과 손자 들이 과거에 급제하면서 선교장을 기반으로 하여 한양 재동 집을 동시에 경영해 나가기 시작했고, 당시 정치사회적 집권세력의 가문과 혼인함으로써 중앙의 주류사회에 합류하였다.
이회숙의 아들 이근우(李根宇, 1877-1938)는 조선이 무너지고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는 격동기를 거치면서, 선교장을 대규모 토지를 바탕으로 하는 경제?사회적 공동체로 발전시켰으며, 1908년 근대학교인 동진학교(東進學校)를 세워 인재를 양성했다. 선교장은 1950년 시행된 농지개혁법과 화폐개혁, 그리고 한국전쟁으로 큰 위기를 맞았으나, 1967년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되고, 후손들의 건축물 복원과 열린 경영에 힘쓰면서 조금씩 제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다.
전형적인 양반 상류주택인 선교장은 규모가 전국에서 가장 크다. 현재 남아 있는 본채의 규모는 건물 9동에 총 102칸이며, 건평은 318평에 이른다. 근방에 있던 부속건물과 별채 초가까지 포함하면 대략 300칸에 이르는 대장원(大莊園)을 형성하였다. 동쪽의 안채 및 동별당과 서별당이 가족을 위한 공간이라면, 열화당, 활래정(活來亭), 방해정(放海亭) 등은 손님과 식객을 접대하기 위한 공간이었다. 특히 열화당은 주인이 머무는 사랑채인 동시에 최고위층 손님을 접대하던 공관(空館)이었고, 활래정은 주인과 친분이 두터운 손님들만의 접객장소였다. 한편 경포호수 옆에 마련된 방해정은 장기체류하는 귀한 손님들과 가족들을 위한 일종의 별장이었다.
선교장에는 그들만의 경영철학이 있었다. 안동권씨와 그의 아들 이내번은 강릉의 토호(土豪)들이 명분 때문에 멀리한 염전업을 과감히 경영함으로써 시기적으로 꼭 필요한 소금을 공급하는 실리경영을 해 나갔다. 이를 통해 쌓은 경제력을 농업경영으로 가져가 새로운 농업기술을 받아들이면서 농지를 늘려 갔다. 하지만 과욕을 경계하며 철저하게 인정(人情)을 바탕으로 소작인(小作人), 이웃과의 공생(共生)을 추구하는 상생경영을 했다. 또한 공공의 이익이 곧 선교장의 이익이라는 인식에서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자금을 은밀히 지원했으며, 자연 재해가 있을 때는 창고에 있는 수천 석의 쌀을 내어 백성들을 구휼하였다.
한편, 선교장에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정원문화가 있었다. 활래정, 녹야원, 방해정과 같은 누정(樓亭)은 멋과 풍류의 상징이었다. 또한 관동팔경의 중심에 위치해 있는 만큼, 자연히 전국의 풍류객들이 모이는 풍류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바로 옆에 경포호수와 동해바다, 경포대가 있을 뿐만 아니라, 지리적으로 금강산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서 대관령을 넘어와 이곳에서 잠시 쉬며 금강산으로 가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하기도 했다. 선교장에 머물렀던 시인 묵객들의 풍류는 시와 글씨 그림의 형태로 남아 있다.
또한 선교장은 독서, 저술, 출판의 가장 모범적인 책 문화를 실천해 왔다. 조선시대 사대부가에서 선비들이 해야 할 일은 책을 읽고 쓰고 출판하는 것이었다. 선교장은 강원도 최고의 장서가(藏書家)로, 일반인들에게 이를 개방함으로써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대를 이어 문집과 저서를 저술하고 출판하였다. 이같은 선교장의 출판문화는 이곳 사랑채의 이름을 빌려 1971년 설립된 열화당 출판사로 계승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집 자체를 인격체로 보고 집과 사람을 하나로 간주했다. 따라서 선교장의 역사는 건축물의 역사일 뿐 아니라 그곳에 살았던 사람의 역사이다. 이 책은 격변기를 거치며 이어져 내려온 선교장의 아름다운 건축과 사람들, 그 속에 피어난 경영철학과 문화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 전통 양반가의 역사와 공간의 한 단면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차장섭 (저자)

차장섭車長燮은 1958년 경북 포항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 인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 대학원 사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과정을 마쳤다. 조선사연구회 회장을 지냈으며, 강원대학교에서 도서관장, 기획실장, 강원전통문화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강원대학교 삼척캠퍼스 교양학부 교수로 한국사, 한국미술사 등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조선 후기 벌열 연구』(1997), 『고요한 아침의 땅, 삼척』(2006), 『인간이 만든 신의 나라, 앙코르』(2010), 『선교장』(2011), 『부처를 만나 부처처럼 살다』(2012), 『아름다운 인연으로 만나다, 미얀마』(2013), 『자연과 역사가 빚은 땅, 강릉』(2013) 등이 있으며, 사진집으로 『한옥의 벽』(2016)이 있다.

저자/역자의 다른 책들

머리말
A Summary

강릉 이씨가李氏家의 삼백 년 역사

1. 강인한 여인, 권씨부인權氏夫人 17
2. 이내번李乃蕃, 선교장을 열다 22
3. 이후李, 만석꾼을 이루다 30
4. 이용구李龍九·이의범李宜, 관직에 나아가다 41
5. 서울에서 벼슬한 이회숙李會淑·이회원李會源 형제 45
6. 선교장의 전성기를 이뤄낸 이근우李根宇 48
7. 선교장, 역사의 격동기 속으로 들어가다 54
8. 열린 선교장으로 거듭나기 위하여 64

선교장, 그 대장원大莊園의 건축과 아름다움

1. 천지인天地人 합일의 명당明堂 71
2. 확장과 변형을 거듭해 온 선교장 건축의 특성 77
3. 대장원의 공간구성 88
안채와 동별당 90 / 사랑채와 열화당 96 / 행랑채 103 / 서별당과 연지당 106 / 활래정 109 / 외별당과 별채 116 / 사당 및 선영 120 / 곳간 및 동진학교 124 / 담장과 대문 126 / 방해정 133

배다리집 사람들의 경영철학과 문화

1. 나눔과 상생의 경영철학 137
실리경영 137 / 나눔과 상생경영 142 / 공익경영 145
2. 정원과 조경의 아름다움 149
누정 149 / 나무 155 / 꽃 159
3. 시詩와 서書의 풍류문화 168
시문詩文 168 / 서예書藝 175
4. 장서藏書와 출판의 인문정신 185
독서 및 장서 185 / 저술 및 출판 188
5. 차문화와 내림손맛의 전통 192
차茶 192 / 음식 194

주註 201
참고문헌 203
선교장 장서목록藏書目錄 205
찾아보기 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