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화당이 걸어온 길

6. 진정한 ‘책’의 가치를 찾아가는 시기 2009-현재

열화당은 2009년초 파주 사옥을 증축, ‘도서관+책방’이라는 실험적 공간을 마련했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는 출판에 관한 시야와 사고에도 적잖은 영향을 주었는데, 지금까지는 출판사로서 그저 ‘좋은 책을 만드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왔다면, 이제는 열화당이 만든 책, 그리고 지금까지 만들어졌던 아름다운 책들의 표본을 보면서 앞으로 만들어야 하는 책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게 된 것이다. 이는 열화당의 책, 한국의 출판, 더 나아가 인류 문명이 만들어낸 활자문화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아우른다. ‘말’이란 인간이 만든 도구 가운데 가장 원리적이고 원형적인 존재다. 문자로 표현되는 ‘글’ 그리고 한 걸음 나아가 ‘책’도 마찬가지로, 모든 도구의 원천이 되는 존재다. 가장 많이 팔리고 대중적인, 얼핏 보면 가장 시장성이 있어 보이는 말이나 글이나 책의 생산에만 경쟁적으로 몰입하는 지금의 출판 현실에 대한 총체적인 반성이 필요했다.
이러한 고민을 공간적으로 구현해낸 곳이 바로 ‘도서관+책방’이다. 이곳에는 열화당이 그동안 만들어온 책뿐만 아니라, 40년 가까이 출판사에 축적된 동서고금의 아름다운 책들이 꽂혀 있는 책방이지만, 단순히 책을 팔기 위한 곳이라기보다는 책의 역사와 문화를 함께 향유하고 탐구하는 도서관과도 같은 공간이다. 이곳은 열화당 편집자들뿐만 아니라 출판도시에 입주한 다른 편집자들과 외부 방문객들이 자유로이 열람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다.
이 신관의 설계는 기존 사옥을 디자인했던 런던 메트로폴리탄 대학의 플로리언 베이겔 교수와 필립 크리스토가 맡았다. 한국의 협력 건축가로서 이들과 함께 작업한 최종훈은 열화당의 새 공간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기존 열화당 건물과 연결되어 2009년초 새롭게 증축된 이 건물은 열화당의 공동체적 가치와 신념이 반영된 아름다운 결실이다. 현재 사무실로 쓰이고 있는 열화당 구관이 이러한 의지를 알리는 시작이었다면, 더욱 개방적인 성격의 열화당 신관은 그 완성과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파주출판도시의 궁극적 목적이 ‘출판문화공동체’의 형성이었고, 이 건물을 통해 ‘도시로서의 건축(architecture as urbanism)’의 가치를 다시 한번 이끌어내는 것은, 일단계 사업이 마무리되어 가는 시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 우리는 열화당 신관이 독립된 오브제가 아니라 주변 건물들과 조화롭게 어울리기를 바랐고, 이러한 ‘앙상블(ensemble)’이 도시의 질을 높이고 도시에 문명성(civility)을 부여한다고 판단했다. 또한 우리는 이 건물이 출판도시에서 문화적인 역할을 충분히 하도록 하는 데 가장 큰 중점을 두고 설계를 진행했다. 앞마당인 ‘아트 야드(Art Yard)’는 이러한 문화 클러스터(cluster)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핵심적 공간으로, 이 도시의 다양한 문화와 만남을 담을 수 있는, 작지만 매력적인 카펫(carpet)과도 같은 곳이다. (…) 한편, 아트 야드와 포티코를 배경으로 서 있는 열화당 신관의 입면은 출판도시에 색다른 모습을 선사한다. 다양한 비례의 창문들과 수평・수직의 양각(relief)은 단순한 장식이라기보다는 출판도시와 방문객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열화당의 표정으로, 그것이 주는 분위기는 가까운 친구나 가족에게서 받는 느낌에 비유될 수 있다. 고전적이면서 어딘지 모르게 낯익은 이 표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치 건물이 형상적(figurative)으로 의인화되어 다른 구조물이나 열린 공간과 대화를 나누는 듯하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이같은 정서가 더욱 자연스럽게 이어지는데, 도서관, 책방, 전시장, 북카페, 사무실 등 다양한 기능들이 서로 구분되기도 하고 통합되기도 한다. 