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 가로지르기

 ‘우연의 전당’에서의 모호한 여정

루브르 박물관의 전시실, 그 안에 가득한 사람들. 저마다 손에 카메라를 들고 바삐 움직인다. 진열품을 찍은 사진에는 우연히도 다른 사람의 모습도 함께 담긴다. 나도 역시 누군가의 사진에 찍혔을지 모른다. 나는 사진 속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감상에 몰입한 나머지 그 작품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지는 않을까. 어쩌면 그 사진에는 내 머리만 찍혀 남아 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비드 프뤼돔(David Prudhomme)의 『루브르 가로지르기(La traversée du Louvre)』는 박물관에서의 우연한 마주침과 발견에 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 다비드는 의뢰받은 만화의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루브르를 종횡무진 돌아다닌다. 갖가지 사각형 틀이 가득한 박물관, 다비드의 눈에 루브르는 거대한 만화책처럼 느껴진다. 그는 말이 아닌 형태와 몸짓으로 대화하는 루브르를 발견한다. 자신의 작업을 묻는, 수화기 너머의 친구 편집자에게 다비드는 말한다. “무언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 세상의 모든 언어를 모아 봐야 소용없어. 여기서 언어들은 조용히 서로 마주칠 뿐이야.”
또한, 다비드는 루브르에서 만나기로 한 여자친구 잔을 찾아다닌다. 곁의 다른 관람객들은 ‘그녀’로 대표되는 무언가를 찾아 헤맨다. 혼란스럽게 박물관을 돌아다니는 관람객들의 존재는, 작가 프뤼돔이 보기에 작품을 작품일 수 있게 하는 가장 ‘본질적인’ 것이다. 관람객이 바라보지 않는다면 작품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옮긴이 정연복(鄭然福)은 이렇게 말한다. “프뤼돔은 ‘모나리자의 방’에서 <모나리자>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관람객에 더 주목한다. 관람객들은 각기 다양한 방식과 표정으로 모두 <모나리자>를 보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을 읽는 독자가 <모나리자>의 위치에서 ‘모나리자의 시선으로’ 관람객들을 바라보게 된다는 점이다. 루브르는 관람객이 작품을 보러 오는 곳이지만, 작품에게는 관람객이 시선의 대상이 되는 곳이라는 작가의 문제의식을 잘 보여 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권두에서 다비드가, “내 맘에 드는 건,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일이야”라고 말하는 것도 같은 의미다. 나아가, 관람객이 바라봄으로써 비로소 작품이 되는 전시물처럼, 관람객 또한 루브르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스스로를 전시한다고 할 수 있다. 다양한 관람객들로 인해 루브르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박물관-사람’이 된다. 그러한 ‘우연의 전당’에서 관람객은 어떤 규칙도 순서도 없이 미끄러지듯 배회한다.
한편 끝내 다비드와 만나지 못한 잔은, 루브르에 전시된 다양한 두상(頭像)처럼, 혹은 누군가의 사진에 담긴 머리처럼, 갑자기 머리가 잘려 루브르를 떠돈다. 만화의 이야깃거리를 찾아, 또 여자친구를 찾아 헤매던 다비드도 집에 돌아와 잔을 만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그렇지만 그러한 헤맴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곧바로 ‘또 다른 루브르 가로지르기’가 이어지는 것은 그래서일까.
‘또 다른 루브르 가로지르기’에는 루브르의 작품과 관람객의 규모뿐 아니라, 창문의 개수부터 매일 소비되는 쓰레기 봉지 수까지, 루브르를 설명하는 다양한 숫자들로 나열돼 있다. 2011년 루브르에 다녀간 관람객은 900만 명 정도인데, 그들이 찍는 사진은 매일 35만 장에 이른다. 관람객들은 추억과 감동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도 있다. “2011년에 6,034개의 물건들이 분실물센터에 등록되었고, 그 중 주인이 찾아간 것은 1,548개이다. (…) 이 물건들은 주인이 ‘잊어버리고 간’ 것만 있는 건 아니다. 소매치기들이 물건을 숨겨 놓는 곳〔가천장(假天障), 엘리베이터 기계실, 유리창틀 위쪽, 조각상의 받침대…〕에서도 발견된다.”

