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나는 삶에 대한 우리의 비전이 온통 잘못되어 있음을 안다. 우리는 산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관한 새로운 개념을 마련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 새로운 개념을 수립하는 일에 모든 사람이 이바지해야 하며, 모두가 우리의 낡은 개념을 조금씩 무너뜨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한다.”
—「귀향」(본문 p.83) 중에서

시대에 저항했던 한 작가의 성찰

이십세기 영문학의 대표적 작가인 D. H. 로렌스(1885-1930). 그는 소설가인 동시에 천여 편에 가까운 시를 남긴 시인이자 수필가였으며, 문학비평가로서 두드러진 글을 쓰기도 했고, 개인전을 열 만큼 그림에도 소질을 보였다. 하지만 다재다능했던 그의 이력을 뒤집어 보면, 평생 만성적인 병에 시달리고, 스승의 아내였던 프리다와 사랑에 빠졌을 뿐만 아니라 외설 시비로 작품이 출판금지되는 등 풍랑의 중심에 선 로렌스를 만나게 된다. 생활의 무게를 짊어진 한 개인이 민낯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삶의 궤적을 그의 문학에 온전히 대입시키는 것은 자칫 오독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경계해야겠지만, 로렌스의 작품을 다각도로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서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 다행히도 오독의 위험에서 벗어나 작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는 순간, 수필은 가장 좋은 도구가 된다.
오랫동안 D. H. 로렌스의 문학과 생애에 관해 연구해 온 영문학자 오영진은 로렌스의 만년인 1920년대 후반에 씌어진 자전적 에세이들을 엄선하여 이 책을 옮겨엮었다. 이 책에는 로렌스의 성장과정과 교육환경은 물론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와 창작활동, 인생관 등 삶의 중요한 면면을 담고 있다. 문학적 기교나 표현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믿음을 밝히고 있는 이 에세이들은 만년에 이른 로렌스의 삶과 문학, 그리고 인생관을 일목요연하게 스케치해내고 있다. 이는 가슴에 남아 있는 지난 일들과 문학을 통해 전하려 했던 확고한 믿음에 관한 진솔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물신주의物神主義 문명이 정한 선악의 질서와 삶의 방식에 철저히 저항하고자 했던 그의 정신은 이 글들을 통해 현실에 안주하며 살아온 독자에게 과연 이대로 괜찮은지 묻는다. 로렌스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른 채 흘러가는 대로 삶을 살아간다면 그 삶은 체제에 적합한 부속품밖에 되지 못한다고 강조하면서,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해야 할 때임을 일깨우고 있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시간을 뛰어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많은 점을 시사하는데, 그가 그토록 비판했던 당시의 문명의 질서는 세월을 거듭하면서 점점 더 비인간화되어, 무한경쟁과 황금만능의 자본주의 체제로 귀결됐기 때문이다. 백 년 전의 한 뛰어난 작가의 성찰이 오늘의 우리에게도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에는 D. H. 로렌스의 가치관, 문학관이 잘 드러나 있는 자전적 에세이 일곱 편이 선별 수록되어 있으며, 그의 인생역정만큼이나 파란만장했던 생애가 권두의 연보에 사진과 함께 실려 있다.

