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화당이 걸어온 길

3. 미술에 대한 내포와 외연을 확대한 시기 1983-1993

이 기간은 전통적인 미술, 즉 회화를 중심으로 하여 여러 시각매체들을 포괄하는 시기와, 미술에 대한 인식 지평을 체계적으로 넓혀 가는 시기로, 즉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한국의 굿’ 시리즈가 1983년에, ‘한국기층문화의 탐구’ 시리즈와 ‘사진문고’가 1986년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는데, 여기까지를 전반기로 잡고, ‘20세기미술운동총서’가 시작된 1988년과 ‘위대한 미술가의 얼굴’ 시리즈가 시작된 1990년을 아울러 후반기에 포함시킬 수 있다.
그 밖에 이 시기에 이루어진 주목할 만한 성과로는 1984년에 시작되어 1990년에 중단된 ‘미술연감’, 그리고 천년 古都 경주의 참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낸 『경주 남산』, 1987년에 시작되어 1991년에 마무리된 ‘한국의 탈놀이’ 시리즈, 서민의 순박한 삶을 화폭에 담아내어 가장 한국적인 화가로 평가받고 있는 박수근의 화집 출판, 그리고 국내외 사진작가들의 예술성 높은 사진들을 가려 엮은 ‘사진문고’ 시리즈 등을 꼽을 수 있다.

1. 사라져 가는 무속의 체계적인 기록, ‘한국의 굿’

부끄럽지 않은 책을 만드는 것 자체가 나날이 어려워져 가는 현실에서, 저자와 출판사와 북디자이너가 서로를 자극하면서 성큼 자란 경우를 찾기란 쉽지 않다. 1983년에 시작된 ‘한국의 굿’ 시리즈는 이런 점에서 삼자가 행복한 만남을 이룬 경우라 할 수 있다. 원래 이 책은 사진작가 金秀男과 출판사 대표와의 우연한 만남에서 출발했다. 1982년 여름 김수남의 굿 사진을 찬찬히 검토하는 자리에서 출판사 대표는 굿 사진을 20권으로 출판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그 당시 출판 풍토를 고려한다면 어쩌면 무모하기조차 한 선언이었다. 이렇게 해서 1983년부터 시작된 작업은 십 년여의 세월을 쏟아부어 그 온전한 결실을 맺게 된다.
물론 시작은 그보다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에서부터 전통문화에 관심과 애착을 갖고 지켜본 사진작가에게 근대화, 개발 이데올로기 등에 떠밀려 나날이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보존 욕구는 남다른 것이었다. 그의 이러한 열망은 전국의 굿판을 돌며 카메라에 그 현장을 온전히 담아내는 작업을 불렀고, 이것이 굿의 다양한 국면들을 시각적으로 보여 주는 20권의 책으로 제모습을 드러낸다. 그에게 “우리 민족에게 인식되어 온 굿의 이미지는 숨겨야 할 치부도 화려한 무대예술도 아닌 일상 속에 용해되어 함께 이어져 온 우리 삶의 일부”였다.
그렇게 시작된 이 작업이 마냥 순탄한 것만은 물론 아니었다. 사진작가는 처음 몇 년간을 가장 어려웠던 시기로 기억한다. 새마을운동 바람은 우리 정신사의 뚜렷한 실체를 형성해 온 굿을 타기해야 할 야만으로 몰아붙였다. 그러므로 굿을 베푸는 무당들에게 그 현장이 카메라 안에 기록된다는 것은 범죄의 흔적을 남기는 것만큼이나 당혹스런 것이었다. 또 굿이 이루어지는 悲意의 현장을 낯선 사람에게 노출시키고 사진으로 기록하게 한다는 것은 무당들의 입장에서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이런 어려움은 김수남의 眞意가 이해되면서 점차 해소되었고, 나중에는 큰 굿이 벌어질 때 미리 이를 알려 오기에 이른다. 그러자 문제가 된 것은 굿에 대한 체계적인 인식 없이 좋은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사진 자체의 논리에 함몰되어 이 사진 저 사진이 조금도 다르지 않게 되는 한계에 대한 작가의 인식이었다. 이때의 심정을 김수남은 이렇게 표현한다.

