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本 白凡逸志(한문본)

  • 김구
  • 215×305mm 양장 2015년 12월 19일 344면 978-89-301-0494-4
  • 문학·기타, 열화당 영혼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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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선생이 자호自號하기를 백범白凡, 즉 백정이나 범부의 신분으로 스스로를 낮추고 독립운동을 하셨듯이, 책 만드는 우리도 스스로 염장이 또는 염꾼의 신분으로 몸을 낮추어, 우리 역사의 말뿌리와 글뿌리를 가다듬고 복원하는 일에 임해야 한다.” —『정본 백범일지』 편찬에 임하는 열화당 이기웅 발행인의 노트에서

『정본正本 백범일지白凡逸志』 두 권이 ‘열화당 영혼도서관’ 총서로 발행되었다. 국제문화도시교류협회에서 헤이리에 건립 진행 중인 ‘안중근기념 영혼도서관’에 꽂히게 될 이 두 권의 책은, 백범白凡 김구金九(1876-1949) 선생의 외침, 탄식, 신음소리, 체취까지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는 장엄한 염殮 작업으로, 광복 70년이자 강릉 선교장 열화당 건립 200년을 기념하는 뜻을 담아 출간하게 된 것이다.

왜 『백범일지』를 다시 출간하는가

『백범일지』가 초판 발행된 것은 백범 선생이 돌아가시기 두 해 전인 1947년이었다. 당시 국사원國士院 내에 둔 ‘김구 자서전 백범일지 출판사무소’에서 화보畵報와 백범 선생의 서문序文, 『백범일지』의 「상권」 「하권」 「계속」의 내용을 싣고, 부록 형식으로 「나의 소원」을 덧붙여 ‘김구 자서전 백범일지’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것이다. 규모는 사륙판 424면으로, 원문이 대폭 축소 간행되었다. 이후 백범 선생의 차남 김신金信 선생이 좋은 뜻으로 저작권을 스스로 해제하였으나, 결과적으로는 무분별한 출판으로 이어져 지금까지 80여 종의 『백범일지』가 국내에서 출간되는 우려스러운 상황에 이르렀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백범일지』의 출간은 처음부터 단추가 잘못 꿰어졌다. 원본성原本性이 크게 훼손된 것이다. 첫 출간 당시 원고의 윤문을 한 이는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 선생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로 인해 백범의 냄새가 많이 지워져 버렸고, 중국 상해上海와 중경重慶의 긴박했던 독립운동 현장에서 기록한 원본의 생생함이 적잖이 희석되었으며, 백범 특유의 투박한 듯한 문체가 윤색되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인명과 지명의 착오, 내용의 뒤바뀐 서술, 원문의 대폭 생략 등, ‘원본에서 가장 멀어진 판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국사원 본이 당시로서는 백범 선생의 서문을 받아 수록했고, 또 백범 선생의 발간 승인을 얻어 출간되었기 때문에, 이를 저본底本 또는 대본臺本으로 하는 『백범일지』가 이후 계속해서 출간되어 국민들에게 널리 읽혀 왔고, 안타깝게도 초판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바로잡은 책은 지금껏 나오지 않았다.
열화당은 오랫동안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정본 백범일지』의 출간을 계획해 오다가 실제 편찬에 착수하여, 삼 년에 걸친 작업 끝에 친필 원본을 그대로 활자화한 ‘한문 정본 백범일지’, 그리고 역시 친필 원본을 저본으로 삼아 오늘의 말로 풀어 쓴 ‘한글 정본 백범일지’, 이렇게 두 권으로 이루어진 『정본 백범일지』를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이 두 권은 모두 친필본과 같은 세로쓰기 체제로 편집하였으며, 친필본과 같은 크기의 판형으로 제작되었다. 올바른 원본이 존재한 연후에 이를 토대로 한 주석본, 번역본, 축약본, 교육용 도서, 아동용 도서, 그리고 영화, 연극, 오페라, 뮤지컬 등이 나와야 함이 원칙이라 한다면, 이러한 사실만으로도 『정본 백범일지』가 출간되어야 하는 당위는 충분할 것이다.

