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효상 도큐먼트

승효상 건축, 사반세기의 풍경
“김수근 건축을 하며 보낸 십오 년을 합하면 무려 사십 년이 넘는 세월을 건축에 몰두하고 있으니 내 건축 이력도 만만치 않게 오래되었다. 그런 지금에도 건축 작업은 여전히 내가 자신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밤 늦도록 도면을 만지작거리며 망설이고 망설인다. 뿐만 아니다. 그렇게 노심초사하여 가까스로 만든 설계로 지어진 결과를 보면 늘 한심하다. 그러니 완공된 건축을 세간에 알리는 일이 아무래도 민망할 수밖에 없어 지난 몇 년 간 웬만하면 건축매체를 멀리했다. 그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건축은 개인이 아니라 공공의 소유여야 한다는 내 주장이 온당하다면 내가 지은 건축도 공공에 의해 재단되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 줄곧 나를 보챘다. 이 책의 출간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던 이유였다.” —「서문」 중에서

국내외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 건축가 승효상(承孝相, 1952- )이, 이로재를 설립한 1989년부터 2015년까지의 작업 중 중요 프로젝트를 엄선해 한 권의 책으로 담아냈다. ‘빈자(貧者)의 미학’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독자적인 방향을 모색하던 첫 작업 수졸당(守拙堂, 1992)부터, 병인박해 때 순교한 신석복(申錫福)을 위한 성서적 풍경(Biblical Landscape) 명례성지(2015)까지, 사반세기 동안 승효상이 건축에서 실현하고자 했던 생각들을 하나하나 만날 수 있다. 앞서 몇몇 작품집이 나오기는 했지만, 이번 책이 승효상 건축의 전체를 아우르는 첫 책이나 다름없다. 다만, 건축설계가 거주하는 이들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바탕으로 그 삶을 조직하는 일이므로 그 결과를 기록한 이 책을 건축가는 작품집이 아닌 ‘건축 도큐먼트’라고 스스로 명명했다. 마치 카탈로그처럼 편집된 이유이기도 하다. 프로젝트들의 주요 사진과 도면 그리고 건축가의 글이 간결하게 엮여 있지만, 단순히 지난 작업을 모았다기보다는 각 프로젝트에 대해 지금의 입장에서 다시 씌어진 ‘승효상 건축론’이라고 할 수 있다.

지문(地文)의 흔적
프랑스의 도시학자 프랑수아 아셰(François Ascher)는 ‘메타폴리스(metapolis)’라는 개념을 이야기하며 성장과 팽창에 주도된 ‘메트로폴리스(metropolis)’를 극복하고 현실적 삶에 기반을 둔 다중적이고 복합적이며 독립적인 공간으로 구성된 현대적 도시공동체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승효상은 메타폴리스를 ‘성찰적 도시’로 번역했다. 여기서 말하는 성찰이란 땅의 논리와 생리를 무시하고 단순한 수치로만 판단하여 땅의 윤리를 훼손했던 인간들의 행적에 대한 성찰일 것이다. 그는 사람이 각기 다른 지문(指紋)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땅에도 고유한 무늬(地紋)가 있다고 자신의 책 『지문(地文, Landscript)』에서 밝힌 바 있다. 자연의 세월이 만든 무늬이며 우리의 삶이 새겨진 무늬, 즉 지문은 인간이 땅에 쓴 한 편의 역사서인 셈이다. 이러한 유구한 역사가 흐르는 지문을 바탕에 둔 그의 프로젝트들은 생성과 변화, 연대, 환경 등을 중요한 키워드로 삼는다.
개인주택에서부터 오피스, 숙박시설, 문화공간, 교육시설, 종교시설, 도시계획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규모와 성격의 프로젝트들에는, 그가 지키고자 했던 중요한 건축개념들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목적 없는 방, 불편한 집
“칠십 평의 작은 땅이지만 세 개의 다른 마당을 설정했다. 가운데 마당은 거실과 높이를 같이하고 거실처럼 마루를 깔아 내외부의 관념을 흐리게 했다. 이를 포함한 세 개의 마당을 건물과 담장으로 둘러싸 구축했다. 때문에 방과 방 사이가 길어지고 어떤 방은 외부를 통해서만 연결된다. 불편한 집이 되었다. 그러나 그 불편이 사유로 이어지고 가족의 단란을 만들며 결국 삶을 윤택하게 할 것이다.” —「수졸당」 중에서