자전적 기록에 드러난 작가의 민낯, 로렌스 문학의 샘자리

교사 출신인 어머니와 광부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글을 쓰고 있는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자신에 대해 서술한 「나는 어느 계급에 속하는가」는, ‘나의 이력서’라는 제목을 붙여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꽤 구체적이다. 특히 여자친구의 지지와 격려로 처음 문단에 발을 올려놓게 된 시점과 등단 이후 작품을 써 가던 당시 상황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노동계급 출신으로서의 자의식을 드러낸 「자전적 스케치」에서는 자신과 사회 혹은 개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단절감의 원인으로 계급을 들고 있다. 로렌스는 중산계급과 노동계급 모두 비판적인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지만, 자신의 바탕이자 ‘인간적인 교감’이 흐르는 노동계급에 더 애착을 드러내며 긍정하고 있다. 이는 한때 부정했던 ‘아버지의 세계’와의 강한 유대감을 짐작하게 한다.
고향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그의 어린 시절을 그린 「노팅엄과 탄광촌」과 「귀향」은 광산으로 대표되는 ‘아버지의 세계’와 그것이 파괴된 이후를 면밀히 살피고 있다. 산업화의 동력인 석탄을 공급하는 노동자의 아들로 탄광 공동체에서 성장한 로렌스는 생명력 넘치고 활력에 차 있던 세계가 산업화 이후 몰락해 버린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산업자본주의의 노예노동과 문화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된다. 산업문명의 지배자들은 번영을 약속하며 체제에 순응하는 인간형을 양산하고, 이런 체제 아래에서의 교육과 문화란 임금노동의 노예로 길들여져 생산수단이자 생산된 상품의 소비자가 되는 과정으로만 기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문명의 노예가 되어」에서는 앞의 글의 연장선상에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었던 상실의 역사를 멈춰 세우고 자연 그대로의 야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획일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인격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교육보다 본능적인 감정에 충실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 곳곳에서는 지나치게 긴밀한 모자 관계를 형성했던 어머니의 단면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내용들이 발견되는데, 이는 「여자들은 너무 자신만만하다」에서도 마찬가지다. 남편과의 관계에서 형성된 불만을 자식을 통해 극복하고자 했던 어머니의 집착은 로렌스에게 강박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만이 유일무이한 애정의 대상이기도 했기에, 그는 작품마다 어머니에 대한 양가 감정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마지막에 실린 「『채털리 부인의 연인』에 관하여」는 생전에 출간된 마지막 소설에 대한 로렌스의 변론으로, 인간의 육체와 영혼, 개인과 개인, 개인과 공동체, 그리고 인간과 자연을 아우르는 가장 직접적이고 핍진한 접촉이며, 생명의 원리인 성性에 대한 그의 육성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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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매체 기사
연합뉴스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저자)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David Herbert Lawrence, 1885-1930)는 영국 노팅엄에서 탄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이십세기 영국문학의 대표적 작가의 한 사람이 되었다. 작품이 외설하다는 이유로 발매 금지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는데, 거기에는 억압적 모럴과 계급적 사회구조, 산업화와 자연 훼손, 전쟁과 제국주의 등 당대의 현실에 대한 그의 신랄한 비판도 한몫을 했다. 일차세계대전 후 유럽과 아메리카 등지를 전전하며 작품 활동을 한 그는, 발전과 진보라는 이름으로 자연이 파괴되고 삶의 과정이 기계로 대체되며, 인간이 자본의 노예로 전락해 가는 것이 서구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확산되어 가는 문명의 문제라고 보았으며, 그 속에서 현대인은 동료 인간과 공동체, 자연과의 유대감을 잃고 소외된 삶을 살아간다는 생각을 작품을 통해 표현했다. 주요 소설로 『아들과 연인』 『무지개』 『사랑하는 여인들』 『채털리 부인의 연인』 등이 있다.

오영진 (편역자)

오영진(吳榮鎭)은 1965년생으로, 한국과 영국에서 영문학, 미술사 및 사상사를 공부했다. 2004년 런던대학교 킹스 칼리지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지금은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저술과 번역 활동을 하고 있다. 역서로 『채털리 부인의 사랑』 『노인과 바다 외』가 있고, 로렌스를 비롯해 사상사에 관한 여러 논문을 발표했다.

책을 펴내며

성性과 생生의 공존을 꿈꾸다: 연보— 사진과 함께 보는 D. H. 로렌스의 삶

나는 어느 계급에 속하는가
자전적 스케치
노팅엄과 탄광촌
귀향
여자들은 너무 자신만만하다
문명의 노예가 되어
『채털리 부인의 연인』에 관하여

역주
수록문 출처
옮긴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