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몽각

전몽각(全夢角, 1931-2006)은, 20세기 후반 한국 중산층 가정사(家庭史)의 기록을 세밀하고도 아름답게 완성해낸 사진가다. 경제개발에 온 나라가 전력했던 1960-1980년대에 삼남매의 가장(家長)이 마주할 수 있는 풍경은 집과 일터가 대부분이었고, 사진광이었던 그는 카메라를 자신의 일상에 밀착시켜 마치 일기를 쓰듯 매일 셔터를 눌렀다. 대학 졸업 후 사진동인들과의 실험적인 작업부터, 네덜란드 유학시절과 경부고속도로 건설현장의 기록, ‘윤미네 집’과‘ 마이 와이프’ 연작에 이르기까지, 세월과 함께 축적된 이 사진들은 우리 현대사 기록의 지평에 올려놓아도 충분할 만큼 견고하고 충실한 아카이브다. 이 책에는 1950년대말부터 1990년대까지의 작업 중 엄선된 주요 작품이 아내 이문강의 사진설명과 함께 수록되어 있고, 문화 저널리스트 정재숙의 작가론은 전몽각의 삶의 궤적과 작품세계를 따뜻한 시선으로 포착하고 있다.

20세기 후반 한국현대사의 증언자들
국내외 뛰어난 사진가들의 엄선된 작품과 사진설명, 작가론과 연보가 밀도있게 담긴 ‘열화당 사진문고’는, 반년 만에 한국사진가 세 명을 새로이 선보이며 서른여덟 권째 시리즈를 다시 이어 간다. 이들은 모두 전쟁과 분단, 가난과 경제개발, 독재와 민주화라는 20세기 후반 한국현대사의 굴곡을 가까이에서 체험하고 기록했던 시대의 증언자들이다.
‘한국 일세대 사진가’ ‘한국 리얼리즘 사진의 선구자’ ‘한국 사진계의 산 증인’이라 불리는 임응식(林應植, 1912-2001)은,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계보를 따라 올라가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이름이다. 그는 종군기자로 육이오전쟁이라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순간을 경험함으로써 기존의 살롱사진 경향과 결별, 리얼리즘 사진미학을 추구한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기록한다는 사진의 특성이 그것을 회화에 종속되지 않은 독립된 예술장르이게 함을 주장한다. 그는 이를 토대로 사진을 예술의 반열에 올려놓음으로써 사진가들의 지위향상과 사진의 이론적 확립에 기여한 교육자이자 비평가이기도 했다.
전후(戰後) 온 나라가 전쟁의 상흔을 극복하고자 경제개발에 매달렸던 시기, 젊어서 사진가를 꿈꿨지만 생계를 위해 집과 일터만을 오가야 했던 평범한 삼남매의 가장(家長)이 있다. 우리에게 『윤미네 집』의 ‘윤미 아빠’로 널리 알려진 전몽각(全夢角, 1931-2006)은,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해 자신의 일상에 카메라를 밀착시켜 매일같이 셔터를 눌렀다. 직장과 가정이라는 한정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평생을 끈질기게 이어온 그의 작업은, 경부고속도로 공사현장을 비롯한 개발독재시대의 명암과 한국 중산층 가정사의 세밀한 풍경을 그 어떤 사진가보다도 더 견고하게 완성해냈다.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절실함 못지않게 민주화를 향한 열망 또한 뜨거웠던 그 시절, 일간지 사진기자로서 정치적 격변의 현장을 바쁘게 뛰어다녔던 김녕만(金寧万, 1949- )이 있다. 그는 광주 민주화운동 등 수많은 비극적 순간과,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못한 분단의 아픔을 추적하면서도, 그만이 지닌 고향 남도 특유의 해학적 시각을 잃지 않았다. 이 점이 동시대 다른 사진가들과 그를 구별해 주며, 무엇보다 그것이 ‘사진의 기록성과 역사성’이라는 토대 위에서 이루어졌다는 데 의미가 있다.

