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재고택

노성 파평윤씨가와 명재고택에 관한 최초의 책

우리나라 유수의 고택을 선별하여 그 가문의 역사, 고택의 건축적 특성, 집안의 사상과 문화 등을 한 권의 책으로 펴내고 있는 열화당에서, 『선교장』(2011), 『녹우당』(2015)에 이어 세번째 책 『명재고택』을 출간했다. 선교장(중요민속문화재 제5호)이 강릉 지역의 부호로서 나눔과 상생의 문화를 만들어 왔고, 녹우당(사적 제167호)이 윤선도・윤두서 등 걸출한 문인과 예술가를 배출한 해남의 명문가였다면, 명재고택(중요민속문화재 제190호)은 호서 지역 당대 최고의 학자 집안이라 할 수 있다. 노성의 파평윤씨坡平尹氏는 회덕의 은진송씨恩津宋氏, 연산의 광산김씨光山金氏와 더불어 호서 삼대 사족士族으로 손꼽히는 명문가로, 그 중심에는 조선 후기 소론少論의 영수로서 단 한 차례도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오로지 학문과 교육에 힘썼던 거유巨儒 명재明齋 윤증尹拯(1629-1714), 그리고 삼백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명재고택이 자리하고 있다.

급격한 사상적 변동기였던 17세기의 성리학자이자 예학자였던 윤증은 당쟁으로 혼란스러웠던 조정을 멀리하고, 외증조부 우계牛溪 성혼成渾에서 부친 윤선거尹宣擧로 이어지는 가학家學 전통을 계승하며 평생 동안 고향 노성에 머물며 학문 정진과 후진 양성에만 힘써 온 참다운 지식인이었다. 이 책은 명재 윤증을 중심에 놓고, 노성 파평윤씨가의 역사, 명재고택의 건축적 특성, 이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사상과 문화를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저자인 차장섭 강원대 교수는 이 집안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내기까지 5년여 동안 강릉에서 논산까지 왕복 600킬로미터 길을 정확하게 30번 오갔다고 한다. 이 집을 답사하면서 사계절 사진은 물론이고 새벽부터 어스름 달밤까지 다양한 사진을 찍었고, 종손 윤완식 씨를 비롯하여 생존해 있는 문중 어른들의 취재, 그리고 이 집안이 소장하고 있는 문집과 문서 등 수많은 기록물들을 바탕으로 집필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저자가 발로 뛰면서 직접 보고 듣고 읽고 느끼고, 그리고 촬영한 소중한 결실이라 할 수 있다.

1984년 이 집이 문화재로 지정되던 당시의 명칭은 ‘윤증선생고택尹拯先生故宅’이었는데, 이후 ‘논산명재고택’으로 바뀌면서 언제부터인가 한자 ‘故宅’이 ‘古宅’으로 바뀌었다. 명재고택을 지은 사람은 윤증의 아들 윤행교尹行敎와 손자 윤동원尹東源으로, 윤증의 뜻에 따라 이 집을 짓되 윤증은 이곳에 기거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므로 ‘尹拯先生古宅’이 아니라 ‘尹拯先生故宅’ 즉 ‘윤증 선생과 연고가 있는 집’이라 이름 붙여진 것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처음 뜻에 따라 ‘明齋故宅’이라 하였다. 명재고택이 지어진 것은 윤증의 아들과 손자 대의 일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17세기 말-18세기 초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역사, 건축, 그리고 사상과 문화

1부 ‘노성 파평윤씨의 역사’에서는 파평윤씨 노종파魯宗派의 학문적 기반을 마련한 윤탁尹倬(1472-1534), 류연柳淵의 딸인 문화류씨와 혼인하면서 1538년 노성현에 정착하게 된 입향조入鄕祖 윤돈尹暾(1519-1577)을 시작으로 명재고택이 지어지고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노성 파평윤씨가의 역사를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특히 노성에 정착한 지 백여 년 만에 명문가로 급성장한 것은 윤황의 여덟 아들, 이른바 팔거八擧 때이다. 팔거는 윤훈거尹勛擧・윤순거尹舜擧・윤상거尹商擧・윤문거尹文擧・윤선거尹宣擧・윤민거尹民擧・윤경거尹耕擧・윤시거尹時擧로, 이 중 윤순거・윤문거・윤선거는 가학家學을 계승 발전시키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이들 세 사람은 당시의 대표적인 산림처사山林處士로서, 병자호란을 계기로 서울과 인연을 끊고 모든 벼슬을 사양했다. 그리고 고향에 은거하면서 그들의 성리학적 기반을 바탕으로 문중 교육기관인 종학당宗學堂을 건립하여, 자녀 교육에 힘써 다수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했다. 그리고 「종약宗約」을 마련하여 종회를 정례적으로 개최하였으며, 의전義田을 설치 운영했다.

