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혜자—빛의 노래

방혜자의 그림은 빛의 부드러운 위력, 미묘하게 조절된 에너지, 그리고 침묵의 힘을 보여 준다. 전율하고 고동치는 빛—빛의 변화, 변형, 미묘한 느낌, 굽이, 파동에 따라 우주는 잠들기도 깨어나기도 한다. 방혜자는 때로는 별, 때로는 여명(黎明)을 찬미한다.
—질베르 라스코(Gilbert Lascault)

‘빛의 화가’ 방혜자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한국의 현대미술가 방혜자(方惠子, 1937- ). 그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재학시절에 그린 첫 작품 〈서울풍경〉(1958)에서 평생 화제(畵題)가 될 ‘빛’과의 인연을 시작했다. 어둠의 중심에서 발현되는 한줄기 빛을 그린 이 그림에는 빛을 그리겠다는 내면의 의지가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1961년, 보다 자유로운 창작세계를 찾아 파리로 향한 그는, 도착하자마자 몇 달 동안은 줄곧 화랑과 미술관만을 돌아다녔다. 베르메르, 렘브란트, 반 고흐, 칸딘스키, 세잔, 클레, 비에이라 다 실바 등의 작품에 매혹되었으며, 레옹 작, 자오 우 키, 이자벨 루오 같은 화가를 만나게 된다. 1963년, 프랑스 국립미술학교(에콜 데 보자르)에서 수학하던 그는 미술비평가이자 미술사가인 피에르 쿠르티옹(Pierre Courthion, 1902-1988)을 만난다. 그는 그의 초기 작품들에서 가능성을 알아보고는 생의 마지막까지 그를 아낌없이 격려하고 후원한다.

어두운 색채 속에서 빛나는 밝은 색채를 통해 빛의 존재를 암시했던 초기 작업은 수묵화처럼 묽게 칠하여 얻은 투명한 색감을 통해 빛의 본성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떠난 파리 유학생활은 잠시 잊고 있었던 전통기법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된다. 잠시 고국으로 돌아와 체류하면서 사용하기 시작한 한지(韓紙)는 바로 이러한 재발견된 전통의 지표라고 할 수 있다. 타국생활의 경험이 전통을 다시 보게 한 것이다. 한지의 반투명성은 빛을 표현하는 데도 적절한 재료가 되었다. 물감을 칠한 한지를 겹쳐 바름으로써 나타나는 물감층의 중첩을 통해 빛이 함축한 무한한 공간감을 암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90년대 말 이후, 남프랑스 루시용(Roussillon)의 황토분과 부직포(不織布)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더욱더 빛 자체에 천착하게 된다. 스스로 빛을 머금고 반사하는 자연 안료들은 빛이 함축한 공간감을 더욱 풍부하게 드러내며 부직포의 부드러운 섬유질 또한 투명하면서도 깊은 공간감을 만들어냈다. 원통형 작품에서는 빛이 문자 그대로 안으로부터 스며 나온다. 형태적으로는, 화면을 전면적으로 채워 나가는 반복적 구성을 보여 주는데, 이는 끊임없이 박동하는 빛의 운율을 더 직접적으로 가시화한다. 특히 이전부터 사용해 온 양면채색 기법을 부직포에도 적용함으로써 공간의 효과를 더 풍부하게 구사하게 되었다. 작가는 이것이 고려불화(高麗佛畫)에서 사용된 배채법(背彩法)과 같은 기법임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문화적 원형(archetype)의 존재를 확인하게 한다. “내가 그린 것이라기보다 이미 나의 세포 속에 있는 것이 발현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는 그의 말처럼, 그 기법은 문화적 혈통 속에 잠재된 유전자가 한 현대작가의 작품을 통해 발현된 예로 볼 수 있다.

