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뮤지엄 건축

현대건축의 실험실이 된 뮤지엄 건축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은 쇠락해 가던 스페인의 공업도시 빌바오의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추진되었던 재개발 정책의 일환이었다. 설계공모에서 선정된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O. Gehry)는 프리츠 랑(Fritz Lang)의 영화 〈메트로폴리스Metropolis〉(1927)에 나오는 장면들과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i)의 조각작품들, 그리고 빌바오 채석장의 이미지 등에서 생동감과 통제된 힘을 끌어내어 형태 이미지를 개념화했다. 또한 대지 주변의 고가도로와 철로 및 강둑을 뮤지엄 설계에 적극 포함시켜, 장식이 아닌 운동감을 주는 요소로서 형태와 재료를 선택했다. 움직임(movement)을 주제로 삼은 게리의 뮤지엄은 전 세계의 큰 반응을 이끌어내며 빌바오를 일약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발돋움케 했다.
뮤지엄 건축은 현대건축의 실험실이라 불릴 만큼 다채로운 모습으로 우리를 유혹하며, 구겐하임 빌바오처럼 한 도시의 이미지를 단번에 끌어올릴 만큼 건축적 위력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과거에는 뮤지엄이 명품이나 유물 등을 모시기 위한 전당(temple)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뮤지엄 전용 건물이 신축되지 않고, 오랜 기간 다른 용도의 건축물 일부를 전시공간으로 차용하거나 건물 전체를 사용해 오기도 했지만, 근대 이후 뮤지엄 건축이 활력을 띠기 시작하면서 양과 질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1980년대에 접어들어 현대 뮤지엄의 기능적 표현적 복잡성은 더해 갔고 건축적 형식 역시 다양하게 표현되기 시작했다. 극단적인 단순함부터 과하다 싶을 정도로 형태를 변형시키는 등 뮤지엄 건축의 내외부 공간에서 시도되는 실험들은 다른 유형의 건축물에서는 좀처럼 시도되기 어려운 것들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건축가의 눈으로 보고 읽다

건축가이기도 한 이관석 경희대 교수가 현대 뮤지엄의 건축적 특성을 건축가의 관점으로 하나씩 정리하고, 현대 건축가들의 건축철학이 뮤지엄 건축에 어떻게 적용되었으며 그 결과물이 현대 뮤지엄 건축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탐구한 『현대 뮤지엄 건축』을 출간했다. 이 책이 다루는 뮤지엄의 대상은 유럽, 북중미(北中美), 일본 등 저자가 직접 방문했던 세계 유수의 박물관이나 미술관뿐만 아니라 아트센터, 갤러리, 과학관, 전시관, 기념관 등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다양한 명칭의 건축물들도 포함하고 있다. 또한 국내 사례도 일부 소개하면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유물의 보존이라는 과거의 소극적인 의미를 넘어 도시의 공공장소로서 기능하는 현대 뮤지엄을, 건축적 시각에서 새롭게 체험할 것을 제안한다. 뮤지엄 건축에 어떤 근거로 상징성이 부여되는지 살펴보는 것을 시작으로, 동선을 분배하는 입구홀의 유형, 자연채광 방식의 종류와 장단점, 동선에 적용된 ‘건축적 산책’의 유형, 고전적 전시공간이 부활하는 현상과 이유, 그리고 오늘의 경향과 변천 추이에 이르기까지, 현대 뮤지엄 건축의 다양한 측면을 면밀히 추적하고 있다. 각 장의 핵심 과제들을 건축가들이 어떤 방식으로 풀어 가는지, 때론 상반된 관점으로 계획되는 여러 양태의 뮤지엄들이 어떻게 수용되고 의미를 갖게 되는지 등을 살펴봄으로써, 현대 뮤지엄 건축의 이해와 감상에 한 걸음 다가서게 된다.

