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태

“세계미술의 역사 속을 하루에도 수십 바퀴씩 돌고 돌았다. 그러지 않은 날이 없었다. 어떻게 만들까, 어떻게 그릴까, 나의 현재를 찾는 끝날 줄 모르는 여정이었다. 나는 이루 다 헬 수 없는 나날을 방황했다. 끝끝내 집을 못 찾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세월이었다. 이제 나의 진모(眞貌)를 발견하고 나의 집을 만들어, 거기에서 나의 영혼이 쉬어야 한다.” —최종태

평생 동안 인물상만을 조각해 온 최종태(崔鍾泰, 1932- )는 종교와 진리 그리고 인간에 대한 끝없는 물음을 던지면서 이를 예술로 승화시킨 한국의 대표적 조각가이다. 그는 특정 종교의 관습적 영역에 갇히지 않고 한국적 가치와 전통을 계승함으로써, 이 땅에 맞는 성상(聖像) 조각의 현대화를 이루어낸 선구자이기도 하다. 이 책은 국립현대미술관이 ‘한국 현대미술작가 시리즈’의 일환으로 조각 부문 대가(大家)를 조명하기 위해 2015년 기획한 대규모 회고전과 함께 출간되는 것으로, 한국 현대조각사 속에서 독자적인 세계를 펼쳐 온 작가의 예술 인생을 한자리에 정리하는 작품집이다.

일생 동안 본질을 탐구한 예술가

1932년 대전에서 태어난 최종태는 일제강점기와 해방기에 유년시절을 보냈다. 암울하고 혼란스러웠지만 그에게 이 시절은 영감의 원천과도 같은 시기였다. 때묻지 않은 순수한 시절을 늘 그리워한 작가는 이후 예술을 통해 근원으로의 회귀를 지향한다. 1954년 서울대 미술대학 조소과에 입학한 최종태는 졸업한 이듬해인 1959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國展)」]에 〈입상(立像)〉으로 처음 입선했다. 이어 1960년 「국전」에 출품한 〈서 있는 여인〉으로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하고, 1970년 〈회향(懷鄕)〉으로 추천작가상을 받으면서 본격적인 예술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60-1970년대 우리나라 미술계에서는 추상미술, 개념미술 등이 강세를 이루면서도 ‘우리 전통의 현대적 계승’이라는 과제가 함께 대두되었다. 그 속에서 그는 전통과 현대를 통합하고자 했고, 서양미술을 전공하면서도 동양으로의 탐구를 멈추지 않았다. 또한 영원한 스승 이동훈(李東勳, 1903-1984), 김종영(金鍾瑛, 1915-1982), 장욱진(張旭鎭, 1917-1990)의 예술세계는 그가 예술가로 성장하는 데 자양분이 되었지만,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이 모든 고뇌는 자신만의 고유 어휘를 얻기 위한 싸움,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것에 대한 그의 영원한 의문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이성적 논리보다는 영성적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가령 고대 그리스 로마 예술보다는 고대 이집트 예술에 관심을 가졌고, 서구의 예술가들 중에서도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 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조르조 모란디(Giorgio Morandi)의 작업에 나타나는 존재론적 지향에 매료되었다. 대학 시절 불교 경전인 『반야심경(般若心經)』과 『금강경(金剛經)』에 심취하고,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는 천주교 신자가 되었는데, 그만큼 그는 인간과 인생, 신과 예술에 관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 고민의 흔적은 그의 조각작품에 일관되게 드러난다. 그의 성상 조각은 정형화된 서구의 틀에서 벗어난 좋은 선례가 되었다. 우리나라 가톨릭 성상 조각의 선두에서 그는 종교적 신념과 한국적 가치의 계승을 접목하여 성상 조각이 가야 할 길을 제시했다. 최종태가 평생에 걸쳐 제작한 소녀상에서도 이러한 특징이 나타난다. ‘소녀’는 가장 순수한 존재이자 원형적 존재로, 최종태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정점에 있는 존재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때 묻지 않은 것이며, 신선한 것, 깨끗한 것이었다. “내가 그리는 얼굴은 실재의 얼굴과는 많이 다르게 되어 있다. 나는 좋은 사람, 착한 사람, 훌륭한 사람을 그리고 싶은 것”이라고 고백하듯, 최종태에게 예술은 조형성의 문제라기보다는 삶의 문제에 가까웠다.