“처음 삼 년 영상미에 욕심을 내다 보니, 각기 다른 굿인데도 사진만 보고는 구별이 안 갔다. 참담했다.”

결국 그는 굿 자체의 논리와 구조를 알아야 진정한 굿을 보여 줄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그로부터 1년여에 걸쳐 이루어진 체계적인 공부는 그 뒤 훨씬 총체적인 굿을 보여 주는 사진 작업을 낳았다.
이 작업은 1983년 7월에 『황해도 내림굿』 『경기도 도당굿』 『제주도 영등굿』 등 세 권을, 1985년 3월에 『수용포 수망굿』 『평안도 다리굿』 『전라도 씻김굿』 『제주도 무혼굿』 『함경도 망묵굿』 등 다섯 권을, 1986년 7월에 『은산 별신굿』 『옹진 배연신굿』 등 두 권을, 1987년 6월에 『강릉 단오굿』을, 1989년 11월에 『강사리 범굿』 『제주도 신굿』 『양주 경사굿 소놀이굿』 『통영 오귀새남굿』 『서울 당굿』 등 다섯 권을, 그리고 1993년 3월에 『거제도 별신굿』 『황해도 지노귀굿』 『위도 띠배굿』 『서울 진오기굿』 등 네 권을 내놓으면서 완성을 보게 된다.
이 야심찬 시리즈는, 실제 작업에 들어간 1983년에 프랑스에서 북디자인 공부를 마치고 막 돌아온 디자이너 鄭丙圭를 만나 개성적인 자기 색깔을 더욱 분명하고 예리하게 드러낸다. 그 구체적인 흔적은 우선 책 표지에 우뚝 놓인 ‘굿’이라는 글자가 주는 상징성을 들 수 있는데, 이 글자는 책의 깃발 또는 무당의 옷 같은 분위기를 짙게 담고 있다. 또 사진의 배치에서도 컬러와 흑백 사진 순서를 뒤바꾸어 흑백사진을 앞쪽에 배치하고 컬러사진을 글과 함께 책 뒤쪽에 놓는 파격을 이루고 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반표지를 사용했다는 점, 또 과감하게 표지에서 출판사 이름을 뺀 점 등은 독자적인 북디자인 문화를 확립하려는 디자이너와 출판사의 흔쾌한 합의로 기록될 수 있으리라.
책마다 해당하는 굿을 제대로 읽어 나갈 수 있는 글들이 딸려 있고, 특히 제10권 『옹진 배연신굿』에는 오윤, 이애주, 채희완, 최태현, 하종오, 김수남 등이 굿 일반에 대해 차근히 짚고 넘어가는 좌담이 추가돼 있다. 이 ‘한국의 굿’ 시리즈는 ‘오늘의 우리에게 굿은 무엇인가’ 하는, ‘굿의 현실성’ 문제를 정면에서 던지면서 우리가 거기에 답할 것을 바라고 있다.

2. 기층민들이 창조한 문화의 기록, ‘한국기층문화의 탐구’