이층에 매달린 복도형태의 메자닌(mezzanine)은 여러 용도로 구분된 공간들을 연결해 주는 기능을 하며, 아래층과도 시각적으로 소통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공간구성은 책과 관련된 다양한 행위가 경계 없이 흘러가기를 바랐던 열화당의 개방적이고 유연한 생각이 반영된 결과다. (…) 이와 같은 정신적 가치들은 건축이 진행되는 내내 건축주, 설계자, 시공사 사이에서 공유되었으며,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었다. 건물은 완성되었지만 건축의 과정은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열화당에 지속적으로 적층될 책, 그것이 담아낼 문화유산이 또 다른 내재된 풍경을 만드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즈음 열화당에서 발행된 책들은 앞선 시기와 다른 뚜렷한 변모를 보이는 것은 아니나, 예술가들의 작품집과 이미지가 배제된 텍스트 위주의 책들이 많이 출간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우선 작품집으로는 2005년부터 조각가 최종태의 소묘, 파스텔 그림, 조각, 매직 마커 그림, 판화 등 작품세계를 정리하고 있는 『최종태 작품전집』(전5권)을 비롯해, 1960-70년대 신필림의 신화를 일구며 한국영화계에 우뚝 섰던 영화감독 신상옥의 삶을 사진과 글을 통해 조명하는 『영화감독 신상옥』, 동양화가 문봉선이 1998년부터 2010년까지 그린 ‘流水’ ‘大地’ ‘霧’ 세 연작 중에서 엄선된 60점을 엮은 『문봉선 1998-2010』, 우주를 그리는 화가 오경환이 2002년에서 2006년 사이에 남아메리카를 여행하며 남긴 스케치와 단상들을 모은 『별을 찾아서』, 한국적인 색감과 소재를 현대적으로 표현하는 화가 김테레사의 첫 작품집 『김테레사 작품집 1978-2010』, 사진가 강운구의 ‘역사 삼부작’이라 할, 신라 능, 삼국유사, 경주남산을 담은 컬러 사진집 『오래된 풍경』 등이 있다. 노장 예술가들의 전작을 망라하고 황혼기의 새로운 시도들을 담아낸 이같은 책들은 비록 대중적으로 보급되는 성격은 아니지만, 한 예술가의 작업을 정갈하게 정리하여 후대에 남긴다는, 책이라는 매체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텍스트와 최소한의 이미지로 이루어진 영화, 사진, 미술 관련 에세이나 이론서들도 이 시기에 선보이게 된다. 들뢰즈의 全 저작 속에서 들뢰즈와 ‘예술’이 조우한 지점, 즉 들뢰즈 사유의 생성지대를 탐구해낸 본격적인 들뢰즈의 예술철학론 『들뢰즈와 예술』, 현대 영상 이미지학의 대가 자크 오몽이 ‘모더니티’와 ‘동시대성’이라는 두 문제를 전면적으로 제기한 저서 『영화와 모더니티』, 사진작가 강운구가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근 40년 동안 신문, 잡지, 사진집 등에 발표했던 사진에 관한 글을 묶은 『강운구 사진론』 등이 있다. 이 책들은 시각예술을 다루고 있지만 이미지가 전혀 사용되지 않았는데, 앞시기에 출간된 몇몇 책들과 맥을 같이한다. 피카소가 극찬한 최고의 예술가론인 장 주네의 『자코메티의 아틀리에』, 현대미술이 고질적으로 갖고 있는 소통의 문제를 풍자적으로 다루고 있는 극작가 장소현의 『그림이 그립다』, 서구 지성계의 ‘카산드라’라 불리는 미래 진단학자 폴 비릴리오의 현대 시각예술에 관한 묵시록 『시각 저끝 너머의 예술』, 과학철학자이자 시인인 바슐라르의 미술론 『꿈꿀 권리』의 개정판 등이 그것이다. 요즘과 같은 이미지 과잉 시대에 오히려 이를 배제함으로써 문자가 지닌 힘을 되찾는 이같은 시도들은 열화당이 앞으로 이어 나갈 출판의 한 형태이기도 하다.
또한 문화부 현장기자와 데스크를 거쳐 현재 국민일보 논설위원으로 있는 손수호가 지난 20여 년간 품어 온 문화에 대한 생각들을 저널리즘과 아카데미즘을 결합하여 현장감있게 풀어낸 『문화의 풍경』, 세상의 혼돈과 변화, 잡스러움 속에서도 고고하게 전통적 정신세계를 지켜 가고자 하는 문인화가 월전 장우성의 수필을 그의 소묘와 함께 엮은 『월전수상』 등, 이미지와 글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 책들도 선보였다.

