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 상권 금강산의 역사, 그리고 이 산을 사랑한 사람들 | 하권 옛 시와 함께 보는 금강산 사진첩
  • 임병목
  • A5 양장, 케이스 2012년 5월 5일 상권 256, 하권 160면 50,000원 상권 145컷, 하권 78컷 978-89-301-0423-4
  • 문학·기타, 열화당 학인총서
  • 별쇄 금강산 조감도(컬러)
    상권 ISBN 978-89-301-0421-0
    하권 ISBN 978-89-301-0412-7

세계적 명산, 금강산에 어린 선인들의 자취 … 문헌, 귀중한 사진자료 등으로 발굴
남북한을 아울러 우리나라의 가장 아름다운 산이 금강산이다. 몇 해 전 금강산 관광이 전면 차단되어 언제 다시 금강산 길이 열릴지 알 수 없게 되었으나, 금강산이 세계의 어떤 자연유산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한 그 이면의 역사와 문화를 포함한다면 단연코 제일임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은 금강산을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들고자 철원에서 내금강역까지 총 116.6킬로미터에 이르는 금강산전기철도(1931년 완공)를 놓았고, 장안사(長安寺) 옆에 호텔까지 지었으며, 금강산을 알리는 많은 사진첩, 팜플렛 등을 발행하기도 했다.
또한 세계적인 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 매거진(National Geographic Magagine)』은 1924년 10월호에 「한국의 금강산에서」라는 20면짜리 특집 기사를 여러 장의 사진과 함께 소개하기도 했고, 최근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2008년 6월호)에는 「미국인이 갈 수 없는 최고의 관광명소」라는 기사가 실렸는데, 그 첫번째가 바로 금강산이었다.
우리에게 가곡 「그리운 금강산」이라든가,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으로 시작되는 동요 등으로 친숙한 금강산은, 분단 이후 물리적으로, 정서적으로 점점 멀어져 온 게 사실이다.
이러한 금강산에 관해 십여 년 간 자료를 모아 연구해 온 저자 임병목(林秉穆)이 『금강산』이라는 이름으로 두 권의 책을 펴냈다.
학창시절(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산악부 동아리에 잠시 몸담았으나 등반사고로 그만두고, 우리나라의 명산을 두루 답사했다는 저자는, 자연스레 금강산이 인문학의 보고(寶庫)이자 성지(聖地)이며 선인들의 혼이 담긴 ‘산 그 이상의 산’임을 알게 되었다. 그 후 현역 치과의사로 활동하면서도 틈틈이 관련 자료를 수집, 정리해 왔다.
그러던 중 1998년 금강산 관광길이 열렸고, 비록 지극히 한정된 코스였지만 몇 차례 탐방을 하였다. 이 책은 지금 가도 볼 수 없는 금강산의 많은 곳의 옛 모습과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저자는 “여러 해 동안 잊혀져 가는 전설, 기록, 일화, 사진 등의 자료를 모아 정리하는 한편, 금강산과 관련된 선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문헌조사와 현장답사를 하면서 금강산의 역사와 그곳에 남겨진 선인들의 자취를 되짚어 보고자 했다”면서, “명암의 차이 등으로 형태 구분이 어려운 석각 글씨들은 이해를 돕기 위해 목판에 판각(板刻)하기도 하면서, 금강산을 그리는 여러 독자들께 단 한 줄의 글과 사진이나마 새롭고 값진 자료가 되도록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였다”고 적고 있다.
상권은 금강산의 자연 지리적 개관과 이 산의 역사, 금강산을 유독 사랑했던 추사 김정희와 봉래 양사언, 그 밖의 선인들의 자취, 그리고 동서양의 금강산에 대한 관심 등을 다루고 있으며, 또한 금강산 역사연표를 작성하여 유용한 자료로 제시하고 있다. 하권은 주로 일제강점기에 발행되었던 금강산 사진첩에서 엄선한 칠십여 컷의 금강산 옛 사진과 이를 노래한 선인들의 시가(詩歌)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두 권의 책과 더불어 1929년 일본인 일러스트레이터 요시다 하츠사부로(吉田初三郞)가 그린 ‘금강산 조감도’ 원본을 몇몇 오류를 바로잡아 별쇄 지도로 선보였다.

