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6

만화로 읽는 프랑스 문학의 고전

프루스트의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만화’로 재창조한, 만화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시리즈의 여섯번째 책이 출간됐다. 고전(古典)이란 많은 독자들이 오랫동안 읽고 또 늘 새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어떤 책은 명성에 비해 극히 적은 독자만을 가지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경우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이다. 난해한 문장들, 과거와 현재가 끝없이 중첩되고 혼재되어 있는 이 소설은 일반 독자만이 아니라 연구자들도 제대로 읽어내기 힘든 작품으로 유명하다. 프랑스 독자들도 처음 몇 페이지를 읽다 포기하곤 하는 경우가 많으며, 숱한 국내 독자들도 이 책을 읽으려 애를 쓰지만 중도에 그만둔 ‘우울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대작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길은 없을까. 그런 시도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만화’를 통해 프루스트의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부활시킨 일이다. 그 주인공은 광고계에서 오랫동안 일하다가 프루스트의 작품세계에 매료되어 만화가의 길로 뛰어든 영상 전문가 스테판 외에다. 그는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작품 전체를 열네 번이나 정독했고, 이야기체 감각을 보여줄 문장들을 점차적으로 골라냈다. 또 사진 자료를 수집하고, 프루스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파리 외곽의 일리에(콩브르) 지역의 풍경과 건축물을 스케치했으며, 그 시대의 의상을 연구하고, 프루스트의 특이한 삶을 보여주는 여러 곳을 방문하는 등 이 년간 이 작업을 위해 준비했다”(『선데이 타임스』)고 한다.

영상언어로 다시 태어난 프루스트의 대작,
그 여섯번째 권 『스완네 집 쪽으로―고장의 이름: 이름』

만화가 스테판 외에는 프루스트의 이 세계적인 작품을 십이 년에 걸쳐 열두 권의 만화책으로 옮길 계획을 수립하고,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스완네 집 쪽으로—콩브레』(1999)를 시작으로 그동안 『활짝 핀 아가씨들의 그늘에서—고장의 이름: 고장 I』(2000), 『활짝 핀 아가씨들의 그늘에서—고장의 이름: 고장 II』(2002), 『스완네 집 쪽으로—스완의 사랑 I』(2007),『스완네 집 쪽으로—스완의 사랑 II』(2009)이 출간됐다. 그리고 오 년 만에 여섯번째 책, 『스완네 집 쪽으로—고장의 이름: 이름』(2014)이 출간됐다. 첫 권이 나온 1999년부터 헤아려 보자면 십오 년 동안 여섯 권이 나온 셈이니, 원작 못지않은 난산을 겪고 있다. 최근 만화가 스테판 외에는 『르 피가로』를 통해, 이 시리즈를 열두 권에서 열일곱 권으로 늘려 완간하겠다고 밝히기까지 해, 그 완성을 향한 여정은 더욱 장대해질 예정이다.
이번 권이 출간됨으로써 원작소설 일곱 권 중 첫번째 권 『스완네 집 쪽으로』가 『콩브레』 『스완의 사랑 I』 『스완의 사랑 II』 『고장의 이름: 이름』 등 만화본 네 권으로 완성되었다. 이에 맞춰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한 어휘풀이, 등장인물도, 마르셀 푸르스트와 그의 가계도, 소설의 배경이 되는 파리 지도 등이 책 끝에 부록으로 실려 있다.