1.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예술가 ‘김종영’— ‘刻道人 金鍾瑛 選集’과 『한 예술가의 回想』

우리나라 추상조각의 선구자로서 큰 업적을 쌓은 又誠 金鍾瑛은, 서양미술을 전공했지만 끊임없이 전통과 현대를 넘나들며 美라는 명제와 싸워 온 흔치 않은 예술가였다. 궁극적으로는 추상조각을 통해 절대미를 추구했던 그였지만, 그가 남긴 결실들은 스케치, 데생, 소묘, 먹그림, 서예 등 다양한 미술 장르에 관한 끊임없는 연마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생전에 조각 외의 작품을 공개적으로 선보인 적이 없었다. 그랬기에 그의 예술의 깊이와 넓이가 어느 정도인지, 지금까지도 온전히 드러나지 않았던 것인데, 그가 남긴 작품은 200여 점의 조각 외에도 3,000여 점의 소묘와 800여 점의 서예 등 엄청난 규모다. 이렇듯 광활한 그의 예술지도를 온전히 보여 주기 위한 첫 작업이 바로 ‘刻道人 金鍾瑛 選集’이다.
『金鍾瑛 書法墨藝』를 통해 처음으로 선보이는 김종영의 서예작품들은 활달하며 자유로운 그의 예술세계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어느 대가의 글씨를 흉내내지도 않으면서, 그야말로 마음 가는 대로, 붓 가는 대로 쓴 글씨들은 불균형 속의 균제, 속기 없는 졸박함을 잘 담고 있다.
詩書畵에 능통했던 부친으로부터 전형적인 동양의 사대부 교육을 받고 향리에서 소학교를 마친 그는 1930년 서울 휘문학교 입학 후 17세 때인 1932년에 동아일보사에서 주최한 ‘전국학생서예실기대회’에서 顔眞卿體로 일등상을 수상하면서 일찍이 뛰어난 예술적 품성을 드러냈다. 서예와 관련한 공식적인 이력은 여기까지이지만, 그 이후로 김종영은 죽을 때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
그는 동서미술을 꿰뚫고 동서철학을 수용 조절하고 일찍이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근간으로 하여 유유자적한 隱者의 삶을 살았다. 그리고 그러한 삶은 그의 붓글씨에 온전히 담겨 있다.
두번째권인 『金鍾瑛 抽象素描』는 그의 추상조각이 탄생하게 된 밑그림으로서의 의미뿐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의 조형세계를 반추해 가며 ‘절대의 미’를 추구한 한 예술가의 뛰어난 사유의 진행을 보여 주고 있다. 미술평론가 오광수는 그의 추상소묘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김종영의 드로잉은 어떤 작품을 위한 에스키스 단계를 보여 주는 것이 있는가 하면, 순수한 사유의 진행으로서 어떤 흔적들을 보여 주는 것이 태반이다. 공간 속에 떠오르는 형태의 존재감을 찾아가는 여행으로서 손의 작동이 있는가 하면, 손의 작동을 통해 내면 깊숙이 잠재되어 있는 형태의 생성을 이끌어내는 반복되는 호흡이 있다. 어떤 경우이거나 진행으로서의 단계, 언제나 시작되고 또 언제가 시작에로 회귀하는 순수한 과정이 있는 것이다.”
작가의 사유의 진행을 따라 화면 가득 펼쳐지는 단색의 사각형과 다색에 의한 색면의 조합을 통해 내재적이면서도 생동하는 생명감을 지니고 있는 김종영만의 작품세계를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리즈는 『金鍾瑛 書法墨藝』와 『金鍾瑛 抽象素描』에 이어 그의 인물소묘, 풍경소묘, 조가 등 총 다섯 권으로 완간될 예정이다.
한편, 열화당에서는 ‘각도인 김종영 선집’에 앞서 『초월과 창조를 향하여』라는 그의 예술론을 선보인 바 있는데, 그의 작품과 글뿐 아니라 제자 최종태가 쓴 『한 예술가의 回想』을 출간함으로써 한 예술가의 면모를 온전히 조명하고자 했다.
『한 예술가의 回想』은 저자 최종태가 스승 김종영과 함께하면서 보고 겪은 그대로를 기록한 것으로, 조금의 보탬이나 수식이 없는 진솔한 회고담이다. 스승 김종영과 나누었던 대화, 함께했던 시간들을 잊지 않고 기록하여 후세에 전할 목적으로 쓴 일종의 備忘錄인 셈이다. 이렇듯 사적인 기록이지만, 여기에는 한 예술가(최종태)의 눈에 비친 또 다른 예술가(김종영)의 모습이, 그의 말과 행동과 삶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를 뛰어넘는, 예술가에 관한 예술가의 기록이라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2. 강운구에 이르는 색다른 길, 『강운구 사진론』과 『내친구 강운구』

