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문

'열화당 한국근현대서적 복각총서' 두번째 권으로, 한국 성공회의 부흥에 평생을 힘쓴 세실 쿠퍼〔Alfred Cecil Cooper, 한국명 구세실(具世實), 1882-1964〕 주교가 1932년에 쓴 『사도문(私禱文)』을 새로이 복각했다. 공동체의 예배인 공기도(公祈禱)와 달리 개인의 신앙 증진을 위한, 유한한 존재의 내면을 돌아보게 하는 기도서이다. 별지로 대한성공회 김성수(金成洙) 대주교가 쓴 해제가 함께 실려 있다.

우리나라 초기 성공회의 성립과 출판활동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전파된 것은 19세기 중엽으로, 서구 열강의 침략이 노골화되는 ‘서세동점(西勢東漸)’의 과정에서였다. 고종(高宗) 3년(1866) 7월 무장한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General Sherman)호와의 무력 충돌로 인해 대원군(大院君)의 배외정책(排外政策)이 지속되는 가운데, 이어서 병인양요(丙寅洋擾, 1866)와 신미양요(辛未洋擾, 1871)가 일어나 이들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서양을 오랑캐로 규정하게 된다.
하지만 고종과 명성황후(明成皇后)의 지원을 받는 개화파의 득세로 집권 십 년 만에 대원군이 권좌에서 물러나 배외정책은 힘을 잃고, 1876년에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체결하여 문호를 처음 개방한 이래, 1882년에는 한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함으로써 본격적인 문호 개방의 길로 들어선다. 이즈음 외국 선교사들이 조선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성공회(聖公會, The Anglican Communion)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도 이와 때를 같이한다. 공식적으로 대한성공회의 창립은 최초의 영국 선교사인 코프(C. J. Corfe) 주교가 한국 땅에 선교의 발을 디딘 1890년 9월 29일로 치지만, 그보다 십 년 앞선 1880년부터 영국의 SPG선교회 소속으로 일본에 있던 캐나다 선교사 쇼(A. Shaw)가 부산에 선교사를 파송했고, 1883년에는 CMS선교회가 중국에서 선교사를 파송했으며, 1887년에도 성공회 선교의 물꼬를 트기 위한 노력들이 있었다. 성공회의 전래는 다른 개신교와는 달리 중국과 일본에 진출했던 선교사들에 의해 청원되었으며, 배경으로 보면 영국의 식민지 팽창주의 정책에 따른 의도가 아니라 나름대로 순수한 종교적 열정에 의한 선교로 보인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효율적인 선교를 위해 성서의 번역과 출판, 보급에 힘썼다. 대한성공회의 출판사업은 초대 코프 주교의 해군 동료들이 성금을 모아 영국에서 보낸 현대식 인쇄기(Messrs. Harrild & Sons)가 1891년 4월 서울에 도착하면서 시작되었다. 초창기 중요한 출판물은 『조만민광(照萬民光, Lumenad Revelationem Gentium)』으로, 번역 성서가 없던 당시에 신약성서의 일부를 설교와 교육용으로 발췌하여 편찬하였는데, 한문과 한글, 한글, 영어의 세 가지 언어로 발간되었다. 이어 『기도서(Prayer Book)』를 비롯하여 『성교리증(聖敎理證)』(1898), 『성체혈례의(聖體血禮儀)』(1899), 『구약촬요(舊約撮要)』(1899), 『성회송가(聖會頌歌)』(1903), 『진도강론(眞道講論)』(1905) 등이 초창기에 출판되었으며, 이후에도 수백 권의 다양한 신앙서적이 발간되었다. 이번에 복각본으로 소개되는 『사도문』은 1932년에 초판 간행된 기도서(祈禱書)로, 대한성공회의 출판활동이 한창일 때 다른 여러 신앙서와 함께 발간된 것이다.

세실 주교, 그리고 『사도문』의 구성과 내용
성공회에서는 주일(主日)과 매일 아침저녁에 교회에 모여서 바치는 공동체의 예배를 공기도(公祈禱)라 하고 이때 공도문(公禱文)을 사용하며, 이에 비해 신앙 증진을 위하여 개인적으로 바치는 기도를 사기도(私祈禱)라 하고 이때 사용하는 기도문을 사도문(私禱文)이라 한다. 사도문을 언제 사용하는지, 왜 사용하는지는 이 책의 서문에 잘 나와 있다.

“모든 신자의 의무는 주일과 첨례(예수님과 성인들의 특별한 기념일)에 부득이한 사고 외에는 그날의 미사(예배)와 공도(公禱)에 참례할 것이나, 우리가 다만 공기도 때에만 천주(하느님)께 기도를 드리고 천주의 은혜를 구하며 천주의 계심을 생각할 것뿐 아니라, 우리 집에서나 아무 곳에서든지 기쁠 때와 슬플 때나 시험을 받을 때와 병든 때나 임종 시에 마땅히 천주의 계심을 생각할 것이니, 이러므로 기도할 필요가 있느니라. 이 사도문을 가지면 어떤 때에 무슨 기도를 하여야 할는지 이에 대한 합당한 기도를 찾을 수 있겠으며, 또 공기도 때에도 이를 사사로이 쓸 수 있겠느니라.”