담장으로 두른 사각형의 필지에 ‘불란서 미니 이층집’을 세우고 푸른 잔디를 심는, 지난 1970년대에 불어닥친 이 새로운 서양주택의 유형은, 수천 년 동안 이 땅에서 구축되었던 거주방식을 송두리째 바꿨고, 자연히 삶의 방식도 생소하게 했다. 또한 침실에는 침대가, 부엌에는 식탁이 놓이게 되면서 우리네 삶과 주거공간까지 기능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전통적 집에는 목적을 가진 방이 없었다. 위치에 따라 안방, 건넌방, 문간방으로만 불렀을 뿐이었다. 이 방들은 식탁을 놓으면 식당이 되었고, 요를 깔면 침실, 책상을 놓으면 공부방이 되었다.
승효상은 집은 ‘가옥’이 아니라 ‘공간’이어야 한다는 전통적 공간관념의 회복을 표상하는 ‘떨어뜨린 집’ ‘목적 없는 방’을 구상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옛집의 구성방식을 차용해 철저히 공간만을 구축한 수졸당(1992), 목적이 없는 열두 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수백당(守白堂, 1998)이 대표적이다. 수백당의 방들은 그 목적 아니고도 그곳에서 머무를 수 있도록 인접한 방들과 긴밀하게 접속되어 있으며,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공간에 자연의 변화를 끌어들여 도시를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원하는 거주자가 풍요로운 일상을 영위할 수 있게 한다. 독립된 방들의 집합으로 구성된 퇴촌주택(2009)에서도 이러한 자연이 가져다주는 통풍과 채광의 효과를 만끽할 수 있다.

열린 공동체, 풍경으로서의 건축
“서울은 산속에 만들어진 도시다. 평지가 많지 않아 한 집의 건축 규모가 클 수가 없었다. 작은 단위들이 모여서 이루는 집합적 형태가 서울의 고유한 건축 풍경이었다. 그러나 지난 세기 평지에 세운 서양도시의 미망을 좇아 랜드마크를 흉내내며 산세를 거스르고 단일의 거대 건축을 지어 온 바람에 도시의 조화는 일그러지고 만다. 물론 산업이 커져 큰 건물을 지어야 하지만, 거대 공장이나 컨벤션적 기능이 아닌 다음에야 업무는 대개 작은 단위로 이루어지니, 잘만 연구하면 작은 단위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주어진 땅은 오랫동안 여러 필지로 나뉘어 주변의 작은 단위들과 동네를 이루고 있어 그 풍경을 유지하는 게 온당하였다.” —「웰콤 시티」 중에서

도시 속에 위치하는 오피스 건물의 경우에는 큰 덩어리가 기존의 풍경을 가로막거나 거스르지 않도록 작은 단위로 나누고(웰콤 시티, 1999), 내부공간을 활용하여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하나의 공동체 마을을 지향하는 건축을 선보였다. 휴맥스 빌리지(2002)의 투명한 건축은 그들이 지향하는 열린 공동체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도시풍경과 주변의 자연풍경을 매개하는 틀로서 기능한다. 이 열린 사회의 공동성을 확보하는 일은 내부공간에서 만들어졌다. 큰 내부공간 가운데에 마당을 만들어 하늘로 뚫었고, 열세 개 층을 관통하는 이 마당은 각 층별로 서로 다른 공간 구조를 가지지만 수직적으로 연결되게 했다. 땅 한가운데에 선형(線形)의 광장을 가로지르게 한 차오웨이(朝外) 소호(2005)는 많은 광장과 다양한 마당들, 공원과 여러 갈래로 갈라진 길, 공중가로들을 모두가 공유하게 함으로써 그 자체로 작은 도시를 만들어냈다.

자연 속에 위치하게 되는 건물은 기존 지형과 나무의 훼손을 최소화하고 오브제로서의 건축이 아니라 풍경을 그리는 데 더욱 중점을 두었다. 천 평이 넘는 베이징 장성호텔 클럽하우스(2001)의 부지는 경사가 심한 산세에 비해 규모가 컸다. 건축가는 자연에 손을 대는 대신 몇 개의 단위로 분절하고 그 사이로 자연을 끌어들여 건축과 자연이 서로 어울리게 해야 했다. 즉 풍경으로서의 건축인 셈이다. 자연 속에 모인 이들이 특별한 삶을 일구는 장소의 풍경, 바로 ‘문화풍경(culturescape)’이며 새로운 풍경이었다. 억새풀과 자작나무 숲에 놓인 노헌(蘆軒, 2002)을 지을 때도 집 자체보다는 땅의 풍광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의견이 건축주와 오랫동안 교환되었으며, 조계종 전통불교문화원(2007) 역시 땅의 조건에 맞게 건물을 흩어지게 배치하고 마당으로 느슨하게 연결되게 했다. 롯데아트빌라스(2011)는 한라산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비움의 통로를 먼저 설정하여 건축물을 이 축에 나란히 배열하는 것을 좌향의 원칙으로 삼았다. 바다 경관을 독점하기 위해 횡으로 길게 배치하는 것은 생태의 흐름을 막을 뿐 아니라 공공성의 가치를 위배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건축, 기념하지 않는 건축
“시인의 시어가 휘날리는 깃발들의 광장. 여기에 아름다운 언어는 허공에 흩뿌려지고 그 파편에 취하다 보면 어느새 내가 출발한 지점에 다시 도달하게 된다. 이 기념관의 건축은 그런 과정을 만드는 매개체일 뿐이니, 형태는 존재하지 않아야 옳다. 그래서 거친 콘크리트의 물성만 있을 뿐 스스로를 기념하지 않는 건축이다. 그게 껍데기를 질타한 시인에 대한 존경과 예의였다.” —「신동엽문학관」 중에서

