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세기 집합주택

  • 근대 공동주거 백 년의 역사
  • 손세관
  • 192×260 양장 2016년 12월 31일 440면 35,000원 442 978-89-301-0541-5
  • 예술일반, 건축 이론 및 작품집
    • 2016년 ‘우수 출판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 당선작

새로운 우리 주거문화의 지표를 세우기 위하여

도시조직과 주거환경의 상호관계 및 동서양 주거문화에 관해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손세관 중앙대학교 교수가 이십세기 백 년 동안의 집합주택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연구한 『이십세기 집합주택』을 펴냈다. 이 책은 저자가 1993년에 선보여 꾸준히 읽히고 있는 『도시주거 형성의 역사』와 짝을 이루는 자매편이라 할 수 있다. 『도시주거 형성의 역사』가 고대부터 이십세기에 이르는 도시주택과 집합주택의 여러 양상을 정리한 개론편이였다면, 『이십세기 집합주택』은 이십세기 집합주택만을 주제로 삼아 더 구체적이고 폭넓은 논의를 전개시킨 총론편이라 할 수 있다. 이십세기 집합주택을 종합적으로 다룬 저작물이 국내는 물론이고 국외에도 드문 상황에서 출간된 소중한 결실이다.

수십 층의 높이를 자랑하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우리나라 전 국토를 점령하듯 끝없이 들어서고 있다. 동과 동 간의 간격이 가까워서 거주민의 사생활은 침해되기 일쑤이고, 아파트명이 없으면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획일적인 모습이다. 유명 브랜드를 달고 고급화되면서부터는 저소득층이 주로 거주하는 임대아파트 주민들의 통행을 막으며 노골적으로 차별하기까지 한다. 고층의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비인간성을 가속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우리가 이십세기 집합주택의 역사를 알아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과거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기 위한 중요한 텍스트가 된다. 저자는 공과(功過)가 공존하는 이십세기 집합주택의 역사에는 “인간의 지성과 열정은 물론이고 치기와 광기까지도 담겨 있다”고 말하며, 이를 거울삼아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은 우리의 주거문화를 깊이 반성하고, 우리에게 적절한 집합주택의 모델을 지속적으로 찾아 나가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리하여 한국 주거환경의 미래상이, 주변으로부터 고립되지 않아야 하고, 높이는 낮지만 밀도는 높으며, 사회적 결속에 도움이 되고, 고유의 문화를 이어 갈 수 있어야 하며, 역사성이 반영되고 미래를 지향하는 환경을 담고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집합주택을 통해 이십세기 건축문화를 보다

건축의 역사를 살펴보면 각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 형식이 있었다. 고대는 신전(神殿)의 시대였고, 중세는 성당(聖堂)의 시대였으며, 르네상스 이후 십구세기까지는 궁전(宮殿)의 시대였다. 그리고 근대 즉 이십세기 건축의 주인공은 주택(住宅)이다. 근대건축은 인간의 주거 문제 해결과 주거환경에 대한 새로운 이념과 방법론을 모색하는 데서 출발했다. 근대건축의 이념이 생산, 기능, 기술의 합리성에 있다면, 그 목표는 인간의 주거 수준을 향상시키고, 향상된 주거환경을 보편적 환경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십세기 건축가들에게 제일의 탐구대상은 주택, 그중에서도 여러 사람이 어울려서 거주하는 집합주택이었다.

이십세기 집합주택은 노동자, 즉 서민을 위한 주거 형식이었다. 열악하고 비위생적인 환경에 살던 그들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주거환경을 마련해 주기 위해 등장한 것이 근대의 집합주택으로, 이는 계몽적 지식인 및 정치지도자, 그리고 혁신적 건축가들의 합작품이었다. 이십세기의 집합주택에는 당시의 사회적 이념, 시대정신, 새로운 미학, 공간적 혁신, 수준 높은 기술 등 당대 건축의 중요한 화두가 모두 녹아 있다. 따라서 이십세기 집합주택을 들여다보는 것은 이십세기 건축문화를 이해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집합주택 백 년의 기록

이십세기 집합주택은 수억 명의 삶을 변혁시켰다. 이 책에서는 이십세기 백 년 동안에 지어진 집합주택을 대상으로, 그 시대적 배경, 건축적 이념, 실제 건축물의 내용, 거주자의 삶, 그리고 그 모든 결과를 두루 살핀다. 또한 이십세기 집합주택의 주인공인 건축가들의 이야기를 폭넓게 다루었다. 그들은 집합주택을 최고의 작업 대상이라고 인식했으며, 고민하고, 지혜를 모으고, 이론과 이념을 만들고, 행동했다. 이 책에서는 그들의 생각, 도전과 실험, 실패와 성취, 그리고 자각에 대해서 두루 이야기했다. 물론 제도를 만들고, 자금을 끌어모아 그들을 음으로 양으로 도운 정치가와 개혁가 들의 역할도 만만치 않았으므로 그들의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이 책이 다룬 표면적인 주제는 집합주택이지만, 그 이면에는 ‘근대성(modernity)’의 이념과 그것에 대한 인간의 대응이라는 또 다른 주제가 자리하고 있다. ‘근대’라는 새롭지만 뿌리 깊고, 분명하지만 혼란스러운 시대적 상황과 흐름 속에서 삶의 양상은 어떻게 변화하고 주거는 그것에 어떻게 대응하고 바뀌어 갔는지가 이십세기 집합주택을 이야기하는 본질적인 주제이다. 결국 ‘근대성’의 이념에 대한 인간의 물리적 대응의 다양한 양상이 이십세기 집합주택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세 시대에 걸친 집합주택의 만화경(萬華鏡) 