어떤 책만들기로 ‘정본’을 지향하였는가

『정본 백범일지』의 출간은 원본성 문제에서 출발한 것만은 아니었다. 이러한 결정을 하기까지에는 우리의 올바른 ‘말뿌리’와 ‘글뿌리’를 찾고자 하는 열화당의 출판정신이 그 배경에 깊숙이 깔려 있다. 세종 임금께서 1443년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하셨으나, 알다시피 19세기까지 우리의 ‘글쓰기’는 주로 한문漢文으로 이루어져 온 것이 사실이다. 우리의 올바른 말뿌리와 글뿌리를 찾는 일은 이런 우리 언어의 태생적 역사적 운명을 소상히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기웅 발행인은 간행사 「‘정본 백범일지’를 펴내며: 우리 기록문화유산의 올바른 보존과 정립을 위하여」에서 이렇게 말한다.

“『백범일지』 원본의 수많은 한자, 그리고 한문투의 문장 들은 한자와 한글이 함께해 온 우리말, 우리 문자의 역사적 운명의 소산이다. 한자는 ‘동아시아 문자’이지 중국만의 글자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페니키아 문자, 라틴 문자를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된 알파벳이 ‘서양 공용의 문자’이듯이, 한자漢字는 그 이름이 중국 한漢나라에 원연을 두고 있을 뿐이지, 엄연히 ‘동아시아 공용의 문자’로 존재해 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한글과 한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떼어서는 아니 되는 언어적 숙명 관계에 놓여 있으며, 그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우리 어문을 향한 백범의 글쓰기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 출판에서 ‘책의 형식’ 또한 우리 말뿌리, 글뿌리를 복원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동아시아에서 ‘세로쓰기’는 필사筆寫나 책자冊子 형식의 기본원리로, 오늘에 맞는 세로쓰기의 복원을 통해 우리는 『백범일지』 원본의 형식뿐 아니라 백범의 정신과 숨결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다고 믿으며, 그럼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정본’이 되리라고 자부한다. 이기웅 발행인은 “우리가 오랜 세월 지켜 오던 세로쓰기를 이토록 철저하게 버린 것은,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알파벳 자판에 맹목으로 무릎을 꿇은 결과이다. 『훈민정음해례訓民正音解例』에서 보다시피, 한글 창제 당시부터 세로쓰기 원칙을 알 수 있으며, 1980년대 중반까지 우리는 세로쓰기를 지켜 왔던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정본 백범일지』는 원본의 체제와 같은 세로쓰기를 채택하였는데, 특히 첫째 권 ‘한문 정본’은 원본의 한자는 한자 그대로, 한글은 한글 그대로 표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고, ‘오늘에 맞는 세로쓰기’가 되게 하기 위해 한자마다 어깨글자로 독음을 달아 가독성을 높였다.
책의 형식뿐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정본’을 지향하면서 교정과 편집에 철저함을 기하였다. 실무 작업에 앞서 우선 계획안 작성에 착수하여 『백범김구전집』(전12권, 대한매일신문사, 1999)과 『친필을 원색영인한 김구 자서전 백범일지』(집문당, 2004)를 비롯하여, 기존에 친필 원본을 저본으로 삼아 출간하였거나 충실한 번역본을 지향하여 출간한 여러 판본들을 면밀히 검토하여, 이 판본들이 범한 다수의 오류들을 바로잡았다. 『정본 백범일지』의 첫째 권인 ‘한문 정본’은 모두 여덟 차례의 대교對校와 교정校訂 작업을, 이를 토대로 조심스럽게 우리말로 풀어낸 ‘한글 정본’은 여섯 차례의 번역과 교정 작업을 거쳤다. 사료적史料的 활용을 위해 두 권 모두 책 말미에 상세한 색인을 수록하였고, ‘한글 정본’은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편집자 주註’ 약 760여개를 달았다.
이기웅 발행인은 이 책 말미에 수록한 발간사에서 출간의 의미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금년은 광복 칠십 주년 되는 뜻깊은 해이며, 내년은 백범 선생이 태어나신 지 백사십 주년 되는 해이다. 『백범일지』의 간행 역사를 보면, 어떠한 기록이라도 환경과 여건에 따라 그 본의가 잘못 전달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우리는 이것이 참기록인 듯 그대로 전해질까 두려워하면서, 백범의 체취가 살아 있는 육필 원고를 정성껏 염殮하는 심정으로 이 책을 간행하였다. 『백범일지』의 출간에서 힘을 빌릴 최고의 솜씨는 오로지 백범뿐이다. 아무도 그를 대신할 수 없다. 이런 생각으로 우리는 철두철미 원본에 근거한 『정본 백범일지』를 지향해 왔으며, 이같은 작업이야말로 정녕 우리 민족의 자존이 걸린 일일 것이다.”