누군가를 기리는 목적으로 계획된 건물에서도 건축가는 오히려 ‘보이지 않는 건축’ ‘스스로를 기념하지 않는 건축’을 지향했다. 제주도에 세워진 추사관(秋史館, 2008)에서는 지하에 거의 모든 볼륨을 두고 지상에는 될수록 작고 단순한 건물로 나타냈으며, 지하의 공간이지만 선큰 마당을 통해 채광과 환기를 가능하게 했다. 신동엽문학관(2009)은 시인을 통해 우리와 우리가 서 있는 땅을 기념하도록 ‘순환구조’의 동선을 구성하고, 콘크리트의 물성만 남기고 형태는 존재하지 않도록 했다. 노무현 대통령 묘역(2009) 역시 죽은 자를 빌미로 산 자인 우리가 성찰하고 스스로를 위안하는 공간으로서 ‘광장적 형태’를 취했다.

이처럼 현실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건축가가 지키고자 노력했던 가치들을 그 밖의 사례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37개 프로젝트는 대체로 설계 연도 순서로 수록했으며, 책 끝에는 ‘이로재 건축 연보’를 실어 시기별로 그간의 작업 전체를 살펴볼 수 있게 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일반적인 건축작품집과 달리 소박하고 작게, 질박한 색감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 특징인데, 이는 건축가의 철학이 책의 형식으로도 반영된 특별한 사례가 될 것이다. 더불어 영문판도 곧 출간되어 유럽 및 영미권에 소개될 예정이다.

언론매체 기사
연합뉴스
한겨레

승효상 (저자)

승효상(承孝相)은 1952년생으로,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빈 공과대학에서 수학했다. 십오 년간의 김수근(金壽根) 문하를 거쳐 1989년 이로재(履露齋)를 개설한 그는, 한국 건축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4.3 그룹’의 일원이었으며, 새로운 건축교육을 모색하고자 서울건축학교 설립에 참가하기도 했다. 1998년 북런던대학(현 런던 메트로폴리탄 대학)의 객원교수를 역임하고 서울대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가르친 바 있다. 저서로는 『빈자의 미학』(1996)과 『지혜의 도시 / 지혜의 건축』(1999), 『건축, 사유의 기호』(2004), 『지문』(2009), 『노무현의 무덤, 스스로 추방된 자들을 위한 풍경』(2010),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2012) 등이 있다. 그는 이십세기를 주도한 서구 문명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 ‘빈자의 미학’이라는 주제를 중심에 두고 작업하고 있으며, 김수근문화상, 한국건축문화대상 등 여러 건축상을 수상했다. 파주출판도시의 코디네이터로 새로운 도시 건설에 깊이 참여하던 그에게 미국건축가협회는 명예 펠로십(Honorary Fellowship)을 수여했으며, 건축가로는 최초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주관하는 ‘2002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어 「건축가 승효상」전을 가졌다. 미국과 일본, 중국, 유럽 각지에서 개인전 및 단체전을 가지면서 세계적으로 알려진 그의 건축작업은 현재 중국 내의 왕성한 활동을 포함하여 아시아와 미국, 유럽에 걸쳐 있다. 한국정부는 그의 한국문화예술에 대한 공헌을 기려 2007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을 수여했으며, 2008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총감독으로 활약한 그는, 2014년 초대 서울시 총괄건축가로 선임되어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서문

수졸당
수백당
웰콤 시티
대전대학교 혜화문화관
베이징 장성호텔 클럽하우스
파주출판도시
한국예술종합학교 마스터플랜
보아오 캐널빌리지
노헌
닥터박 갤러리
쇳대박물관
휴맥스 빌리지
차오웨이 소호
대전대학교 천안한방병원
디엠지 평화생명동산
구덕교회
조계종 전통불교문화원
추사관
대장골 주거단지 계획
베이징 첸먼다제 역사지구보존재개발계획
교보파주센터
대전대학교 삼십 주년 기념관
제문헌
모헌
노무현 대통령 묘역
신동엽문학관
삼백육십도 지수화풍 골프클럽하우스
삼양화학 사옥
퇴촌주택
롯데아트빌라스
차의과학대학교 기숙사
핑두주택문화관
현암
명필름 파주사옥
디자인비따
논산주택
명례성지

이로재 건축 연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