빛의 향연을 담은 세번째 작품집

자연, 그리고 원소들에 대한 관찰이 통합적으로 전환되어 나타나는 방혜자의 작품은 직접적인 표현형태라기보다는 원소적인 것이 숭고화된, 초월적 해석이다. 방혜자의 그림 속에서 나는 흙과 공기, 그리고 물을 다시 발견한다. 불의 경우, 신성한 불이 그의 마음속에 있다. —피에르 쿠르티옹(Pierre Courthion)

방혜자의 그림은 우주적이며 유현(幽玄)하다. 조그맣고 가냘픈 모습을 떠올릴 때, 크고 깊은 그의 그림 세계가 신기하기만 했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수직(手織)의 무명 같은 것, 그런 해 뜨기 전의 아침을 느낀다. —박경리

그의 세번째 작품집 『빛의 노래』는 2007년부터 현재까지의 작품을 주요 전시장면과 함께 수록하고 있으며, 국내에 많이 소개되지 못한 기존의 평문(評文)과 새로 씌어진 글들을 함께 실었다. 미술평론가이며 철학가인 질베르 라스코(Gilbert Lascault)는 2013년 ‘빛의 입자’ 시리즈를 주제로 「반짝이는 빛의 입자들」이라는 글을 통해 눈부신 입자들의 미세한 세계에 주목한다. 제각기 간헐적인 섬광을 내뿜는 입자들이 움직이고, 이동하고, 떠돌고, 춤추는 빛으로 충만한 방혜자의 그림은 빛의 부드러운 위력, 미묘하게 조절된 에너지, 그리고 침묵의 힘을 보여 준다.

천체 물리학자인 다비드 엘바즈(David Elbaz)는 「별과 빛」에서 “방혜자의 그림은 우리를 오묘한 신비와 마주하게 만들고 감동을 불러일으키면서 우리들 존재의 기원, 우주의 기원에 대한 가장 심오한 물음에 문을 열어 준다”고 말한다. 그는 빛의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빛의 언어를 해석해내려는 천체 물리학자로서 방혜자의 그림과 천체 이미지 사이의 유사성을 발견하고 느꼈던 감동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샤를 쥘리에(Charles Juliet)는 세잔, 자코메티를 비롯한 화가들에 대한 비평서를 저술하고, 프랑스에서 문학 최고상인 공쿠르 상 시 부문을 수상한 시인으로 「방혜자의 빛」에서 작가의 삶의 궤적을 압축적으로 잘 정리하고 있다. 1999년 인연을 맺은 후로 꾸준한 관계를 이어 온 두 사람은 프랑스에서 샤를 쥘리에의 시, 방혜자의 수묵화로 시화집 『그윽한 기쁨(Une joie secrète)』을 출간하는 한편, 김지하의 시집 프랑스어판 출간을 위해 협력, 2006년 『화개(花開)』의 출간까지 함께했다. 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의 윤난지 교수의 「마음의 빛」은 대지를 포근히 감싸는 따사로운 햇볕, 생명의 숨결을 반복하면서 부드럽게 진동하는 광선, 검푸른 하늘을 뚫고 나오는 금빛 여명, 여기저기 안광처럼 번뜩이는 섬광 등 다채로운 모습으로 변화하는 빛의 순간을 재현해낸 표현기법에 초점을 맞췄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대표적 한국 현대미술작가로 성장한 방혜자는, 회화 외에도 벽화, 스테인드글라스, 서예 등의 작업을 병행하며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작품집은 현재까지도 왕성하게 창작열을 불태우는 방혜자의 ‘색채의 시학’과 ‘빛을 추구하며 걸어온 길’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한편 이 책의 출판기념회가 파리에 위치한 주프랑스한국문화원에서 2015년 9월 9일 오후 6시에 있으며, 이를 기념해 개인전 「성좌(聖座, Constellations)」가 9월 2일부터 23일까지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방혜자는 지난 30여 년간 한국문화원을 프랑스에 알리는 데 힘을 보태 왔는데, 이곳은 그가 프랑스 사람들에게 10여 년간 서예를 가르친 곳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185컷의 컬러 도판과 연보가 실려 있으며 텍스트는 국문, 불문, 영문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언론매체 기사
연합뉴스

방혜자 (저자)