“만물상(萬物相) 명칭은 일제강점기 소산”, 본래 이름 만물초(萬物草)로 되살려야
다양한 형상의 피조물들이 기기묘묘한 모습의 봉우리로 모여 있는 곳이 바로 금강산 만물상(萬物相)이다. 그러나 이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에 의해 이름이 바뀐 것으로, 조상 대대로 내려온 원래의 이름은 만물초(萬物草)이다.
만물초는 “신이 천지창조하실 때 시범 삼아 초(草) 잡아 보았다”라는 의미이다. 일본인들이 조선 침탈 이래 각종 인쇄물, 기록물에 ‘만물상’이라 써 왔으나, 일제강점기 이전의 우리 선조들의 기록 어디서도 ‘만물상(萬物相)’이라는 명칭을 찾아볼 수 없고, 수많은 선현들의 기록에는 ‘만물초(萬物草 혹은 萬物肖)’라 적고 있다.
저자는 “일본인들이 만물초의 발음이 어려워 만물상으로 바꾸었다고 흔히 알려져 왔으나, 실제로는 ‘닮은꼴 많은 바위’ 정도의 의미 축소를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바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인들에게 발음상의 문제가 전혀 없고 만물초나 만물상이 동일한 일본식 발음임을 현지 일본인 교사와 일본인 관광객 등을 통해 확인하였다. “일본인에 의해 왜곡된 이름을 아직도 습관적으로 쓰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니 오랜 세월 선조들이 부르던 고유의 이름 ‘만물초’로 되돌리는 것이 지극히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봉래 양사언의 ‘삼일포 시’와 추사 김정희의 ‘용암(龍巖) 스님 영정 찬문’
금강산을 사랑하여 호를 금강산의 여름 명칭인 ‘봉래(蓬萊)’라 지은 양사언(楊士彦), 그는 삼일포(三日浦) 남쪽의 넓은 바위인 봉래대(蓬萊臺) 밑 봉래굴에 기거하며 글공부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굴속 바위 벽에 「삼일포」라는 시가 특유의 초서로 새겨져 있는데, 이를 저자가 목판에 새겨 이 책에서 처음으로 소개하고 있다.
봉래 양사언은 특히 초서로 유명하며 한국 서예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한 명필이며 시인이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양사언의 문집 『봉래시집(蓬萊詩集)』에 수록된 이 시 중의 ‘東來’라는 문구가 봉래굴 벽에는 ‘同來’로 달리 씌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금강산을 사랑하고 이 산의 여러 사찰 및 스님과 인연이 깊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내금강 마하연(摩訶衍) 율봉(栗峯) 스님의 제자인 용암(龍巖) 스님의 영정에도 글을 남겼다는 것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완당전집』에도 없는 이 글을 저자가 금강산 사찰에 관한 방대한 기록인 「유점사본말사지(楡岾寺本末寺誌)」에서 발췌하여 전문을 싣고 있다.

‘뤼순박물관’에서 환수를 기다리는 금강산의 범종
고려인 출신인 중국 원나라 기(奇) 황후가 자금을 보내 장안사를 중건(重建)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 금강산에서 범종 하나가 인천으로 반출되어 현재 중국 뤼순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저자는 기록에 의거하여 이 종이 장안사가 아닌 1346년 내금강 배점(拜岾)에 지은 종각에 걸었던 종으로 추정하고 있다. 배점의 종각은 일제강점기 때 폐허가 되고 종도 사라졌다는 기록도 있으나, 장안사 종각은 한국전쟁 때까지 건재했기 때문이다. 육백여 년 이상의 금강산 역사를 담고 있는 범종의 귀환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함을 이 책은 역설하고 있다.
이 밖에도 금강산에 관한 자료 하나라도 더 확보하기 위한 저자의 노력들을 이 책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이 책의 편집을 진행하던 중에 저자는 재미교포 송재권(宋在權) 씨의 도움으로 1930년대 장안사 범왕루를 배경으로 찍은 장안사여관 주인 할머니의 사진을 입수했는데, 이 사진 한 장으로 인해 그간 알 수 없었던 장안사 범왕루의 ‘금강산 장안사’ 좌우 편액글씨를 온전히 밝힐 수 있었다. 또한 내금강에 있는 김시습(金時習)의 필적이라고 전해지는 석각 사진 역시 매우 희귀한 자료로, 일제강점기에 대륙답사회(大陸踏査會)라는 곳에서 펴낸 『조선금강산대관(朝鮮金剛山大觀)』(1913)을 수집 발췌하여 이 책에서 공개하고 있다.
이 책은 우리의 보배와도 같은 금강산에 관한 많은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이 분야 연구의 일차자료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이를 통해 제이, 제삼의 연구가 나올 수 있는 조그마한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는 데 발간의 의의가 있다.

