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팔뜨기 개

엉뚱하고 가벼운 희극이 펼쳐지는 루브르
연간 900만(2011년 기준), 하루 평균 3만여 명의 관람객 수를 자랑하는 루브르 박물관. 전시된 작품 1점당 10초가 걸린다고 할 때, 이동시간은 고려하지 않더라도 모든 작품을 보기 위해서는 밤낮을 포함하여 나흘 이상 걸릴 것이다. 시간이 없는 관람객들은 〈모나리자(라 조콘다)〉(1503-1506)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0) 〈메두사의 뗏목〉(1819) 등의 걸작을 향해 바삐 걸음을 옮긴다. 그런 관람객들에게는 박물관을 지키는 경비원들도 작품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는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에티엔 다보도(Étienne Davodeau)는 소외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들에 주목한다.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취재해 시나리오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현실 만화(bande dessinée du réel)를 지향해 온 다보도는 다큐멘터리 작품에서 두각을 나타내 왔다. 특히 친구이자 포도 재배업자인 리샤르 르루아(Richard Leroy)와 함께 작업한 『문외한들(Les Ignorants)』(2011)은 서로에게 낯선 분야인 포도주와 만화의 세계로 입문하는 내용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프랑스에서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그는 ‘루브르 만화 컬렉션’의 아홉번째 이야기 『사팔뜨기 개(Le Chien qui Louche)』(2013)에서도 꼼꼼한 취재력을 바탕으로 루브르를 탐구해 간다. 작품을 의뢰받은 다보도는 이 년 동안 루브르 박물관을 수천 장의 사진을 찍으며 마음껏 돌아다니면서 루브르의 모든 것을 체험하고자 했다. 이러한 생생한 체험을 통해 “위엄있고 압도적인 루브르와 정반대되는 엉뚱하고 가벼운 희극”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느 인터뷰에서 다보도는 『사팔뜨기 개』를 통해, 뛰어난 큐레이터와 복원가, 건축가, 행정직 직원들의 조직적인 운영 속에 관리, 유지되는 세계적인 명성의 루브르 박물관에 가벼움과 유머를 되찾게 하고 싶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면서 루브르에 있지만 누구의 관심도 받지 않는 경비원에게 눈길이 갔다고 한다. 15여 명의 경비원들을 인터뷰하고 몇 날 며칠을 하루 종일 같이 생활한 끝에 창조해낸 경비원 파비앙은 다소 ‘불경하게, 그러나 유쾌하게’ 루브르를 안내한다.