육십여 년 예술 인생을 담은 회고 작품집

이 책은 최종태의 작품을 다양한 각도에서 해석한 세 편의 에세이와, 전시에 출품되지 못한 주요 교회조각과 그밖의 조각작품 들로 시작한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김형미(金亨美)의 글 「우리 안의 천국」은 한국현대미술사의 재정립이라는 대전제 아래 한국 현대 조각계의 대가인 최종태의 예술세계 전반을 연대기적으로 풀어내며 작가의 조형실험과 그 미학적 완성의 경로를 훑는다.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있는 김산춘(金山椿) 신부의 「신앙을 조각하다」는 최종태의 교회조각이 어떤 정신적 태도를 바탕으로 탄생하게 되었는지, 작가가 남긴 말과 글을 통해, 그리고 동서양의 여러 학자들의 저술을 통해 논리적으로 풀어 간다. 이 시대의 미(美)는 더 이상 존재의 초월자들인 진(眞)과 선(善)에 연동하고 있지 못하는 위기에 처해 있는데,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진정한 미, 즉 십자가에서 정점에 달하는 역설미처럼, 예술가는 자기 비움(kenosis)을 통해 신비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공허한 풍요로움을 거부하고 ‘고귀한 단순함’을 지닌 최종태의 성상은 바로 그 경지에 다다랐다고 평하고 있다.
동양미학과 불교사상을 공부한 명법(明法) 스님의 글 「의경(意境)의 조각」은 동아시아 전통과 현대미술이라는 두 축을 기반으로 최종태의 예술을 조명한다. 풍랑 같은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조형어법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람됨’의 문제를 끊임없이 되물음으로써 자신의 인격과 예술작품을 일치시킨 동아시아의 예술정신과 조응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문인산수화(文人山水畵)가 현상세계를 묘사하는 재현적 성격을 잃지 않으면서도 사대부들의 초월적인 정신세계를 표현한 것처럼, 최종태의 조각 역시 인간적인 표정을 담고 있으면서도 현상세계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마음의 경계를 표시한다는 것이다.
책의 중심을 이루는 작품 부분에서는, 최종태의 전작(全作)에서 엄선한 1960년대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의 대표 조각작품 72점을 형태와 연대를 고려한 순서로 배열하고, 질감을 좀더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세부 이미지들을 적절히 배치했다. 이어서 파스텔화, 판화, 먹그림, 수채화 등 다양한 평면그림 35점이 함께 실려 있어, 그가 이루어낸 방대한 작업을 제한적이나마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책끝에 실린 최종태의 자전적 에세이 「긴 밤은 가고」는 뛰어난 수필가이가도 한 작가의 문학적 감성이 돋보이는 글로, 삶과 예술에 대한 평생에 걸친 고뇌를 담백하게 서술하고 있다. 구도(求道)의 여정 속에서 만난 스승들과의 인연을 풀어내며 예술적 성취, 종교적 지향, 그리고 삶의 근원적 물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사진자료와 함께 편집된 연보는 최종태의 삶과 예술을 총체적으로 정리, 기록하고 있다.

최종태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뒤돌아 보며 이렇게 말한다. “역설 같지만 답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 나는 감사하고 있고 아쉬움은 많지만 후회스럽지는 않다.” 따라서 이 책은 그가 찾은 어떤 진실을 담고 있다기보다는, 그것을 향한 끝없는 여정을 담고 있다. 이 여정은, 2015년 9월 1일부터 11월 29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제2전시실에서 열리는 「최종태」전에서도 만날 수 있다.