가장 한국적인 질감의 사진을 남기는 사진가 姜運求, 지금까지 그를 말해 주는 것은 전시회를 통해서건 사진집을 통해서건 그의 사진뿐이었다. 강운구의 일흔번째 생일에 즈음하여 발간된 두 권의 책 『강운구 사진론』과 『내친구 강운구』는 지금까지 출간된 작품집으로 알 수 없었던 강운구의 ‘생각’과 ‘모습’을 담은 다소 이색적인 출판이라 할 수 있겠다.
강운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사진과 함께 그의 글을 떠올릴 만큼, 그의 글은 특유의 글맛을 지니고 있다. 그는 이미 1970년대부터 『뿌리 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에 사진과 글을 실으면서 거두절미하고 사물의 핵심을 파고들어 가는 문장, 군더더기 없는 명징한 문장, 그리고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이 돋보이는 세련된 문장을 선보인 바 있다. 『강운구 사진론』은 197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여러 지면들에 발표됐던 강운구의 사진 관계 글들을 묶은 것이다.
1960년대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한 그는 당시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독학으로 공부를 하며 사진이란 무엇이고, 사진의 본령은 무엇인지 철저히 탐구해 나갔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가 다다른 것은 사진의 기록성과 사실성이었다. ‘사진이란 기록하는 것’이며 ‘사진의 본령은 사실적 기록에 있다’는 명제 아래 흔들림 없이 걸어온 저자는 이 책에 사진에 관한 이와 같은 그의 믿음들을 담아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 확인된다.

“이 땅에서는 ‘회화로서의 사진’이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사진으로, 새로운 사진으로 폭넓게 퍼졌다. 그것은 축복이자 재앙이었다. 아무리 카메라로 찍고 인화지 위에 그 이미지를 정착시켰다 하더라도 그것의 정체가 수상하다면, 밥그릇에 담겼다고 해서 무엇이나 다 밥은 아닌 것처럼, 본디 사진이라고 할 수 없다.”