우리의 옛 삶과 어우러져 형성된 기층민중들의 문화는 그들의 부침과 함께 그것만큼 스스로 분명한 흔적을 남겨 왔다. 그렇지만 그들은 어느 때 한 번 권력을 잡아 보지 못한 채 그 운명을 이어 와 그 문화적 반영물들도 전국 도처에 흩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고, 또 서구화와 근대화가 만능으로 인정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그 가치와 의미는 폄하되고 배제되어 왔다. 어쩌면 이제 그들의 존재는 사라져 가는 것들의 대열 한끝에 안타까이 놓여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들은 이제 더 이상 현실 속에서 노동하고 살아가는 실체와 함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문화적 실체로 자리매김되어 자신을 드러내고 살아 남아야 한다.
잊혀져 가는 전통문화, 더 정직하게는 사라져 가는 것들, 특히 그 시대를 노동 속에서 창조한 기층민들의 삶의 숨결과 흔적들을 실체를 지닌 문화 생산물로 평가하고 판단할 근거를 제공하기 위해 열화당에서는 이 시리즈를 기획했다. 물론 그 과정은 과학이나 합리성의 영역 밖에서 초라하게 서 있는 과거의 모습의 연장으로서가 아니라, 충분한 근거와 자기 논리를 갖춘 형태로 남게 하는 것을 뜻한다.
숱하게 많은 문화유산 가운데에서 민중들과 가장 생활적 정서적으로 공감과 일체감을 가져 왔던 것들, 그리고 더 이상 미루어서는 그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든 유산들에 우선 순위를 부여해 작업에 들어갔다.
그런 원칙 아래 지금까지 펴낸 책은, 우리의 가슴속에 뚜렷하고 친숙한 이미지로 자리잡고 있는 호랑이를 그림과 옛이야기 등으로 집대성한 『한국 호랑이』, 우직하고 바보스럽고 익살스런 모습으로 마을을 지켜 온 『장승』, 무속신앙의 대상이었던 무신도를 모은 『한국무신도』, 우리 민족의 생활 양식인 『초가』, 마을민에 의해 인공적으로 형성된 마을숲의 현황을 다룬 『마을숲』, 그 동안 변방에 놓여 있던 나무꼭두들을 조명한 『한국의 나무꼭두』, 사라져 가는 문화 원형의 흔적들을 사진으로 담아낸 『우리의 원형을 찾는다』, 백여 년 전 서양의 놀이 연구가가 한국 고유의 놀이를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소개한 『한국의 놀이』, 질박한 아름다움으로 우리의 음식문화를 가꾸어 온 『옹기』 등이 있다. 특히 『한국 호랑이』와 『장승』은 각각 27회와 29회 한국출판문화상(제작상)을, 그리고 『조선땅 마을지킴이』는 34회 한국출판문화상(출판상 기획부문)을 수상한 바 있다.
앞으로도 기층민들의 삶의 흔적이 남아 있는, 문화적 가치가 엄연한 유산들이 존재한다면, 그 희미한 흔적을 좇아 그것을 보존하고 시각적으로 복원하는 이러한 기층문화의 탐구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3. 다양한 미술운동이론의 본격적인 소개, ‘20세기미술운동총서’