언론매체 기사
한국일보
동아일보
한겨레
경향신문
세계일보 

임병목 (편자)

임병목(林秉穆)은 1963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나, 서울대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치의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수원에서 치과를 운영하고 있다. 「제24회 대한민국전통미술대전」 서각(書刻) 부문에서 입선했고, 「제11회 대한민국 화성서예문인화대전(華城書藝文人畵大展)」 서각 부문에서 특선했으며, 금강산에 관하여, 그리고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 등 금강산과 관련한 인물들에 관하여 십여 년간 공부해 왔다.

 

상권

머리말 | Preface

제1장 서설
금강산 개관
금강산의 위치와 자연환경 | 금강산 탄생에 관한 전설들 | 금강산의 여러 가지 이름 | 천하명산 금강산의 진면목 | 금강산을 대표하는 유적과 시문 | 금강산에 관한 오해와 진실 | 금강산에 전해 오는 이야기들
역사 속의 금강산
상고시대 | 통일신라시대 | 고려시대 | 조선시대 | 일제강점기 | 대한민국

제2장 금강산과 추사 김정희
예산 향저(鄕邸)와 그 인근
추사고택(秋史故宅) | 천재 신동(神童)의 탄생 | 화순옹주(和順翁主) 홍문(紅門) | 소봉래(小蓬萊)라 부른 오석산(烏石山) | 화암사와 ‘시경(詩境)’ 글씨
추사의 생전 모습
자화상에 부치는 글, 자제소조(自題小照) | 봉은사(奉恩寺)의 추사 선생 | 마천십연(磨穿十硏) 독진천호(禿盡千毫) | 학문과 예술의 최고봉 추사 선생
추사의 금강관(金剛觀)
금강산에 대한 추사의 어록 | 금강산을 노래한 추사의 시
마하연(摩訶衍)과 「율봉영찬(栗峯影讚)」
마하연 | 「율봉영찬」
유점사(楡岾寺)와 「용암영찬(龍巖影讚)」
유점사 수충사(酬忠祠) 내의 고승 영정 | 용암 혜언(慧彦) | 「용암영찬」의 구성과 의미
추사와 백탑동(百塔洞)
추사의 백탑동 탐방 | 오심백탑기(誤尋百塔記)
추사와 신계사(神溪寺)
남북 공동 신계사 복원 | 신계사 만세루에 제하다[題神溪寺萬歲樓]
금강산에 남아 있던 추사 글씨의 흔적
장안사의 ‘화악(華嶽)’ | 유점사의 ‘부용추수루(芙蓉秋水樓)’
추사의 금강산시(金剛山詩), 과연 누구의 시인가
추사의 금강산시(金剛山詩) 한 수 | 김병연(金炳淵)의 시라는 주장 | 신좌모(申佐模)의 시라는 주장

제3장 금강산과 봉래 양사언
금강산의 여름 명칭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
서얼 출신의 대서예가 | 봉래의 금강산시(金剛山詩) 한 수
금강산 바위글씨의 최고봉, ‘봉래풍악 원화동천(蓬萊楓嶽 元化洞天)’
내금강 만폭동(萬瀑洞)에 새긴 여덟 자 | ‘봉래풍악 원화동천(蓬萊楓嶽 元化洞天)’을 평한 글과 작품들
육화암(六花巖)과 봉래도(蓬萊島)
확인 안 된 ‘육화암(六花巖)’ 글씨 | 어린아이 팔뚝 크기의 ‘봉래도(蓬萊島)’ 글씨
비래정(飛來亭)과 ‘날 비(飛)’자 전설
고래수염 붓으로 쓴 ‘날 비(飛)’ 자 | 비래정(飛來亭) 편액에 얽힌 이야기
봉래의 금강산시(金剛山詩)
봉래굴에 새겨진 「삼일포(三日浦)」 시 | 호방함의 극치 불정대(佛頂臺) | 신선의 흥이 들어 있는 발연반석(鉢淵磐石)

