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

‘열화당 복각총서’ 세번째 권 『꽃다발』

‘열화당 한국근현대서적 복각총서’는 한국에서 근대적 출판이 시작되던 1800년대 말에서 육이오 이후 사회 전반이 재건되던 1950-60년대 사이에 출간되었던 책과 기록물 중 다시 선보일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을 엄선하여, 복각본(復刻本) 형식의 한정본으로 선보이는 시리즈다. 지난 시기의 아름다웠던 서적(書籍)을 다시금 출판함은, 온고지신(溫故知新), 법고창신(法古創新)의 배움의 자세로 오늘 우리가 지향해 나가야 할 출판의 사표(師表)로 삼기 위함이며, 이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소중한 자료를 공유함으로써 학문과 문화예술의 저변을 확대하는 데에도 기여하고자 한다.
앞서 선보인 『조선요리제법』(방신영 저, 한성도서주식회사, 1911년 초판)과 『사도문(私禱文)』(세실 쿠퍼 저, 대한성공회, 1932년 초판)에 이어 시리즈의 세번째 권으로 선보이는 것은 1944년 시인 김억의 편역으로 박문서관(博文書館)에서 출간된 조선조 여류시인들의 시선집 『꽃다발』이다.

번역 시문학의 선구자 김억

김소월의 스승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안서(岸曙) 김억(金億)은 1896년 평북 정주 출생으로, 오산학교(五山學校)와 숭덕학교(崇德學校) 교사, 『동아일보』 『매일신보』 기자, 경성 중앙방송국 차장 등으로 활동했다. 1912년부터 창작시를 발표했는데, 그와 함께 투르게네프(I. S. Turgenev), 베를렌(P.-M. Verlaine), 구르몽(R. de Gourmont) 등의 시를 번역 소개함으로써 당대 시단(詩壇)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우리나라 최초의 역시집 『오뇌(懊惱)의 무도(舞蹈)』(1921)는 베를렌, 보들레르(C.-P. Baudelaire) 등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번역 소개함으로써 이 땅에 새로운 시적 기풍을 착근(着根)시키는 역할을 했다.
김억의 번역활동은 1910-20년대에 절정의 성과를 이뤄, 『오뇌의 무도』를 비롯하여 『잃어진 진주』 『기탄자리』 『신월(新月)』 『원정(園丁)』 등 많은 번역시집을 선보였는데, 이 번역시집들에서 그는 프랑스 상징주의 시와 타고르(R. Tagore) 시를 조선 시단에 소개했고, 이어 번역 대상을 중국 한시로, 한국 한시로, 일본 단가(短歌)로 점점 넓혀 가게 된다. 그 성취가 『망우초(忘憂草)』 『동심초(同心草)』 『애국백인일수』, 그리고 『꽃다발』 등으로 이어진 것이다.

번역자의 언어와 숨결을 반영하는 ‘창작적 의역’

안서는 양주동(梁柱東)과 번역관(飜譯觀)을 둘러싼 일대 논쟁을 치른다. 양주동이 ‘충실한 직역(直譯)’을 주장한 데 대해 김억은 ‘창작적 의역(意譯)’을 편듦으로써 정면 충돌한 것이다. 이때 김억은 원작(原作)을 문자 그대로 옮기는 보수적 의미의 번역이 아니라, 원작의 착상과 의미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번역자 자신의 언어와 숨결을 반영하는 ‘창작적 번역’을 주장했고, 스스로 그러한 번역을 실천했다. 그 점에서 김억처럼 확연한 번역관을 가지고 시종일관 번역을 수행한 이는 근대문학사를 통틀어 없을 것이다. 김억의 이러한 견고한 번역관은 원작만이 진품성(originality)을 지닌다는 가설을 무너뜨리고, 번역시도 새로운 진품성을 파생적으로 획득한다는 점을 선명하게 보여 주었다. 그의 목표는 ‘원시(原詩)보다 뛰어난 번역시’에 있었고, 번역이 또 하나의 근대시를 만들어 가는 과정임을 실물감 있게 보여 준 것이다. 이러한 확고한 신념에서 결실을 맺은 또 하나의 번역시집이 바로 『꽃다발』이다.

원시(原詩)를 중심으로, 번역시와 재창작시를 배치한 독특한 구성

책은 조선 여류시인 별로 시편이 가장 많은 삼의당(三宜堂) 김씨(金氏)를 시작으로 계생[桂生, 매창(梅窓)], 난설헌(蘭雪軒), 운초[雲楚, 부용(芙蓉)], 죽서(竹西), 옥봉(玉峯), 유한당(幽閑堂), 금원(錦園), 정일당(靜一堂), 송씨(宋氏), 영수각(令壽閣) 서씨(徐氏), 이씨(李氏), 온정(溫亭), 승이교(勝二喬), 황진이(黃眞伊), 사임당(師任堂) 신씨(申氏) 등 모두 예순여섯 명의 여성 시인들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원작을 사이에 두고 앞에는 절구(絶句) 형식 그대로의 번역문을 싣고, 뒤에는 시조(時調) 형식의 번역문을 싣고 있는 점이다. 시조 형식을 시도한 것은, 번역의 일차 결과를 우리 전통 양식으로 재창작함으로써 자신의 전통지향적 미의식을 뚜렷이 드러낸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번역시집에서 원작 한시와 김억의 번역시와 그가 재창작한 시조를 모두 감상함으로써 이 시집의 독특한 위상과 체재를 만나게 된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억눌려 살았던 여인들의 진솔한 노래

김억은 이 시집을 일러 “연대순을 밟은 진정한 사화집”은 아니고 다만 “시만을 보고서 즐기자는 과객”으로서의 임무를 다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의미있는 말을 던진다.