2부 ‘자연과 조화를 이룬 건축’에서는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으로 지칭되는 명재고택 주변 지형의 풍수지리적 해석, 현판에 담긴 이 집안의 가풍, 그리고 안채와 곳간채 사이의 바람길, 미닫이와 여닫이가 결합된 사랑채 문, 16:9의 사랑채 누마루 창문의 비율 등으로 알 수 있는 실용과 과학의 상징 등, 이 집의 공간 구성을 하나하나 살핀다. 더불어 명재고택과 깊은 관련이 있는 유봉영당, 윤황고택, 병사와 묘역, 종학당 그리고 주변 건축물들에 대해서도 짚어 본다.

3부 ‘무실과 실심의 사상과 문화’에서는 가학家學으로 계승된 파평윤씨 노종파의 학문적 연원을 거슬러 올라간다. 윤증을 중심으로 하는 파평윤씨 노종파의 성리학은 실용을 강조하는 ‘무실務實과 실심實心의 성리학’이라 할 수 있다. 윤증은 입지立志와 무실務實이 학문하는 자가 가장 먼저 힘써야 하는 것이라며, 입지와 무실을 학문의 기초로 삼았다.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의 사상을 계승한 윤증의 무실학풍務實學風은 근본에 실심實心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문은 모름지기 실심, 진실된 마음이 기본임을 강조한 것이다. 윤증의 이같은 무실론務實論 실학은 한말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의 무실역행務實力行 사상으로 계승되기도 했다.

차장섭 (저자)

차장섭車長燮은 1958년 경북 포항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 인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 대학원 사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과정을 마쳤다. 조선사연구회 회장을 지냈으며, 강원대학교에서 도서관장, 기획실장, 강원전통문화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강원대학교 삼척캠퍼스 교양학부 교수로 한국사, 한국미술사 등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조선 후기 벌열 연구』(1997), 『고요한 아침의 땅, 삼척』(2006), 『인간이 만든 신의 나라, 앙코르』(2010), 『선교장』(2011), 『부처를 만나 부처처럼 살다』(2012), 『아름다운 인연으로 만나다, 미얀마』(2013), 『자연과 역사가 빚은 땅, 강릉』(2013) 등이 있으며, 사진집으로 『한옥의 벽』(2016)이 있다.

저자/역자의 다른 책들

머리말
A Summary

노성 파평윤씨의 역사

1. 파평윤씨의 노성 입향
명문거족 파평윤씨
윤탁, 가문의 학문적 기반을 마련하다
윤돈, 노성현으로 장가가다
윤창세, 충효를 실천하다

2. 노종 오방파의 형성
설봉공 윤수
문정공 윤황
충헌공 윤전
서윤공 윤흡
전부공 윤희

3. 팔거, 조선 성리학의 명문대가 형성
윤순거, 문중 발흥의 중심에 서다
윤문거, 척화의 신념을 지키다
윤선거, 호서오현의 성리학자로 활약하다

4. 백의정승 윤증
삶과 사상
회니시비
관작 삭탈과 회복

5. 윤행교·윤동원 부자, 가학을 잇다
윤행교, 벼슬길에 나아가다
윤동원, 명재의 사상을 계승하다
윤행교와 윤동원, 명재고택에 살다

자연과 조화를 이룬 건축

1. 명재고택
고택의 풍수지리
실학사상을 담은 집
고택의 공간 구성

2. 유봉영당과 초상화
유봉영당
윤증 초상화

3. 윤증 가문의 다른 건축물
윤황고택
병사와 묘역
종학당

4. 고택 주변 건축물
노강서원
궐리사
노성향교

무실과 실심의 사상과 문화

1. 무실과 실심의 학문
가학으로 이어진 학통
무실의 성리학
지행합일의 예학사상

2. 가훈과 교육
가훈과 가정교육
종학당과 학교교육
문중 출신 문과 급제자

3. 나눔의 문중과 상생의 향촌
문중의 형성과 활동
향촌민과의 공존
의창제 운영

4. 음식과 종가문화
세월과 함께 무르익는 맛
엄정하되 간소한 제례 음식
소박한 배려의 일상 음식
대를 이어 전해 오는 내림 음식

주註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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