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선택 22호 | 박완서 일 주기 기념출판

특집   박완서 일 주기 기념출판 / 나목을 말하다
이미지의 힘   좡쉐번莊學本
새책 맛보기 1  『키시베 로한, 루브르에 가다』
새책 맛보기 2  『아름다움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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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書架에서  미술가 이야기

편집자의 말
오백 부의 소중함

우리는 초과생산의 시대를 살고 있다. 초과생산(또는 과다생산)이란 “사회의 구매력과 소비력을 생각하지 않고 지나치게 많은 물품을 생산하는 일”을 말한다. 한 가지 상품을 과다생산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와 비슷비슷한 유사상품의 종류가 필요 이상으로 생산되기도 한다. 일찍이 여러 경제학자들이 예고했듯이 자유무역의 범람이 공급과잉을 불러온 것이다. 그래서, 없거나 적어서 귀한 것은 이제 점점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뭐든지 많고 풍족해졌다. 반대로 말하면, 적게 생산하면 귀해진다. 이러한 희소성을 겨냥하여 고급 마케팅으로 이용하기도 하는데, 물론 마케팅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출판 쪽도 과다생산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책은 이제 너무 흔해 빠진, 더 이상 귀하지 않은 천덕꾸러기가 되어 가고 있다. 역시 출판사들이 과잉공급을 한 결과다. 하지만 책은 여느 상품과는 달라서, 필요한 사람의 손에 가지 않으면 그야말로 무용지물, 쓰레기가 되고 만다. 황금만능의 시대에 정신문화의 마지막 보루라 할 수 있는 출판이 그래서야 되겠는가. 많은 출판사들이 베스트셀러를 향하여 전진하고, 어떤 책이 잘 팔리면 너 나 할 것 없이 유사도서를 만들어내고, 저잣거리에서 장사에 열 올리듯 티브이 홈쇼핑에서 책 선전을 하는 그런 시대에, 우리는 『김익권 장군 자서전』(전3권), 『조선요리제법』과 『사도문(私禱文)』을 각각 오백 부 한정판으로 선보이고, 최근엔 박완서(朴婉緖) 선생 일 주기 기념판으로 1976년 열화당판 『나목』을 오백 부 한정본으로 다시 선보였다. 세간의 잣대로는 시대를 역행하는 것으로 보일 만했다. 출판이 비즈니스인가 문화운동인가 하는 문제를 새삼 꺼내지 않더라도, 양자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해야 한다는 생각에 공감한다면, 그 중 첫번째 할 일은 만드는 사람부터 책의 소중함을 인식하는 일일 터이다. 출판이 다다익선(多多益善)을 지양할 때 비로소 책의 존귀함이 드러날 것은 자명하다. 내가 만드는 책을 몇 명의 독자들이 읽을지, 몇 명쯤이 읽는 게 적절할지를 신중하게 고민하고 출판한다면, 최소한 아무 책이나 함부로 만들지는 않게 될 것이다. 거기서부터 책을 소중히 여기는 일이 시작되지 않을까. 조윤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