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표정

풍요로운 도시를 향한 공공미술 순례

뉴욕 맨해튼에서 기념사진 촬영의 명소가 된 로버트 인디애나의 〈러브〉, 일상적 오브제로 충격적 작품을 시도한 미국의 조각가이자 팝아트의 대표 작가 클래스 올덴버그의 〈셔틀콕〉,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우리나라 서울 흥국생명 앞에 설치된 조너선 보로프스키의 〈해머링 맨〉 등은 ‘심미성’ ‘장소 적합성’ ‘시민사회와의 소통’이 조화를 이룬 성공적인 공공조형물로 꼽힌다. 하지만 우리 주변의 공공미술이 늘 훌륭했던 것만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연면적 일만 제곱미터 이상의 건축물을 신축 또는 증축할 때 건축 비용의 1퍼센트 이상을 미술장식에 이용하도록 하는 문화예술진흥법, 일명 ‘1퍼센트법’에 따라 타율의 예술을 만들어 왔다. 이러한 법제도에 의한 예술은 반강제의 예술이 될 수밖에 없고, 법을 지키기 위해 장소와 문화를 고려하지 않은 ‘작품’ 아닌 ‘제품’이 공급되면서, 도시는 표정을 잃어 가고 있다.
이 책은 오랜 세월 저널리스트로 일해 왔고 현재는 강단에서 활동 중인 손수호 교수가 서울의 대표적인 공공 조형물과 건축물 열개를 선정하여 소개하면서, 우리 공공미술의 앞길을 모색해 보는 에세이집이다. 1999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공조형물을 다룬 『길섶의 미술』을 출간한 바 있는 저자는, 최근 그 조형물들을 다시 확인하러 갔을 때 관리 소홀이나 인식 부족 등으로 사라지거나 훼손돼 있는 현장을 보고 낙담할 수밖에 없었다고 술회한다. 공공미술이 그 본연의 의미를 잃어 가고 있는 것이다. 공공미술의 순기능에 대해, 그리고 이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에 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개인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닥치는 도시에서 예술적 향기가 풍기는 작품은 일단 숨을 돌리게 한다. 더러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해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는 경우도 있다. 특정한 장소와 제대로 어울릴 경우 자연스레 그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기도 한다. 이런 사례를 많이 만들려면 제도를 멋지게 운영해야 하며, 공공의 참여가 중요하다. 이를 통해 공간의 혁신이 이뤄지고 도시 곳곳에 심미적 유산이 남겨지면 후손에게 전하는 위대한 선물이 된다. 앞으로 다가올 창조산업 시대에 공동체의 미래는 예술의 힘에 좌우된다. 문화적 분위기가 충만한 도시가 창의적 아이디어의 산실이 될 것이다. 지금 의미있고 볼만한 공공조형물의 순례를 시작하는 것도 그런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표정을 만들어 가는 열 개의 공공미술

저자는 일부 영역에서 일어나는 공공미술의 의미있는 진전과, 개인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닥치는 도시에서의 공공미술의 순기능에 다시금 집중한다. 이 책의 소재가 되고 있는 것은 광화문광장의 〈이순신 동상〉과 〈세종대왕 동상〉,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평화의 소녀상〉, 청계천의 〈샘〉, 신문로 흥국생명 빌딩의 〈해머링맨〉, 신세계백화점 본관 옥상 정원의 〈세이크리트 하트〉를 포함한 해외 명품 조각들, 디큐브시티의 〈보텍스트〉, 그리고 구 서울역사를 개조한 ‘문화역서울 284’, 서울역 앞 대우빌딩을 리모델링한 ‘서울스퀘어’, 로댕갤러리에서 거듭난 ‘플라토’, 통의동의 ‘보안여관’까지, 서울의 대표적인 공공 조형물과 건축물 열 개가 그 주인공이다.
저자는 이러한 공공미술의 작품성과 그에 얽힌 이야기, 문화적 의미 등을 다루며, 때로는 박수를 보내면서도 아쉬운 부분에 대해서는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 종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열린 수요집회의 천번째를 기념하여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에 대해서는 역사성과 사회의식, 세련된 미의식이 조화를 이루는 가장 성공한 인물 조형상이라고 하면서도, 이를 제대로 뒷받침해 주지 못하는 현행법을 따갑게 질타하는가 하면, 대한민국의 대표 공간인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 동상〉에 대해서는 광장 조성 과정에서의 문제점뿐만 아니라, 동상 제작을 속도전하듯 해치운 점을 언급하면서 과정상의 아쉬움을 지적한다. 청계천의 〈샘〉과 흥국생명 앞의 〈해머링맨〉은 둘 다 작품성은 좋지만 〈샘〉은 제작과정에서 작가의 장소성 이해 문제의 아쉬움을, 〈해머링맨〉은 놓여진 장소의 옹색함을 지적하고 있으며, ‘문화역 서울 284’나 ‘서울스퀘어’는 그 새롭고 의미있는 발상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특히 이 책은, 서울의 거리를 무심히 걸어다녔던 사람들에게 이 도시의 곳곳에 놓여진 공공미술과 건축물들의 의미를 일깨우고, 나아가 이러한 문화적 행위로 인해 도시의 표정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시민들과 소통하는 가교가 되길 바란다”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이 공공미술과 대중을 잇는 작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의 브리스톨이나 미국의 시애틀, 호주의 멜버른, 스위스의 취리히 등 성공적인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공공미술은 도시의 표정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이며, 시민과 가장 가깝게 소통할 수 있는 예술이다. 이 책은 그러한 이상(理想)을 향해 내딛는 작은 발걸음이 될 것이다.

언론매체 기사
국민일보
헤럴드경제
세계일보

손수호 (저자)

손수호(孫守鎬)는 경주에서 부산 가는 지방도로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울주군 두동면 삼정리. 대곡댐 건설로 인해 지금은 물에 잠겨 있다. 경희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경향신문에 입사했다가 국민일보로 옮겨 오랫동안 문화부 기자로 일했다. 문화부장과 부국장, 논설위원을 지냈다. 미국 미주리대 저널리즘스쿨에서 공부했고, 경희대 대학원 언론정보학과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희대, 중앙대, 건국대, 숙명여대, 동아예술대 등에 출강하다 지금은 인덕대 교수로 있다.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이달의 기자상’, 한국출판연구소의 ‘한국출판학술상’을 받았고,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이달의 좋은책’ 선정위원을 지냈다. 저서로 『책을 만나러 가는 길』(1996, 열화당), 『길섶의 미술』(1999, 한울), 『문화의 풍경』(2010, 열화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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