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사옥

단단함 속에 스며든 부드러움 
설계자의 말

1999년 여름, 파주출판도시 설계 지침을 세운 후 출판사들이 각자의 부지를 선정할 무렵, 열화당 이기웅 사장이 우리에게 김종규 교수의 건축사무소 M.A.R.U.와 함께 열화당 사옥 설계를 의뢰해 왔다. 이 사장은 열화당 사옥을 출판도시의 랜드스케이프 방법론이 이상적으로 실현된 하나의 본보기로 삼고자 했으며, 동시에 도시 전체의 개념을 가장 명확히 증명하는 건축물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열화당은 동서양의 다양한 미술과 한국 전통문화에 관한 책을 장인정신으로 만들어내는 출판사이다. 우리는 이 책들이 너무나 사랑스러웠고, 건물을 디자인하는 데 어떤 높은 기준을 세우도록 하는 충분한 동기가 부여되었다.

열화당 건물의 형상과 색은, 우리가 제주도를 방문했을 때 본, 햇빛을 가리기 위해 프레임 위로 검은 비닐망을 덮은 구조물과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검은 현무암 돌담에서 영감을 얻었다. 한국적 개념 속의 비움(emptiness)과 검정색, 그리고 출판도시의 중심개념인 ‘랜드스케이프 안에서 도시 그리기’를 생각하면서, 마침내 검은 직육면체를 조각칼로 깎아내듯 건물 형태를 만드는 방법을 떠올렸다. 즉 건물 가장 바깥면은 검은색으로 남아 있고, 도려낸 부분은 마치 속살이 드러나듯 투명한 면이 되도록 했다. 그렇게 해서 깎이고 남은 빈 공간은 투명한 벽으로 둘러싸인 마당이 되었다. 양 모퉁이가 크게 잘려 나간 3, 4층은 저층부에 올라앉은 파빌리온으로서, 이 양면은 모두 투명하게 된다. 이처럼 마치 엄청난 크기의 추상문자 조각 하나가 지평선 위에 세워져 있는 듯한 열화당 건물은, 검정색의 단단함 속으로 투명한 부드러움이 걸어 들어오는 느낌을 지닌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취한 건축적 전략(sculptural strategy)이며, 열화당 건물의 형태적 가치(iconic quality)이다.

파주 열화당 사옥의 '빛의 벽'. 사진 조너선 러브킨, 2004.

열화당 건물의 기본개념은 마당과 이를 끼고 있는 몇 개의 스튜디오 하우스들의 군집으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1, 2층은 출구 쪽 마당과 연결되어 전시 공간으로 사용되는 두 곳, 한강에 면해 편집실로 사용되는 두 곳, 그리고 직원 및 작가를 위한 휴식 공간 한 곳, 이렇게 모두 다섯 개의 스튜디오 하우스로 구성되며, 그 각각은 모두 독립된 계단으로 연결된, 층고가 다른 두 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3, 4층은 서재와 작은 주거 기능을 갖는 파빌리온으로, 이 1, 2층 스튜디오 하우스들의 옥상 테라스 위에 올라 앉아 있다. 그리고 모든 스튜디오 하우스들의 벽과 책장은 서로 다른 색을 지니는데, 이는 이탈리아 볼로냐 지방의 화가 조르조 모란디가 1940- 50년대에 사용한, 매우 안정되고 부드러운 색채에서 따 온 것이다. 또한 모든 방은 적어도 하나 이상의 투명한 벽을 지님으로써, 이를 통과한 부드러운 빛이 내부 공간을 비추도록 했다. 이처럼 열화당은 복도로 연결된 공간도 개방된 공간도 아닌, 방과 방, 방과 마당이 서로 연결된 ‘좋은 방들로 이루어진 집(a house of good rooms)’이다. 이는 매우 효율적인 공간 구성인 동시에 강한 건축적 정체성을 지닌다.

열화당을 방문한 이라면 누구나 우리의 이같은 개념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될 것이며, 이런 특성들이 열화당에 더욱 좋은 인지도를 부여하길 바란다. 설계작업을 공동으로 진행하면서 늘 뛰어난 재능과 관대함을 보여준 김종규 소장과 M.A.R.U.에 고마움을 표하고, 무엇보다 신뢰와 인내 그리고 굳은 의지로 이 작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도록 해준 이기웅 사장께 감사드린다.

2004년 봄
플로리안 베이겔(Florian Beigel) 필립 크리스토(Philip Christ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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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재된 풍경
신관 공동설계자의 말

기존 열화당 건물과 연결되어 2009년 초 새롭게 증축된 이 건물은 열화당의 공동체적 가치와 신념이 반영된 아름다운 결실이다. 현재 사무실로 쓰이고 있는 열화당 구관이 이러한 의지를 알리는 시작이었다면, 더욱 개방적인 성격의 열화당 신관은 그 완성과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파주출판도시의 궁극적 목적이 ‘출판문화공동체’의 형성이었고, 이 건물을 통해 ‘도시로서의 건축 (architecture as urbanism)’의 가치를 다시 한번 이끌어내는 것은, 일단계 사업이 마무리되어 가는 시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도서관+책방의 '아트 야드'와 '활래 포티코'. 사진 조너선 러브킨, 2009.