‘미술선서’를 통해 미술사에 대한 개괄적 지식의 체계를 잡아 가는 한편으로 필요한 것은 그 다양한 사조에 대한 체계적이고 세부적인 정리였다. 또한 이것은 대중 교양에 머물러 있던 그 동안의 미술책의 서술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의 소양을 갖춘 전문인들을 위한 책이 필요하다는 현실의 요구에 발맞춘 것이었다. 1988년에 시작되어 1993년에 완간된 ‘20세기미술운동총서’는 이러한 시대적 요청 아래 현대 미술사를 운동과 쟁점별로 세분해 정리한다는 야심찬 기획이었다. 무수한 운동들의 부침의 역사라 할 20세기 미술사에서 선별된 30개의 사조들이 이 시리즈의 이름 아래 묶여져 나왔다.
『큐비즘』 『팝 아트』 『표현주의』 『추상표현주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키네틱 아트』 『신즉물주의와 제3제국의 회화』 『신구상회화』 『누보 레알리즘』 『미래파』 등 열 권이 1차로 1988년에, 『초현실주의 1』 『다다–취리히・뉴욕』 『러시아 구성주의』 『아메리카 리얼리즘』 『자유구상』 『야수파』 『아르 누보』 『플럭서스』 『포토리얼리즘』 『모더니즘 이후의 미학』 등 열 권이 1990년에, 『초현실주의 2』 『다다–파리와 독일』 『빈 분리파』 『신표현주의』 『포스트 모더니즘』 등 다섯 권이 1992년에, 그리고 『미니멀리즘』 『해프닝』 『바우하우스』 『여권신장파』 『글라스노스트』 등 다섯 권이 1993년에 나왔다.
비록 각각의 책이 번역의 형식을 빌려 씌어졌지만, 이들은 단순한 번역자의 작업을 넘어 미국, 영국, 프랑스에서 출판된 관련 서적을 취합해 우리의 실정에 맞도록 재편집했으며, 컬러로 수록된 도판도 原著를 떠나 일일이 선별한 점이 통상적인 번역서와는 다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또 이론에 대한 설명과 참고도판 들이 앞쪽에 놓이고, 작은 책의 全面을 활용한 컬러 도판들이 뒤쪽에 배치된 점, 각 미술운동에 관한 연보가 부록으로 정리된 점, 개별 미술운동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을 표지에 쓴 점, 5도 인쇄를 한 점 등을 눈에 띄는 특징으로 들 수 있다.
그러한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시각의 온전한 일관성의 확보, 우리의 학문적 지적 역량의 응축에 기초한 국내 저자에 의한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20세기 미술사 서술을 과제로 남겨 놓고 있다고 할 수 있다.

4. 미술 출판의 토대가 되는 ‘미술연감’의 발행

한 시대의 흐름을 포착해 그 중요한 경향을 보여 주거나, 특정 시기나 기간에 존재한 다양한 갈래들을 보여 주고자 할 때, 둘 다에게 공통으로 필요한 것은 충분한 1차자료, 특히 주관에 의해 변형되지 않은 원자료이다. 물론 이것은 어느 분야에서나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지만 특히 시각적 기록을 수반해야만 보존과 계승이 가능한 미술 분야에서는 더욱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들은 또 화랑이나 미술관 등 특정한 공간을 일정 기간 차지하고 전시된 뒤에는 흩어져 버리는 한시성을 띠고 있어, 그것들을 모아 그 자취를 한곳에서 보여 주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이것은 화랑・작가・출판사 모두가 그 필요에 공감하고 함께 노력을 기울이고 의식적으로 준비하는 경우에나 가능하다. 미술에 관한 크고 작은 자료들을 연감 형식을 통해 보여 주려 한 『열화당 미술연감』은, 미술 관련자 다수에게 유익한 자료를 펴내려는 마음에서 이러한 어려움을 무릅쓰고, 또 그것을 극복할 열정으로 시작되었다. 물론 이 작업은 누구의 눈에나 의미는 있지만 시기 상조인 것, 혹은 상업적 실패가 예견되는 모험으로 비쳤다.