이 책 표지의 한자漢字 제자題字는 추사秋史 연구자 임병목林秉穆 선생과 고문헌 연구가 박철상朴徹庠 선생의 자문 아래 추사 진적眞跡에서 집자集字하였으며, 한글 제자題字는 서예가 하석何石 박원규朴元圭 선생이 조선시대 혼례 때 양가兩家가 예법에 따라 주고받는 서간書簡 모범문을 모아 놓은 『규합한훤閨閤寒喧』에서 집자해 주었다.
『백범일지』의 초판본은 결과적으로 본다면 원본 출판을 생략한 채 국민계몽을 위해 보급판을 먼저 낸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는데, 이를 바로잡기 위해 철저하게 친필 원본에 근거한 ‘정본’ 출판을 지향하였으므로 초판에 수록되었던 백범 선생의 「서문」과 부록 「나의 소원」은 이번 『정본 백범일지』에는 수록하지 않았다. 열화당에서는 이 두 권에 이어서, 앞으로 여건이 허락된다면 친필 원본을 그대로 보여 주는 ‘복각본’과 『백범일지』 및 김구 선생과 관련된 자료들을 엮은 ‘자료편’도 출간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번에 수록하지 않은 초판 서문과 「나의 소원」은 이 ‘자료편’에서 다룰 예정이다.

『정본 백범일지』 출판회 안내

『정본 백범일지』 출간을 기념하는 출판회가 12월 19일 파주출판도시 열화당책박물관에서 열린다.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김형오 회장을 비롯하여 백범 관계자 및 출판계, 학계, 문화예술계 인사 1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며, 박원순 선생(서울시장)의 짧은 소감이 담긴 특강이 예정돼 있다.

白凡을 伏慕하며 白凡逸志를 염하다 —‘정본 백범일지’ 출판회
일시: 2015년 12월 19일 토요일 오후 2시
장소: 파주출판도시 열화당책박물관
문의: 열화당 031-955-7000 / 열화당책박물관 031-955-7020, 7021

「正本 白凡逸志」 배포 안내

이번에 200질로 출간한 「정본 백범일지」(모두 두 권)는 국제문화도시교류협회에서 헤이리 예술마을에 건립 추진 중인 「안중근기념 영혼도서관」에 모실 예정입니다. 「이 책을 모셔가는 비용」(이른바 「책값」)은 없습니다. 다만, 출간 이후 일정 금액을 「안중근기념 영혼도서관」 건립기금으로 기부하신 분에게 우선적으로 배포할 예정입니다.

문의: 열화당 031-955-7000 국제문화도시교류협회 031-955-7030
기부금 계좌: 기업은행 496-007447-01-014 예금주 사단법인 국제문화도시교류협회

* 필요하신 분께는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해 드립니다.

언론매체 기사
한겨레
강원일보
동아일보
전북일보

김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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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仁信兩兒書

上卷
祖先과 家庭
出生 及 幼年時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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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學 接主
淸國 視察
國母報讐
投獄
受死刑宣告
大君主親電停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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耶蘇敎와 敎育者
再次投獄
三次投獄
獄中生活
農夫
出國
警務局長
內務總長
喪妻
國務領
國務委員

下卷
自引言
上海 到着
<上海 到着> 이후 소제목을 붙일 만한 곳은
<李奉昌 東京事件과 尹奉吉 虹口事件>、<嘉興과 南京 生活>、<長沙에서 重慶으로>이다。

繼續
第一 統一問題
第二 光復軍 組織工作의 成果
<第二 光復軍 組織工作의 成果> 이후 소제목을 붙일 만한 곳은
<倭敵의 降服>、 <還國 및 地方巡廻>이다。

正本 白凡逸志를 펴내며
索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