우리나라 사도문의 기원은 1908년 발행된 『조만사도(早晩私禱)』로, 개인이 아침〔早〕 기도 또는 저녁〔晩〕 기도 때 사용할 목적으로 발간되었다. 이후 1917년 드레이크(H. J. Drake, 한국명 민재은) 편저로 최초의 『사도문』이 발간되었으며, 1932년 세실 주교가 당시 급증하는 신자들의 기도생활을 돕기 위해 다시 『사도문』을 발간하게 된다. 이번 복각본의 해제를 쓴 대한성공회 김성수(金成洙) 대주교에 따르면, 세실 쿠퍼〔Alfred Cecil Cooper, 한국명 구세실(具世實)〕 주교는 1882년 영국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1907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1908년 대한성공회의 선교사로 우리나라에 와서 이십삼 년간 사역하다가 1931년 6월 11일 영국 런던의 성바우로 대성당에서 주교로 서품되어 대한성공회 제4대 주교가 되었다. 이후 세실 주교는 재임 이십오 년 동안 일제의 탄압과 육이오 전쟁 등으로 파란만장한 선교역정을 거쳤는데, 특히 육이오 전쟁 때인 1950년 7월 18일 공산군에 체포되어 ‘죽음의 행진’을 이겨내고 전쟁포로 송환 때 모스크바에서 풀려나와 1953년 영국으로 귀환하였다가, 그해 11월 14일 대한성공회에 복귀하였다.
세실 주교가 쓴 이 책은 모두 8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보통경문(普通經文)은 믿음생활의 근간이 되는 것으로, 예수께서 가르치신 기도, 초대교회의 믿음의 고백인 사도신경(使徒信經) 등 하느님 찬송, 성모 마리아와 성인들과의 관계, 교회를 섬기는 데 필요한 경문들을 담고 있다. 제2부 신자매일도문(信者每日禱文)은 조도(朝禱), 만도(晩禱), 신자매일시과(信者每日時果), 그리고 삼종경(三鐘經)으로, 특히 신자매일시과는 오전 아홉시, 열두시, 오후 세시에 드리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을 기억하는 기도이고, 삼종경은 해 돋는 때와 정오와 해 지는 때에 교회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하심과 하느님께 대한 감사를 드리는 기도다. 제3부 축문집(祝文集)은 축복하며 기도해야 할 다양한 대상들?성직자, 신자, 부모와 자녀, 여행자, 병자, 미신자(未信者), 별세자(別世者)?을 위한 기도문이다. 제4부 통회(痛悔)와 고해성사(告解聖事)는 세례를 받은 이후로 지은 죄를 용서받기 원하여 사제 앞에 나와서 낱낱이 죄를 고하는 예식이다. 고해의 순서는 성찰(省察), 정개(定改), 고죄(告罪), 보속(報贖)으로 이루어진다. 제5부는 성체성사(聖體聖事)로,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세례(洗禮)와 성찬례(聖餐禮, 성체성사)다. 따라서 예배에 앞서 죄가 있으면 고해성사를 미리 하고, 주일예배 전 토요일 밤부터는 금식하고 예비기도를 바치며, 주일 아침에는 필요치 않은 얘기는 일절 하지 말라고 권고한다. 특히 성체를 받을 때는 마음속으로 기도문을 바치고 침묵하며, 받은 후 성시메온송가 등을 외운다. 제6부는 오묘십오단(奧妙十五端)과 십자성로신공(十字聖路神功)으로, ‘오묘십오단’은 예수의 행하심 가운데 열다섯 가지(단)를 택하여 묵주기도(?珠祈禱)를 하게 되는데, 앞의 5단은 환희단(歡喜端), 다음 5단은 고통단(苦痛端), 마지막 5단은 영광단(榮光端)이다. ‘십자성로신공’은 예수께서 세상의 죄와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골고다 언덕에서 죽는 과정 열네 장면을 묵상하면서 기도하는 것이다. 제7부 병중기도(病中祈禱)는 병자를 위한 기도문으로, 병자의 유의사항, 기도문, 나을 경우의 감사기도 등이 있다. 또한 큰병이 들었을 경우 조병성사(助病聖事)를 받아야 하고, 병자가 별세했을 때 사제가 없으면 신자 중 누구라도 영혼을 하느님께 의탁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제8부 신자필지(信者必知)는 신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이다. 일종의 부록으로 작은 교리서라고 할 수 있는데, 성공회 신자가 지켜야 할 육규(六規), 세례와 성만찬을 비롯한 일곱 가지 성사(聖事),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하신 가상칠언(架上七言), 성령의 일곱 가지 은총인 성신칠은(聖神七恩)과 아홉 가지 열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십계명(十誡命)이 이에 속한다.