그렇게 시작된 『열화당 미술연감』은 1983년의 자료들을 모으는 것을 시작으로 1984년에 그 첫째 권을 발행했다. 그것은 한국화, 서양화, 조각, 서예, 공예・디자인, 건축, 사진, 종합전, 해외작가 국내전・교류전, 국내작가 해외전, 기타 전시, 부록 등으로 이루어졌다. 이 기본 형식은 별다른 변화 없이 이어졌으며, 이렇게 구성된 연감은 한 해 동안의 미술 현황, 흐름 들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렇지만 책을 실제로 만드는 과정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가장 기본이 되는 자료 수집은 작가나 화랑들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것임에도 몇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성의나 도움을 찾아보기 어려웠고, 또 그런 어려움들을 딛고 겨우 나온 책도 정작 비치되어야 할 관련 기관이나 단체들의 소극적인 구입으로 인해 창고에 쌓이는 악순환이 몇 해간 계속되었다. 아마도 이런 현상은 그 당시 우리 사회에서 미술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극명하게 보여 준 것이리라. 이러한 과정이 누적되면서 결국 1990년 들어 그 한계를 드러낸다. 그것은 『열화당 미술연감』 발행 중단으로 표출되었다. 1990년 2월에 씌어진 중단의 변에서 다시 한번 척박한 사회상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1984년 창간 이후 매년 천오백만여 원씩 들어가는 직접제작비, 극소수의 독자, 교환광고로 상호 협조하자는 것도 거절하는 화랑, 한국문화예술진흥기금을 신청했으나 외면한 당국, 카탈로그 한 부 받기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어디에 어떤 용도로 쓰인다고 설명을 하고 이해를 시킨 다음에야 받을 수 있는 번거로움과 까다로움, 지방의 경우 카탈로그나 전시 일정이 불분명하여 확인하기 위해 공문서도 띄우고 시외전화도 수없이 했지만 반응은 삼분의 일 정도밖에 연락이 안 되는 실정.
자료를 빠짐없이 수집해야 하기 때문에 일 년 내내 인내를 요하는 과정이며, 교정 편집 등 작업 과정 중 어느 하나 소홀하게 할 수 없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의 이 방대한 작업은 한 개인출판사가 지속적으로 감당해내기는 벅찬 노릇이었습니다. (…)
기증본만을 요구하는 도서문화의 인식 속에서 많은 것을 감수하면서 육 년간 애정을 갖고 보람도 느끼면서 작업을 해 왔습니다만 출판하는 곳과 작가와 화랑과 미술관계기관의 상호 협조 없이는 작업 진행이 어렵습니다. 흘러가는 행위들을 자료로 꼭 묶어두어야 하며, 없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면서도 어느 한쪽의 전력과 의욕만으로는 작업이 될 수 없다고 판단됩니다.
한국 미술계의 자료집으로서 기능을 수행하자면 독자로부터 건전한 수요가 있어야 하며, 공적 보조금의 지원 등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중단의 변은 우리 미술 현실에 대한 함축적인 초상이며, 그것은 서글픔으로 채색된 자화상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미술연감에 자료로 실린 사실을 알고 기뻐하는 화가들, 옛 주소로 자료를 보내주는 우호적인 화가들이 꽤 있었다는 점은 자그마한 보람으로 남는다.