“공부자(孔夫子)께서는 시를 ‘사무사(思無邪)’라고 평을 하셨거니와, 이 여류시인(女流詩人)들의 시를 보면 사대부집 아낙네들의 노래에는 어째 그런지 일부러 감정을 눌러 버리고 점잖은 체 꾸민 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소실(小室)과 시기(詩妓)의 것에는 조금도 감정을 거짓한 흔적이 없으니, 만일 ‘사무사’가 옳은 말씀이라면 이 점에서 아낙네들의 노래는 낙제(落第)외다. 그리고 소실이니 시기니 하는 이들의 것이 되려 급제(及第)니 대단히 재미있는 대조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시집에서 정말 가치있는 작품은 사대부집 아낙들의 것이 아니라, 소실이나 기생처럼 당대 가부장 사회에서 억눌렸던 이들의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도 이 시집을 읽는 동안 그녀들 작품에서 진정한 실감을 얻게 된다. 어쨌든 권두사에서 김억은 “원시(原詩)의 뜻이나 따다가 다시 만들어 놓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 나의 번역 방법”이고 “첫 번 역(譯)에서는 될 수 있는 대로 원시(原詩)를 그대로 옮기려고 하였고, 둘째인 시조(時調)에서는 가장 자유로운 태도를 취하자는 의사(意思)”를 표명했다. 『꽃다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바로 여기에 있다.

김억 (역자)

안서(岸曙) 김억(金億)은 1896년 평북 정주 출생으로, 오산학교(五山學校)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게이오의숙(慶應義塾) 영문과에서 수학했다. 오산학교와 숭덕학교(崇德學校) 교사, 『동아일보』와 『매일신보』 기자, 경성 중앙방송국 차장 등을 역임했다. 1912년부터 창작시를 발표했고, 우리나라 최초의 번역시집 『오뇌(懊惱)의 무도(舞蹈)』(1921)를 시작으로 『잃어진 진주』 『기탄자리』 『신월(新月)』 『원정(園丁)』 등의 번역시집을 펴냈으며, 이후 번역 대상을 중국 한시, 한국 한시, 일본 단가(短歌)로 넓혀, 『망우초(忘憂草)』 『동심초(同心草)』 『애국백인일수』 『꽃다발』 등을 선보였다. 1923년 근대문학사 최초의 개인 창작시집 『해파리의 노래』를 펴내기도 했다. 『창조』와 『폐허』의 동인으로 활동했다.

유성호 (글쓴이)

유성호(柳成浩)는 1964년 경기도 여주 출생으로,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있다. 지은 책으로 『한국 현대시의 형상과 논리』 『상징의 숲을 가로질러』 『근대시의 모더니티와 종교적 상상력』 등이 있다.

권두사(卷頭辭)

삼의당(三宜堂) 김씨(金氏)
춘흥(春興) / 사창(紗窓)에 해지고 / 배꽃 / 거울을 들고 / 제비 / 지는 복사꽃 / 뉘탓에 / 깊은 밤에 / 달 / 적성(笛聲) / 농촌 여름 풍경 / 화월야(花月夜) / 님에게 / 목적(牧笛) 1 / 목적(牧笛) 2 / 목적(牧笛) 3 / 추야월(秋夜月) 1 / 추야월(秋夜月) 2 / 추야월(秋夜月) 3 / 추야우(秋夜雨) 1 / 추야우(秋夜雨) 2 / 서창(西窓) / 청야급수(淸夜汲水) / 첫여름 / 성중(城中)을 지나며 / 꽃을 꺾고 / 봄을 보내며 / 꾀꼬리 / 춘경(春景) / 꽃이 지자

계생[桂生, 매창(梅窓)]
가는 봄 지는 꽃에 / 가을밤 / 무어라 보슬비는 / 자탄(自嘆) / 가락지 / 춘수(春愁) / 배 띄우고 / 첫가을 / 부여(扶餘)서 / 님을 생각하고 / 꿈을 깨니 / 취(醉)한 이에게 / 금장도 / 장사(庄士) / 소유(消遺) / 이내 속야 / 병중에 / 뜬 풍설(風說) / 님에게 / 자상(自傷) / 자한(自恨) / 옷을 뀌매며 / 춘사(春思) / 탄식

