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영

국내외 뛰어난 사진가들의 엄선된 작품과 사진설명, 작가론과 연보가 밀도있게 담긴 ‘열화당 사진문고’가 39권째 시리즈를 이어 간다. 윤주영(尹胄榮, 1928- )은 이 시대를 한 편의 서사시처럼 긴 호흡으로 담아내는 사진가로, 보통의 사진가들과는 다른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그는 27세에 중앙대 정치학과 교수가 되었고, 33세에 『조선일보』 편집국장이 되었으며, 35세에 정계에 진출하여 16년간 요직을 두루 거쳤다. 51세에 돌연 관직에서 물러나 카메라를 매고 떠난 여행길에서, 그는 사진이 지닌 기록의 힘과 그것을 통한 사회적 발언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후 30여 년 동안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삶과 죽음, 역사의 피해자와 가해자, 전쟁과 평화, 개인과 사회, 노동의 신성함 등을 따듯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돌려 말하지 않는 정공법으로 호소하는 그의 사진은 인간과 삶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가슴 아프고도 진실하게 던진다.

 ‘결국은 사람’이라는 믿음과 희망

윤주영의 작업을 압축해 주는 말은 ‘사람’이다. 물론 대부분의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작업이 사람을 이야기하는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특유의 명민하고 따듯한 눈으로 사회와 역사를 직시하여, 굵직한 주제를 선정하고 그만의 세계를 축조해 나갔다. 초창기에는 안데스 산맥의 국가들을 비롯한 중남미와 네팔, 인도, 부탄, 파키스탄, 터키, 그리스, 이집트, 모로코, 튀니지 등을 찾아 그곳 원주민들의 모습을 담았다. 지금은 개방이 많이 되었지만 당시는 이방인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들이었다. 이후 그는 대상을 점차 확대하여 문제의식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사할린 동포, 탄광촌 광부, 라이따이한, 일하는 부부, 어머니, 입양아 등이 그 대상으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전면에 등장시켰다.

초창기 작업은 삶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행복과 불행의 차이가 어디에 있는지, 삶과 죽음의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섰다. 인도 카트만두 동쪽 끝 바그마티 강 근처의 ‘브리다슈람 복지센터(Social-Welfare Center Briddhashram)’에 모여살고 있는 죽음을 앞둔 노인들의 나날을 담은 ‘내세를 기다리는 사람들’(1990) 연작은 그러한 고민에 대한 스스로의 답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이 작품으로 일본의 저명한 사진상인 이나노부오(伊奈信男) 상을 받았다. 이후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우리’의 문제에 접근했다. 1992년 발표한 ‘동토의 민들레’ 연작에서는 일본 제국주의의 희생물로 사할린으로 끌려가 끝내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우리 동포들의 현실을 담았고, 1995년 발표한 ‘베트남―전후 20년’ 연작에서는 종전 후 베트남을 떠난 한국인들의 아내와 반쪽의 한국인 라이따이한의 현실을 담았다. 피해자로서의 슬픈 역사와 가해자로서의 부끄러운 역사. 조응하기 어려운 이 불협화음이 빚어내는 불편한 진실이 곳곳에서 꿈틀거린다.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주영의 사진에 공통적으로 담겨 있는 것은, 희망의 메시지이다. 그는 거대 담론 안에서 삶을 영위하는 개인의 소박한 삶의 숭고함을 믿는다. 그리하여 허물어져 가는 탄광촌 속에서의 신성한 노동이나, 육이오전쟁 이후 폐허가 된 조국에서 역군을 길러낸 어머니들의 힘을 조명한다. 특히 ‘어머니의 세월’(1997) ‘석정리역의 어머니들’(2003) 등의 연작에서, 우리 사회의 장한 어머니들의 보이지 않는 힘을 느낄 수 있다. 그가 삼십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사진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은 사람이다”라는 믿음이다. 이는 역사의 주인공 혹은 희생자로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어 가는 주체인 사람에게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승전결’을 가진 한 편의 서사시

