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응식

임응식(林應植, 1912-2001)은 1950년대 '생활주의 사진'을 주창하고 나서며 사진의 이론적 체계와 예술로서의 지위를 확립시킨 한국사진의 선구자다. 여러 사진술을 습득하던 초기에는 살롱사진의 경향을 보이기도 했지만, 종군기자로서 한국전쟁을 경험한 후 리얼리즘 사진의 중심에 서게 된다. 1960년대부터는 '한국의 고건축' '한국의 예술인' '명동'과 같은 연작 작업을 통해 우리 전통문화유산과 뛰어난 예술가, 변모하는 도시풍경을 기록하는 일에 평생 매진했다. 또한 사진가로서뿐만 아니라 교육자이자 비평가로서 행한 수많은 업적을 돌아볼 때, 한국사진사에서 차지하는 임응식의 위치는 독보적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1930년대 회화적 사진부터 1990년대 명동풍경에 이르기까지의 주요 작품을, 사진설명과 함께 일별해 볼 수 있도록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20세기 후반 한국현대사의 증언자들
국내외 뛰어난 사진가들의 엄선된 작품과 사진설명, 작가론과 연보가 밀도있게 담긴 ‘열화당 사진문고’는, 반년 만에 한국사진가 세 명을 새로이 선보이며 서른여덟 권째 시리즈를 다시 이어 간다. 이들은 모두 전쟁과 분단, 가난과 경제개발, 독재와 민주화라는 20세기 후반 한국현대사의 굴곡을 가까이에서 체험하고 기록했던 시대의 증언자들이다.
‘한국 일세대 사진가’ ‘한국 리얼리즘 사진의 선구자’ ‘한국 사진계의 산 증인’이라 불리는 임응식(林應植, 1912-2001)은,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계보를 따라 올라가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이름이다. 그는 종군기자로 육이오전쟁이라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순간을 경험함으로써 기존의 살롱사진 경향과 결별, 리얼리즘 사진미학을 추구한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기록한다는 사진의 특성이 그것을 회화에 종속되지 않은 독립된 예술장르이게 함을 주장한다. 그는 이를 토대로 사진을 예술의 반열에 올려놓음으로써 사진가들의 지위향상과 사진의 이론적 확립에 기여한 교육자이자 비평가이기도 했다.
전후(戰後) 온 나라가 전쟁의 상흔을 극복하고자 경제개발에 매달렸던 시기, 젊어서 사진가를 꿈꿨지만 생계를 위해 집과 일터만을 오가야 했던 평범한 삼남매의 가장(家長)이 있다. 우리에게 『윤미네 집』의 ‘윤미 아빠’로 널리 알려진 전몽각(全夢角, 1931-2006)은,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해 자신의 일상에 카메라를 밀착시켜 매일같이 셔터를 눌렀다. 직장과 가정이라는 한정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평생을 끈질기게 이어온 그의 작업은, 경부고속도로 공사현장을 비롯한 개발독재시대의 명암과 한국 중산층 가정사의 세밀한 풍경을 그 어떤 사진가보다도 더 견고하게 완성해냈다.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절실함 못지않게 민주화를 향한 열망 또한 뜨거웠던 그 시절, 일간지 사진기자로서 정치적 격변의 현장을 바쁘게 뛰어다녔던 김녕만(金寧万, 1949- )이 있다. 그는 광주 민주화운동 등 수많은 비극적 순간과,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못한 분단의 아픔을 추적하면서도, 그만이 지닌 고향 남도 특유의 해학적 시각을 잃지 않았다. 이 점이 동시대 다른 사진가들과 그를 구별해 주며, 무엇보다 그것이 ‘사진의 기록성과 역사성’이라는 토대 위에서 이루어졌다는 데 의미가 있다.

‘생활주의 리얼리즘’ 사진의 선구자 ― 임응식
“사진작품은 (…) 삶 속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표현해야 한다. 그것이 아름다운 것이든 추한 것이든 참혹한 것이든 그 모든 것은 사진작품의 대상이다. 내가 새로이 깨달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것을 ‘생활주의적 사실주의’라고 명명하고, 내가 가는 사진가의 길은 바로 이 길이라고 생각했다.”
육이오전쟁 발발과 함께 미국무성 소속의 종군기자로 전쟁터를 누비게 된 경험은, 미적인 대상만을 찍던 임응식이 인간과 사회의 문제에 주목하도록 한다. 가게 앞에 서서 음식을 내려다보고 있는 허기진 아비와 아이의 모습(p.59), 청계천에 빼곡히 들어선 판잣집(p.73), 정작 자신은 먹어보지도 못할 미제 초콜릿이며 과자를 파는 노점 수레의 어린 소녀(p.55), 벽에 기대 ‘求職’이라는 글자를 크게 쓴 종이를 허리에 맨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청년(p.67)은, 더 이상 그가 아름다운 대상만을 찾아다닐 수 없게 했던 것이다. 그의 이같은 ‘생활주의 리얼리즘’ 사진들은 당시 한국사진계에 일대 혁명과도 같은 사건이었지만, 이후 사진가들이 과거에 지배적이던 회화적 살롱사진을 상당 부분 극복하고 사회 현실에 눈을 돌리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 그의 작품을 생활주의로만 한정짓는 것은 임응식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임응식은 일정한 주제를 내걸고 작품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는데 ‘한국의 고건축’ ‘한국의 예술인’ ‘명동’과 같은 연작 작업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의 고건축’(pp.101-113)은 한국이 경제적으로 근대 산업사회로 나아가게 되고 세계 속의 한국이라는 자의식이 싹트자 우리의 문화유산과 전통의 의미를 되새겨 보려는 자각 속에 이루어졌다. ‘한국의 예술인’(pp.115-141)은 그가 『공간』의 주간으로 일하면서 스스로 선택한 주제로, 다양한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모습을 생전에 담은 사진으로서 예술적 가치와 함께, 총 백오십 인의 사진을 수록한 방대한 기록으로서도 가치가 있다. 그리고 전쟁으로 황폐화된 1950년대부터 그가 세상을 뜬 2001년까지 거리 곳곳을 카메라로 담은 ‘명동’(pp.77-99)은 임응식이 가장 오랫동안 애정을 가졌던 주제였다. 마지막 순간까지 손에서 카메라를 놓지 않았던 그의 사진 인생은 그 자체로 한국 사진계가 걸어온 역사가 되었다.

임응식 (저자)

임응식(林應植, 1912-2001)은 1934년 일본 도시마 체신학교(豊島遞信學校)를 졸업하고, 같은 해 일본 사진잡지 『사진살롱』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사진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한국전쟁 중 인천상륙작전 보도사진반원으로 종군한 뒤, ‘생활주의 사진’을 주창하며 리얼리즘 사진미학의 중심에 서게 된다. 1952년 한국사진작가협회를 조직하고 회장을 역임했으며, 1953년부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사진강좌가 개설되면서 여러 대학에 출강해 후학을 양성했다. 주요 작품집으로 ‘한국의 고건축’ 시리즈(1976-1979),『임응식 사진집』(1979), 『풍모(風貌)』(1982), 『임응식 사진집』(1995), 『임응식』(2013) 등이 있으며, 회고록으로『내가 걸어온 한국사단』(1999)이 있다.

지상현 (작가론)

지상현(池尙炫, 1975- )은 서울대학교 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에서 「임응식의 ‘생활주의 사진’에 대한 재고」(2005)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림미술관 수석 큐레이터를 거쳐, 현재 신세계갤러리 수석 큐레이터로 재직 중이다. 『임응식』의 작가론을 썼다.

열화당 편집실 (사진설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