그는 특유의 ‘밥’ 사진론으로 우리 사진계를 매섭게 질타했다. 예술장르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사진은 회화적 경향으로, 회화는 사진적 경향으로 서로의 담을 넘었는데, 자기가 하는 것이 밥인지 죽인지도 모르면서 하는, 심지어는 죽도 밥도 아닌 ‘작품’을 하는 우리의 사진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한편, 그는 홍순태, 한정식, 육명심, 주명덕 등 다른 사진가의 작업이나 전시회에 대한 평문도 적지 않게 발표했는데, 여느 비평가들과는 달리 어려운 철학이론이나 미학개념을 끌어들이지 않으면서, 오히려 가장 쉬운 언어와 가장 명징한 논리로 그네들의 작품을 비평했다. 비판의 지점, 찬사의 지점을 분명한 논리로 명확히 평가하고 있는 그의 평문들은, 그래서 독자로 하여금 자연스런 공감대를 형성하게 하며, 어찌 보면 새로운 비평의 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내친구 강운구』는 출판사의 발행인인 이기웅이 20여 년간 강운구와 함께하면서 그의 모습을 찍은 사진으로 엮은 이색적인 사진집이다. 우리는 이 책에서 사진작가 강운구의 사십대 중반부터 육십대 중반까지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그것들은 일상의 강운구가 아니라 촬영현장의 강운구가 거의 대부분이어서, 그의 사진이 탄생되던 그 현장을 비로소 우리는 목도할 수 있게 되었다.
이기웅은 강운구의 조수 노릇을 자처하며 보낸 시간들 속에서 그가 바라보는 것, 그가 고뇌하거나 뭔가 구상하고 있는 순간의 표정, 힘들어 쉬고 있는 뒷모습을 날 것 그대로 카메라에 옮겨 담았다고 하는데, 한 사진작가의 모습을 이렇게 20년이 넘게 기록한 경우는 아마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을 것이다.

3. 영원의 세계를 향한 인간의 진실한 기록, ‘열화당 영혼도서관’

영혼도서관은 파주출판도시 2단계에 자리할 특별한 곳으로, 평생 동안 자서전 쓰기를 독려하고 출판함으로써 한 개인의 지나온 삶을 성찰하고 이를 통해 생의 아름다운 마감을 하는 영적인 공간이다. ‘열화당 영혼도서관’은 앞으로 영혼도서관이 개관하여 본격적인 자서전 쓰기 프로그램이 진행될 경우 출판을 담당하게 될 새로운 시리즈로, 현재는 그 준비기로서 자서전이나 회고록 출판의 다양한 실험과 모색을 시도하고 있다.
2010년 6월 시리즈의 첫번째 권으로 선보인 『민영완 회고록』은, 고려신학대학 총장을 지내고 한국 초기 기독교 역사의 격변기를 체험한 閔泳完(1918-2009) 목사의 진실한 기록이다. 일제 말엽 기독교 수난시절에 처음 신앙생활에 접어들어 해방 후 한국 교회가 혼란을 겪던 시절 목회활동을 한 그는, 평생을 교회 개척과 개혁, 어린이・청소년 신앙교육에 큰 힘을 쏟았다.
1988년 처음 출간되었던 것을 저자의 1주기를 맞아 새롭게 개정한 것으로, 초판 이후의 내용은 아내 변증이의 회고를 통해 완성하였다.
시리즈의 두번째 권으로 2011년 7월 선보이는 『김익권 장군 자서전』(전3권)은, 일제 치하에서 경성제국대학 법학과에 다니다 강제로 징병당하고, 해방 후 한 나라의 군(軍)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껴 조선경비학교(지금의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하여 군인이 된 柿谷 金益權(1922-2006)의 기록으로, 제1권은 그가 남긴 自傳的 遺稿를 엮은 『참군인을 향한 나의 길』, 제2권은 아버지의 가르침에 대한 추억을 기록하여 생전에 출판했던 『우리 아버지』를 새로이 편집한 『우리 아버지 이야기』, 제3권은 사진을 통해 그의 삶을 엿볼 수 있도록 꾸민 『사진 앨범』이다. 개인의 삶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先代와 後代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생각한다면, 자서전 역시 한 개인과 관련된 선대에 관한 기록도 포함해야 하며, 때로는 장편의 글보다 한 장의 사진이 더 많은 말을 해준다는 면에서 사진기록도 자서전의 영역에서 참고자료 이상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처럼 개인의 삶에 대한 기록이라는 기존의 자서전 개념을 확장하여,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와 별도의 사진첩까지 세 권으로 선보이는 이 책은, 새로운 개념의 자서전 출판으로 기록될 것이다.
개인의 일생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하여 인생의 要諦에 이르게 하는 ‘열화당 영혼도서관’ 시리즈는 ‘靈源의 세계를 향한 인간의 진실한 기록’을 찾아 꾸준히 선보일 예정이다.

