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짓는 시인 박형진의 연장 부리던 이야기

이 책은 도감(圖鑑)이되 도감의 성격을 피하려 노력했다. 잡다구지레한 박물지(博物誌) 같은 것도 마음에 차지 않긴 마찬가지다. 그래서 간단한 연장 자루 하나에도 지문처럼 박혀 있는, 그것을 만들고 쓰고 건사하는 과정에 얽혀 있는, 과거이되 현재이며 지속 가능한 미래여야 할 우리들의 이야기를 투사했다. 때문에 문학이며 역사이며 철학일 수밖에 없는 이 글은, 우선 내 아들딸들과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현재 농촌에서 농사짓고 있는 젊은 농군들과 귀농인들이 읽는다면 더욱 좋겠다.—서문 중에서

전통 농기구에 담긴 인간적 가치

농부에게 연장이란 무엇인가. 단순하면 단순할수록 그것은 농부의 신체의 연장(延長)에 다름 아니다. 침팬지가 땅속에 있는 개미를 꺼내 먹기 위해 풀줄기를 이용하는 것을 떠올려보면 도구는 원시에 가까울수록 신체의 연장의 모습을 띠고 있다. 인간이 수렵 채취의 시기를 지나 몇만 년이 흐른 지금에도 ‘호미’나 ‘괭이’는 원시의 모습 그대로 단순하기 그지없다. 역설적이게도 단순한 신체의 일부이기에 지금껏 도구로서 기능하며 거친 논밭을 일구는 것을 넘어 마을을 일구고 한 사회와 그 사회를 떠받치는 규범 즉 문화를 일구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도구는 도구 그 이상의 무엇이다.
하지만 현대의 농기구는 거의 대부분 도구가 아닌 기계이다. 기계란 효율을 중시한다. 효율을 중시하는 기계의 속성은 그것을 만들어낸 거대 기업, 즉 자본의 속성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러므로 기계는 그것을 사용하는 농부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자기의 속성대로 굴러갈 수밖에 없다. 농부는 서서히 기계화되고 자본에 예속되어 가고 기계처럼 마모되어 교체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소모품이 되는 것이다. 닳아서 못 쓰게 된 도구를 농부가 다시 만드는 것과는 정반대다.
저자 박형진은 편리해져만 가는 농사 현장에서 점차 사라져 가는 우리 농기구들에 쉬이 눈길이 갔다고 한다. 전라북도 부안군 모항에서 평생 농사를 지어 온 이 땅의 농사꾼이자 시인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하찮은 똥바가지 하나라도 연장이 제 모습을 갖춰서 태어나는 데에는 오랜 시간과 사람의 경험에서 나온 숙련된 정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이제 농촌 어디에도 이런 똥바가지를 사용하여 일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지만, 사십 년 넘게 이 땅에서 농사지어 온 한 사람으로서 그 안에 깃들어 있는 가치를 현대의 세대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고 한다. 민중들 사이에서 구전되어 오는 노래나 노동요 등도 농기구 이야기에 적절히 녹여냈을 뿐만 아니라, 이야기 곳곳에서 묻어나는 남도 특유의 구수한 사투리는 여느 산문에서 느낄 수 없었던 읽는 재미까지 주고 있다.