제4장 금강산에 남겨진 또 다른 이들의 자취
해동서성(海東書聖) 김생(金生)
김생의 유점사 현판 | 김생에 얽힌 일화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고운 최치원의 사산비명(四山碑銘) | 구룡폭(九龍瀑)에 새겨진 고운의 금강산시(金剛山詩) | 옥류동(玉流洞) 계곡에 새겨진 최치원의 이름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매월당이 금강산에 남긴 글 | 김시습에 관한 일화
금호(錦湖) 임형수(林亨秀)
당쟁에 희생된 짧은 생애 | 금호의 금강산시(金剛山詩)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우암의 금강산시(金剛山詩) | 금강산에 새겨진 우암의 필적
긍원(肯園) 김양기(金良驥)
앙지대(仰止臺)의 ‘긍원(肯園)’ | 긍원을 위한 추사의 시 한 수
하원(夏園) 정수동(鄭壽銅)
여항시인(閭巷詩人) 정수동 | 불수산(佛手散)과 금강산 | 정수동의 금강산시(金剛山詩)
난고(蘭皐) 김병연(金炳淵)
방랑시인 김삿갓 | 김삿갓의 금강산시(金剛山詩) | 금강산 스님과의 시 짓기 내기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
구룡폭포의 석각, ‘미륵불(彌勒佛)’ 세 글자 | 장안사의 현판 글씨들 | 창덕궁 희정당의 금강산도(金剛山圖)

제5장 금강산, 진정 우리만의 명산인가
동서양의 금강산에 대한 관심
중국 『사기(史記)』의 불로초(不老草)와 금강산 | 일본의 금강산 개발 | 영국 비숍(Bishop) 여사의 금강산 소개 | 독일 베버(Weber) 신부의 금강산 탐승 | 스웨덴 구스타프(Gustav) 왕자의 금강산 찬탄 | 미국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잡지의 금강산 소개
반출된 금강산도(金剛山圖)의 귀환
『겸재화첩(謙齋畵帖)』에 담긴 금강산 그림 | 다른 금강산 자료의 귀환도 기대하며

주(註)
금강산 연표
참고문헌
찾아보기

 

하권

머리말

내금강(內金剛)
철원역(鐵原驛)에 정차한 금강산행 전기열차 | 단발령(斷髮嶺) 터널 동쪽 입구 | 내금강역(內金剛驛) | 장안사(長安寺) 산문(山門) | 장안사(長安寺) 만천교(萬川橋) | 장안사(長安寺) 설경(雪景) | 좌측에서 본 장안사(長安寺) | 장안사(長安寺) 사성지전(四聖之殿) | 장안사(長安寺)에서 바라본 금강산 봉우리들 | 명경대(明鏡臺) 1 | 명경대(明鏡臺) 2 | 지옥문(地獄門) | 망군대(望軍臺) | 망군대(望軍臺)의 석응봉(石鷹峯) 오르는 길 | 안양암(安養庵) | 영원암(靈源庵) | 지장암(地藏庵) | 삼불암(三佛巖) | 백화암(白華庵)과 서산대사비(西山大師碑) | 백화암(白華庵) 부도밭과 비석 | 표훈사(表訓寺) | 정양사(正陽寺) | 정양사(正陽寺) 헐성루(歇惺樓) | 만폭동(萬瀑洞) 너럭바위에 새긴 글씨 | 보덕암(普德庵) | 벽파담(碧波潭) | 화룡담(火龍潭)과 사자암(獅子巖) | 마하연(摩訶衍) | 만회암(萬灰庵) | 묘길상(妙吉祥) | 장경암(藏經巖) | 용마석(龍馬石) | 조양폭포(朝陽瀑布) | 비로봉(毘盧峯)

외금강(外金剛)
온정리(溫井里) | 매바위산 전경 | 신계사(神溪寺) 대웅전(大雄殿) | 집선연봉(集仙連峯) | 보광암(普光庵) | 마애불(磨崖佛) | 앙지대(仰止臺) | 옥류동(玉流洞) | 연주담(連珠潭) | 구룡폭포(九龍瀑布) | 상팔담(上八潭) | 문주담(文珠潭) | 육화정(六花亭) | 만물초(萬物草) | 천선대(天仙臺) | 송림사(松林寺) | 은선대(隱仙臺) | 은선대(隱仙臺)에서 바라본 십이폭포(十二瀑布) | 유점사(楡岾寺) | 구룡소(九龍沼) | 소년소(少年沼) | 중내원(中內院) | 미륵봉(彌勒峯) 위의 거암(巨巖) |

해금강(海金剛)
적벽강(赤壁江) | 삼일포(三日浦) | 장전항(長箭港) | 해금강문(海金剛門) | 해만물초(海萬物草) | 총석정(叢石亭) | 사선봉(四仙峯) | 와총(臥叢) | 총석정(叢石亭) 뱃놀이 | 현종암(懸鐘巖)

주(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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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쇄 지도―금강산 조감도(金剛山 鳥瞰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