 

최종태 (저자)

최종태(崔鍾泰, 1932- )는 대전 출생으로, 서울대 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공주교육대, 이화여대 교수를 거쳐, 1970년부터 근 삼십 년간 서울대 미대 교수를 역임했다. 조각을 주된 작업으로 해 오는 한편, 소묘, 파스텔 그림, 매직마커 그림, 목판화 등 여러 장르의 작품을 꾸준히 해 왔고, 국내외에서 수십 차례의 전시를 가진 바 있다.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김종영기념사업회 회장, 김종영미술관 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예술가와 역사의식』(1986), 『형태를 찾아서』(1990),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만들고 싶다』(1992), 『나의 미술, 아름다움을 향한 사색』(1998), 『이순의 사색』(2001), 『고향 가는 길』(2001), 『한 예술가의 회상』(2009) 등이 있고, 작품집으로 『최종태』(전2권, 1988), 『최종태』(1992), 『최종태 교회조각』(1998), 『최종태: 소묘―1970년대』(2005), 『최종태: 파스텔 그림』(2006), 『먹빛의 자코메티』(2007), 『최종태: 조각 1991-2007』(2007), 『최종태: 얼굴그림 2009-2010』(2010) 등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글쓴이)

국립현대미술관

저자/역자의 다른 책들

김형미 (글쓴이)

김형미(金亨美)는 이화여대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뒤 한국문화예술위윈회 아르코미술관 큐레이터로 십 년 간 근무했으며,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재직 중이다. 동덕여대, 국민대, 울산대 등에서 강의 했다.

김산춘 (글쓴이)

김산춘(金山椿, 1958- )은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 미학과 석사과정을 마치고 예수회에 입회, 로마 그레고 리안대학 신학부를 졸업하고 1993년 사제품을 받았다. 이후 일본 소피아대학(上智大學) 철학연구과 박사 과정을 마친 후, 현재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감각과 초월』(2003), 역서로 『천사론』(1999) 등이 있다.

명법 (글쓴이)

명법(明法, 1964- )은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미학과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으며 2008년 미국 스미스대학에서 박사후과정을 연수했다. 현재 능인불교대학원대학교 명상심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선종과 송대사대부의 예술정신』(2009), 『미국 부처님은 몇 살입니까?』(2013), 『미술관에 간 붓다』(2014) 등이 있다.

최종태 (글쓴이)

최종태(崔鍾泰, 1932- )는 대전 출생으로, 서울대 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공주교육대, 이화여대 교수를 거쳐, 1970년부터 근 삼십 년간 서울대 미대 교수를 역임했다. 조각을 주된 작업으로 해 오는 한편, 소묘, 파스텔 그림, 매직마커 그림, 목판화 등 여러 장르의 작품을 꾸준히 해 왔고, 국내외에서 수십 차례의 전시를 가진 바 있다.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김종영기념사업회 회장, 김종영미술관 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예술가와 역사의식』(1986), 『형태를 찾아서』(1990),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만들고 싶다』(1992), 『나의 미술, 아름다움을 향한 사색』(1998), 『이순의 사색』(2001), 『고향 가는 길』(2001), 『한 예술가의 회상』(2009) 등이 있고, 작품집으로 『최종태』(전2권, 1988), 『최종태』(1992), 『최종태 교회조각』(1998), 『최종태: 소묘―1970년대』(2005), 『최종태: 파스텔 그림』(2006), 『먹빛의 자코메티』(2007), 『최종태: 조각 1991-2007』(2007), 『최종태: 얼굴그림 2009-2010』(2010) 등이 있다.

 

책머리에
Forward 
A Summary

우리 안의 천국 / 김형미

신앙을 조각하다 / 김산춘

의경(意境)의 조각 / 명법

 

조각

그림

긴 밤은 가고 / 최종태

최종태 연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