윤주영은 치밀한 계획 아래 긴 호흡을 유지하며 하나의 주제를 완성해낸다. 작가론을 쓴 윤세영(尹世鈴)은 그의 사진이 다른 작가와 차별되는 지점을 이렇게 분석한다. “그때그때 사회적 이슈가 되는 주제나 사진가의 직관으로 떠올린 주제로 작업을 한다기보다 그는 이 사회와 역사를 통시적으로 직시하면서 ‘사진으로 무엇을 말한 것인가’를 설정했다. 마치 영화감독이 대본을 들고 촬영에 임하듯이 그는 총체적인 시나리오를 미리 구상한 뒤 작업에 착수했다.”

사진평론가 김승곤(金升坤)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윤주영의 작품세계를 평한 바 있다. “그의 작품은 대체로 기승전결이라고 하는 고전적인 틀로 구성되어 있다. 한때 그런 방법론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해서 그가 고심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복수(複數)의 사진에 의한 구성과 시공간의 전개를 통해서 메시지를 드러내는 것이 그의 작품의 본령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그의 사진은 장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역사화나 서사시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사진들을 보면 마치 이야기를 읽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되는 데에는 이러한 이유가 숨어 있다. 그는 이러한 독특한 개성을 통해, 흔들림 없이 자신의 세계를 펼쳐 나갔다.

작가는 지금까지 20권에 달하는 사진집을 출간했고, 30회가 넘는 전시회를 꾸준히 열면서 그가 가진 모든 열정을 사진에 쏟았다. 사진가의 길로 들어서고 30여 년이 흐른 지금, 그가 세상에 내놓은 결과물들이 단편적이나마 이 한 권의 사진집으로 정리되었다. ‘열화당 사진문고’ 39번째 권으로 출간된 이 책에는 그의 대표적 연작에서 엄선된 62점이 작가 자신의 설명과 함께 수록되어 있어, 윤주영의 작품세계를 일별해 볼 수 있다. 전(前) 『사진예술』 편집장인 윤세영의 작가론은 그의 사진을 읽는 새로운 해석의 창이 되며, 책 끝에 실린 국영문 연보는 그의 생의 궤적을 한눈에 보여 준다.

윤주영 (저자)

윤주영(尹胄榮, 1928- )은 경기도 장단 출신으로, 고려대 정치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16년간 정계에서 활동했다. 51세가 되던 해 돌연 사진가의 길을 선택한 후, 그는 30여 년 동안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삶과 죽음, 역사의 피해자와 가해자, 전쟁과 평화, 개인과 사회, 노동의 신성함 등을 치밀하면서도 따듯한 시선으로 사진에 담아냈다. 「내가 만난 사람들」 「내세를 기다리는 사람들」 「동토의 민들레」 「탄광촌 사람들」 「석정리역의 어머니들」 등의 연작으로 삼십여 회의 개인전을 가졌고, 이십여 권에 이르는 사진집을 출간했다.

저자/역자의 다른 책들

윤세영 (작가론)

윤세영(尹世鈴, 1956-)은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월간 『사진예술』 편집장으로 있다. 수필가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 『때론 길을 잃어도 좋다』(2006), 『한국의 사진가 14』(2009)가 있다. 『육명심』 『김녕만』의 작가론을 썼다.

저자/역자의 다른 책들

윤주영 (사진설명)

윤주영(尹胄榮, 1928- )은 경기도 장단 출신으로, 고려대 정치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16년간 정계에서 활동했다. 51세가 되던 해 돌연 사진가의 길을 선택한 후, 그는 30여 년 동안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삶과 죽음, 역사의 피해자와 가해자, 전쟁과 평화, 개인과 사회, 노동의 신성함 등을 치밀하면서도 따듯한 시선으로 사진에 담아냈다. 「내가 만난 사람들」 「내세를 기다리는 사람들」 「동토의 민들레」 「탄광촌 사람들」 「석정리역의 어머니들」 등의 연작으로 삼십여 회의 개인전을 가졌고, 이십여 권에 이르는 사진집을 출간했다.

저자/역자의 다른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