여섯 가지 키워드로 접근하기

이 책은 상징성, 입구홀, 자연광, 동선, 전통, 오늘의 경향을 키워드로 삼아 현대 뮤지엄 건축에 접근하고 있다. 첫번째 장인 ‘뮤지엄의 상징성’에서는 상징과 표현방식을 통해 조용히 존재함으로써 전시물을 돋보이게 하는 중성적 뮤지엄과 방문객의 눈길을 잡아끄는 외형을 지닌 표현적 뮤지엄이라는 두 가지 경향을 짚어 본다. ‘공간적 초점으로서의 입구홀’에서는 뮤지엄에서 좀 더 특별한 역할을 수행하는 입구홀에 주목한다. 방문객들이 뮤지엄에 들어서면서 처음 경험하는 곳인 입구홀은 뮤지엄의 내부 이미지를 결정하다시피 한다. 그래서 앙리 시리아니(Henri Ciriani)는 현대 뮤지엄의 입구홀이 뮤지엄의 ‘공간적 초점(foyer spatial)’이라고 명명했다. ‘전시공간에서의 자연광’에서는 채광방식을 측창(側窓) 채광, 고측창(高側窓) 채광, 천창(天窓) 채광으로 나누어 그 의미를 정의하고, 자연광과 관련해 역사적으로 중요한 뮤지엄들을 채광방식별로 살펴보고 있다. 이어 각 채광방식이 지닌 장단점까지 따져 본다.
‘걷는다’는 행위와 ‘본다’는 행위가 결합되는 뮤지엄에서는 어떻게 걸으며 무엇을 보는가가 중요하다. 네번째 장인 ‘동선으로 경험하는 공간예술’에서는 계획된 경로로 방문객을 유도해 치밀하게 조율된 전체 공간을 경험하도록 하는 ‘건축적 산책’ 개념을 주요하게 다룬다. 산책의 장(場)이 되는 내외부공간 구성과 산책과의 연계를 중심으로 살펴보면서 공간예술로서의 뮤지엄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한다. ‘뮤지엄과 전통’에서는 1970년대 말 이후 두드러지기 시작한 고전적 전시공간의 부활 현상에 주목한다. 전시공간의 공간적 성격과 함께 전시물의 특성과 전시방법을 비교해 보여 준다. 마지막으로 ‘뮤지엄의 오늘과 내일’에서는 라이트(F. L. Wright)나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와 같은 근대건축의 거장들이 제시한 뮤지엄을 이상적인 단위전시공간 개념을 통해 살펴보고, 현대 뮤지엄의 대안적 공간이나 가상 뮤지엄과 같은 사례를 통해 오늘날의 경향을 따라가 본다.

이관석 (저자)

이관석(李官錫)은 1961년 출생으로, 한양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종합건설에 재직하면서 리비아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건설현장을 경험했다. 이후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벨빌건축대학(Ensa de Paris Belleville)에서 건축설계를, 파리1대학에서 근현대 건축사와 뮤지엄 건축을 공부했다. 프랑스 건축사·예술사학 박사로, 한남대학교를 거쳐 현재 경희대학교에서 후학들과 건축을 교감하고 있다. 저서로 『빛을 따라 건축적 산책을 떠나다』(2004), 『한국 현대건축편력』(2005), 『르 코르뷔지에, 근대 건축의 거장』(2006), 『건축, 르 코르뷔지에의 정의』(2011), 『빛과 공간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2014)가 있으며, 역서로 『건축을 항하여』(2002), 『프레시지옹』(2004), 『오늘날의 장식예술』(2007), 『느림의 건축을 위하여』(2010), 『작은 집』(2012) 등이 있다.

저자/역자의 다른 책들

책머리에—건축가의 눈으로 읽는 뮤지엄 건축

뮤지엄의 상징성
상징의 의미와 건축에의 적용
상징과 유추
부분적 상징성
전체적 상징성

공간적 초점으로서의 입구홀
내부 이미지를 결정하는 ‘전형적 공간’
근대 뮤지엄 입구홀의 구성
현대 뮤지엄 입구홀의 유형별 공간특성

전시공간에서의 자연광
세 가지 유형
역사적 적용 사례
유형별 장단점
자연채광방식의 선택 범주

동선으로 경험하는 공간예술
근대 뮤지엄에서 동선의 중요성
내부 지향적 산책
내외부 교차 산책
내외부 분리 산책
외부 지향적 산책

뮤지엄과 전통
다시 나타난 고전적 전시공간
고전성의 의미
고전적 전시공간 재현의 몇 가지 배경
재현된 고전적 전시공간의 유형과 특성

뮤지엄의 오늘과 내일
근대건축 거장들의 ‘이상적인 단위전시공간’ 개념
현대 뮤지엄 건축의 경향

책끝에—건축의 본질에서 바라본 뮤지엄

주註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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