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남산

  • 흑백판 경주남산
  • 강운구
  • B5 양장 2016년 12월 5일 128면 40,000원 흑백사진 63컷 978-89-301-0539-2
  • 사진·영상, 사진집

고전古典이 된 강운구의 『경주남산』

강운구의 컬러판 『경주남산』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87년에 출간되었다. 당시 이 책은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장안의 화제가 됐었다. 경주 향토사학자 윤경렬은 그 사진에 대해서 “바른 계절, 바른 시간을 잡기 위해 얼마나 긴 세월을 기다렸을까. 바른 방향을 잡기 위해 험한 산등성이를 얼마나 헤맸을까. 수십 년 이 산을 오르내리면서도 느끼지 못한 남산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이 책을 통해 느끼게 되었으니 참 고마운 일”이라 했고, 문학평론가 김현은 이 책의 편찬 원리에 주목하여 “『경주남산』이라는 책을 지탱하고 있는 원리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새 땅과 하늘을 보여 주듯이 남산을 새롭게 보여 주겠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새로움을 가슴의 불로 바꿔 주겠다는 것이다. …이 책은 대상의 내부로 깊게 내려가면 따뜻하고 밝은 불만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희귀한 책이다. 그 불에 한 번이라도 스친 사람이라면, 이 책을 다신 잊지 못하리라고 나는 믿는다”라고 평가했으며, 소설가 조세희는 강운구의 작가정신에 관하여 “강운구는 외면을 사진 찍어 정신적으로 가난한 우리를 내면 세계로 이끌었다. 놀랍게도 그는 우리 땅 천 년 전 사람들이 화강암에 쪼아 남긴 부처의 모습만으로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해내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경주남산』은 사진으로 쓴 민족서사시다”라고 극찬했다. 한편 출판평론가 이중한은 이러한 출판의 시도와 실험을 높이 평가하여 “우리의 문화재들을 그 ‘고정 위치에서의 문화재’로부터 ‘개별적으로 수용자 하나하나의 삶의 거처에까지 이동시킬 수 있는 문화재’로서 존재케 하는, 그러면서 실질 이미지보다 더 유효한 이미지를 느낄 수 있게 하는 능력으로써 확대시킬 수 있다는 특별한 의미를 깨닫게 한다”고 했다. 『경주남산』의 출간은 이렇듯 사진, 작가정신, 에디토리얼디자인, 그리고 출판의 의미 모든 면에서, 그 당시에는 ‘일대 사건’이었다.

 30년 만에 다시 흑백으로 만나는 경주남산

“많은 시간이 흘러 흘러갔다. 그간 남산南山은 바뀌었고 나는 늙었다. 그렇지만 나에겐 삼십 년도 더 넘은 그때의 기억이, 바위에 새겨진 부처처럼, 각인되어 있다.” ─강운구, 「다시 보기」 중에서

처음 경주남산을 찍던 30년 전 그때, 강운구는 “단순화하여 집중하기 쉽게 하려고” 흑백으로 찍는 것을 포기했다고 한다. 대상마다 조건이 달라서 흑백촬영을 위한 다른 장비를 추가하는 것이 곤란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대상을 동시에 컬러와 흑백으로 인식하는 것”이 벅찬 일이었다고 그는 고백한다.

하지만 『경주남산』이 출간된 이후 그는 문득문득 ‘남산’을 떠올릴 때마다 그때 흑백 사진을 안 찍은 게 후회되곤 했다고도 했는데, 30년이 지난 오늘 드디어 그에게 기회가 왔고, 그는 디지털을 업고 ‘경주남산’을 흑백 사진으로 리메이크하여 우리에게 또 다른 경지의 ‘경주남산’을 보여 주고 있다. 30년 전 컬러로 찍은 사진을 흑백으로 변환한 것인데, 그럼으로써 사진에는 단순한 추상적인 빛깔만 남게 되었고, 컬러의 ‘잔소리’들이 사라지고 대상의 ‘본질’이 확연히 드러나게 된 것이다. 느낌의 깊이도 달라졌음은 물론이다. 이에 관하여 작가는 “흑백 사진으로 변환될 때까지 ‘경주남산’ 사진이 살아 있는 것은 그 찍힌 대상이 중요하고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한 것은 그저 요령 피워 얼버무리지 않고 똑바로(정공법) 대상에 접근한 것뿐이다”라고 말한다.