유한한 존재의 내면을 돌아보게 하는 기도서
1932년 발행된 『사도문』 서문 첫머리에는 “사람이 호흡을 아니 하며 음식을 폐하며 세수를 아니 하면 육신의 생명이 능히 보존되지 못함과 같이 사람이 신령한 음식과 청결함을 받지 아니하면 영혼의 생명이 잘 보존될 수 없느니, 그런즉 우리가 기도와 세례를 받음으로 영혼의 생활을 부양(扶養)할 수 있느니라”라고 적혀 있다. 죄에 대한 잘못을 회개하고 인간존재의 부족함을 깨닫고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은, 팔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혹은 이천 년 전 예수 시대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김성수 대주교는 이번 복각본의 발간의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국 교회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급격한 성장을 해 왔고, 대사회적 영향력도 어느 종교 못지않게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갈수록 떨어지는 신뢰도는 언행의 불일치와 형식적인 신앙생활, 그리고 신앙생활과 일상생활의 분리로부터 연유한 것임에 틀림없다. 일 주일에 하루, 주일(主日)을 지키는 ‘주일신자(主日信者)’로는 극복하기 힘든 세속적인 유혹과 생활환경 속에서, 개인기도서인 이 ‘사도문’은 무한경쟁과 바쁜 걸음걸이로만 전진해 가는 현대 신앙인들에게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도구라고 여겨진다. …물질 중심, 속도 중심, 인기 중심으로 거세게 흘러가는 세상에 이름도 낯선 ‘사도문’이지만, 이 작은 책에 인간의 유한성을 넘어 무한한 존재인 하느님을 만나 자신의 내면을 돌이켜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매우 뜻깊은 일이라 하겠다.”

열화당 한국근현대서적 복각총서
‘열화당 한국근현대서적 복각총서’는 한국에서 근대적 출판이 시작되던 1800년대 말에서 육이오 이후 사회 전반이 재건되던 1950-60년대 사이에 출간되었던 책과 기록물 중 반드시 재조명되어야 할 가치있는 것들을 엄선하여, 복각본(復刻本)이라는 고전적인 형식으로 선보이는 시리즈이다. 분야와 형태를 막론하고 기획·내용·형식 등 여러 면에서 뛰어난 출판물을 선별하여, 처음 출간되었던 모습 그대로, 지금의 기술력으로 복원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다해 복각하여 한정본(限定本)으로 선보인다.
지난 시기의 아름다웠던 서적(書籍)을 다시금 출판함은, 온고지신(溫故知新), 법고창신(法古創新)의 배움의 자세로 오늘 우리가 지향해 나가야 할 출판의 사표(師表)로 삼기 위함이며, 이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소중한 자료를 공유함으로써 학문적 저변을 확대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이 시리즈는 원본의 모습 그대로, 오늘날의 최고의 기술을 통해 복각·제작될 것이며, 각 분야의 권위있는 전문가에 의해 씌어진 해제(解題)도 원본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별쇄 형식으로 책 속에 삽입된다. 더불어 각권마다 고유번호가 찍혀 있는 500부 한정판으로 발행되어,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형식의 종이책이 갖는 소장가치를 더해 줄 것이다.

세실 쿠퍼 (저자)

세실 쿠퍼[Alfred Cecil Cooper, 한국명 구세실(具世實)]은 영국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1907년 사제서품을 받았다. 1908년 대한성공회의 선교사로 우리나라에 와서 이십삼 년간 사역하다가, 1931년 6월 11일 영국 런던의 성바우로 대성당에서 주교로 서품되어 대한성공회 제4대 주교가 되었다. 주교 부임 직후 삼 개월 동안 삼십 개 교회를 순회하는 등 매년 삼사십 개 교회를 전도 순회했고, 사오백 명씩 견진성사(堅振聖事)를 베풀었다. 그 결과 불과 이 년 만에 신자가 이천오백 명으로 증가했으며, 특히 북한지역 선교에 주력하여 평양, 해주, 진남포, 연백 지역으로 교세를 확장했다. 그리하여 1930년대 후반에는 ‘성공회 신자 일만 명’에 이르는 부흥을 이루어내게 되었다. 한편, 세실 주교는 재임 이십오 년 동안 일제의 탄압과 육이오 전쟁 등으로 파란만장한 선교역정을 거치기도 했다. 1941년에는 제이차세계대전으로 영일동맹이 결렬되면서 다른 영국인 선교사들과 함께 한국에서 축출되었고, 육이오 전쟁 중이던 1950년 7월 18일에는 공산군에 체포되어 ‘죽음의 행진’을 이겨내고 전쟁포로 송환 때 모스크바에서 풀려나와 1953년 영국으로 귀환하였다가, 그해 11월 14일 대한성공회에 복귀했다.

김성수 (글쓴이)

서문
제1부 보통경문(普通經文)
제2부 신자매일도문(信者每日禱文)
제3부 축문집(祝文集)
제4부 통회(痛悔)와 고해성사(告解聖事)
제5부는 성체성사(聖體聖事)
제6부는 오묘십오단(奧妙十五端)과 십자성로신공(十字聖路神功)
제7부 병중기도(病中祈禱)
제8부 신자필지(信者必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