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 나와 인연 맺은 쉰다섯 분의 서간
  • 최정호
  • 230×305 양장 2017년 9월 10일 232면 65,000원 흑백·컬러 도판 300여 컷 978-89-301-0589-7
  • 사진·영화 이론 및 에세이

평생을 언론과 대학, 두 세계에 몸담아 온 우리 시대의 석학 최정호崔禎鎬(1933- ) 교수가 평생 동안 받은 수많은 편지들 가운데서, 이미 작고한 55인의 편지 150통을 『편지』라는 책을 통해 공개했다. 이 편지의 주인공들은, 19세기의 1880년대생부터 20세기의 1950년대생에 이르기까지 두 세대에 걸쳐져 있으며, 편저자인 최정호 교수가 서울대 철학과 졸업 후 독일 유학 시절에 알게 된 독일 현지에 있는 인사들로부터 귀국 후 한국에서 대학과 언론에 몸담으며 친교했던 지난 시대의 내로라하는 학자, 언론인, 문인, 화가, 음악가, 정치인, 출판인 등 그 면면이 매우 다양하다.

‘삼일운동의 제34인’ 스코필드 박사와 프란체스카 여사의 언니 바르바라 도너 여사의 편지

수록 필자 중 가장 연장자는 의학자이자 선교사인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1889-1970) 박사다. 삼일운동 당시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수로 있던 그는 삼일운동에 적극 가담하며 일제의 만행을 세계 각지에 알렸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삼일운동의 제34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삼일운동의 제34인’이라는 표현이 바로 최정호 교수가 『한국일보』 편집기자 시절 1958년 8월 21일자 기사에 붙인 제목이었다. 편지는 오일륙 군사쿠데타 직후 서울대 영빈관에 머물던 스코필드 박사가 서독 유학 중인 최정호 교수에게 보낸 것으로, “지금 서울은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갖가지 부패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민주정부도 일찍이 그처럼 변화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드디어 성실한 정부를 갖게 된 것이지요. 나는 박정희 장군을 매우 존경합니다”라는 구절이 눈에 띈다.

프란체스카 여사(이승만 전 대통령의 부인)의 언니인 바르바라 도너(1896-1983) 여사의 편지도 주목을 끈다. 이승만 대통령 서거 직후 최정호 교수가 보낸 조문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그녀는 한국인들이 이승만 대통령을 내몰았다고 하면서, 이에 대해 “그로 인해 이 박사에게 가장 심각한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다는 사실을 한국은 기억하시는지요? 분명한 것은 그 일격이 아직 한국 사람들에게 아무 축복도 가져오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라고 쓰고 있다.

이 외에 이 책에 수록된 외국인의 경우는 대부분 편저자의 독일 유학 시절 학업을 위해, 또는 취재를 위해 맺은 인연으로, 에밀 도비파트(1890-1969)나 프리츠 에버하르트(1896-1982) 같은 독일의 저명한 언론학자, 한스 하인츠 슈투켄슈미트(1901-1988) 같은 음악평론가 등이며, 놀랍게도 독일 총리 빌리 브란트(1913-1992)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은사 박종홍 교수에서부터 『뿌리깊은나무』 한창기 발행인까지

최정호 교수가 평생 대학과 언론의 두 세계를 살아왔듯이, 이 책에는 학자와 언론인의 편지가 가장 많다. 주요 학자들로는 철학자 박종홍과 김태길을 비롯하여 정치학자 김상협, 미술사학자 김원용, 민중신학자 안병무, 역사학자 고병익, 한국학 연구의 대가 이우성, 미학자 조요한 등이 눈에 띄며, 언론인으로는 ‘홍박’이라 불리던 전 조선일보사 회장 홍종인, ‘왕초’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한국일보』를 창간한 장기영, 일찍이 한문학과 역사학에서 천재라 불렸던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천관우, 『한겨레신문』을 창간한 송건호, 박정희 군부정권 아래서 네 차례 해직되고 다섯 차례 구속되었던 대기자 리영희, ‘한국인의 의식구조’ ‘이규태 코너’로 언론사상 불후의 업적을 남긴 『조선일보』 대기자 이규태 등이 대표적이다.

이중 미술사학자 김원용(1922-1993) 교수의 연하장은 문인화가로서도 이름난 그의 면모를 보여 주는 친필 그림으로 꾸며져 있다. 그림과 함께 “鷄鳴犬吠 一家泰安(계명견폐 일가태안)” 즉 “닭 울고 개 짖으니 한 집안이 태평 안락하다”라는 글귀를 써 주었는데, 이는 김원용 교수가 임술년 개띠 생이고, 최정호 교수가 계유년 닭띠 생임을 빗댄 것이다.