5. 출판사의 자랑, 『경주 남산』

사진작가 姜運求와 북디자이너 鄭丙圭, 그리고 미술사학자 金元龍 교수와 姜友邦 박사의 글이 한껏 조화를 이루어 빛을 발한 『경주 남산』은 그 시대에 도달할 수 있는 출판의 한 정점을 보여 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1985년에 시작하여 1987년에 그 결실을 본 삼 년여에 걸친 제작 과정, 그리고 30회에 이르는 현지 답사를 통해, 경주 남산을 이루는 佛蹟과 현재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경주박물관에 옮겨져 있는 불상들을 그 느낌이 가장 온전하게 전해지는 최적의 조건을 포착해 고스란히 책에 담았다. 이렇게 제작된 책은 출판문화사적으로도 뛰어난 성과로 기록되었고, 또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거기에 몸담은 사람들의 시야가 넓어지고 출판에 대한 낡은 생각들이 얼마나 바뀔 수 있는가를 보여 주는 드문 경우에 해당한다. 이 책을 완성하는 데 가장 공을 들인 강운구는 이렇게 말한다.

“돌부처들은 아침 나절과 저녁 무렵 그리고 계절에 따라서 달라 보였다. 그 중 어느 때의 모습이 본디의 모습인지 나는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돌부처들에 대한 해석은 일단 접어두고 다만 가장 뚜렷하게 보일 때 정확하게 찍기나 하자는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때와 시선의 위치에 따라서 또렷함의 성격이 달라져 보였다. 그 옛날 텅빈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돌을 쪼던 이의 솜씨? 아니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의 간절한 마음? (짐작은 어렴풋하게나마 할 수 있다 치더라도 무슨 재주로 찍을 수 있을까) 또는 신앙의 대상으로서보다는 자연과 어우러져 있는 바위덩어리? 보이는 대로 정확하게 기록만 하겠다는 것 또한 지나친 욕심이었음을, 촬영을 시작한 후 거의 일 년이 지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마침내, 서울을 벗어난 이 산속에서 해의 위치와 부처의 안색이나 살피며 많은 날들을 지낼 수 있다는 점을 행복해 하자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돌부처들에게로 거듭 가서 다시 바라볼 때마다 새삼스럽게 느껴지던 당혹스러움과 난감함으로부터는 끝내 벗어날 수 없었다. 혹시 나에게 아주 보잘것없는 재능이 있다고 치더라도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었다. 자주 가서 보고 찍고 또 찍어대는 미련스러움만이 나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다행히 얼마만큼이라도 정확하게 기록이 되었다면 그것은 나의 우둔함 때문일 것이다.”

고락을 함께 하며 경주 남산을 가장 경주 남산답게 보여 주려 애쓴 북디자이너 정병규가 느낀 감회도 만만치 않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게 있어서 『경주 남산』의 책만들기 작업에 동참할 수 있게 된 것은 크나큰 행운이었다. 삼 년여에 걸친 긴 시간을 한 권의 책을 위해 가질 수 있다는 것, 사진가와 발행인과 나눈 경주와 남산 그리고 책에 관한 수많은 대화들, 남산을 오르내리면서 느낀 여러 생각들…. 이 모든 것은 아마 앞으로는 갖기 힘든 특별한 작업방법, 작업과정이리라. 책을 디자인하는 일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저자의 메시지가 독자에게 정확히 전달되도록 돕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작업에서는 그러한 돕는 일의 모든 조건들이 우리의 출판상황을 생각할 때 더없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는 셈이다. 『경주 남산』의 디자인 작업은 이러한 조건들을 조화시키는 일이었다. (…) 작가의 메시지를 고려하지 않고 디자이너의 낯만 보이는 북디자인은 엄밀히 말해 그 존재가치가 없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작가 강운구가 연출해낸 『경주 남산』은 그의 개성과 안목으로써 빚어낸 한 편의 드라마라고 생각된다. 그 드라마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삼 년여에 걸친 책만들기 여행에서 배운 것은, 어떻게 하면 작가의 뒤로 디자인이 잘 숨느냐 하는 것일 수 있다.”

이러한 만든 이들의 마음 못지않게 이 책을 정성스럽게 읽어낸, 지금은 고인이 된 문학평론가 김현의 진정 어린 서평이 가슴에 오래 남는다. 그는 이렇게 평한다.

“대상의 내부에 들어가면 따뜻하고 친밀한 것과 만날 수 있다는 강운구 씨의 미학은 부처의 얼굴 묘사에서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저마다 얼굴이 다른 부처들은, 그 부처들의 내부에 깊숙이 들어간 뛰어난 예술가의 눈을 통해, 놀라워라, 한국인의 관념화된, 이상화된 모습들과 해후한다. (…) 그 얼굴들은, 내 유년 시절에 내 고향에서 나날이 보고, 같이 말하고 같이 느끼던 사람들의 얼굴들이다. 절망과 고뇌와 굶주림이, 잘 삭은 토하젓처럼, 잘 곰삭아 거의 무표정에 가깝게 사람의 얼굴을 일그러뜨린 그런 얼굴들이, 그가 경주 남산의 부처들에서 찾아낸 얼굴들이다. 그 얼굴을 간직하고 있는 부처의 얼굴들은, 풍화되어 일그러지기도 하고, 해체되어 부숴지기도 한다. 그 얼굴들을 연결시키고 있는 것은 나이든 한국인들의 그 지친 듯한 얼굴들이다. (…) 이 책은 대상의 내부로 깊게 내려가면 따뜻하고 밝은 불만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희귀한 책이다. 그 불에 한 번이라도 스친 사람이라면, 이 책을 다신 잊지 못하리라고 나는 믿는다. 따뜻하고 그리고 친밀하게.”