2006년 가을, 열화당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방’을 마련할 이 건물의 디자인을 또다시 플로리안 베이겔에게 의뢰했고, 나는 협력 건축가로서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우리는 열화당 신관이 독립된 오브제가 아니라 주변 건물들과 조화롭게 어울리기를 바랐고, 이러한 ‘앙상블(ensemble)’이 도시의 질을 높이고 도시에 문명성(civility)을 부여한다고 판단했다. 또한 우리는 이 건물이 출판도시에서 문화적인 역할을 충분히 하도록 하는 데 가장 큰 중점을 두고 설계를 진행했다. 앞마당인 ‘아트 야드(Art Yard)’는 이러한 문화 클러스터(cluster)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핵심적 공간으로, 이 도시의 다양한 문화와 만남을 담을 수 있는, 작지만 매력적인 카펫(carpet)과도 같은 곳이다. 건물의 주출입구는 이러한 카펫 위에 올라앉은 주랑(柱廊) 현관의 형식을 지니는데, ‘활래 포티코(Hwalle Portico)’라 이름 붙여진 이 작은 구조물은 하늘에 매달린 조명과 함께, 아트 야드가 단지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극장의 무대처럼 창조적 공간으로 다채롭게 변모하게 하는 중요한 장치이다.

한편, 아트 야드와 포티코를 배경으로 서 있는 열화당 신관의 입면(Art Yard Façade)은 출판도시에 색다른 모습을 선사한다. 다양한 비례의 창문들과 수평·수직의 양각(relief)은 단순한 장식이라기보다는 출판도시와 방문객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열화당의 표정으로, 그것이 주는 분위기는 가까운 친구나 가족에게서 받는 느낌에 비유될 수 있다. 고전적이면서 어딘지 모르게 낯익은 이 표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치 건물이 형상적(figurative)으로 의인화되어 다른 구조물이나 열린 공간과 대화를 나누는 듯하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이같은 정서가 더욱 자연스럽게 이어지는데, 도서관, 책방, 전시장, 북카페, 사무실 등 다양한 기능들이 서로 구분되기도 하고 통합되기도 한다. 이층에 매달린 복도형태의 메자닌(mezzanine)은 여러 용도로 구분된 공간들을 연결해 주는 기능을 하며, 아래층과도 시각적으로 소통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공간구성은 책과 관련된 다양한 행위가 경계 없이 흘러가기를 바랐던 열화당의 개방적이고 유연한 생각이 반영된 결과다. 또한 이곳은 기억의 공간(memorial place)이기도 하다. 한쪽 벽에 움푹 파인 아담한 규모의 벽감(壁嵌, niche)은 ‘어머니의 성소(聖所)’로,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고 추억하는 사적 공간을 넘어 시대를 관통하는 내재된 정신과 역사의 단면을 보여주는 풍경이다.

이와 같은 정신적 가치들은 건축이 진행되는 내내 건축주, 설계자, 시공사 사이에서 공유되었으며,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었다. 건물은 완성되었지만 건축의 과정은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열화당에 지속적으로 적층될 책, 그것이 담아낼 문화유산이 또 다른 내재된 풍경을 만드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대가 나를, 그리고 우리를 즐겁게 한다.

2010년 1월
최종훈

 

활래 포티코(活來 portico)의 작은 역사

출판사 열화당(悅話堂)의 연원이 되는 조선시대 고택 강릉 선교장(船橋莊)에는 작은 연못이 하나 있는데, 이 연못의 한편에 두 발을 담그고 있는 모습으로 세워진 누각 형식의 정자가 바로 활래정(活來亭)이다. ‘활래정’이란 이름은 주희(朱憙)의 시 「관서유감(觀書有感)」 중 “爲有源頭活水來”에서 따 온 것으로, “맑은 물은 근원으로부터 끊임없이 내려오는 물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선교장은 17세기초 효령대군의 11대손 무경(茂卿) 이내번(李乃蕃)이 저동(苧洞, 현 경포동)에서 이곳으로 옮겨와 지었고, 활래정은 이곳 사랑채인 열화당을 건립한 다음 해인 1816년(순조 16년)에 오은(鰲隱) 이후(李후)가 건립하였으며, 1924년에는 그의 증손인 경농(鏡農) 이근우(李根宇)가 중건(重建)했다. 벽이 모두 문으로 둘려 있고 방과 누마루 사이에 다실(茶室)이 마련돼 있어 근대 한국 건축의 독특한 구조를 보여주는 이 건물은, 가족이나 문사(文士)들이 모여 연꽃과 노송(老松)을 벗삼아 담소를 나누던 여름철 별당이었다.

조선후기 문신 조인영(趙寅永)은 「활래정기(活來亭記)」에서 “이 정자는 발자취를 거두고 세상사를 쉬면서 그 마음에 살아 있는 것을 깃들이는 곳”이라고 했고, 경농 이근우는 「활래정중수기(活來亭重修記)」에서 “책을 읽는 틈틈이, 문득 시인과 문사들과 함께 정자와 연못가를 거닐며, 술잔을 잡고 시를 지으며 가슴을 열고 마음을 폈다”라고 썼다. “작은 연못의 한 자 깊이 물도 또한 호수와 바다이듯, 마음에 맞는 곳은 진정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조인영의 말처럼, 이 건물의 설계자인 플로리안 베이겔은 ‘시간을 사이에 둔 번역’을 통해 “열화당 사옥에서 가장 순수하고 소중하며, 모든 의미가 응축되어 있는 공간”으로 활래정을 우리 곁에 재현해냈다. 책의 바다로 들어가는 문에 그늘을 드리워 사람을 이끌고, 잠시 쉬며 마음을 열고 싶은 이에게 차와 앉을 자리를 내주는 활래 포티코는, 끊임없이 흐르는 살아있는 물과 같이, 더함도 덜함도 없는 열화당의 인문정신이 공간적으로 구현된 하나의 상징물이다.

2009년 7월 2일
열화당

 

Swiss Architecture Museum in Basel에 전시된 열화당 사옥