민중신학의 창시자 안병무(1922-1996) 박사가 1964년 하이델베르크에서 보낸 편지에는 “신문이나 잡지에도 제 나라 꼴을 보면 가끔 머리끝까지 흥분되며 (…) 지내 놓고 보면 삶에는 연습이란 없다 하는 결론입니다. 이럭저럭 싫든지 좋든지 여기는 떠나 귀국해야 할 판인데, 온실에서 눈 속에 내버려지는 듯한 허기증이 입니다”라고 하여, 당시 국내상황에 대한 착잡함과 귀국을 앞둔 혼란스러운 심경을 읽을 수 있다.

대기자 리영희(1929-2010) 선생의 편지에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여러 해 전에 어느 시詩를 처음으로 접하여 너무도 감동했던 나머지 그 시인을 찾아 만나 보려 했더니 그 전해에 별세했다고 알고 크게 낙심했어요. 그 후 또 한 시인과 알게 될 것 같더니 존경하는 그이도 차 사고로 불의에 떠나 버리더군요. 그 후부터는 ‘그리는’ 이가 의생기면 일면식 없는 분이라도 찾아가서 경의와 사랑을 표하기로 했지요. 언젠가는 어느 출판사에서 고료가 나왔기에 그것을 여비 삼아 그 자리에서 역으로 나가 부산까지 찾아가 무턱대고 경위를 말하고, 한잔 자리를 베풀고 올라왔지요. 그이는 지금 팔십 노령이고 그 당시는 육십대 말이었습니다. 내가 ‘그리는’ 이는 만나 보기 전에 돌아가신다는(젊은 나이에도 말이에요) 가능성을 알게 된 뒤부터는 알게 되기를 기다리지 않고 찾아가기로 한 겁니다. 그럼으로써 나의 인생에 그이의 인생이 보태지기 때문입니다. 이상이 나의 이야기올시다. 굳이 밝히자면, 처음 분은 신동엽申東曄 시인이고, 둘째 분은 김수영金洙暎 시인이고, 셋째 분은 김정한金廷漢 선생이외다.” 편지가 개인 간의 사사롭고 내밀한 대화이면서도, 동시에 아름다운 이야기로 자리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좋은 예이다.

최정호 교수와 전주사범학교 동창인 이규태(1933-2006) 『조선일보』 대기자의 편지는 이 책에서 가장 많은 아홉 통이나 된다. “내 스케치북도 반 권쯤 차 간다. 너에게 보여 주고 싶다” “내가 군산을 떠나던 날 네가 군산에 갔을 것이라는 말을 도중에서 규동에게 들었다. 내가 잘못 떠났다는 것을 후회하면서도 서울에 이르러 버렸단다” “항상 가까이만 있을 것 같은 너를 상상하지도 못한 기만리幾萬里 밖의 내 공상 속에 생각하며 편지를 쓴다는 것이 이상스럽기만 하다. …나는 너의 방이 어떻게 생겼는가에 대해서도 알고 싶고, 뭣하고 밥을 먹나, 여가를 어떻게 지내는가, 그곳 여자들 이야기 같은 것이 알고 싶구나” 등 이 편지들을 읽노라면 두 사람 사이의 진한 우정을 금세 느낄 수 있다. 독일 유학 중인 친구에게 한국의 다양한 소식을 그때그때 전해 주고 또 편지를 손꼽아 기다리는 깊은 우정이 편지들에 절절히 배어 있는데, 외부자들은 알 수 없는 개인의 내밀한 감정과 생각을 읽을 수 있는 편지의 기능을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화가 이응로, 작곡가 윤이상, 수필가 김향안, 시인 김영태…

문화예술계 쪽으로도 파리의 화가 이응로, 피아니스트 이애내, 베를린의 작곡가 윤이상, 음악평론가 박용구, 김환기의 아내인 수필가 김향안, 시인 성찬경, 소설가 박완서, 극작가 신봉승, 시인 김영태, 『뿌리깊은나무』의 발행인 한창기 등 실로 그 면면이 화려하다.