4. 옛 책의 物性과 靈性의 온전한 복원, ‘열화당 한국근현대서적 복각총서’

종이책의 새로운 전형을 꾸준히 모색해 오던 열화당은, 옛 책이 담고 있는 독특한 만듦새와 진정성있는 기록에 주목하여 ‘열화당 한국근현대서적 복각총서’를 기획하였다. 다소 길더라도 시리즈의 간행사를 통해 기획의 말을 들어 본다.

“책은 物性과 靈性을 동시에 지닌 매체로, 특히 인간의 정신을 고양하는 데 큰 역할을 해 왔다. 우리는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한 지혜로운 민족으로서, 예로부터 기록을 소중히 여기는 자랑스런 전통을 지녀 왔다. 그러나 우리의 기록과 출판에의 긍지는 가혹했던 일제 植民期, 비극적인 동족끼리의 전쟁을 겪으며 안타깝게도 일그러졌다. 그럼에도 어려웠던 시기 우리의 학문과 문화, 전통과 사상을 출판을 통해 지키려 했던 선각자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의 출판문화는 존재할 수 있었다.
‘열화당 한국근현대서적 복각총서’는 한국에서 근대적 출판이 시작되던 1800년대 말에서 戰後 사회 전반이 재건되던 1950-60년대 사이에 출간되었던 책과 기록물 중 반드시 재조명되어야 할 가치있는 것들을 엄선하여, 復刻本이라는 고전적인 형식으로 선보이는 시리즈이다. 분야와 형태를 막론하고 기획・내용・형식 등 여러 면에서 뛰어난 출판물을 선별하여, 처음 출간되었던 모습 그대로, 지금의 기술력으로 복원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다해 복각하여 限定本으로 선보인다.
지난 시기의 아름다웠던 書籍을 다시금 출판함은, 溫故知新, 法古創新의 배움의 자세로 오늘 우리가 지향해 나가야 할 출판의 師表로 삼고자 하는 데 그 의의가 있으며, 이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소중한 자료를 공유함으로써 학문적 저변을 확대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이 시리즈를 통해, 우리 출판의 진정성에 관한 진지한 성찰이 있기를, 그리하여 더욱 단단하고 성숙된 출판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면서 이 총서를 여러분 앞에 내놓는다.”
이 시리즈는, 근대기의 교육자 方信榮이 쓴 한국 최초의 근대 요리책인 『朝鮮料理製法』(1937년 증보 8판)을 시작으로, 1932년 聖公會의 세실 主敎가 발간한 개인의 신앙생활을 위한 『私禱文』(1932), 그리고 岸曙 金億이 번역한 朝鮮女流漢詩選集 『꽃다발』(1944)을 출간 계획하고 있으며, 李如星의 『朝鮮服飾考』(1947), 洪起文의 『朝鮮文化叢話』(1946)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꾸준히 선보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