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

부커상, 가디언 소설상, 제임스 타이트 블랙 기념상 등을 수상한 바 있는 『G』는, 실험적 구성과 섬세한 필치로 주인공 G의 일대기를 따라가며 ‘역사 속의 사적인 순간들’을 포착해낸다. 1972년 발표 이래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번역 소개되는 이 소설의 이야기 전개 방식은 가히 파격적이다. 화자의 시점이 계속해서 바뀌는가 하면, 저자가 직접 독자에게 말을 걸어 오기도 하고, 이야기 중간중간에 철학적 사색이나 역사적 사건에 대한 설명이 불쑥불쑥 등장하기도 한다. 독자들은 페이지를 넘기면서 곳곳에서 소설 읽기의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된다.

“D. H. 로렌스 이래, 양심이 이르는 바에 따라 세속 세계를 이토록 주의 깊게 써낸 작가는 없었다”
―수전 손택

우리 시대의 진보적인 지성, 현존하는 영국 출신 작가 중 가장 깊고 넓은 자기 세계를 가지고 있으면서, 가장 광범한 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작가, 여든을 넘긴 노구로 지금도 농사와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는 작가, 그리고 미술평론가, 소설가, 다큐멘터리 작가, 사회비평가로 다양한 영역에서 글쓰기를 하고 있는 존 버거(John Berger, 1926- )의 대표적인 소설 『G』가 출간되었다. 1972년 부커상(The Booker Prize) 수상작인 소설 『G』는 벨에포크라 불리던 유럽의 부르주아 문화 시기, 주인공 조반니의 일생의 여성편력을 따라가며 역사 속 사적인 순간의 여성성과 남성성을 섬세한 문체로 그려낸 작품이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G』는 손으로 그린 지도들을 묶은 책처럼 보인다. 산이나 계곡, 강어귀를 표시한 지도가 아니라, 역사의 전환점들을 그린 지도, 그리고 인간의 몸, 여성성과 남성성을 표시한 지도 말이다. …어쩌면 이 책은 욕망의 대상이 되지만 아직 알려지지 않은 그 무엇 속으로 떠나는 여행의 기록일지도 모른다.”─존 버거의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부커상 외에 ‘가디언 소설상(The Guardian Fiction Prize)’ ‘제임스 타이트 블랙 기념상(The James Tait Black Memorial Prize)’ 등을 수상한 바 있는 『G』는, 존 버거 특유의 섬세하고 날카로운 사유가 재구성된 역사 속에서, 그리고 실험적인 이야기 전개방식 속에서 빛을 발하는 작품으로, 1972년 발표 이래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번역 소개되는 것이다.
이야기는 주인공 G의 일대기를 따라 전개된다. G는 조반니(Giovanni)의 약자로, 이 이름은 돈 후안(Don Juan)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G가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삼십 년(1886-1915)은 유럽에서 부르주아 문화가 서서히 와해되는 시기이고, G는 몰락해 가는 부르주아 가문의 후계자다. 그의 아버지나 삼촌에게 일치되었던 개인적 시간과 사회적 시간 사이의 관계는 G의 세대에 와서는 와해되고 있었고, 따라서 그의 욕망은 뚜렷한 사회적 색채가 제거된 채 그냥 ‘알 수 없지만 힘은 센 무엇’으로 남게 된다. 소설 전체에 걸쳐 진행되는 G의 여성편력은 그렇게 ‘알 수 없는 것’으로 남아 있던 ‘나의 욕망’이, 역시 사회적으로 규정되지 않고 있던 ‘타인(여성)의 욕망’과 만나는 과정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저자는 사회적 존재일 수밖에 없는 개인의 사적 욕망들을 점처럼 흩뿌려 놓을 뿐, 그것들을 이어 주는 결말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 점들을 이어 의미있는 연결을 만들어 가는 것은 독자들 각자의 몫인 것이다.

“내가 인식하는 사물들 사이의 관계는 내 머릿속에서 복잡한 동시적 패턴으로 기록된다. 다른 작가들이 차례차례 이어진 장(章)을 보는 곳에서 나는 평원을 보는 셈이다. 따라서 나로서는 사건들의 위치를 정하고 정의를 내리기 위해 다른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시간 속에서 인과관계에 따라서가 아니라 공간 속에서 포괄적으로 좌표를 찾는 방법. 나는 기하학자의 정신으로 글을 쓴다.”
―『G』 본문 중에서

한편, 『G』의 이야기 전개 방식은 가히 파격적이라 할 수 있다. 소설의 시점이 계속해서 바뀌는가 하면, 저자가 직접 독자에게 말을 걸어 오기도 하고, 이야기 중간중간에 철학적 사색이나 역사적 사건에 대한 설명이 불쑥불쑥 등장하기도 하며, 심지어 그림으로 자신의 말을 설명하기도 한다. 즉 저자는 소설 곳곳에 직접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아,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한 단초들을 던져 주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 방식에 대해 존 버거는 소설 속에서 위와 같은 간접적 설명을 하기도 하니, 독자들은 페이지를 넘기면서 곳곳에서 소설 읽기의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실험적 형식이 다만 실험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서사구조와 조화를 이루며 완결성을 높이고 있다는 데 감탄하게 된다.
유럽 부르주아 문화의 전성기가 어떻게 종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또 왜 종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지를 한 남자의 여성 편력을 통해 살펴보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평화로움과 화려함의 이면에서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역사의 흐름을 개인의 사적인 경험을 통해 살펴보는 작업이다. 그런 면에서 『G』는 ‘역사 속의 사적인 순간들’을 포착해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저자 자신의 말대로 이 작품은 ‘특정 시기 특정 장소에서 인간의 욕망이 흘러가고, 우회하고, 급격히 속도를 내는 과정을 조금이나마 명료하게 밝혀 주는’, 역사의 전환점들을 그린 지도, 인간의 몸, 여성성과 남성성을 표시한 지도와도 같다.

존 버거 (저자)

존 버거(John Berger, 1926-2017)는 런던 출생으로, 미술비평가, 사진이론가, 소설가, 다큐멘터리 작가, 사회비평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처음 미술평론으로 시작해 점차 관심과 활동 영역을 넓혀 예술과 인문, 사회 전반에 걸쳐 깊고 명쾌한 관점을 제시해 왔다. 중년 이후 프랑스 동부의 알프스 산록에 위치한 시골 농촌 마을로 옮겨 가 살면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농사일과 글쓰기를 함께해 왔다. 저서로 『피카소의 성공과 실패』 『예술과 혁명』 『다른 방식으로 보기』 『본다는 것의 의미』 『말하기의 다른 방법』 『센스 오브 사이트』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모든것을 소중히하라』 『백내장』 『벤투의 스케치북』 『아내의 빈 방』(공저) 등이 있고, 소설로 『우리 시대의 화가』 『그들의 노동에 함께 하였느니라』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G』 『A가 X에게』 『킹』 등이 있다.

김현우 (역자)

김현우(金玄佑)는 1974년생으로,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비교문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교육방송(EBS)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다. 역서로 『웬디 수녀의 유럽 미술 산책』 『스티븐 킹 단편집』 『행운아』 『고딕의 영상시인 팀 버튼』 『G』 『로라, 시티』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 『A가 X에게』 『벤투의 스케치북』 『돈 혹은 한 남자의 자살 노트』 『브래드쇼 가족 변주곡』 『그레이트 하우스』 『우리의 낯선 시간들에 대한 진실』 『킹』 『아내의 빈 방』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