이응로(1904-1989) 화백은 1973년 1월 15일자 편지에서 “(고료) 2월분은 내가 학생들의 교재로 사용하는 전주제全州製 화선지가 필요하와 부탁드리오니 바쁘시더라도 지물상紙物商에 가셔서 특제 화선지 이천오백 매만 사시되 일일이 내용을 조사하여서 지질紙質이 똑같은 것으로 사시게 하시고, 포장도 이천오백 매를 한 덩어리로 만들어서 속에 비닐 종이로 싸고 겉은 포장지로 싸서 배편으로 보내 주시기 바라며… 과거 경험을 말씀하면, 여러 덩어리로 보내면 어디서 분실되는지 반半도 오지 않아서 고통을 겪고 있으니 꼭 한 덩어리로 보내 주시기 바라며, 종이도 부탁만 하면 파지破紙나 질이 낮은 것을 섞어 보내서 고통을 받으니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상인들에게 도덕관, 신용 개념을 이르시고 꼭 목견目見하신 후 직접 보내 주심 간절히 바랍니다”라고 쓰고 있는데, 당시 이역만리 파리에서 동양화를 그리기 위한 종이를 구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일일이 조목조목 부탁하는 대목에서는 그의 세심한 성격이 편지에 잘 드러나 있다.

최정호 교수의 말대로 “삶과 예술의 뭇 장르를 넘나들며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다가 담배 연기처럼 소리없이 사라져 버린” 김영태(1936-2007) 시인의 연하장도 눈길을 끈다. 특유의 드로잉에 “허수아비같이 살고 있지요! 푸른 하늘 아래. 비몽사몽. 새해 복 많이! 1979 초개”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헌조 회장과 나눈 우정과 고담준론

그 밖에 유형기 감리교 목사와 김대산 원불교 종사, 평생을 여성교육에 바친 교육자 신봉조 선생, 이한빈 전 부총리, 김준형 전 행남자기 회장, 정수창 전 두산그룹 회장, 이헌조 전 LG 회장 등, 실로 다양하고 화려한 인사들의 편지들이 이 책에 수록되어 있다.

특히 이헌조(1932-2015) 전 LG 회장은 최정호 교수의 서울대 철학과 동기로, 아홉 통이나 실려 있으며, 이규태 대기자의 편지가 그랬듯이 친밀했던 그와의 우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많다. 최정호 교수가 독일 유학을 떠난 직후 보내온 편지는 “공중에서 날린 엽서를 받고는 대답할 길 없어 허전했다. 과연 먼 곳으로 가는구나 싶더니 홍모紅毛의 여인의 감시를 받으며 쓴 이 글을 받고 보니 세상은 과히 멀지도 않구나 싶더라”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으며, “아무리 되씹어 보아도 너가 떠나가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더니 막상 반도호텔 앞에서 지프차를 태울 때는 눈물이 푹 쏟아지려 하더라. 비행장에까지라도 나갈 수 있었으면 싶었다. 네가 좋은 길을 떠나는데 내가 외로워해서 될까 보냐고 얼마나 심중心中에서 매질했는지 모른다. 그때의 감회를 나는 붓으로 그려낼 수 없나 보다”라며, 누구보다도 안타까웠던 이별의 정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떠난 친구를 그리워하며 그의 고향집을 방문하고서 쓴 편지도 있는데, “먼젓번에 군산群山출장을 갔다가 꼭 상경해야 할 시간에 수 시간 여유가 있어 여관에 누웠다가 불현듯이 전주행全州行버스를 탔니라. 두 시간여 시골 구경도 하면서 너의 고향에 도착하니 마침 점심시간이라 형님을 뵈올 수가 없어 그냥 올라오고 말았다. 어떻게 서운하던지. 어머님께서 병환이 계신 줄 알았던들 무리를 해서라도 전주에서 자기로 하고 찾아뵈었을 게다. 형님은 서울서도 뵈올 수 있지만 어머님을 못 뵈옵고 온 것이 무엇보다 서운했다. 그래도 네가 자랑하던, 걸어 봄 직한 숲들도 멀리서 보았고 전주비빔밥 한 그릇에 약주 한잔 맛있게 먹고 왔다. 약주 맛 확실히 좋더라”라는 대목도 두 사람 간의 끈끈한 우정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최정호 교수는 이헌조 회장과의 문통文通을 말년의 이메일로도 이어 갔는데, 여기에서 비로소 최정호 교수가 보낸 몇몇 편지를 만날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하고 싶은 얘기는 ‘과거의 현전’이란 회억回憶의 기능은 개인이나 공동체에 다 같이 ‘아이덴티티’의 기반이 돼 준다는 사실이네. 민족공동체도 결국은 민족이 체험한 기억의 공유에서 존립이 가능한 것처럼 나이 먹으며 느끼는 것은, 한 인생의 아이덴티티도 살아온 삶의 회억, 곧 현전할 수 있는 과거의 총체가 아닌가 싶네”라는 최 교수의 담론에, 이 회장이 “‘과거의 현전이란 회억의 기능은 개인이나 공동체에 다 같이 아이덴티티의 기반이 돼 준다’는 말은 깊이 공감하는 바라네. 다만 과거 체험의 축적을 더 소중히 생각하는 하이재(*최정호의 호)와 새로운 체험에의 도전을 더욱 아끼는 나와의 차差라고나 할까? 실사회實社會에서 한평생 현전하는 문제와 부딪치며 그 해결책 모색에 피를 흘리고 뼈를 깎으면서 살아온 사람에겐 과거의 체험에서 기억하는 해결책보다는 새로운 발상의 모색이 더 습관화된 것 같아. 새 문門은 묵은 열쇠 가지고는 잘 열리지 않더라구”라며 대응하는 것을 보면, 노경에 든 두 지식인이 편지라는 매체를 통해 주고받는 현대사회의 고담준론高談峻論을 보는 것과 같다.