농기구 여든여덟 개에 얽힌 이야기

저자는 농사를 지으며 사용해 본 경험을 토대로 각 농기구들의 유래와 크기, 재료, 사용법 등은 물론 직접 농기구를 만들고 수리하는 방법까지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 연장들을 널리 사용하던 시대의 생활상, 그리고 선조들의 지혜와 인정까지 짐작해 볼 수 있다.
한꺼번에 이전의 몇 배를 탈곡할 수 있는 족답식 탈곡기와 많은 양의 곡식을 담아 먼 곳으로 운반할 수 있는 가마니는 매우 편리한 도구이지만, 그 이면에는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의 쌀 생산을 늘려 일본으로 가져가려는 야욕이 스며들어 있었다. 우리 민족이 겪은 수탈의 역사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는 농기구였던 셈이다. 논김을 맬 때 손가락을 보호하기 위해서 끼우는 ‘깍지’와 팔뚝을 보호하기 위해 끼우는 ‘토시’, 깊은 곳에 고여 있는 물을 퍼 논에 대게 하는 ‘두레’와 ‘용두레’에서는 오랫동안 이어 온 농경생활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농사일의 중요한 일꾼인 소의 등허리에 망토 같은 ‘덕석’을 입혀 건강하게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게 염려하는 모습에서는 선조들의 훈훈한 정까지 느낄 수 있다.
또한 이 책에서는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유용한 생활도구들도 소개하고 있다. 잿고무래처럼 아궁이의 재를 퍼낼 때 쓰는 그릇인 ‘잿박’, 소리개나 족제비들로부터 병아리와 어미닭을 보호하기 위한 ‘닭의 어리’, 나무 말뚝을 박거나 떡을 치고 방아를 찧거나 짚의 밑동을 바술 때 쓰는 나무로 만든 망치인 ‘메’, 절구통에 빻은 곡식의 가루를 내거나 액체에 섞인 건더기를 걸러내는 데에 쓰고, 검불이나 먼지, 여러 잡티 따위를 곡물에서 골라낼 때도 쓰는 ‘체’ 등등도 이야기를 풍성하게 해 준다.

이 책에 소개되는 여든여덟 개의 농기구들 중에는 ‘갈퀴’나 ‘괭이’처럼 현재에도 사용되는 농기구들이 있는가 하면 ‘곰방메’처럼 이제 더 이상 소용되지 않아 찾아보기 힘든 농기구들도 포함되어 있다. 생소할 수도 있는 농기구들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백여 컷의 사진을 엄선하여 수록하였으며, 농촌 현장 사진은 황헌만 사진가, 유물 사진은 소장처인 농업박물관에서 제공받아 사용하였다.

언론매체 기사
고양신문
동아일보

박형진 (저자)

박형진(朴炯珍)은 1958년에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도청리 모항마을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며 1990년까지 농민운동을 했고, 1992년 『창작과 비평』 봄호에 「봄 편지」 외 여섯 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바구니 속 감자 싹은 시들어 가고』 『다시 들판에 서서』 『콩밭에서』가 있고, 『모항 막걸리집의 안주는 사람 씹는 맛이제』 『변산바다 쭈꾸미 통신』이란 산문집을 냈으며, 『갯마을 하진이』 『벌레 먹은 상추가 최고야』 등의 어린이책을 썼다. 현재 모항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갈퀴 | 달걀 망태 | 잿박 | 발과 거적 | 극젱이 | 닭의 어리 | 끙게 | 매통 | 가래 | 살포 | 그네 | 호미 | 발구 | 나래와 번지 | 도롱이 | 장군과 새갓통 | 족답식 탈곡기 | 거름통과 똥바가지 | 써레 | 괭이 | 태와 물풀매 | 멱둥구미 | 깍지와 토시 | 고무래 | 메 | 두레와 용두레 | 나락뒤주 | 낫과 숫돌 | 가마니 | 작두와 손작두 | 벼훑이 | 주루막 | 달구지와 쇠신 | 부뚜 | 종다래끼 | 풍구 | 넉가래 | 멱서리 | 섬과 씨 오쟁이 | 코뚜레와 워낭 | 개상 | 채독 | 도리깨 | 길마 | 걸채와 옹구 | 쟁기 | 맞두레와 무자위 | 통가리 | 맷돌, 맷방석, 매함지 | 키 | 물방아와 물레방아 | 삼태기 | 디딜방아 | 구유와 여물바가지 | 자새 | 멍석, 도래방석, 두트레방석 | 못줄 | 지게와 발채 | 곰방메 | 덕석과 부리망 | 체와 쳇다리 | 귀때동이 | 쇠스랑 | 연자방아 | 굴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