방혜자(方惠子, 1937- )는 경기도 고양군 능동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1961년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 이응로 화백의 제안으로 파리 시립 현대미술관에서 주최하는 「파리의 외국 화가」전에 출품하며 파리에 정착했다. 회화 외에 벽화, 스테인드글라스, 서예 등에도 두각을 나타냈으며 한국의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한국, 프랑스, 독일, 미국, 캐나다, 스웨덴, 벨기에, 스위스, 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 70회 이상의 개인전과 다수의 전시회를 가졌다. 『마음의 소리』(1986), 『마음의 침묵』(2001), 『아기가 본 세상』(2002) 등의 수필집과 여러 시화집이 한국에서 출간되었으며, 『방혜자(Bang Hai Ja)』(1997), 『방혜자—빛의 숨결(Bang Hai Ja—Souffle de Lumière)』(2007) 등의 작품집이 프랑스에서 출간되었다.

질베르 라스코 (글쓴이)

질베르 라스코(Gilbert Lascault)는 1934년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그에서 태어난 프랑스의 저명한 사학가, 평론가로 파리 디스 낭테르 대학, 소르본 대학에서 미학과 예술철학을 강의하였으며, 다수의 예술 서적을 편집했다. 1997년 파리의 세르클 다르출판사에서 출간된 방혜자의 첫번째 작품집 『방혜자(Bang Hai Ja)』의 저자이기도 하다.

다비드 엘바즈 (글쓴이)

다비드 엘바즈(David Elbaz)는 천체물리학자로, 프랑스 원자력 위원회(CEA Saclay), 천체물리학부 우주론, 은하수 연구실장으로 있다.

샤를 쥘리에 (글쓴이)

샤를 쥘리에(Charles Juliet)는 1934년 프랑스 엥(Ain) 지방의 작은 마을 쥬쥬리외(Jujurieux) 출생. 아직 젖먹이였던 생후 3개월 때 스위스에서 건너온 농가에 입양되어 자라다가 12세 때 소년군사학교에 입학하여 20세 때 졸업하였다. 군의관을 양성하는 리옹의 군사보건학교(Ecole de sante militaire)에 합격했으나, 입학 3년 뒤 글쓰기에 전념하기 위해 의학공부를 포기하고 작가의 길에 입문한다. 이후 오랜 습작기간을 거쳐 39세에 첫 저서를 간행하고 1989년 55세에 《눈뜰 무렵(L’annee de l’eveil)》을 발표하며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동안 소설, 시, 희곡, 미술평론, 에세이집 등 40여 권의 작품을 간행했다. 특히 《기억의 조각들(Lambeaux)》(한국어판 제목은 《누더기》) 등의 작품은 프랑스 벨기에 등에서 고등학교 교재로 쓰이고 있다. 20대부터 써오는 《일기》 연작은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품으로서, 현재 7권까지 간행되는 동안 많은 독자에게 영향을 미쳤다. 2004년 뉴질랜드 웰링턴에 초대작가로 체류하는 동안의 기록이 《일기: 흰구름 길게 드리운 나라에서(Au pays du long nuage blanc)》이다.

윤난지 (글쓴이)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석사학위 및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김환기』, 『현대미술의 풍경』, 역서로 『20세기의 미술』, 『현대 조각의 흐름』 등이 있으며, 논문 「추상미술과 유토피아」 외 다수를 발표했다.

저자/역자의 다른 책들

Chaque particule de lumière scintille
Gilbert Lascault
반짝이는 빛의 입자들
질베르 라스코
Each Particle of Light Sparkles
Gilbert Lascault

Étoiles et lumière
David Elbaz
별과 빛
다비드 엘바즈
Stars and Light
David Elbaz

Lumières de Bang Hai Ja
Charles Juliet
방혜자의 빛
샤를 쥘리에
Lights of Bang Hai Ja
Charles Juliet

Cœur de lumière
Yun Nanjie
마음의 빛
윤난지
Heart of Light
Yun Nanjie

Chant de lumière…
Hun Bang
빛의 노래…
방훈

Parcours de l’artiste
예술가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