몇 사람의 발언을 통해 느낄 수 있듯, 이 책은 자연물을 카메라 앵글에 담아 거기에 숨결을 불어넣은 드문 책으로 기억되며, 열화당이 걸어온 길 위에 굵은 흔적을 남긴 결실로 기록될 만하다. 2009년에는 한국문학번역원의 ‘2006 한국의 책 100’ 번역출판사업의 지원을 받아 스페인 에디토리알 베레니세와 함께 공동으로 『GYEONGJU NAMSAN』 스페인어판을 출간했다.

6. 미술작품을 통해 미술의 가치를 음미하는 ‘위대한 미술가의 얼굴’

“미술사가 오늘의 시각에서 다시 씌어져야 한다는 비등하는 요구에 맞춰, 새로이 발굴한 도큐멘트에 기초하여 정선된 작품들로 재구성된 이 시리즈는, 구태의연한 나열식 편집이 아니라 위대한 미술가의 삶과 그들 걸작의 가치를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한・불 양국 전문가들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했다. 또한 한국어판의 독자적 시각을 지키고자, 한글세대 번역진의 참신하고도 빈틈없는 우리말 옮김새에도 최선을 다했다.”

출판사 대표의 이 출간의 변이 명쾌하게 보여 주듯, 이 시리즈는 한국 출판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려놓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리즈는 1990년 5월에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개최되었던 한・불 출판세미나에서 양국간에 문화와 전통이 예술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도서에서도 대단히 중요하게 엮여 있는 만큼 이 분야에서의 양국의 직접적인 접촉과 교류의 중요성에 공감한 프랑스 예술도서출판협회장 안느 드 마르주리와 열화당 대표 이기웅의 공감으로 성사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진행된 이 시리즈의 구체적인 출판 현황을 보면, 1990년 10월에 『고흐』 『로댕』 『르느와르』 『고야』 등 네 권, 1991년 10월에 『클림트』 『피카소』 『미켈란젤로』 『마네』 등 네 권, 1992년 10월에 『보티첼리』, 1993년 9월에 『세잔느』와 『쇠라』, 그리고 1994년 7월에 『렘브란트』를, 같은해 11월에 『드가』 『툴루즈-로트렉』 『베르메르』 『모네』 등 네 권을 펴내면서 모두 열여섯 권을 채우게 된다. 이 시리즈는 당시로서는 흔하지 않던 공동출판이라는 점, 인쇄・제본에서의 우수성 등을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출판평론가 이중한은 이 화집의 출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이 화집들은 그래서 화집들이 아니다. 화가 마음의 인간사이고 화가가 살았던 시대의 풍속사이다. 독자는 얼마쯤 놀라면서 위대한 예술의 표면을 제끼고 위대한 예술가가 만들어낸 특출한 사람들의 보통 고뇌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희로애락의 자화상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새로운 친밀감을 만든다. 작품으로서가 아니라 작가를 직접 만났을 때 느끼게 되는 친밀함이 바로 이 책의 창조이고 성공이다. 여전히 인쇄물로서 영상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경이가 이 전집에 들어 있다. 이것은 반복된 전집이 아니라 새로운 시도이다.”

작가 조세희는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이 화집들을 평한다.

