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화당이 걸어온 길

지나온 시간을 돌아본다는 것, 또 그 시간의 흔적들을 응시한다는 것은 어쩌면 투명한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맨얼굴을 바라보는 것만큼이나 부끄러운 노릇이다. 하지만 그 행위는 과거의 흔적을 美化, 粉飾하여 현재에 안주하려는 소극적인 것이 아니라, 지나온 세월을 새로운 도약을 위한 출발점으로 삼고자 하는 진지한 성찰의 요구여야 한다. 열화당이 걸어온 사십 년의 시간도 그러한 필요에 의해 회고되고 평가되어 새로운 출발을 위한 정당한 근거가 되어야 한다.
시간에 대한 평가는 그것이 낳은 결과물에 대한 면밀한 추적에 의해 채워져야 한다. 당연히 출판사에 대한 이런저런 판단과 평가는 그 출판사가 창조해낸 생산물, 즉 책에 대한 객관적이며 총체적인 분석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들에 대한 탐구는 어쩌면 精神史에 아로새긴 의미있는 흔적들을 확인하는 과정일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도처에 존재하는 크고 작은 상처들을 발견해 가는 반성의 시간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 모두가 보다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밟아야 할 수순일 것이다.
출판사 ‘열화당’은 1815년 강릉 船橋莊의 사랑채 悅話堂에서 비롯되었다. 당시의 열화당에는 다채로운 書畵와 典籍 들이 비치되어 있었고, 그 공간은 이 땅의 많은 문인・지식인 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공동의 담론을 이루어내던 학문의 사랑방이었으며 또 활발한 지적 생산이 이루어지던 場이어서, 오늘날의 출판사의 의미와 서로 통한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선교장의 活來亭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석판인쇄가 이루어졌다는 기록으로 보아, 출판사 悅話堂은 우연이든 필연이든 간에 이미 그때 세워져 자신의 역사를 꾸려 왔다고 할 수 있다.
‘독자들에게 꼭 필요한 좋은 (미술)책을 만든다’라는 대명제를 열화당이 일관되게 가지고 있을지라도 시기와 여건에 따라 그것은 다양하게 변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일정한 기준 아래 특색있는 小時期로 나눌 수 있으며, 그것이 모여 조화로운 전체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시기는 크게 다섯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1971년부터 1982년에 이르는 미술 출판사로서의 토대를 마련해 가는 시기를 들 수 있고, 그 다음으로는 1983년부터 1993년에 이르는 다양한 시각매체의 발굴과 미술 지평의 확대・심화기, 1994년부터 1999년에 이르는 미술의 대중화 모색기, 2000년부터 2008년에 이르는, 변화하는 출판시장 속에서 활자매체가 지향해야 할 바를 모색하는 시기, 그리고 2009년부터 현재에 이르는 진정한 책의 가치를 모색하는 시기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특히 1975년 이전, 즉 1971년부터 1974년에 해당하는 시기는 다양한 출판 실험을 통한 준비기로 규정할 수 있다.

1. 열화당의 첫걸음 1971-1974

열화당은 몇 권의 옛 문헌 복각으로 출판을 시작했다. 1971년 8월 5일에 출간한 『闢衛編』을 시작으로, 1972년에 『楷書正法入門』 『七寶의 美』 1・2, 『久菴遺稿』 등 4권의 책을 만들었다. 1972년에는 실업계 고등학교 검인정 교과서인 『商業實踐』 외 2종을 준비, 문교부에 제출 응모했으나 낙선했다. 또 1974년에는 주한미군 부인들이 우리 전통미술, 특히 사군자를 배울 수 있는 교본인 『梅蘭菊竹』 등을 펴냈다.
물론 아쉬운 대목도 있다. 1972년, 출판사의 발행인이 아직 一志社에서 일할 때 만든 미술 관련 책인 G. 슈미트의 『근대 회화 소사』는 역자 김윤수가 새로 만든 출판사인 열화당에서 출판하기를 바랐지만 여의치 못했던 사연을 안고 있다. 만일 그때 그 책이 열화당에서 나왔더라면 미술 출판사로서의 첫걸음이 꽤 힘찼으리라, 지금도 아쉽게 생각되는 사연으로 남아 있다.
이 기간은 다양한 출판의 분야나 방향에 대한 기획, 그리고 원고 선정이나 제작 방식에 대한 모색 등 본격적인 미술 출판을 위한 여러 경험을 쌓는 준비기의 의미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