촘촘한 기록으로 엮어낸 한국 중산층 가족 생활사 ― 전몽각
나이 어린 아내가 출산 후 병원에서 돌아와 꼬물거리는 자신의 피붙이와 누워 있는 것(p.89)을 바라본 만혼(晩婚)의 가장은 그 기적의 순간을 사진으로 담아내기 시작했다. 엄마가 손수 만들어 입힌 옷을 입고 나선 첫 나들이(p.93), 조막만 한 손으로 연필을 쥐고 숙제를 하는 모습(p.111), 어느덧 여고생이 되어 교복을 입은 매무새를 가다듬는 모습(p.129) 등 딸 윤미가 태어나던 날부터 시집가던 날까지, 아버지가 수시로 들이대는 카메라 앞에서 가족의 나날은 모두 발가벗겨진다. 전몽각의 대표작 『윤미네 집』은 한 아이의 성장과정뿐만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생활했던 집안의 여러 공간들, 살림살이와 아이들의 옷가지, 시장이나 뒷산과 같은 동네 풍경까지 담고 있어, 이십세기 후반 대한민국 중산층의 생활사로 읽어도 좋을 하나의 풍속도다. ‘윤미네 집’이라는 한 가정의 역사에 시대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우리나라의 사회사가 된 셈이다.
토목공학자이자 교육자이기도 했던 전몽각은, 1960년대 국립건설연구소에 재직 중 떠난 네덜란트 델프트 공대 유학시절(1967)에 『윤미네 집』의 출판을 처음 구상했었다.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그에게 가족의 기록은 대학시절부터 품어온 사진가로서의 꿈을 실현시킬 하나의 대안이었고, 이는 아내 이문강에게 보낸 편지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곳에서도 그러하거니와 한국에서도 직업 전환을 하지 않는 한 사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고, 지금의 희망으로는 윤호나 좀 자라고 하면 언제부터 얘기한 ‘나의 집’이란 포토에세이집을 하나 출판해 볼 생각을 다분히 있어.” 이러한 그의 열정은 먼 타지에서도 계속돼, 네덜란드 서민들의 소박한 생활상을 틈틈이 기록했고, 그 사진들의 일부가 이번 사진문고에 처음 공개되었다.(pp.29-47)
전몽각은 귀국 후 근무하게 된 경부고속도로 건설현장(1968-1970), 호남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 현장(1970-1972)의 기록사진 또한 상당히 많이 남겼다. 집에서 윤미를 바라보며 사진으로 육아일기를 쓰듯, 건설현장에서는 작업일지를 찍은 것이다. 경부고속도로는 외국의 품질관리 기준을 적용하여 시공한 국내 최초의 공사현장이었기에 흙의 성질, 무게와 밀도를 측정하는 장면(pp.53-61)이 자주 등장하고, 급박하게 진행된 일정이었던 만큼 감독관이나 건설부장관 앞에서 진행되는 노상(路上) 브리핑 풍경(pp.63-65)도 많다. 특히 노선이 기존의 국도가 아닌 논과 밭밖에 없는 완전히 새로운 길이었기에, 사람들이 살고 있는 초가집 바로 앞에서 불도저가 지나가는 위태로운 장면들(pp.69-77)이 자주 눈에 띈다. 전몽각은 최단 공기(工期)에 최저 예산으로 이루어진 대공사가 초래한 여러 부작용들을, 모든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작업자로서 몹시 안타까워했는데, 이는 그가 생전에 남긴 여러 글들에서 인용한 사진설명 곳곳에 드러나 있다. 또한, 이 책에는 전몽각의 아내이자 윤미의 엄마인 이문강(李文江)이 직접 쓴 사진설명이 수록되어 있다.

언론매체 기사
CNB저널
오마이뉴스

전몽각 (저자)

전몽각(全夢角, 1931-2006)은 평북 용천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네덜란드 델프트 공과대학 준석사과정 수공학(水工學) 전공을 졸업했다. 국립건설연구소에 재직하며 경부고속도로 건설사무소에 근무했고, 호남고속도로, 영동속도로 건설에 참여했다. 대학 재학 시절부터 사진가 모임 ‘싸롱 아루스’ 산하 연구단체인 현대사진연구회에서 활동하며 사진작업을 했으며, 장녀 윤미가 태어나서 시집가는 날까지의 모습을 기록한 사진집 『윤미네 집』(1990)은 많은 이들에게 지금까지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그 외 『서울 전몽각 사진집』(1999), 『전몽각』(2013) 등의 작품집이 있다.

정재숙 (작가론)

정재숙(鄭在淑, 1961- )은 고려대학교에서 교육학과 철학, 성신여대 대학원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하고, 현재  『중앙일보』 문화전문기자로 재직 중이다. 문화부 기자로 머물기 위해 여러 언론 매체를 타고 넘었으며, 문화 울타리로 묶이는 다양한 영역의 취재와 글쓰기를 하고 있다. 『전몽각』의 작가론을 썼다.

이문강 (사진설명)

이문강(李文江, 1940- )은 전몽각의 아내이자, 『윤미네 집』의 윤미 엄마이다. 『전몽각』의 사진설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