이 외에 일본의 대표적인 한국문학 번역가이자 한반도 전문가인 다나카 아키라, 『100만번 산 고양이』로 유명한 일본의 여류작가 사노 요코 등의 편지도 이채롭다.

편지, 과연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인가

이 책 서두에는 이 책을 엮어내게 된 배경과 더불어 편지에 관한 최정호 교수의 담론이 담긴 「편지,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가 실려 있다. 여기에서 최정호 교수는 “사사로운 편지가 은밀하게 숨겨져 있지 못하고 세상의 햇빛을 보고 나오는 것은, 본시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편지의 운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편지는 바로 글월이기 때문이다”라고 하면서, “서간문화의 선진국이었던 우리가 당대에 와서는 편지를 잘 쓰지도, 잘 간수하지도 않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요, 부끄러운 일이다. 바로 그러한 아쉬움이 이 책을 엮어내기로 한 동기이다”라고 이 책 발행의 배경을 말하고 있다. 최정호 교수는 “편지를 쓰고 받고 간직한다는 것은 우리들의 삶에서 선대로부터 이어 온 오랜 관습이요 전통이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에 와서도 그를 이어 가는 것이 그런대로 나쁘지는 않겠구나 하는 것을, 만일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서 이해해 준다면 책을 펴낸 사람으로선 더할 나위 없는 큰 기쁨이요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에 수록된 55인의 편지의 순서는 필자들의 생년 순으로 정리돼 있으며, 세 파트로 나누어 말미마다 편저자의 수록필자 소개 글이 실려 있고, 오늘날 갈수록 희귀해져 가는 육필 편지의 뜻과 값진 모습을 살려 보기 위해 수록된 모든 편지의 원본 이미지와 함께 활자화活字化된 텍스트를 곁들였다.

 

최정호 (저자)

최정호崔禎鎬는 1933년 전주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평생 언론과 학계의 두 세계를 살아온 그는, 『한국일보』 기자․특파원․논설위원, 『중앙일보』와 『조선일보』의 논설위원, 『동아일보』 대기자를 역임하는 한편, 성균관대학교와 연세대학교 교수를 거쳐 울산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하였고, 한국언론학회 회장, 한국미래학회 회장, 한독포럼 공동의장도 지냈다. 저서로 『한국의 문화유산』 『세계의 공연예술기행』 『사람을 그리다』 『복에 관한 담론』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가』 등 다수가 있다. 서간에 나오는 하이재何異齋, 제대로諸大路, 노송정老松亭 등은 모두 최정호의 아호이다.

책을 펴내며

서론緖論-편지,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 최정호

화전華箋-고인故人이 된 쉰다섯 분의 편지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 에밀 도비파트 | 프리츠 에버하르트 | 바르바라 도너 | 유형기 |
신봉조 | 한스 하인츠 슈투켄슈미트 | 이재훈 | 박종홍 | 홍종인 | 이응로 | 이애내 |
로버트 올리버 | 빌리 브란트 | 김대산 | 김준형 | 박용구 | 장기영
수록필자 소개

김향안 | 윤이상 | 정수창 | 이석희 | 김상협 | 김태길 | 윤덕선 | 김원용 | 안병무 | 고병익 |
천관우 | 이우성 | 이한빈 | 조요한 | 정일영 | 최석규 | 다나카 아키라 | 송건호
수록필자 소개

박권상 | 리영희 | 성찬경 | 정신영 | 김철순 | 구기성 | 박완서 | 이헌조 | 이규태 | 정종욱 |
장을병 | 신봉승 | 김경원 | 황인정 | 한창기 | 김영태 | 사노 요코 | 발터 모어 | 권삼윤
수록필자 소개

낙수落穗 , 그 밖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