저자는 이십세기를 크게 세 시대로 나누었다. 1900년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를 다룬 ‘제1부 순수의 시대’는 개혁가들과 건축가들이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주거환경의 상을 모색하던 시기였다. 산업화,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도시 인구는 증가했지만 주택 및 관련 시설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도시는 과밀화하고 슬럼화했다. 지하주거가 성행했고, 최소한의 시설도 갖추지 않은 간이숙소, 임대주택 등이 난립했다. 마구잡이로 지은 임대주택이 밀집한 지역에서는 공간, 채광, 환기 등 기본적인 주거조건은 물론이고, 식수, 화장실 등이 턱없이 부족했으므로 위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열악했다. 주거환경의 개혁과 주택의 대량 건설은 필연적이었다. 절실한 요구에 대한 건축가들의 목표는 명확하고 순수했다. 오로지 서민들에게 값싸고 위생적이고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어려운 재정, 선례의 부족, 사회적 혼란 등 모든 방해 요인을 극복해야했다. 그럼에도 그들의 결실은 ‘역사상 최고’라고 규정될 만큼 오롯이 빛나는 것이었다.

1945년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를 다룬 ‘제2부 혼돈의 시대’는 전쟁에 의한 대량 파괴, 인구의 폭발적 증가, 광대한 도심의 슬럼화 등 극심하고 복합적인 문제가 가로막고 있었으며, 대상의 스케일도 컸다. 주거문제에 대한 각국의 대응은 급진적이고 과감했으며, 주택 건설은 대량으로 급속하게 이어졌다. 당연히 과오와 실책이 잇달았다. 빠른 속도와 과다한 물량은 항상 실패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입증한 셈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대에는 인류 주거환경의 모습을 크게 바꿔 버린 새로운 주거의 상(像)이 상당수 등장했다. 르 코르뷔지에의 ‘위니테 다비타시옹(Unité d’Habitation)’은 합리적인 가치를 가지는 ‘살기 위한 기계’로서의 주거환경의 모델이자 이십세기의 많은 개혁적 건축가들이 공통으로 추구했던 ‘이상적 공동사회’의 구체적 모델이었고, 미스 반 데어 로에가 미국에 계획한 고층아파트들은 ‘철과 유리’라는 매우 혁신적인 수단을 통해 새로운 집합주택의 상을 정립했다.

‘제3부 자각의 시대’에서는 1970년대 중반부터 1900년대 말까지를 다루고 있다. 이 시기에 각국은 주택 공급의 방법론을 바꾸었다. 기존 방식은 한계에 도달했으며, 그런 접근법으로는 미래에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했던 것이다. 그들은 두 가지 방향전환을 했다. 우선 주거환경에 대한 단순하고 결과 지향적이며 실적이 분명히 드러나는 접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고 여러 주체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좀 더 복합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또한 합리성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면서 특정 계층과 특정 프로젝트의 성격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접근방식을 바꾸었다. 거주자의 입장과 장소의 특성, 지역, 문화, 역사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주거환경은 규모가 작아지고, 다양화하고, 개성적으로 변해 갔다. 동시에 주거환경을 도시와 자연의 일부로 간주하며 ‘관계’와 ‘연속성’을 강조했다. 새로운 주거문화의 시대가 전개된 것이다. ‘개선되고 향상된 근대성의 시대’였다.

마지막으로 ‘제4부 전망과 기대’에서는 집합주택의 미래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현재 그리고 다가오는 미래에 인류의 집합주택은 어떤 모습과 내용을 가지는 것이 적절하고 바람직하겠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저자 나름의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손세관 (저자)

손세관(孫世寬)은 1954년 경북 대구에서 출생했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버클리 대학교에서 건축학 석사학위를,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건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6년부터 중앙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일본 규슈 대학교 등을 장기간 방문 연구했고, 건축도시공간연구소(AURI) 소장과 대통령 직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대학원 시절부터 도시조직과 주거환경의 상호관계 및 동서양 주거문화에 관해 지속적으로 탐구해 왔으며, 연구활동과 도시설계를 통해 우리 주거환경의 향상과 방향 전환을 모색해 왔다. 저서로 『도시주거 형성의 역사』 『북경의 주택』 『넓게 본 중국의 주택』 『깊게 본 중국의 주택』 『피렌체』 『베네치아』 『한국 주거의 사회사』(공저) 등이 있다.

책머리에

제1부 순수의 시대
제1장 새로운 주거문화의 전개
제2장 암스테르담에서 시작된 개혁의 바람
제3장 로테르담의 두 선구적 건축가
제4장 바이센호프 주택전시회와 새로운 주거환경의 모델
제5장 에른스트 마이와 ‘새로운 프랑크푸르트’ 만들기
제6장 베를린의 주거개혁과 전원풍의 주거단지들
제7장 사회주의 낙원 ‘붉은 빈’의 주거개혁

제2부 혼돈의 시대
제8장 근대적 주거문화의 폭발적 팽창
제9장 고층주택과 녹지에 대한 환상
제10장 르 코르뷔지에의 위대한 실험
제11장 새로운 이념의 범세계적 확산
제12장 실패한 주거환경
제13장 어둠 속의 여명, ‘다른’ 모습의 집합주택들

제3부 자각의 시대
제14장 인간을 존중하는 주거환경
제15장 저층·고밀 집합주택으로
제16장 역사와 문화로의 회귀 그리고 장소 만들기
제17장 도시조직에 유기적으로 순응하는 주거환경
제18장 일본, 집합주택의 다양화 시대를 열다
제19장 다시 네덜란드로

제4부 전망과 기대
제20장 집합주택의 미래

책끝에

주註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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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