“‘위대한 미술가의 얼굴’ 시리즈 화집의 가장 좋은 점은 이 세상의 온갖 고통과 절망뿐 아니라 ‘승리까지 분명히 초월했을’ 예술가들이 인류 공동의 것으로 남겼다고 말해지는 그 ‘자산’을 미술에 애정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고스란히 옮겨다 준다는 데 있다. 한・불 공동출판인 이 화집의 저술, 편집, 인쇄, 제본이 모두 프랑스에서 그쪽의 빼어난 전문가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지만 나는 누구에게보다 한국어판의 ‘독자적 시각’을 고집한 우리 번역, 편집진에 크게 감사하고 싶다. 이들의 성실한 작업, 이해, 노력이 없었다면 우리가 받는 감동도 그만큼 줄었을 것이 분명하다. 나는 ‘위대한 미술가의 얼굴’이 미술 앞에 놓인 장애물들을 하나하나 제거해 주리라 믿는다.”

북디자이너 정병규는 화집에 대해, 특히 화집의 디자인에 주목하여 다음과 같은 평을 한다.

“화집은 단순히 원화의 복제만이 아닌 그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다. 책으로서의 화집은 극장의 기능과 같다고 생각해 본다. 우리는 이 박물관 저 미술관을 애써 다니지 않아도 간단히 명작을 구경할 수가 있고, 그 구성과 해설 등 편집자의 도움을 받아 한 작가의 작품이나 한 시대, 어떤 조류 등을 감상할 수가 있다. 이러한 공간으로서의 화집은 그러니까 실제의 명화 감상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러한 화집의 기능을 염두에 두어야 하며 또 이것이 화집의 고유한 기능인 것을 인정해야 한다. (…) 이 전집 내용은 각 권이 잘 짜여진 드라마이며, 전체로서는 극장의 무대와 같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는 이 ‘위대한 미술가의 얼굴’에서 새삼스레 글맛을 따로 맛보게 되는 즐거움을 더불어 갖게 된다. (…) 이 전집의 격을 더욱 높이고 있는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이 책의 디자인이다. 이미 노년에 접어든 프랑스의 뛰어난 출판디자이너인 페테르 크납의 아트 디렉션, 공간 연출은 구라파 정통 스타일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북디자인은 최상급의 것이다. 이것은 이 전집의 또하나의 자랑거리라고 뽐내었으면 좋겠다.”

물론 이러한 지대한 의미를 지닌 이 시리즈가 실제 제작되는 과정은 마냥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다른 책의 출판에 비해 훨씬 많은 제작비가 들었다는 점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을 수 있고, 또 아직 고급 독자층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소비 상황 속에서 일정 부수가 ‘판매’되어야 한다는 ‘현실적인’ 측면에서는 적잖은 애로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날이 고급화해 가는 독자들의 기호와 취향을 고려한다면 (시기가 지나치게 빨랐다는 점을 일단 제외한다면) 이 시리즈의 출판은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며, 또 출판문화사적으로도 의의가 있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출판평론가 이중한은 이러한 맥락에서 다음과 같은 평을 한다.

“이러한 미디어의 변화 속에 출판의 지위와 그 존재양식을 어떻게 새로 정립할 것인가에 대한 대안과 전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高品位 도서들의 제작이 필요해지고 또 그 수요도 새롭게 생길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시제품이 우리에게도 이미 등장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 예가 열화당이 프랑스의 출판사와 공동제작한 ‘위대한 미술가의 얼굴’ 같은 것이다. 파리에서 편집되고 베른에서 인쇄된 이 새 미술전집 시리즈는 단순히 다국간 공동출판이라는 의미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뉴미디어 시대에 보다 더 기술적으로 미적으로 잘 만들어진 올드 미디어의 생존양식을 보여주는 고품위출판의 새 노력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야심찬 시도가 현실 속에서 얼마만큼의 독자와 만났나 하는 점을 일단 접어둔다면 이 시리즈는 우리 미술 출판의 수준을 성큼 끌어올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처음 기획하고 펴낸 프랑스에서마저 ‘시장성’의 문제 때문에 일시적으로 작업을 중단하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은, 출판에서의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실감하게 하며 아울러 그 상황을 타개할 적절한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과제를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