주관적 현실, 주관적 진실에 대한 메시지

이 만화본 제6권은 원작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구성하는 총 일곱 권 중 첫번째 권 『스완네 집 쪽으로』의 마지막인 제3부 「고장의 이름: 이름」 편에 해당한다. 원작소설의 순서로 보면 네번째 권이어야 하는데, 만화가가 선택한 순서에 의해 여섯번째로 출간되었다. 그러니까 원작 소설에서는 『스완네 집 쪽으로—고장의 이름: 이름』보다 뒤에 나올 이야기(제2권 『활짝 핀 아가씨들의 그늘에서—고장의 이름: 고장 I』, 제3권 『활짝 핀 아가씨들의 그늘에서—고장의 이름: 고장 II』)가 먼저 출간된 것이다. 독자들은 이로 인해 조금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반드시 순서에 맞게 읽을 필요는 없다.
이번 권은 아직 어린 화자가 또래의 여자 친구 질베르트에게 연정을 품던 때의 이야기이다. 질베르트는 화자가 콩브레 시절부터 흠모하던 스완과 스완 부인(오데트)의 딸로, 끊임없이 화자와 교차하게 될 주요 등장인물 중 하나이다. 이번 권의 핵심은 제목에서도 암시되어 있듯, 화자가 꿈꾸는 고장들의 이름에 있다. 마치 사물의 이름이 사물 그 자체인 양 여겼듯이, 화자가 가 보고 싶은 도시나 마을의 이름은 그 이름이 지칭하는 도시나 마을에 값하는 것이다. 가 보고 싶지만 아직 가 보지 못한 고장들, 예컨대 발벡, 피렌체, 파름 등은 화자에게는 아직 이름으로만 존재하는 장소들로, 이 이름들은 화자가 꿈꾸는 온갖 종류의 매력과 특성들로 가득한 마법의 단어들이다. 가령 화자는 파름을 떠올릴 때, 파름이란 도시 이름을 구성하는 음절들의 영향으로 인해 ‘탄탄하고, 반질거리고, 보랏빛이고, 감미롭게’ 느낀다. 이같은 몽상은 꿈꾸는 사람의 주관적 정신세계를 반영한다는 점에서는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머지않아 명소의 이름이 이름에 불과할 뿐 명소 그 자체는 아니라는 생각에 이른다. 도시 이름은 그저 ‘시니피앙’[기표(記標)]일 뿐, 도시가 실제로 간직하는 ‘시니피에’[기의(記意)]와는 무관한 것이다.
소설은 무엇보다 이를 통해 주관적 현실, 주관적 진실을 문제 삼는다. 이때의 주관적 진실이란 바로 주체의 욕망을 일컫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화자 자신의 욕망, 나아가 우리 모두의 욕망이 어떻게 탄생하고 변모하는지 보여 준다. 여기서 화자의 첫사랑은 질베르트이지만, 이는 화자가 앞서 스완에게 품었던 동경의 연장선상에 위치한다. 이내 질베르트에 대한 풋사랑은 그녀의 어머니인 스완 부인에게로 전이되고, 곧이어 게르망트 부인에 대한 연모로 이어진다. 이야기가 전개되어 감에 따라 화자의 사랑은 ‘활짝 핀 아가씨들’에게로 옮겨 가고, 마지막으로 이 무리 중의 하나인 알베르틴에게로 향한다. 이처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화자의 욕망이 굴곡을 이루며 그려지는 연애소설이기도 하다. 이번 이야기에 나오는 어린 시절의 일들은 나중에 성인이 된 화자의 관점에서는 시행착오일 테지만, 주인공-화자의 일생을 포괄적으로 지켜보는 독자의 관점에서는 커다란 궤적의 첫 획이 그어지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위로 또 다른 획들이 연거푸 그어지고 교차하고 보태지면서 거대한 궤적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인간의 욕망이란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모하는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마르셀 프루스트 (저자)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는 1871년 파리 근처 오퇴유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아드리언 프루스트 박사는 위생학의 대가로 파리대학교 교수였으며, 유대계 부르주아 집안 출신이었던 어머니 잔은 섬세함과 풍부한 교양으로 프루스트의 정신생활에 큰 영향을 끼쳤다. 철학자 베르그송은 외가 쪽으로 친척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고향 일리예와 할머니와 피서를 갔던 노르망디 해변, 파리의 샹젤리제는 훗날 프루스트 작품의 중요한 무대가 되었다.

프루스트는 아홉 살에 천식에 걸리는데 이는 평생의 지병으로 그를 괴롭혔으나 역설적으로 이 때문에 창작에 몰두하게 되고 내면적인 분석에 전념하게 되는 등 그가 작가가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주었다. 열한 살에 파리 콩도르세 중학으로 진학하여 상류사회 자제들이 모이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많은 고전을 탐독하며 지적 교류를 했으며, 동인지 《향연 Le Banquet》을 발행하기도 했다. 또 사교계와 문학 살롱에 출입하면서 인간을 관찰하고 안목을 기른다. 1896년에 단편집 《즐거움과 나날 Les Plaisirs et les Jours》을 출판하고 1895~1899년에는 그의 천재성이 드러나 있는 미완의 자전적 소설 《장 상퇴유 Jean Santeuil》를 썼다. 이 무렵부터 건강이 악화되기도 하고, 드레퓌스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써 보수적인 상류사회 귀족들과 관계가 서먹해짐으로써 사교계와 점점 멀어졌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1권 《스완네 집 쪽으로 Du cote de chez Swann》는 1911년경 거의 완성했으나 출판사를 구하지 못해 1913년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자비로 출판했으며, 이로써 서서히 주목받기 시작하다가 1918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2권 《아가씨들의 꽃그늘에 l’Ombre des Jeunes Filles Enfleurs》가 발간된 후 1919년 공쿠르상을 수상한다. 그 후 죽음에 이르기까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완성을 위해 수도사와 같은 생활이 계속되었다. 1923년 11월 새벽 세 시까지 《갇힌 여인 La Prisonniere》을 추고하다가 극심한 피로 때문에 호흡곤란을 일으켜 같은 날 오후에 사망한다.

1950년대에 발굴된 방대한 미발표 원고들은 그가 얼마나 문학적 정진에 힘썼는지를 보여주며, 사후 1925년 《도망간 여인》이 출판되고, 1927년 《되찾은 시간Le Temps Retrouve》이 간행됨으로써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완간된다.

정재곤 (역자)

정재곤(鄭在坤)은 1958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불어불문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고, 프랑스 파리 8대학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꿈 이야기」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출판기획 및 전문번역가 네트워크 ‘사이에’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현재 생텍쥐페리재단 한국 지부장이며, ‘궁리닷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역서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 『가족의 비밀』 『외젠 앗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정신과 의사의 콩트』 등 다수가 있다.

스테판 외에 (각색 및 그림)

스테판 외에(Stéphane Heuet)는 1957년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브레스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고향에서 보낸 후, 군 계통의 중학교를 다녔다. 칠 년 동안 해군으로 복무한 후, 십오 년 동안 광고회사의 예술담당 책임자로 일했다. 여러 편의 광고용 만화영화와 텔레비전용 만화자막을 제작했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매료되어, 이를 만화화하는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역자해설—욕망의 얼굴
역주

만화
스완네 집 쪽으로—고장의 이름: 이름

부록
『스완네 집 쪽으로』 어휘풀이
화자의 가족과 그 외 등장인물
마르셀 프루스트와 그의 가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