루브르 박물관과 만화의 유쾌한 만남

루브르 박물관과 프랑스 만화전문출판사 퓌튀로폴리스의 기획으로 열화당에서 선보이기 시작한 ‘루브르 만화 컬렉션’. 2007년 첫번째 권인 니콜라 드 크레시의 『빙하시대』로 시작한 이 시리즈의 일곱번째 권 다비드 프뤼돔의 『루브르 가로지르기』를 선보인다. 가장 고전적인 예술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가장 현대적인 예술매체인 만화와 손잡고 선보이기 시작한 이 시리즈는, 지금까지 정형화되고 고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봐 왔던 ‘박물관’을 배경으로 ‘예술’ ‘예술가’ ‘예술작품’ 등의 소재를 만화가의 자유로운 상상력에 맡김으로써, 예술에 관한 여러 담론들을 신선한 이야기로 대중과 함께 공감해 보자는 의도로 기획되었다. 독특한 이야기 전개와 개성 넘치는 그림으로 지금껏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새로운 루브르를 보여 줄 이 만화들은, 만화 장르 특유의 유머와 위트로 우리의 지성과 감성을 유쾌하게 자극할 것이다.

언론매체 기사
중앙일보 칼럼

다비드 프뤼돔 (저자)

다비드 프뤼돔(David Prudhomme)은 1969년 프랑스 투르에서 태어났다. 유쾌하고 장난기 많은 성격의 프뤼돔은, 보모가 소장하고 있던 ‘아스테릭스(Astérix)’ 전집을 보면서 대여섯 살부터 만화를 그리고 싶어 했다. 1992년 앙굴렘만화학교 학생 시절, 파트릭 코티아스(Patrick Cothias)의 이야기를 토대로 『비밀의 니농(Ninon secrète)』을 그리기 시작해 2004년까지 여섯 권의 책을 글레나 출판사에서 펴냈다. 2004년과 2008년 앙굴렘 만화 페스티벌을 비롯한 다수의 만화 페스티벌에서 수상했고, 퓌튀로폴리스에서 파스칼 라바테(Pascal Rabaté)와 함께 연작으로 펴낸『플라스틱 마리(La Marie en Plastique)』(2006-2007)를 통해 사소한 일로 좌충우돌을 벌이는 가족의 일상사를 그려냈다. 2003년에는 조르주 브라상(Georges Brassens)의 소설을 각색하기도 하고, 르네상스기의 프랑스 시인 프랑수아 비용(François Villon)의 시 두 편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며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이어 갔다. 마르크-앙투안 마티외(Marc-Antoine Mathieu), 파스칼 라바테 등 다섯 명의 작가와 함께 그린 땅속 여행 이야기 『동굴암벽화!(Rupestres!)』(2011)를 출간했으며, 2012년 『루브르 가로지르기』로 제네바시 제정 만화상(Prix de la ville de Genéve pour la bande dessinée)에서 일등에 해당하는 국제상(Prix international)을 수상했다.

정연복 (역자)

긴이 정연복(鄭然福)은 1963년생으로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서 「몰리에르의 발레-희극 연구」(1998)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덕여대 강의전임교수를 역임하고 프랑스 파리로 가서 루브르학교 1기 과정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서울대학교, 아주대학교, 중앙대학교에서 프랑스 예술과 문화,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등을 강의했고, 현재 프랑스 파리에 체류하며 번역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역서로 앙리 베르그송의 『웃음』(1992), 장 보드리야르의 『섹스의 황도』(1993), 에릭 리베르주의 『미지의 시간 속으로』(2009), 베르나르 이슬레르와 장-클로드 카리에르의 『루브르의 하늘』(2010), 크리스티앙 뒤리외의 『매혹의 박물관』(2012)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