루브르와의 ‘특별한’ 관계 맺기
루브르 박물관의 경비원인 파비앙은 여자 친구인 마틸드의 고향 집을 방문하게 된다. 브니옹 집안 사람들의 열렬한 환영도 잠시, 다소 괴짜스러운 그들은 다짜고짜 자신의 조상 구스타브 브니옹이 남긴 사팔뜨기 개를 그린 그림을 보여 주며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될 수 있는지 묻는다. 마틸드의 가족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파비앙은 누가 봐도 볼품없는 〈사팔뜨기 개〉를 떠맡고는 고민에 휩싸이게 된다. 이들이 던진 ‘우리 조상의 그림이 루브르 박물관에 걸릴 만한 작품인가, 아니면 아무 쓸모없는 작품인가’라는 질문은, 과연 ‘루브르와 같은 명망있는 박물관의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작품은 누구에 의해, 어떻게 결정되는가’라는 의문으로 이어진다. 이같은 의문은 브니옹가 사람들과 보잘것없는 그림 〈사팔뜨기 개〉, 그리고 루브르의 열성적인 방문객 발루치와 그가 속한 ‘루브르 공화국’이라는 비밀 단체에 의해 우회적으로 제기된다.
발루치는 파비앙으로부터 박물관 가이드 제안을 받을 정도로 미술사에 박식하지만, 역사와 걸작의 권위에 짓눌리지 않고 작품을 바라본다.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여신〉 바로 옆에는 이 여신상에서 떨어져 나온 여신의 ‘손 조각’이 있다. 그러나 손가락이 떨어져 나간 불완전한 형태의 이 조각을 눈여겨보는 관람객은 거의 없다. 발루치는 누구나 감탄하는 걸작보다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소외되어 있는 작품들에 관심을 가지라고 권한다. 이러한 이유로 발루치는 관람객들에게 다소 낯선 조각가들의 작품인 〈요정 살마키스〉(1826)와 〈프시케를 데려가는 제피로스〉(1810-1814) 앞에 멈춰 선다.
‘루브르 공화국’의 회원들 역시 모두 이상한 것, 불확실한 것, 일어날 법하지 않은 것에 관심을 가지며 루브르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는 에로틱한 공간이 되고, 속도를 즐기는 젊은이에게는 ‘최소한의 시간으로 관람하는 방법’을 찾는 대상이며, 인생의 막바지에 이른 남자에게는 젊은 시절 떠난 아내를 기다리는 장소가 된다. 이들이 제안하는 감상법과 관계 맺기는, 마틸드의 다소 거칠고 세련되지 못한 두 오빠들의 태도와 묘하게 상통한다. 고대 로마 시대의 수반(水盤)을 욕조라고 생각하고 불쑥 들어가 짓궂게 장난치는 그들에게 루브르는 장난과 유머의 공간이다. 하지만 이렇게 예술작품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어 보이는 이들도, 자코브 형제가 만든 뛰어난 가구 앞에서는 감탄과 존경을 금치 못하고, 18세기 독일의 뛰어난 초상화 화가인 발타자르 데너(Balthasar Denner)의 〈여인의 초상〉(1724) 앞에서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린다. 삼대째 이어가는 가업, 조상과 가풍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지닌 이들이야말로 발루치가 제안한 것처럼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루브르와 특별한 관계를 맺는’ 것처럼 보인다.
발루치는 결국 브니옹의 그림을 루브르에 몰래 들여옴으로써 박물관에 들어오지 못하는 무수한 무명 화가들, 박물관에 걸려 있음에도 관람객의 눈길 하나 받지 못하는, 비교적 덜 알려진 화가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다보도는 관람객들의 관심으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하는 작품에도 관심을 기울이기를 바란다. 범작(凡作)이지만 미술사와 걸작의 권위에 짓눌리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작품을 바라본다면 이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감동과 재미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언론매체 기사
연합뉴스
조선비즈
YTN 지식카페 라디오 북클럽
기획회의

에티엔 다보도 (저자)

에티엔 다보도(Étienne Davodeau)는 1965년 프랑스 모주(Mauges)지방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렌(Rennes) 2대학 조형예술과에 다니면서 친구들과 함께 스튜디오 프쉬르드(Studio Psurde)를 만들어 만화작업을 하기도 했다. 1992년에 첫 만화집 『나무를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L’homme qui N’aimait pas les Arbres)』을 출판한 후 『거짓말쟁이와의 며칠(Quelques Jours avec un Menteur)』(1997), 『룰루, 옷을 벗은 여인(Lulu, Femme Nue)』 1, 2(2008-2010) 등과 단독 혹은 협업으로 다큐멘터리 성격의 작품을 많이 발표했다. 2011년에 출간한 『문외한들(Les Ignorants)』은 십육만 부가 팔리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현재는 라디오 방송국 프랑스 앵테르(France Inter) 기자인 브누아 콜롱바(Benoît Colombat)와 함께 1970년대 제5공화국 시절의 유혈 사건들에 대한 취재를 바탕으로 작업하고 있으며 2015년 말 ‘내 어린 시절의 소중한 나라(Cher Pays de Mon Enfance)’라는 제목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이 중 의문사한 판사를 다룬 첫번째 에피소드 「판사의 죽음(La Mort d’un Juge)」은 2014년 가을 『라 르뷔 데시네(La Revue Dessinée)』에 발표되었다.

정연복 (역자)

긴이 정연복(鄭然福)은 1963년생으로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서 「몰리에르의 발레-희극 연구」(1998)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덕여대 강의전임교수를 역임하고 프랑스 파리로 가서 루브르학교 1기 과정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서울대학교, 아주대학교, 중앙대학교에서 프랑스 예술과 문화,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등을 강의했고, 현재 프랑스 파리에 체류하며 번역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역서로 앙리 베르그송의 『웃음』(1992), 장 보드리야르의 『섹스의 황도』(1993), 에릭 리베르주의 『미지의 시간 속으로』(2009), 베르나르 이슬레르와 장-클로드 카리에르의 『루브르의 하늘』(2010), 크리스티앙 뒤리외의 『매혹의 박물관』(2012)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