경주남산의 그 많은 골짜기와 능선 들에는 신라 천 년 동안 있었던 수를 알 수 없는 절터와 여러 탑과, 육십 체쯤의 석불이 있다. 탑들은 쓰러져 있고 불상들은 머리가 떨어져 나간 것들이 대부분인 신라 때의 폐허이다. 컬러판 『경주남산』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강운구는 “신라 천 년 동안 이룩했던 성지聖地가 신라가 망한 이후 지금까지 천 년 동안 폐허화되어 왔다. 폐허가 폐허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은 이곳 말고는 따로 없다”라고 썼었다. 그의 말대로, 그곳은 지나간 천 년간보다 최근의 몇 년 동안 더 많이 변했다. 최근에는 지진으로 인해 경주 문화재들이 예기치 못한 생존의 위협을 받기도 했었다. 그런 상황에서 흑백으로 다시 만나는 강운구의 ‘경주남산’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에 대한 깊이있는 기록으로, 또 하나의 고전이 될 것이다.

이 책 출간에 즈음하여 작가가 쓴 다음의 말은, 우리 시대 사진의 본령이 무엇인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생각게 한다. “요즘의 사진들은 거의 다 사진 같지 않다. 그런 추세가 어찌나 강한지, 똑바른 사진을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한쪽으로 밀려나 주눅 들어 있다. 유행이란, 더 고상하게 말하자면 사조思潮라는 것은 바뀐다는 것을 전제로 성립된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것을 따라 가며 늘 바꾸는 사람은 많고 바뀌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나는 소수에 속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번 『경주남산』 흑백판을 위해, 30년 전 컬러판을 만들 때처럼 디자이너 정병규가 이 책 디자인에 힘을 실어 주었다. 컬러판 『경주남산』을 통해 사진집 디자인의 새로운 경지를 선보였던 그는 이번 흑백판을 위해, 책이 전체적으로 분위기와 격식에 맞도록 표지에서부터 판권까지 꼼꼼히 디렉팅해 주었다. 한편, 『경주남산』 흑백판 출간과 함께 ‘사진 위주 류가헌’의 새롭게 옮긴 공간에서 12월 6일부터 내년 1월 8일까지 강운구 사진전 「경주남산」이 진행된다.

 

강운구 (저자)

강운구(姜運求, 1941- )는 문경에서 태어나 경북대를 졸업했다. 1966년부터 『조선일보』 사진기자로 삼 년간 일하다가, 뉴스보다는 잡지의 기획된 사진이 작가로서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으로 그만두고, 사진의 이론과 역사에 관한 책들을 읽으며 작가로서의 길을 가늠해 나가기 시작했다. 1970년 동아일보사 출판국 사진부에 들어가 일했으나, 1975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에 가담하여 농성하던 중 해직되었다. 1983년부터 『샘이깊은물』에서 사진편집위원과 프리랜서 사진가로 일했으며, 이때 한국 잡지사상 최장기간인 십 년 동안 「이 마을 이 식구」라는 제목으로 글과 사진을 연재했다. 인하대 미술교육과, 중앙대 사진학과, 중앙대 예술대학원, 숙명여대 대학원 등에서 사진을 가르치기도 했으며, 1983년 이후로는 제한된 전람회장의 벽면보다는 잡지나 책의 지면에 더 비중을 두며 현재까지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강운구는 1960년대 이후 개발독재의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산업사회로 바뀌는 국면들을 끊임없이 기록해 왔으며, 외국 사진이론의 잣대를 걷어내고 우리의 시각언어로써 포토저널리즘과 작가주의적 영상을 개척하여 가장 한국적인 질감의 사진을 남기는 사진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연 또는 필연」(1994, 학고재), 「모든 앙금」(1997, 학고재), 「마을 삼부작」(2001, 금호미술관), 「저녁에」(2008, 한미사진미술관) 등 네 차례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사진집으로 『내설악 너와집』(1978), 『경주남산』(1987), 『우연 또는 필연』(1994), 『모든 앙금』(1997), 『마을 삼부작』(2001), 『강운구』(2004), 『저녁에』(2008), 『오래된 풍경』(2011) 등이 있다. 사진산문집으로 『시간의 빛』(2004), 『자연기행』(2008)이 있고, 저서로는 『강운구 사진론』(2010)이 있으며, 공저로 『사진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1999), 『능으로 가는 길』(2000), 『한국 악기』(2001) 등이 있다.

다시 보기 / 강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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