난설헌(蘭雪軒)
호수에 배 띄우고 / 양류지사(楊柳枝詞) / 봄철인제 / 규원(閨怨) 1 / 규원(閨怨) 2 / 밤풍경 / 죽지사(竹枝詞) 1 / 죽지사(竹枝詞) 2 / 원앙이 잠을 깨리 / 강남곡(江南曲) / 송별(送別) / 봄비 / 치운 밤에 / 이별이 잦아 / 빈녀(貧女)의 노래 1 / 빈녀(貧女)의 노래 2 / 빈녀(貧女)의 노래 3 / 빈녀(貧女)의 노래 4

운초[雲楚, 부용(芙蓉)]
고향 생각 / 구름 / 꿈 깨고 나니 / 탄식하는 동무에게 / 낙매(落梅)를 보고 / 드나는 세월 / 집 생각 / 늦은 봄풍경 / 매화꽃 / 가매화(假梅花) / 봄 간 뒤에 / 칠석(七夕)에 / 흐르는 물 / 속은 딴데 두고 / 늦봄에 길 떠나며 / 저 등불 얄굿고야 / 한거(閒居) / 시(詩)와 술

죽서(竹西)
이별은 웨 하고서 / 매화꽃 / 떠나신 님에게 / 외로운 밤 / 설음 / 고향 생각 / 밤이건만 / 이 이한(離恨) / 늦은 봄 저녁에 / 가을에 벗을 / 이별이 없어란들 / 제야(除夜)에 / 그 뉘가 더욱 / 적은 새에게

옥봉(玉峯)
꿈 / 님을 예고 / 첫가을 / 봄아츰 / 가신다 하니 / 가을밤 / 칠석(七夕) / 까치짝짝 / 저 닭아 우지마라 / 물으시거든 / 다락에서

유한당(幽閑堂)
피리 소리 듣고서 / 송별(送別) / 매화 / 동생(同生)을 생각하고 / 달을 우러르며

금원(錦園)
봄시름 / 호정(湖亭)서 / 용산선유(龍山船遊) / 실비 오는 날 / 해당(海堂)꽃

정일당(靜一堂)
제야(除夜)에 / 밤에 / 탄식 말고서 / 가을 매암이

송씨(宋氏)
마천령(摩天嶺)에서 / 물욕(物慾)이 없노라고 / 취(醉)하니

영수각(令壽閣) 서씨(徐氏)
겨울밤에 / 맑은 밤에 / 애별(哀別)

이씨(李氏)
흰 구름 가는 물만 / 시름 / 오동나무

온정(溫亭)
편지 / 내 몸을 비(比)기노라 / 믿을 곳 없어

승이교(勝二喬)
사창(紗窓)엔 달만 밝고 / 갈바람이 치마폭을

취선(翠仙)
병풍의 원앙이 / 예전 놀든 곳

황진이(黃眞伊)
꿈 / 반달

양사언(楊士彦) 소실(少室)
기정(寄情) / 님은 가고

계월(桂月)
무심(無心)한 실버들 / 무심(無心)튼 것이

최낭(崔娘)
길 / 은하(銀河)

사임당(師任堂) 신씨(申氏)
고산(故山)을 돌아보며

이제현(李濟賢)
들뜨는 마음

여승(女僧) 혜정(慧定)
가을비

백화당(百花堂) 주인(主人)
홀어미의 탄식

제위보녀(濟危寶女)
향(香)내는 언제나

정씨(鄭氏)
진달내꽃

성씨(成氏)
소유(消遺)

김성달녀(金盛達女)
옛마을

덕개씨(德介氏)
비파(琵琶)로 이 이한(離恨)을

김씨(金氏)
비소리

도화(桃花)
복송아꽃

연희(蓮喜)
칠석(七夕)에

어간동(於干洞)
부여(扶餘)를 지나며

태일(太一)
기럭이 신세

소홍(小紅)
눈보라치는 밤

난향(蘭香)
송별(送別)

죽향(竹香)
저녁풍경

억춘(憶春)
가을도 깊어 가고

조운(朝雲)
님에게

일타홍(一朶紅)
달을 보고

소옥화(小玉花)
송별(送別)

노화(蘆花)
수영

부용(芙蓉)
봄바람

취련(翠蓮)
장마를 만나

계월(桂月)
광한루(廣寒樓)서

양양기(襄陽妓)
이별의 교훈

복개(福介)
희우(喜雨)

고양촌녀(高陽村女)
싀집가는 딸에게

설요(薛瑤)
자탄(自嘆)

최씨(崔氏)
소소음(蕭蕭吟)

임벽당(林碧堂)
김씨(金氏) 두메에 사니

심씨(沈氏)
귀양가신 아버지

최씨(崔氏)
해를 우러르고

김씨(金氏)
첫서리

남씨(南氏)
아기를 잃고

김천민가녀(金川民家女)
혼잣소리

정씨(鄭氏)
님 생각

능운(凌雲)
님을 기다리며

안원(安媛)
탄식

일기홍(一妓紅)
이별

소염(小琰)
점으는 봄저녁

연단(硏丹)
이별

평양녀(平壤女)
복송아

취련(翠蓮)
님에게

의주기(義州妓)
떠나랴는 이에게

추향(秋香)
가을달

곽리자고처(霍里子高妻)
공후곡(箜篌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